519화. 사람의 모양을 한 신수
쏴아아.
선홍색 정혈은 석지에서 부단히 들끓으며 소형의 구두사를 이뤄 목진에게 향했다. 그 공격력은 엄청났는데 목진의 몸에 새겨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는 맑은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를 퍼뜨리며 녀석들을 모조리 으깨버린 뒤, 꿀꺽 삼켰다.
잇따라 목진의 등과 가슴팍에 새겨진 용과 봉황의 무늬가 밝아졌고 체내에서는 엄청난 고통이 폭발하였다.
목진은 그 엄청난 고통에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고, 구두사의 정혈이 목진의 체내에 스며들자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유달리 난폭하고 공격성도 가득했는데 그렇다고 강제로 그 움직임을 방해하면 진령을 활성화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목진은 첫 번째 정혈부터 제련하는 데 실패해 다시 구해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젠장!”
목진은 이내 욕설을 퍼부었다. 이대로라면 그의 체내도 구두사의 정혈 때문에 엉망이 될 것이다. 목진은 이제야 용봉진경의 수련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아직 첫 번째 신수의 정혈을 제련하는 중인데 이마저도 버티지 못한다면 나머지 아홉 가지 신수의 정혈은 무슨 수로 제련한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해결책에 대해 고민했는데 바로 무언가 떠올라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구두사의 정혈이 그렇게 흉악하면 뭘 할까? 나한테 더 강한 것이 있는데 말이야!”
목진이 눈을 감으며 마음을 움직이자 체내에서 암금색 빛을 발하더니 나지막한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와 함께 혈맥에서 암금색 빛줄기가 몰려왔다.
이는 용봉정혈이었다!
목진은 대량의 용봉정혈을 흡수해 용봉체를 수련했기 때문에 체내의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만의 기가 깃들었다.
하여 원고구두사가 신수방에서의 순위가 낮지는 않지만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처럼 선두를 달리는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리며 목진의 체내에서 금광을 발하자 난동을 부리던 구두사의 정혈은 엄청난 적을 만난 듯 황급히 도망갔다. 그리고 결국 목진의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용과 봉황의 무늬에 흡수되었다.
용봉정혈 덕분에 빠르게 상태를 회복한 목진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전력을 다해 구두사의 정혈을 흡수하였다.
첫 번째 정혈의 흡수는 나흘이 걸렸고 목진은 가슴팍과 등에서 무언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석지의 물은 나흘째 해질녘이 되어서야 고갈되었다. 목진은 다시 손가락을 튕겨 옥병 두 개를 부쉈고 그 속에 들어있던 색이 다른 정혈 몇 방울은 석지에 떨어져 요동치는 혈수가 되었고 이는 다시 목진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목진은 석지의 밑바닥에 끄떡없이 앉아있었고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용과 봉황의 무늬는 점차 밝아졌다. 부동한 신수의 정혈을 흡수한 무늬는 점차 생동감이 넘쳤고 혈광은 조금씩 목진의 몸을 휘감았다.
그 후로 목진은 보름 동안 석지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신수의 정혈들을 제련했다. 날이 갈수록 이곳의 피비린내는 짙어졌고 이는 혈광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구유궁에 펴졌다.
이에 구유마저 놀라 황급히 석지에 다가갔으나 목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그 구역을 봉쇄하였다.
“너무 무모한 것 아니야?”
구유는 석지 밖에 서서 수련 중인 목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토록 험난한 수련을 하는데도 아무도 곁에 두지 않다니.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런단 말인가?
비난도 잠시, 구유는 석지 밖에 앉아 목진을 지켰다.
“이것은…….”
구유는 자리에 앉고 나서야 석지에 깃든 난폭한 영력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도대체 뭘 수련하고 있기에 이토록 많은 종류의 신수의 정혈이 필요하단 말이야?”
구유는 어느새 안색이 어두워졌다. 신수의 정혈이 육신을 제련하는 작용을 하긴 하지만 대부분 너무 난폭해서 흡수하기가 쉽지 않는데 목진은 10가지나 되는 신수의 정혈을 동시에 흡수하려 했다.
녀석들이 서로를 배척해 난동이라도 부리면 이를 해결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위엄이야!”
그때 목진의 체내에서 전해진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은 구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구유작 종족은 신수 중에서 제법 큰 종족이었고 구유명작의 체내에는 불사조의 혈맥이 흘렀다. 이는 봉황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워낙 특이해 진정한 봉황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구유는 목진 체내에 깃든 진정한 봉황의 위력에 흥미진진해졌다. 그녀는 별의별 것을 다 몸에 들인다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목진의 수련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구유궁의 깊숙한 곳은 이제 선홍색으로 물들어 멀리서 보면 꼭 하늘에 걸린 구름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구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잔뜩 긴장한 채 석지 속을 지켜봤다. 그 속에서 각양각색의 포효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혈지의 밑바닥에 앉아있는 목진의 주위에는 거대한 혈영이 생성되어 미친 듯이 포효하였다.
이는 그가 흡수해 제련한 신수의 정혈이 만들어낸 것으로 녀석들의 의지가 조금 남아있었다. 목진은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정혈에 깃든 힘으로 이를 억누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흡수하는 양이 많아지자 이들이 힘을 합쳐 저항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남아있는 의지까지 흡수되어 제련될 것을 알아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수의 의지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이 힘을 합쳐 목진에게 맞서자 체내의 용봉정혈마저도 큰 작용을 하지 못해 수련의 마지막 단계를 무사히 마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너희 때문에 수련을 망칠 수는 없지!”
말을 마친 목진이 깊게 숨을 들이켜며 주먹을 쥐었다.
“나를 집어삼키고 싶어? 그럼 기회를 줘야지!”
목진의 온몸을 휘감았던 금광이 사라지자 열 가지 신수의 정혈에 깃든 의지로 만들어진 그림자가 미친 듯이 포효하며 목진의 체내에 스며들어 온몸에 퍼졌다.
“신수 정혈의 반격이라니!”
구유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목진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신수의 정혈을 흡수하려 했기에 언젠가 이런 변고가 생길 줄 알았다.
크으으으!
그때 목진은 용봉체와 체내에 숨어있던 용봉정혈을 최대한 끌어올려 암금색 빛을 발하며 사정없이 혈광을 공격하였다. 양쪽 모두 서로를 집어삼키려 애썼지만 목진의 체내라 그런지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목진이 용봉체와 용봉정혈을 최대한 끌어올리자 열 가지 신수가 형성한 혈광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양자의 충돌로 목진의 체내는 전장이 되었지만 용봉체 덕분에 육신에는 큰 타격은 없었다.
“전부 삼켜버려!”
목진은 엄청난 고통으로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엄청난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금광이 솟구쳤는데 이는 꼭 군왕이 반역 죄인을 소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열 가지 신수로 이뤄진 혈광은 와르르 부서져 목진의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용과 봉황의 무늬에 흡수되었다.
목진은 남아있는 신수들의 의지를 완전히 흡수한 뒤, 눈을 번쩍 떴는데 가슴팍과 등에 새겨진 무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꼭 그 속에 잠들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크으으으!
목진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포효했는데 이는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교묘하게 섞인 소리처럼 들렸다. 그의 체내에서 한 줄기 금광을 쐈는데 하늘에 걸린 구름마저 뚫으며 치솟았다.
구유는 고개를 들어 금광 속 소년을 바라봤는데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는 영력 위압감이 아니라 실력이 상당한 신수와 마주쳤을 때, 자연스레 느껴지는 위압감이었다.
지금 구유한테 목진은 사람의 모양을 한 신수처럼 보였다.
천지에 퍼졌던 금광이 사라지자 목진이 방출한 위압감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바라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곳에 새겨진 진정한 용은 살아 숨쉬는 것처럼 피부 표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목진의 체내에서 사는 생물 같았다.
목진은 용의 무늬가 활성화되면 이렇게 될 줄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자그마한 용에서 지극히 무서운 힘이 느껴졌다.
이에 눈가를 파르르 떨던 목진이 마음을 움직이자 자그마한 용이 그의 의지대로 주먹에 다가갔고 그가 주먹을 휘두르자 맑은 용 울음소리를 내며 앞쪽 공간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균열이 일었다.
목진은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자그마한 용을 움직였을 뿐, 아무렇지 않게 주먹을 휘둘렀는데 위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용봉의 진령을 활성화하자 전보다 훨씬 뛰어난 위력을 자랑했다.
슉.
그때 구유가 다가오더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목진의 가슴팍에서 헤엄치는 자그마한 용을 쳐다봤다. 신수인 그녀는 녀석이 내뿜는 위엄을 그대로 느꼈다.
이는 진정한 용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이었다.
“날 공격해 봐.”
목진이 가슴팍에서 꿈틀거리는 진정한 용을 느끼며 말했다. 구유는 조금 놀랐지만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는데 그가 쏜 예리한 기의 회오리에도 목진은 끄떡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몸 표면에 흐르던 영력마저 모조리 거뒀다.
그런데 그때, 목진의 가슴팍에서 헤엄치던 진정한 용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입을 쩍 벌려 구유의 기의 회오리를 집어삼키고 몸을 파르르 떨어 그 여파를 떨쳐냈다.
놀라운 광경에 구유는 흠칫 놀랐고 목진은 히쭉 웃었다. 진정한 용의 진령은 그한테 강력한 힘을 부여해줄 뿐만 아니라, 주인을 보호하는 능력도 지닌 듯했다. 그 엄청난 방어력은 용봉금갑 못지않았다.
여기에 용봉금갑과 육신의 방어력까지 더하면 아마 5품 지존이라도 골치 아플 것이다.
한 달 전, 목진이 구태음과 싸우기 전에 용봉 진령을 활성화했다면 지존법신에 숨어들어 영진을 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뭘 수련한 거야?”
구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의 목진은 그녀보다 더 신수다웠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더니 용봉진경에 대해 모조리 털어놓았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구유는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목진의 가슴팍에서 헤엄치는 진정한 용의 진령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앞으로 용족이나 봉황족과 마주치면 너한테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진령이 깃들었다는 걸 절대 들키지 마.”
“왜?”
“용족과 봉황족은 신수 종족 중 제일가는 종족으로 꽁꽁 숨어든 원고의 신족과 실력이 엇비슷해. 그들이 네 체내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진령이 깃들었다는 걸 발견하면 강제로 거둬갈 수도 있어.”
구유의 말에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용족과 봉황족이 그렇게 난폭할 줄은 몰랐다. 다행히, 그의 몸에 깃든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진령은 아직 너무 미약해서 쉽게 발견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또 그가 언젠가 용봉진경을 완벽히 수련하면 그들이라도 감히 그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다.
“명심할게.”
구유는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인상을 펴고 뭐라 말하려 했는데 대라천의 깊숙한 곳에서 살기가 깃든 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목진과 구유는 깜짝 놀라 대라천의 깊숙한 곳을 바라봤다. 그 소리는 왕들을 소집하는 종소리이며 곧 전쟁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소리기도 했다.
“전쟁이 시작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