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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21화 (520/1,000)

521화. 서막을 열다

검은색 돌풍이 사그라들자 이곳 천지는 순간 떠들썩해졌고 다들 빠르게 운락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호호탕탕한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운락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음산한 기운을 느꼈는데, 이는 상당히 괴이하여 각자 영력을 끌어올려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에 대라천역 부대는 잠시 당황했는데 왕들이 나서서 바로 그들의 마음을 달랬다.

목진 역시 구유의 앞쪽에 서서 흐릿한 대지를 훑어보려 했는데 영력 감응이 극심한 저항을 받았고 주위에서 맴도는 음산한 기운 때문에 왠지 찝찝했다.

“조심해. 이곳 운락 전장에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천지의 영기에 저들의 염원이 깃든 것 같아. 그건 형태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 농도가 일정 범위를 초과하면 체내에 스며들어 영력을 부식시킬 수 있어. 그럼 우리 전투력은 큰 타격을 입겠지.”

옆에 서 있던 구유가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이를 떨쳐내려면 밝고 강렬한 힘이 필요해.”

“밝고 강렬한 힘이라…….”

잠시 중얼거리던 목진은 순간 흠칫하였다. 그는 영력으로 불사화와 유명심마뢰를 융합했는데 양자는 마침 이곳의 괴이한 힘과 상극이었다.

하여 목진은 바로 불사화를 소환했다. 그러자 체내의 온도가 높아지며 뼛속까지 스며들었던 음산한 기운이 완벽히 가셔서 몸이 훨씬 가뿐해졌다.

“금지 지역은 역시 남다르군.”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금지 지역인 운락 전장에 들어오자마자 특수한 힘이 있어야 이곳의 괴이한 기운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는 그제야 이곳을 훑어봤다. 구유위는 평원에 내려앉았는데 그곳은 피로 물들인 것 같이 빨간색을 띠었고, 커다랗고 이글거리는 균열이 이곳저곳 나 있어 조금 무서워 보였다.

“그런데 왜 역외 사족의 시신은 보이지 않는 거지?”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바닥에 삐쭉 나온 백골들을 바라봤는데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역외 사족의 시신이 한 구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과거 이곳에서 엄청난 전쟁이 폭발했는데 대천세계 사람의 시신만 있을 리 없었다.

“역외 사족은 일단 죽으면 육신이 녹아 시기가 돼. 그건 엄청나게 독해서 일단 퍼지기 시작하면 천지의 영기마저 침식하고 오염시켜 아무도 이를 흡수할 수 없게 만들어.”

구유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이곳 천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운락 전장도 저들의 시기에 오염되었는데 대전이 끝난 뒤, 수많은 강자가 대신통으로 정화했어. 그때부터 천 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곳의 영력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어.”

‘영력을 오염시키다니…….’

구유의 말에 목진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천세계가 수많은 하위면의 집결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곳 천지에 영력이 깃들었기 때문인데 역외 사족은 지독한 수법으로 수련자를 모조리 없애려 하였다.

목진은 대천세계의 대부분 지역이 영력을 잃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갔다.

영력을 잃은 대천세계는 절대 역외 사족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이곳은 결국 저들의 수중에 들어갈 거고 영력을 잃은 수련자들 또한 반항할 힘을 잃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외 사족은 참 악독한 것 같아.”

목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천세계의 모든 수련자가 역외 사족을 그렇게 미워하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원고 때, 수련자들이 각자의 원한마저 내려놓고 함께 녀석들을 상대하였으니 말이다.

“원고의 전쟁에서 우리 대천세계가 이겼다고는 하나 우리 종족에서 전해진 고적에 담긴 정보를 보면 결국 승리한 것도 아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목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

“현재의 대천세계는 원고 때의 절반 정도 크기밖에 안 돼.”

구유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당연히 역외 사족한테 빼앗겼지. 우리가 원고의 전쟁을 거쳐 역외 사족의 침범을 막아내긴 했지만 손해도 엄청나. 빼앗긴 땅을 되찾을 여력이 없어 수중에 남은 대륙을 지켜내는 것이 최선이었어.”

목진은 아직 역외 사족을 만난 적은 없지만 대천세계 강자들의 공동의 적인 그들이 미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원고 때, 대천세계에서 수많은 최정예 강자를 잃었지만 지금도 강자는 충분해. 그중에 우리가 상지대륙에서 마주쳤던 임정의 아버지인 무조와 네가 용봉천에서 알게 된 그 소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지. 그리고 불사지의 묘지기, 검역의 청삼검성 등도 있지.”

구유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이 원고 시기에 있었다 해도 최정예에 꼽힐 만큼 훌륭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역외 사족이 다시 대천세계를 공략하려 한다면 절대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유가 말하는 대천세계 거장들의 이름을 듣자 가슴이 뛰었다.

그도 언젠가 이들처럼 대천세계의 정상에 설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때가 되면 그 앞을 막아선 장애물이 무엇이든 두렵지 않을 것이다.

휴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부풀어 오른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무조나 염제 정도의 경지에 이를 자신이 충분했고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성장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게 무엇이든 잡고 최선을 다하여 수련할 것이다.

한편, 대라천역 고위층은 적색 평원의 한 언덕에 모였는데 만다라는 뒷짐을 쥔 채 아래쪽을 쓰윽 훑었다. 소녀의 자그마한 몸에서 내뿜는 위압감에 3황마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린 이미 운락 전쟁에 참여했고 다른 세력들도 이곳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곳은 진정한 전장이다.”

만다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우리는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3황과 함께 지존 밀장을 찾으러 갈 것이니 운락 원단은 너희한테 맡기겠다.”

만다라는 한껏 정색하며 말했다.

“나를 실망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왕들이 한목소리로 외치자 만다라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들한테 무언가를 나눠주었다.

목진은 자신한테 날아온 무언가를 살펴보았는데 그건 운락 전장의 대략적인 위치가 그려진 지도였다. 그러나 각각의 지도가 다 달랐다.

“너희 수중의 지도에는 각자 다른 유적지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확보한 얼마 안 되는 정보 중 하나로 그나마 정확한 정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면 너희 스스로 탐색해야 한다.”

“네!”

왕들의 힘찬 대답에 만다라는 그들을 쓰윽 훑다가 목진한테 눈길을 멈추고는 몸조심하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은 목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 차별 대우를 하는 것는 좋지 않았다.

“그럼 각자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거라.”

만다라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한껏 엄숙해진 얼굴로 말했고, 왕들은 고개를 묵묵히 끄덕이고는 각자 군대를 거느리고 자리를 떠났다.

대라천역 부대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목진과 구유는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이들이 갈라서면 구유위를 일부씩만 거느려야 하는데 이는 절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었다. 운락 전장에서 흩어져서 좋을 게 없었다.

하여 두 사람은 구유위와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엄청난 규모의 대라천역 부대는 그 수가 적어졌고 만다라는 언덕에 서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대수렵전의 서막이 열렸다.

황량한 대지에 커다랗게 균열이 난 이곳은 상당히 무서워 보였고 음산한 기운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슉!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먼 곳에서 수천 명 가까이 되는 부대가 흐릿한 하늘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들은 검은색 갑옷을 입은 군인들로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영력은 혼연일체가 되었고 그들이 내뿜는 들끓는 전의가 대부분의 음산한 기운을 물리쳤다.

그들을 이끄는 이들은 바로 목진과 구유였다.

“역주께서 우리한테 주신 지도를 보면 유적은 서북쪽에 있어. 반나절쯤 더 가면 도착할 것 같아.”

구유가 주위를 쓰윽 훑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3급 유적일 거야.”

“3급 유적이라…….”

“이건 여태껏 치른 대수렵전에 근거해서 이곳 유적지에 대해 등급을 나눈 건데 규모가 작아서 아직 등급을 나눌 수 없는 유적지를 제외하면 대개 3개의 등급으로 나눠. 3급이 최하위, 1급이 최상급 유적지야.”

목진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구유는 천천히 설명했다.

“1급 유적지가 바로 지지존 밀장으로 그 정도 등급의 유적지는 보통 운락 전장의 깊숙한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운락 전장 진법의 보호가 있어 찾기 어렵고 찾아낸다고 해도 열기도 상당히 어려워. 그런데 우리가 갈 곳은 3급 유적지라 그럭저럭 가볼 만할 것 같아.”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다른 세력에서도 그곳을 노릴까?”

“아마 그럴걸? 운락 전장을 열 때마다 영력 폭풍으로 지형에 엄청난 변화가 생겨서 기존의 지도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다반사야. 우리 수중의 지도도 대략적인 위치만 그려졌고. 위치로 보면 전장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구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의 유일한 장점은 다른 세력보다 한발 앞서 도착해 운락 원단을 제련하고 신속하게 빠질 수 있다는 거야.”

구유의 말에 목진은 괜히 어깨를 들썩였다.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하는 편이 나았다. 현재, 운락 전장에 들어온 사람이 너무 많아 구유의 말대로 가장 먼저 유적지에 도착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생각을 마친 목진은 바로 속도를 끌어올렸고, 그 뒤로 구유위도 수많은 빛줄기가 되어 신속하게 뒤를 따랐다.

* * *

목진 등은 지도에 그려진 유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대수렵전이 진짜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그들은 반나절도 안 되는 사이에 수십 개의 무리와 마주쳤고 일부는 아직 유적지를 찾지도 못했는데 벌써 관계가 틀어져 싸움을 벌였다. 그 여파로 형성된 난폭한 영력 충격에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목진 등도 규모가 적지 않아 마주친 사람마다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아무도 감히 이들을 건드리지는 못했다.

다들 구유위가 내뿜는 엄청난 전의에 이들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것을 바로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북계에서 실력이 뛰어난 군대를 갖추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한데 구유위를 보면 절대 그럭저럭한 세력에서 배양해낼 수 있는 부대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들을 공격할 멍청한 사람은 없었을뿐더러 거리를 두고 뒤따르려는 사람도 없었다.

운락 전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함부로 뒤를 밟았다가 엄청난 후과를 치를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았다.

목진 등은 무탈하게 그곳을 벗어나 반나절 동안 비행한 후에야 점차 속도를 줄였다.

그곳은 대지가 옅은 검은색을 띠어 무척 황량해 보였고 다른 곳보다 음산한 기운이 더 짙게 느껴졌다.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아.”

구유는 목진과 눈을 마주치더니 구유위와 함께 제자리에 멈춰서서 주위를 쓰윽 훑고는 고봉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들 앞쪽에는 검은색 습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쪽에는 한기를 내뿜는 안개가 그윽했다. 그 깊숙한 곳에 검은색 대전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았다. 대전에서 내뿜은 어두운 원기가 그 위쪽에 모여 검은색 소용돌이를 이뤘다.

“어두운 원기가 바로 운락 원기로 저것으로 운락 원단을 제련할 수 있어!”

구유는 검은색 소용돌이를 보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보아하니 이곳의 운락 원기로 운락 원단을 백 알 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이 정도면 3급 유적지일 만하지.”

목진도 흥미진진하게 검은색 소용돌이를 관찰했다.

소용돌이에 웅장한 영력이 잔뜩 깃든 것 같은데 유난히 음산했다. 이는 아마 이곳에서 죽은 수많은 강자의 의지가 깃든 특이한 힘 때문일 것이고, 이 또한 운락 원단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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