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화. 용사종
목진이 눈길을 거두고 손을 가볍게 휘두른 뒤, 한발 앞서 고봉에서 내려오자 그 뒤로 구유위가 바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그때, 그와 구유는 동시에 흠칫 놀라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갑자기 적지 않은 영력 파동을 느꼈는데 그들이 전부 이곳으로 향하였다. 역시 목진의 예상대로 이곳 3급 유적지를 발견한 사람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역시 이곳은 쉽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
“흥, 감히 구유궁의 수중에서 물건을 빼앗으려 하다니. 누가 감히 그런 마음을 품는지 봐야겠어.”
목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자 구유는 이내 콧방귀를 뀌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영력 파동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고, 그녀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조용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바로 나서서 운락 원기를 취할 생각이 없었다. 운락 원단을 제련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데 외부의 간섭을 떨쳐내지 못하면 제련 과정이 상당히 복잡해질 것이다.
두 사람 뒤쪽에 서 있던 구유위도 그들의 영력 파동을 읽고 순간 눈빛이 예리해졌다.
슉! 슉!
1각도 지나지 않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서 제법 큰 무리가 날아와 주위 고봉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각자 부동한 세력으로 규모가 그리 작지 않았으며 상당히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목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저들을 힐끗 보더니 태연하게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하하, 운락 전장에 들어오자마자 3급 유적지를 찾았으니 우리가 운이 좋았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 있는 것 같네.”
“엄청난 무리군, 그런데 저들은…… 대라천역 구유궁 사람들이 아닌가!”
“젠장, 엄청난 상대를 마주쳤군.”
* * *
그들은 고봉에 내려앉자마자 습지 외부에 서 있는 구유위를 발견했고 그중 일부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목진 등의 신분을 바로 알아채고는 이내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라천역 같은 정예 세력의 위엄은 상당했다.
보통 때라면 감히 대라천역에 덤비지 못할 이들이 운락 전장의 상황이 혼잡해지자 정예 세력의 위엄이 확 줄었단 생각에 눈동자를 굴리며 목진 등을 바라봤다.
“난 대라천역의 목진이네. 이곳 유적지는 우리가 먼저 찾아낸 것이니 우리한테 넘겨주면 고맙겠네.”
녀석들을 한참 바라보던 목진은 목소리에 영력을 실은 채 말을 건넸다.
“목진이라면 용봉록 3위인 그 목진이란 말인가!”
“정녕 이번 용봉천에서 유명해진 엄청난 실력자인 목진이란 말인가?”
* * *
목진의 이름을 듣자 상대방 무리는 흠칫 놀라더니 그중 일부는 포기하려 했다. 요즘 들어 북계에 명성이 자자해진 데다가 대라천역이란 정예 세력의 위엄까지 더해졌으니 그들의 손에서 물건을 빼앗기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목진은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발견하고는 조금이나마 경계를 풀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웃음소리에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하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그딴 소리를 하다니, 대라천역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용사종(龍蛇宗)은 이번 대수렵전을 치르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세력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잇따라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가 다가왔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뇌명 같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무리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이곳 대지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회색 갑옷을 입은 부대로 그 규모가 구유위 못지않았고 거대한 흑망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녀석들한테서는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무리의 가장 앞쪽에는 두 중년 사내가 서 있었는데 한 명은 수염이 전혀 나지 않은 반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유난히 튼실해 보였으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지가 휘청일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튼실한 사내는 히쭉거리며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목진을 쳐다봤는데 그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저건…… 용사종의 육오(陸梧) 종주와 육규(陸奎) 종주가 아닌가!”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용사종이라…….”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그는 용사종 세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용사종은 북계의 일류 세력으로 대라천역보다 훨씬 뒤처지지만 신각과 관련되어 있어 이토록 우쭐대고 대라천역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목진이 구유와 눈을 마주쳤는데 서로의 눈에 한기가 돌았다.
“난 용사종의 육오라 하네, 허허. 아마 그쪽은 대라천역 9왕 중 한 명인 구유궁의 궁주인가?”
반듯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건넨 말에 구유는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
“용사종에서 감히 대라천역과 물건을 다투려 하다니. 신각을 등에 업었다고 우리가 너희한테 꼼짝 못 할 것 같아?”
“평소면 모를까, 아무리 대라천역이라도 대수렵전에서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 뭘 믿고 우쭐댄단 말인가?”
“너희 따위를 상대하기에 우리 구유궁이면 충분해.”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네.”
구유의 말에 육오 옆에 서 있던 육규가 씨익 웃으며 팔짱을 끼더니 목진 뒤에 서 있는 구유위를 보며 히쭉거렸다.
“구유위는 대라천역의 최약체라 여태껏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저따위도 군인이라고 끌고 나온 건가? 창피하지도 않나?”
녀석의 말에 구유위는 살기를 품고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웅장한 전의를 내뿜었는데 이를 감지한 육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역시 군대를 거느린 사람으로서 이 정도 전의는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용사종에 용위와 사위가 가장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보아하니 당신들이 거느리고 온 부대는 사위겠지?”
목진은 육규 뒤에 서 있는 군대를 쓰윽 훑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들은 구유위와 그 수가 비슷했지만 음산한 파동을 내뿜는 것이 꼭 어둠 속에 숨어든 독사 같았다.
목진이 운락 전장에 들어온 후, 마주친 부대 중에서 실력이 제법 강한 편에 속했다.
“녀석, 나이는 어려도 무식하지는 않군.”
육규가 히쭉 웃더니 목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바로 요즘 북계에서 유명하다는 목진이냐? 어린 나이에도 이만큼 성과를 이루다니 정말 엄청나구나. 그런데 이곳에 있는 물건은 너처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다룰만한 것이 아니니까 집에 돌아가 십 년은 더 수련하고 나오거라.”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목진도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에 육규는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살기를 품은 채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강력한 위압감을 형성했다.
목진은 녀석의 실력을 확인하고는 육규가 사람은 별로지만 실력은 제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영력 위압감이라면 아마 5품 지존에 이르렀을 것이고 5품 지존경에 막 이른 구태음보다 실력이 훨씬 강할 것이다.
“5품 지존 따위가 감히 여기서 우쭐대는 거야?”
구유는 바로 체내에서 보라색 화염을 끌어올렸는데 엄청난 고온에 주위의 음산한 기운이 대부분 사라졌고 육규의 영력 위압감도 모조리 물리쳤다.
“허허, 구유 궁주, 그렇게까지 성급할 필요는 없네. 내 아우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 정도면 어떨까 싶군.”
반듯하게 생긴 사내가 피식 웃으며 합장하자 웅장한 영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파도처럼 허공에서 출렁이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엄청난 양의 영력이 한데 모여서 생긴 현상이었다.
육오의 영력 위압감은 육규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는 이미 6품 지존경에 이르렀다!
“영력이 허에서 실로 되었다니, 6품 지존이란 말인가?”
구유도 깜짝 놀라 한기 어린 눈빛으로 육오를 노려봤다. 그는 녀석의 실력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다.
용사종이 북계의 일류 세력이 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대라천역의 왕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더구나 용사종에는 종주가 세 사람 있다고 들었는데 육오와 육규는 각각 2위와 3위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양자의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걸 알아챘다.
비록 대라천역의 명성이 자자하다고 해도 이곳에는 구유궁 사람들밖에 없었고 용사종은 대라천역보다는 못해도 일류 세력이었다. 그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3급 유적지를 포기할 리가 없었다.
누구 하나 물러나려 하는 사람이 없으니 싸움으로 유적지의 주인을 가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용사종을 쳐다봤는데 그들의 실력이 구유궁 못지않았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감히 이곳 유적지를 차지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녀석은 나한테 맡겨.”
구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육오를 노려보더니 서서히 허공으로 떠 올랐다. 그러자 그녀의 뒤쪽에 보랏빛이 모여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보라색 날개를 형성하였다.
끼익!
구유의 체내에서 새의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엄청난 영력 파동을 퍼뜨리자 육오 체내의 영력 위압감이 순간 사그라들었다.
“구유명작이란 말인가?”
육오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신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구유 궁주, 당신은 구유명작이라 전투력이 남다를 테니 싸우면 승패를 가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육오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구유가 무덤덤하게 답했다.
“싸우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이에 육오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방식으로 유적지의 주인을 가리는 게 어떤가?”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그러는 거야?”
구유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육오의 실력이 상당해 그녀가 나선다고 해도 바로 쓰러뜨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개방된 공간에 다른 세력이 개입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력을 보존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구유궁의 구유위는 대라천역의 정예 부대라 들었는데 용사종의 사위와 비교하면 과연 어느 쪽이 더 강할지 궁금하지 않나?”
육오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구유위와 사위의 대결로 유적지의 주인을 가리는 것이 어떤가?”
“헤헤, 저렇게 어린 녀석이 감히 우리와 싸우려 할까?”
육규는 팔짱을 낀 채 간사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목진이 구유위를 통솔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채고는 싸움을 하도록 그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는 보기에는 덩치가 커서 멍청할 것 같지만 무척 교활한 놈이었다.
육규 또한 사위를 거느리고 다니며 북계에서 엄청난 전적을 이뤘는지라 목진 같은 젊은 통령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구유는 화나기는커녕 씨익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아래쪽에 서 있던 목진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구유위한테 고개를 돌렸다.
“저들이 구유위를 무시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죽여야 합니다!”
구유위의 수천 전사들은 이내 정색하며 외쳤다. 그 속에 깃든 살기에 육규는 순간 흠칫하였고 씨익 웃는 목진을 보고 있으니 왠지 불안해졌다.
그러나 육규는 경험이 풍부했고 이 정도에 놀라 어쩔 바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는 바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년간 북계를 오가며 쌓은 경험이라면 그 어린 녀석을 쓰러트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반드시 구유위를 모조리 쓰러뜨리려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