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화. 전의의 령(戰意之靈)
목진은 육규의 말을 듣더니 무덤덤하게 웃으며 눈을 감고 두 손을 벌렸다.
부글부글.
웅장한 구유 전의가 비등하더니 갑자기 파르르 떨며 거대한 구유 전의의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빛기둥은 한데 모여 검은색 우검들을 만들어냈다!
그 위력이 방금 육규를 공격했을 때와 전혀 뒤처지지 않았고 검은색 우검의 등장에 사람들은 소름이 쫙 끼쳤다.
우검 하나만으로 육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데 10개도 넘는 양이 한꺼번에 공격한다면 아마 6품 지존경에 이른 강자라도 쉽게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수로 전의를 이렇게까지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의로 단번에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을 개시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유는 이를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고 육오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우리가 판단을 잘못했군. 녀석이 이렇게까지 실력을 숨겼을 줄이야. 구유 궁주가 자신만만한 데는 역시 다 이유가 있었군.”
슉!
그때 목진이 바로 옷깃을 휘날리자 십수 개의 거대한 흑우의 검이 빠르게 육규에게 향했다. 녀석은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고 목진이 이렇게까지 전의를 다스린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는 목진이 전의를 다스리는 능력이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절대 목진처럼 이렇게 많은 양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사마지조(蛇魔之罩)!”
육규가 신속하게 인법을 바꾸며 외치자 웅장한 사위의 전의가 요동치며 회흑색 광막을 형성했는데 그 표면에 거대한 회흑색 뱀이 꿈틀거리며 놀라운 영력 파동을 방출했다.
검은색 우검은 공간을 가르며 날아와 사정없이 회흑색 광막을 공격했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광막이 격렬하게 떨렸다. 우검들은 비록 곧바로 부서졌지만 하나씩 부서질 때마다 광막 표면에서 꿈틀거리던 뱀은 처량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퍽! 퍽! 퍽!
그러다 우검이 마지막 한 자루만 남기고 전부 부서지자 사마지조도 함께 부서졌고, 그 속에 서 있던 육규는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쿵!
육규는 상대방의 공격에 물러나지 않고 주먹을 힘껏 휘둘렀고 권풍으로 목진의 웅장한 전의가 깃든 검은색 우검에 맞섰다.
퍽!
육규의 일격에 공간이 부서졌을 뿐만 아니라 5품 지존의 강자마저 중상을 입을 만큼 치명적인 우검마저 와장창 깨졌다!
사람들은 육규도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무식한 녀석, 나를 쓰러뜨리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육규는 다시 기세등등해진 채 목진을 쏘아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나와…….”
목진은 역시나 아무렇지 않게 육규를 바라보더니 흥미진진하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뒤쪽의 웅장한 구유 전의가 미친 듯이 비등하였고 전의의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탄생하고 있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파동이 주위에 퍼지자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바로 육규였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창백해진 얼굴로 비등한 구유 전의의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그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부글부글.
웅장한 구유 전의가 격렬하게 비등하자 난폭한 전의는 돌풍처럼 이곳 천지에 휘몰아치며 조금씩 커져 어느새 만 장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특이한 파동을 느꼈다.
상당히 은밀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파동은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뇌리에는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들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경꾼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전의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알아채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 파동은 설마…….”
육규는 창백해진 얼굴로 검은색 파도를 쳐다봤다. 그는 파도의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파동에 말문이 턱 막혔다.
“전의의 령이라니!”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소름이 쫙 돋았다. 그건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만한 존재였다.
전의의 령은 전의가 엄청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야 전의의 힘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또 전진사가 되려면 반드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지금까지 전의를 그 정도로 깨우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전의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자부하는 육규라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에 목진이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럴 리는 없어! 전의의 령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네! 더는 내 앞에서 같잖은 연기를 하지 말게!”
육규는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목진을 쳐다봤다. 느껴지는 파동으로 보아 전의의 령 같았지만 그는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이 해냈다는 사실을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육규의 말에 구경꾼 중 일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말처럼 전의의 령은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수천 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것은 전의에 대한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다면 필경 각 세력에서 얻지 못할 귀재일 것이다.
보통 사람은 기껏해야 한 부대의 절반의 실력만 끌어올릴 수 있는데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다면 부대의 온전한 실력을 훨씬 뛰어넘는 힘을 선보일 수 있다.
또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전진사가 될 자격이 주어지고 그가 일단 전진사가 되면 북계의 정예 세력에서 서로 데려가지 못해 안달이 날 것이다.
전진사가 실력이 막강한 부대를 거느리면 엄청난 힘을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목진은 사람들의 의심쩍은 눈빛에도 태연하게 자리에 서서 씨익 웃으며 육규를 바라보았고 깊게 숨을 들이켜며 인법을 바꿨다.
부글부글!
이에 뒤쪽의 웅장한 구유 전의는 더 격렬하게 비등하더니 거대한 구유의 빛기둥이 솟구쳤는데 그 속에서 백 장 정도 되는 검은색 날개가 나타났다.
검은색 날개가 가볍게 퍼덕이자 빛의 기둥이 부서지며 커다란 검은색 구유작이 전의의 반대편 위쪽 하늘에 나타났다.
녀석은 검은색 안개를 뒤집어썼는데 이는 실체가 아니라 비등하는 전의로 이뤄진 것이었다. 방대한 체구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또한 전의가 어느 정도 짙어야 나타나는 특이한 문양이었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검은색 구유작을 바라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다들 더는 목진이 절대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검은색 구유작은 영락없는 전의의 령이었다.
이는 구유위만의 전의의 령이었다!
아무도 목진이 구유위의 전의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줄 몰랐다!
아래쪽에 서 있던 구유위 전사들도 한없이 경외하는 눈빛으로 허공에 떠 있는 늘씬한 소년을 우러러봤다. 높은 하늘에 나타난 구유작은 그들의 의념으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이는 목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유위, 필승!”
뇌명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구유위의 고함에 천지마저 부들부들 떨렸다.
“정말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다니…….”
구유와 육오마저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구유는 목진이 전진사가 될 천부적 재능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구유의 전의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구유에 비하면 육오야말로 정마 깜짝 놀라 멍하니 목진을 쳐다봤다. 용사종의 종주인 그는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싸움에서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럴 수가!”
육규 역시 사색이 된 채 서 있었다. 전의의 령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이번 대결에서 패배했음을 직감했다.
전의의 령을 지닌 부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전의의 령은 구유위의 힘을 놀라울 정도로 끌어올릴 것이다.
그때 무덤덤하게 육규를 바라보던 목진이 바로 전의의 령의 머리 위에 다가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육규를 가리키자 전의의 령은 울부짖으며 웅장한 전의를 싣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는 천 리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녀석은 전의가 불타오르는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을 지나 바로 사위의 위쪽에 나타나더니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순간, 그 아래쪽 대지가 쩍 갈라졌다.
육규는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고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지해 바로 사위의 전의로 이뤄진 빛줄기를 쏴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퍽! 퍽! 퍽!
전의의 령은 사위의 전의를 손쉽게 부수고 육규의 몸에 적중했다.
풉!
육규는 피를 토하더니 가슴팍이 움푹 파인 채 맥없이 추락해 습지에 꽂혔다.
풉!
잇따라 사위도 큰 타격을 입고 미친 듯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웅장했던 전의는 깔끔하게 사라졌고, 상황을 보니 돌아가서 정성껏 관리한다 해도 전투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한순간에 무너진 사위를 보더니 순간 넋이 나갔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다들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사위의 전의는 구유위 못지않았는데 전의의 령 때문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육규와 목진의 전의의 장악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육오는 처참하게 패배한 사위와 육규를 보더니 온몸을 파르르 떨며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까지 전의를 다스릴 수 있다니, 앞으로 전진사가 되면 상당한 위협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용사종을 손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목진은 오늘 반드시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육오는 쏜살같이 그에게 향했다.
“네가 감히!”
구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흑우 장검을 소환한 뒤, 한 줄기 어두운 빛이 되어 육오의 등으로 향했다.
그런데 구유가 살수를 두든 말든, 육오는 이를 악물고 목진한테 다가가 무서운 영력이 깃든 장풍을 쐈다!
들끓는 영력이 미친 듯이 목진에게 향했다.
구유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고, 육오가 구유의 공격에 중상을 입을 걸 각오하면서까지 목진을 죽이려 할 줄은 몰랐다. 육오도 목진을 이대로 두었다간 언젠가 큰 위협이 될 거란 걸 직감한 것이다.
“목진아, 조심해!”
목진은 육오가 전력을 다해 쏜 장풍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육오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날 죽이려면 너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목진은 이리 중얼거리며 살기를 품었다.
쿵!
웅장한 영력이 깃든 장풍은 목진의 위쪽에서 산처럼 내려앉았고, 이는 5품 지존도 까무러쳐 바로 도망갈 정도의 위력이 깃든 공격이었다.
육오는 목진을 죽이기 위해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런데 목진은 상대방의 공격에 조금 놀랐을 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구유 전의의 힘을 빌려 실력이 무서울 정도로 향상된 목진은 평소에 감히 덤비지 못했던 6품 지존을 상대할 힘이 생겼다.
끼익!
목진이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발아래에 모였던 구유 전의의 영이 울부짖으며 몸에 새겨진 복잡한 무늬를 목진한테 넘겼다.
목진은 순식간에 온몸이 복잡한 무늬로 덮였다.
쿵!
목진이 눈으로 눈부신 빛을 쏘며 고함을 지르자 웅장한 전의는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기랑을 형성해 주위에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