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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26화 (525/1,000)

526화.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

구유는 바로 폐허 속에 있는 대전으로 들어갔고 목진 역시 다른 대전으로 향했다. 바닥에 각양각색으로 놓인 백골을 보아 대전이 일어났었음을 말해주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대전 내부에는 비장한 기운이 맴돌았다.

목진은 숙연한 표정으로 이를 살펴보고는 허리 굽혀 인사부터 올렸다. 이들은 원고의 대전에서 대천세계를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라 예를 갖춰야 마땅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목진은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바로 대전 내부의 돌기둥에 다가가 결인하였다. 그러자 웅장한 영력이 손바닥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엄청난 흡인력을 선보였다.

이에 대전 바닥에 널브러졌던 돌멩이들이 움직였고 백골에서 어두운 기운이 스며져 나와 검은빛이 되어 목진의 손바닥에 형성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어두운 기운은 운락 원기로 강자들이 별세한 후, 체내의 지존해와 운락 전장의 특이한 힘이 아우러져 이룬 기이한 기운이었다.

목진이 이룬 영력 소용돌이에 어두운 기운이 일정하게 빨려 들어가자 갑자기 어두운 빛 한 줄기가 그 속에서 솟구쳤다.

이에 목진이 손바닥을 내밀자 어두운 빛은 바로 목진한테 다가갔는데 얼굴 크기의 매끈한 검은색 영단에서 운락 원기와 똑같은 파동이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운락 원단으로 운락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목진은 바로 운락 원단을 거두고 다시 영력을 끌어올려 대전에 남은 운락 원기를 흡수해 운락 원단을 네 알 더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알을 만들어내자마자 백골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영력을 전부 잃어 더는 형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광경에 목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옷깃을 휘날려 바닥에 가득 쌓인 가루들로 무명의 골패를 만들어 바닥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는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뒤에야 대전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목진은 반 시진 동안 대전 18군데를 찾아가 운락 원단을 53알이나 만들고 마침내 마지막 대전에 도착해 인사를 올리고 들어가려다 깜짝 놀랐다.

그는 바로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그곳에는 백골은 없고 대신 대전 끝자락에 회색 도포를 입은 누군가가 조용히 방석에 앉아있었다.

목진은 그를 발견하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운락 전장에 산 사람이 있다니!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황폐한 대전에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이를 발견하고 목진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일전에 봤던 것처럼 해골이 아니었다. 도포 속에 삐쩍 마른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생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목진은 상대방의 체내에 깃든 웅장한 운락 원기가 느껴졌지만 왠지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별세하고 천년만년이 지났는데도 형태를 보존한다는 것은 상당히 괴이한 일이었다.

하여 그는 더 이상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운락 전장 곳곳에 치명적인 위험이 존재해 조심하지 않으면 이곳에 영원히 백골로 남을 수도 있었다. 목진은 운락 원단 때문에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지 않았다.

사악.

목진이 대전에서 나오려 할 때,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갑자기 파르르 떨더니 메마른 얼굴을 들고 적흑색 빛을 띤 괴이한 눈동자로 목진을 쏘아봤다.

퍽!

목진은 바로 정색하고 잽싸게 물러났다.

잇따라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삐쩍 마른 손을 내밀자 손바닥에 어두운 빛이 모였는데 그 무서운 흡입력에 목진은 순간 자리에 멈춰서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그의 힘은 아무리 목진이라도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목진은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놀라운 실력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공격은 육오보다 훨씬 강했다.

이렇게 목진은 빠르게 대전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와 가까워질수록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아니었고 훼멸과 난폭한 기운이 가득 찬 녀석의 움푹 파인 눈은 유난히 괴이해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니!”

목진은 심장이 철렁했다.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말로만 듣던 역외 사족이란 말인가?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을 소환했다. 그는 거대한 봉황의 날개를 퍼덕여 간신히 자리에 멈춰선 뒤, 다시 한번 날개를 떨쳐 주위의 한 돌기둥에 날아가 엄청난 살기를 품은 대서미마주를 소환해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그런데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목진의 난폭한 공격에도 그저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그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대전이 무너져 목진은 바로 뒤로 물러나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는데,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조용히 앉아 훼멸과 난폭한 기운이 깃든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일전에 한 공격이 그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에 목진은 소름이 쫙 끼쳤는데 순간 무언가를 느끼고 다시 날개를 펼쳐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때 메마른 손이 어두운 빛을 발하며 목진이 서 있던 곳에 닿았고 잇따라 회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그곳에 나타났다.

어느덧 백 장 밖에 나타난 목진은 이를 보더니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속도가 엄청나 목진이 진정한 봉황의 령을 소환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공격은 점차 난폭해졌다. 그 손에 잡히면 끝이었다. 구유 전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목진은 절대 강자의 상대가 아니었다.

슉!

그때 목진의 앞쪽 공간이 다시 일그러지더니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기세등등하게 몰아붙였고 그는 황급히 물러나기 바빴다.

퍽!

목진은 주위의 돌기둥을 부수면서 물러났고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귀신같이 그의 앞쪽에 나타나 목진의 머리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퍽!

그때 목진이 바로 대일불멸신을 소환하려 했는데 갑자기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흑우검이 나타나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에게 향했다.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재빨리 손을 휘둘러 흑우검을 완전히 부숴버렸고 그 속에 깃든 보라색 화염은 무서운 고온을 뿜어내며 그의 손을 휘감아 순식간에 까맣게 태웠다.

이에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바로 뒤로 물러났는데 몸 표면에서 갑자기 괴이한 적흑색 빛이 발하며 불사화를 조금씩 삼켜버렸다.

한편, 구유는 목진 옆에 나타나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을 쳐다봤다.

“저건 대체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야.”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크으으으!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보라색 화염을 완전히 끄고는 나지막하게 울부짖으며 목진과 구유를 바라봤다. 그의 일그러진 적홍색 눈동자에서 멸망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눈빛만 보면 곧 목진과 구유한테 달려들려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더니 눈가의 적흑색 빛이 사그라들며 메마른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그는 다시 파멸의 기운을 풍겼고 적흑색 빛을 발하던 눈동자는 무정한 독사처럼 역삼각형 모양을 이뤘다.

“사기가 깃들었군.”

구유는 적흑색 눈동자의 변화에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기가 깃들어?”

목진이 흠칫하여 물었다.

“저 사람의 체내에 역외 사족의 힘이 깃들어 여태껏 육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사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를 잃어 모든 걸 없애려는 거야.”

구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얼른 떠나자. 저 사람의 실력은 아마 9품 지존경에 이르렀을 거야. 비록 지금은 원기가 크게 상했지만 못해도 8품 지존이지. 절대 우리 상대가 아니야!”

구유의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체내의 운락 원기를 얻을 수만 있다면 분명 적잖은 양의 운락 원단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럴 기회는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주위에 영력을 휘감고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을 경계하며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크으으으!

그때, 목진과 구유를 노려보던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갑자기 포효하며 두 손을 뻗었는데 적흑색을 띤 기운이 들끓으며 거수 두 개를 만들어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목진과 구유는 사기가 깃든 힘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어 황급히 도망갔다.

쿵! 쿵!

대전은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파멸의 뜻에 따라 모조리 무너져 안개가 자욱해졌고 목진과 구유는 그 사이를 누비며 피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공격은 점차 빠르고 난폭해졌다.

녀석의 힘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유와 목진은 이를 발견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녀석이 9품 지존의 실력을 되찾으면 이들은 지금처럼 도망 다닐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네가 먼저 떠나!”

구유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나 목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손에 웅장한 영력을 실어 소녀를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나한테는 진정한 봉황의 날개가 있으니까 네가 먼저 나가.”

그런데 구유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목진의 실력으로 절대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을 막아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전력을 다해 구유와 함께 회색 도포를 입은 사내에 맞섰다. 그 또한 구유를 홀로 이곳에 남길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상대가 안 됐다. 목진과 구유가 남다른 수단과 방법이 있지 않았더라면 이미 상대방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이제 내가 저 녀석을 공격하면 네가 기회를 보고 날 데리고 도망가.”

구유의 말에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구유는 지금 자신한테 큰 타격이 될 공격을 할 예정이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수가 없는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잇따라 구유가 깊게 숨을 들이켜자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위잉!

그런데 그때, 유적지에서 오래된 울림이 들리더니 폐허에서 수많은 백광이 솟아올라 허공에 멈춰 섰다.

이는 목진이 일전에 이곳에서 별세한 강자들을 위해 세운 골패들이었다.

“저건…….”

구유도 흠칫 놀랐다.

슈슉!

수많은 무명의 골패가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한테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의 몸에 백광을 쬐자 적흑색을 띤 기운이 조금씩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고통에 못 이겨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백광이 사기에 엄청난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목진과 구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진이 베푼 선의가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1각 정도 지나자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 주위를 휘감았던 적흑색을 띤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마에는 전각처럼 생긴 오래된 무늬가 나타났다.

“상고의 천궁이라니!”

이를 발견한 구유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외쳤다.

“상고의 천궁이라…….”

구유의 말에 목진은 화들짝 놀란 채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을 쳐다봤다. 괴이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말로만 듣던 신비로운 상고의 천궁 사람일 줄은 몰랐다.

목진은 천라대륙에 온 뒤로 신비로운 천궁이 진정 존재하는 곳이란 걸 오늘에서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저 사람이 상고의 천궁 사람이라고? 잘못 본 건 아니지?”

목진이 침을 꼴깍 삼키며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그는 운락 전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원하던 것을 얻게 될 거라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틀림없어. 저 사람의 미간에 새겨진 영문은 상고의 천궁에만 있는 무늬로 그곳의 신결을 수련하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거야. 외부적인 힘으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어.”

구유가 확신에 차 답했다. 구유작 종족 출신인 구유는 상고의 천궁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구유의 말에 목진은 한시름 놓듯 한숨을 쉬고는 다시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다. 상대방의 눈에서 발하던 괴이한 검은빛은 완전히 사라졌고 한껏 일그러졌던 표정도 점차 풀어졌다.

퍽! 퍽!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의 눈에 깃든 검은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 주위를 휘감았던 골패들이 폭발해 수많은 광점이 되어 모조리 없어지며 수많은 그림자가 나타나 목진한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마치 자기 시체를 잘 거둬줬다고 목진한테 고마움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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