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527화 (526/1,000)

527화. 소청운(蕭青雲)

목진은 사라지는 허상들을 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들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는 연민과 존경의 마음으로 골패를 세워줬던 것뿐인데 오히려 도움을 받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네 선한 마음이 좋은 영향을 미친 거야.”

목진의 선행을 알게 된 구유도 이내 한숨을 쉬었다.

“네가 저들의 부서진 뼈를 모아 골패를 세워 마지막 의지를 되살렸는데 마침 사기를 느끼고 힘을 합쳐 사기를 물리친 것 같아.”

그 말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소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다. 별세한 강자들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목진과 구유는 지금쯤 중상을 입은 채 도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상태가 어때? 살아있어?”

목진은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한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그가 정녕 상고의 천궁 사람이라면 그곳에 관한 정보가 분명 있을 것이다.

“허허, 난 천만년 전에 이미 죽었는데 사기가 몸에 깃들어 의지가 봉인된 탓에 육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허상에 불과하고 사기가 사라졌으니 내 육신도 곧 사라지겠지.”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오랜 고통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목진과 구유는 흠칫하여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을 훑어봤는데 그의 두 눈이 또렷해지긴 했지만 이는 죽기 직전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었다.

“나를 사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줘서 고맙구나.”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회색 도포 사내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목진과 구유는 이내 손사래 치며 답했다.

“별말씀을요. 선배님께서는 대천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우시다 돌아가신 건데 후배인 우리가 이 정도쯤은 해드릴 수 있죠.”

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 육신은 곧 사라질 거라 그대들이 베푼 은혜를 갚을 방법이 없군. 대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거라, 내 무엇이든 알려줄 테니.”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목진과 구유가 그의 신분에 대해 흥미를 보인다는 것을 알아챘다.

“선배님께서는 상고의 천궁 사람인가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난 상고의 천궁 네 번째 전주의 첫 번째 제자, 소청운이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는데 자신의 신분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네 번째 전주라…….”

목진과 구유는 이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상고의 천궁에는 전각이 일곱 개가 있었는데 각자 전주를 한 명씩 뒀지. 그들이 천궁의 주인 명을 받들었단다.”

소청운은 목진과 구유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의 대천세계에는 상고의 천궁이…….”

이에 목진은 쓸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선배님, 현재 상고의 천궁은 천라대륙의 공간 깊숙이 숨어있어 보통 사람은 절대 찾아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그곳에서 꼭 얻어야 할 물건이 있어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목진이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자 소청운은 멈칫하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미안하구나. 상고의 천궁을 숨긴 사람은 궁주가 분명한데 신통이 엄청난 그분이 마음먹고 숨기려 했다면 아무리 나라도 찾아낼 수가 없단다.”

목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소청운한테서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건 얼마 없었다.

한편, 소청운은 목진의 표정을 보더니 머쓱해 헛기침하며 말을 이어갔다.

“걱정할 건 없단다. 비록 난 상고의 천궁이 있는 곳을 모르지만 내 스승인 전주님은 알지도 모른다.”

“네 번째 전주님 말인가요?”

목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고의 천궁의 네 번째 전주는 이미 오래전에 별세했을 텐데 그를 찾을 바에는 직접 천라대륙을 뒤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주님께서도 여기서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실력을 보아 분명 의지가 남아있을 거다. 그러니 그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상고의 천궁에 관한 정보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청운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멈칫하더니 구유와 눈을 마주쳤다. 상고 천궁의 네 번째 전주는 아마 실력이 지지존에 이르러 지지존의 밀장에 의지가 숨어있을 것이다. 그런 곳은 아무리 만다라라도 찾아낼 거란 보장이 없으니 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 소청운이 두 사람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검은색 나침반을 꺼냈다. 그 표면에 특이한 빛의 무늬가 아른거렸다.

“내가 사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단다. 이 영라반(靈羅盤)은 상고의 천궁 물건으로 전장의 특이한 힘을 감지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이건 전주님의 물건이라 그분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별세한 곳과 가까워지면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목진은 콩닥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검은색 나침반을 건네받았다. 그는 소청운이 말한 전장 속 특이한 힘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운락 원기였다.

즉, 나침반을 수중에 넣으면 유적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운락 원기를 찾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나침반은 천궁의 네 번째 전주께서 별세한 곳을 알려 줄 테니 이는 영락없는 지지존의 밀장으로 대라천역에도 좋은 일이었다.

목진과 구유는 이내 화색이 되어 눈을 마주쳤다. 소청운은 이들한테 엄청난 선물을 주었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란다.”

소청운이 미소 짓자 육신에서 빛이 발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목진과 구유는 숙연한 표정으로 소청운한테 인사를 올렸다. 대천세계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강자들을 기리며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육신이 너희한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때 소청운의 웅장한 체내에서 운락 원기가 휘몰아치며 운락 원단을 이뤄 목진과 구유에게 향했다.

두 사람은 대충 봐도 200알이 넘는 운락 원단의 수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는 그들이 3급 유적지를 탈탈 털어서 만든 운락 원단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

운락 원기가 전부 운락 원단으로 변하자 소청운은 몇 마디 말만 남긴 채 목진과 구유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죽기 전에 날 깨워줘서 고맙구나. 그러나 아직 대전이 끝나지 않았으니 앞으로 대라천역을 지키는 건 너희 몫이겠구나.”

“내가 목숨을 바치며 지켜온 땅이 여전하길 바란다.”

소청운은 몇 마디 말만 남긴 채 목진과 구유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목진과 구유 앞에 조용히 떠 있는 운락 원단만이 그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상고의 천궁 네 번째 전주의 첫 번째 제자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목진은 소청운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얘기한 정보에 따르면 상고의 천궁은 원고 시기의 거물로 7명의 전주는 아마 전부 지지존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고 천궁의 주인은 분명 천지존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실력자도 결국 이곳 운락 전장에서 숨졌으니 역외 사족과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을지 조금이나마 예상이 갔다.

그러나 위면 전체에 퍼진 전쟁은 아직 지금의 목진이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구유가 심각해진 분위기를 깨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역외 사족이 강하긴 하지만 대천세계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수많은 최정예 강자들이 저들의 공격에 대비해 늘 경계하고 있어.”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 걱정해봐야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고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이만 가자. 이곳에 더는 운락 원기가 없어.”

구유는 앞쪽에 모인 운락 원단은 전부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린 이곳에서만 운락 원단을 300알도 넘게 얻었어. 이건 일반 3급 유적지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수량이야.”

3급 유적지에서 얻을 수 있는 운락 원단의 수는 보통 100알 정도인데 이번엔 운이 좋아 체내에 사기가 깃들어 육신이 파괴되지 않은 소청운을 만났다.

그는 생전에 9품 지존이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 실력이 조금 줄긴 했지만 체내에 깃든 운락 원기의 질과 양은 다른 강자들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건 그한테서 얻은 영라반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목진은 방긋 웃으며 수중의 검은색 나침반을 훑어봤다. 이 물건만 있으면 앞으로 유적지를 찾는 것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건 운락 원단을 얻는데는 신기나 다름없었다.

“가자.”

이렇게 두 사람은 폐허가 된 유적지를 쓰윽 훑고는 두 줄기 빛이 되어 신속하게 밖으로 향했다.

한편, 구유위 중 대부분은 습지 주위를 감싼 채 장창을 꽉 쥐고 주위를 살폈고 나머지는 그곳과 일정한 거리를 둔 산봉우리에 올라가 그 구역을 감시했다. 그들은 목진과 구유를 방해하는 것을 모조리 없애려 했다.

슉!

그때 두 갈래 빛이 습지의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나와 구유위의 위쪽 하늘에 멈춰서자 다들 화색이 되어 인사를 올렸다.

“이곳에 다른 세력이 접근했었어?”

목진이 구산한테 물었다. 구산은 구유위 중 정예로 구유궁에서 제공한 대량의 자원 덕분에 실력이 부쩍 늘어 이제 2품 지존경에 이르렀고 그와 실력이 뛰어난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조장이 되어 구유위를 이끌었다.

“통령님, 일부 세력이 주위를 얼씬거리긴 했지만 우리가 알아서 물리쳤어요.”

구산의 시원시원한 답변에 목진은 만족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구유위는 목진과 구유가 대라천역에 막 돌아왔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실력이 상당해 두 사람이 없어도 일반 세력은 감히 덤비지 못했다.

“궁주님, 통령님, 이제 어디로 갈까요?”

구산 등이 전의 충만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은 구유궁이 베풀어준 은혜로 실력이 부쩍 늘어 대수렵전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이걸 사용해볼까?”

목진은 담담하게 웃더니 만다라가 준 지도가 더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검은색 영라반을 꺼냈다. 습지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목진은 운락 전장을 목적 없이 훑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영라반에 영력을 불어넣자 나침반 표면에 복잡한 무늬가 나타나 빛을 발하더니 정교한 영력 광막을 형성하였고 주위에 광환을 퍼뜨렸다.

목진과 구유는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살폈다. 영라반은 소청운이 간직한 지 만년도 넘은 물건이라 아직 효력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고, 만약 파손됐다면 원래 계획대로 운락 전장을 조금씩 훑는 수밖에 없었다.

구산 등은 어리둥절해 목진과 구유를 쳐다봤다.

시간이 흘러 영라반은 여전히 주위에 광환을 퍼뜨렸지만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고 목진과 구유는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 두 사람이 실망해 포기하려 할 때, 검은색 영라반이 파르르 떨더니 광막에 갑자기 빨간 점이 나타나 부단히 번쩍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타났어!”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력 광막에 광점이 하나 더 나타났고 빛은 전자보다 훨씬 밝았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영라반은 운락 원기가 깃든 유적지를 두 군데나 발견했다.

다른 세력에서 이런 보물이 있다는 걸 알면 아마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 영라반만 있으면 운락 원기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