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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28화 (527/1,000)

528화. 천 리 구원

“가자!”

목진과 구유는 이내 화색이 되어 구유위를 불러 모은 뒤, 함께 습지를 떠나 영라반에 먼저 나타난 곳을 향했는데 이들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다른 세력들은 순순히 물러났다. 다들 구유위한테서 느껴지는 엄청난 전의에 겁먹은 것이었다.

또 처음부터 구유위와 싸우고 싶지 않아 물러난 세력도 존재했다. 구유궁은 무섭지 않지만, 그 뒷배인 대라천역은 영락없는 정예 세력이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그들한테 덤비는 세력도 존재하긴 했지만 큰 위협은 안 돼 손쉽게 처리하고 두 시진 만에 영라반에 표시된 유적지에 도착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첫 번째 유적지보다 못했지만 다른 세력처럼 막무가내로 찾아다니다가 한 군데도 못 찾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여 목진 등은 마음을 다스리고 유적지의 운락 원기로 50알 조금 넘는 운락 원단을 제련한 뒤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다행히 3급 유적지였다.

그런데 이번엔 철혈전종(鐵血戰宗)이라 불리는 세력이 나서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철혈전종은 북계에서 제법 유명한 세력으로 싸움을 상당히 즐겼고 대부분의 세력이 꺼리는 존재였다.

목진은 그들과의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거라 여기고 전의의 령을 끌어올리려고 했는데 상대편 통령이 바로 철수했다.

“이런 젠장,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괴물이었어…….”

목진은 질서정연하게 철수하는 철혈군(鐵血軍)과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상대방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목진은 저들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철혈전종은 소문처럼 싸움에 눈이 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를 거란 걸 알아채고 바로 철수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곳의 3급 유적지는 목진 등의 몫이 되었다. 그들은 여기서 운락 원단을 200알 더 모아 모두 600알 정도를 확보하였다.

정말 놀라운 성과였다. 다른 세력에도 영라반처럼 운락 원기를 찾아내는 물건이 있다면 모를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유적지를 세 군데나 찾아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슉!

목진과 구유는 세 번째 유적지의 운락 원기를 전부 운락 원단으로 만든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영라반을 꺼내려는데 대수렵전을 시작하기 전, 만다라가 왕들한테 준 청색 동경이 번쩍였다.

그건 상당히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왕들한테 하는 구원 요청이었다.

목진과 구유는 청색 동경에 아른거리는 선홍색 광점을 보더니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라천역의 왕급 세력 중 한 곳이 곤경에 처해 동경으로 구원 요청을 할 지경이 되었다니!

대수렵전은 역시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어떡해?”

구유가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서 있는 목진한테 물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구원 신호 때문에 순간 당황했다.

대라천역 9왕이 이끄는 군대는 대라천역의 중견 역량으로 그중 하나라도 잃으면 큰 타격이 될 것이다. 특히 대수렵전 같이 잔혹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힘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수렵전을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돼서 9왕 중 한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라천역의 정예 실력자들인 9왕은 북계에서 놓고 봐도 제법 유명한 강자들이고 실력이 막강한 군대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구원 신호를 보냈다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구원 신호는 누가 보낸 걸까? 그리고 그는 도대체 누굴 만났기에 이리된 거지?”

구유왕이 주먹을 꼭 쥐며 한 말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경은 구원 신호를 보내고 대체적인 위치만 알릴 뿐, 다른 정보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현재 각 정예 세력의 정예 강자들은 이미 운락 전장의 지존 밀장에 들어갔으니 대라천역의 왕급 세력을 곤경에 빠지게 한 건 기타 정예 세력 사람들이 분명해.”

목진이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함정에 빠졌을 거야.”

구유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럼 어떡할 거야? 정말 그런 거라면 저들을 구하러 가려다 오히려 우리까지 곤경에 빠질 수 있어.”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나 위험하든 가야 해. 대라천역의 왕급 세력 중 하나가 없어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만다라도 말했잖아. 우리의 힘만으로는 운락 전장 깊숙이 들어갈 수 없다고.”

목진의 말에 구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9왕은 비록 대라천역에 속하긴 하지만 평소 여러 가지 이유로 잦은 불화가 있었다. 특히 구유궁과 혈응전의 관계는 유난히 나빴는데 목진은 구원 신호를 받자마자 누군지도 모르면서도 바로 구하러 가려고 했다.

구유는 그런 목진의 행동을 높이 살 수밖에 없었다.

“얼른 떠나자!”

목진은 구유위를 쓰윽 훑고 먼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구유와 구유위가 수만 갈래의 빛줄기가 되어 뒤따랐다.

슉!

목진 등은 시간이 촉박해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동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은 가는 길에 다른 세력들을 적잖게 마주쳤는데 다들 살기 가득한 구유위를 보고는 감히 덤비지 못했다.

목진 등은 한 시진 정도 달려 구원 신호가 왔던 구역에 접근했는데 관련 정보를 수집하다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의 예상대로 대라천역 왕급 세력을 공격한 것은 그냥 그런 정예 세력이 아니라 북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력인 신각이었다.

신각은 대수렵전을 다섯 차례나 겪고도 무사히 살아남았고 북계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한 세력이라 아무리 대라천역이라도 경계해야 하는 세력이었다.

“방금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구원 신호를 보낸 건 혈응전인 것 같아.”

구유가 목진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하필 곤경에 빠진 곳이 구유궁과 관계가 가장 안 좋은 혈응전이라니. 그들은 서로 적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혈응전을 곤경에 빠지게 한 건 신각 악산(鱷山)의 주인이 통솔한 천악군(天鱷軍)이야.”

“악산의 주인이라…….”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이제 정예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신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신각에는 최고 권력자인 신각의 주인이 있었고 그 밑으로 동서남북 4대 각주가 있었다. 그들은 대라천역의 3황과 같았고 각주들 아래로는 날짐승과 맹주의 이름을 딴 십산지주가 있었다. 이번 혈응전을 함정에 빠뜨린 이 역시 악산의 주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래된 원수도 있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목진은 먼 곳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혈응전을 공격한 세력 중에는 악산의 주인뿐만 아니라 방의도 함께 있었다. 용봉천에서 채소와 싸우다 줄행랑을 쳤지만 여전히 용봉록의 1위를 차지한 바로 그 방의 말이다.

방의는 염제의 딸인 채소를 상대로 감히 복수하지는 못하겠지만 채소와 관계가 좋았던 목진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여 목진은 방의가 그와 마주치면 얼마나 노발대발할지 상상이 갔다.

대전은 불가피해졌다.

목진이 실력을 키우고 있을 때 그도 분명 열심히 수련했을 것이다. 방의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신각의 풍부한 자원이라면 그의 수련 속도는 더욱 빨라졌을 것이고 새로 필살기를 깨우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목진이 비록 4품 지존경에 이르렀다지만 다년간 북계 용봉록의 1위를 차지한 천재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그는 채소처럼 절세의 괴물이 아니었다.

“현재, 혈응전은 수백 리 밖의 골짜기까지 물러났고 완전히 포위됐어. 이 사건은 이 구역에서 제법 알려져 다들 구경하러 갔다고 들었어. 정예 세력 사이의 싸움은 흥미로운 법이잖아?”

구유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대수렵전에서 정예 세력들 사이의 싸움보다 더 흥미롭고 잔인한 건 없었다. 그래서 다들 대라천역과 신각의 싸움에 바로 움직인 것이었다.

“혈응왕이라니, 그래도 구하러 갈 거야?”

구유는 조금 고민되는 듯 목진의 뜻을 물었고 구산 등도 소년을 바라봤다.

“멍청한 놈.”

목진은 이마를 문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도 조금 고민이 되었다. 혈응전은 구유궁과 관계가 여간 안 좋은 게 아니었다.

만약 다른 왕이었다면 바로 구하러 갔을 텐데 그 상대가 혈응왕이라 적잖게 고민이 되었다.

“녀석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또한 대라천역 사람이야. 신각의 손에 죽으면 결국 우리한테도 좋을 건 없어.”

목진은 결국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혈응왕에 대한 불쾌한 마음을 떨쳐내고 말했다.

“우리와 혈응전의 원한은 대수렵전이 끝나고 해결할 문제지. 신각 같은 외부 세력의 힘을 빌려 해결할 게 아니야. 대신 우리가 저들을 구한 뒤에도 우리한테 무례한 짓을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구산 등은 패기 넘치는 목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구유위는 이제 목진 덕분에 실력이 혈응위를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가자!”

목진은 구유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목적지로 향했다.

* * *

이곳은 거대한 적색 산골짜기로 피를 뒤집어쓴 듯 섬뜩하고 침울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때 혈갑을 입은 무리가 조금 무질서해진 전의로 주위를 휘감은 채 다가왔고, 그 중심에는 혈갑을 입은 혈응왕이 산골짜기 밖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산골짜기 밖 하늘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둘러싼 채 강력한 전의를 내뿜으며 산골짜기를 완벽히 봉쇄해 혈응위를 포위하였다.

“혈응왕님, 혈응위는 이미 천 명 가까이 죽었고…….”

혈응왕 옆에 서 있던 오천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는데 평소 냉철하기만 했던 그는 현재 이 상황이 죄송스럽고 가슴이 아팠다.

혈응왕은 오천의 말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 수는 혈응위의 5분의 1로 천 명을 키우려면 엄청난 자원과 정력을 퍼부어야 하는데 이곳 운락 전장에 들어온 뒤, 그는 반 시진도 안 돼 그들을 잃었다.

“천악군이 이곳을 포위하였으니 제가 혈응위와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왕께서는 바로 도망가세요!”

오천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한 말에 혈응왕이 이내 호통을 쳤다.

“나더러 상갓집 개처럼 도망가란 말이냐? 그럼 내가 앞으로 대라천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저들이 공격하면 너희는 나를 따르라. 저들이 혈응전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우린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걸 보여줄 것이다.”

혈응왕은 잔뜩 화가 난 채 살기를 품고 외쳤다.

“걱정 마세요, 혈응왕님. 우리가 이미 구원 신호를 보냈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분명 지원군이 올 거예요!”

오천은 바로 앞뒤 안 가리고 덤비려는 혈응왕을 타일렀다.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구나.”

혈응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더니 산골짜기 외부를 바라봤는데 상대방의 웅장한 전의는 이미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천악군이 드디어 공격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혈응위도 상대방의 들끓는 전의를 느낀 듯 장창을 꽉 쥐고 싸울 준비를 했다.

이에 혈응왕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선홍색 장창을 소환한 뒤, 강력한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천악군의 웅장한 전의가 갑자기 무질서해진 것을 느끼고 흠칫하였다.

“혈응왕님,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한 것 같아요!”

오천은 이내 화색이 되어 외쳤다. 그는 천악군 못지않은 전의를 내뿜는 한 무리가 이곳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우리를 구하러 온 걸까?”

혈응왕은 저 멀리 하늘을 지켜보더니 상대방의 정체를 발견하고 표정이 복잡미묘해졌고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구유왕과 목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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