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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29화 (528/1,000)

529화. 서패(徐霸)

산골짜기 밖, 가파른 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은 뒷짐을 쥔 채 주위를 훑었고 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웅장한 전의를 내뿜었다.

그들이 내뿜는 전의는 감옥처럼 산골짜기 전체를 휘감았는데 대라천역의 왕들이 거느린 군대와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수령님, 혈응전 사람들이 전부 산골짜기에 들어갔으니 우리가 공격하면 모조리 없앨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산 정상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말했다.

한편, 정상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목진과 구면으로 채소와 싸우다 황급히 도망갔던 용봉록 1위인 방의였다.

하얀색 도포를 입고 서 있는 방의는 여전히 늠름했고 그날의 패배로 주눅이 들기는커녕 전보다 더 강해졌다. 방의가 한 번의 실패로 다시 일어나지 못할 사람이었으면 신각에서는 절대 그를 그토록 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방의는 서생처럼 점잖게 서 있었는데 이 모습만 보면 아무도 그를 용봉록 1위를 차지한 강자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방의 옆에는 범상치 않은 위엄을 뽐내는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중년 사내의 눈은 흉수의 눈처럼 살기를 품고 있어 보통 사람이 그와 눈을 마주치면 바로 싸울 의지를 잃을 것이다.

또한, 중년 사내는 검은색 갑옷을 입었는데 표면에 원고의 살벌한 악어가 새겨져 있었고 녀석은 산악을 디딘 채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그는 신각의 산주 중 한 사람인 악산의 주인, 서패였다.

그는 부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산골짜기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혈응전에서 감히 우리 천악산과 유적지를 다투다니, 겁도 없지. 그리고 혈응위 따위가 어디 천악군의 상대라도 되던가?”

이에 방의는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신각과 대라천역이 싸운단 소식에 구경하러 온 구경꾼들이었다. 양대 정예 세력의 대결이라 결과가 어떻든 엄청난 파동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서 산주께서 혈응전을 없애는 데 성공하면 전공을 세워 대수렵전에 이름을 널리 알리겠군요.”

방의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서패는 히쭉 웃더니 이내 살기를 품으며 말했다.

“이건 다 자네 덕분이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난 우리가 눈여겨본 유적지를 탐내는 녀석들이 있다는 것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네.”

“비록 천악군이 혈응전 사람들을 완벽히 포위했지만 조심해야 할 거예요. 혈응왕은 5품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라 목숨을 걸고 덤비면 상대하기 쉽지만은 않으실 거예요.”

“5품 지존 정상이라…….”

방의의 말에 서패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 실력은 산주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네. 그러니까 저들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걸세.”

그러나 서패는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해 바로 공격을 개시해 혈응위를 모조리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위잉!

그런데 그때, 서북쪽 하늘에서 놀라운 전의가 바람을 타고 전해왔다. 흠칫 놀란 서패와 방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주위에 모여든 구경꾼들도 잇따라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신각과 대라천역의 대결에 감히 끼어들려 하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보통 세력은 절대 감히 참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슉! 슉!

잠시 후, 먼 곳 하늘에 검은색 광막이 나타나더니 한 무리가 웅장한 전의를 내뿜으며 주위에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누군가? 누가 감히 신각에 덤비려는 것인가!”

서패는 자신을 향해 우르르 몰려오는 군대를 보고 흠칫하더니 상대방의 웅장한 전의에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뇌명과 같은 그의 목소리는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누군가!”

산골짜기 밖에 떠 있는 만 명 가까이 되는 천악군도 포효했는데 이들이 내뿜는 웅장한 전의에 천지가 흔들렸다.

이 정도 전의라면 아무리 6품 지존이라도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검은색 홍수처럼 몰려온 군대는 끄떡없었고 그들 앞에 늘씬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경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대라천역, 구유궁이네!”

“구유궁이네!”

구유위도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웅장한 전의를 내뿜으며 고래고래 외쳤는데 천악군이 형성한 위압감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다.

두 갈래의 무서운 전의는 각자 반쪽 하늘을 차지하였고 맞닿은 곳은 하늘마저 파르르 떨리더니 균열이 일었다.

“구유궁이라…….”

서패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가 알던 구유궁은 대라천역 9왕 중 실력이 최약체인데 지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혈응위보다 더 강해 보였다.

서패 옆에 서 있던 방의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구유위 앞쪽에 서 있는 늘씬한 소년을 바라봤다.

“서 산주님, 정보력이 너무 뒤처지는군요. 저 사람은 대라천역의 10번째 왕인 목진이고 현재 구유궁은 두 명의 왕이 관리하고 있어 대라천역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랍니다.”

“목진?”

서패는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최근 북계에서 유명해진 후배였군.”

말을 마친 서패는 바로 살기를 품고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는 목진을 노려봤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여길 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서패의 말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다들 소년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때 목진과 함께 구유위 앞쪽에 서 있던 구유는 이내 정색하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당신이 바로 악산의 주인이죠?”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살기 가득한 서패와 그 옆에 서 있는 방의를 바라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나를 언제 봤다고 친한 척하는 것이냐? 얼른 물러나지 못할까! 그러다 내가 너희까지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 것이냐?”

서패는 한껏 비꼬며 말했다. 그는 목진과 구유궁이 안중에 없었다.

“그럼 더 말할 것도 없겠네요.”

목진이 콧등을 쓰윽 쓸어내리며 말했다.

“겁도 없이!”

말을 마친 서패가 옷깃을 휘날리자 천악군 오천 명이 바로 나섰다. 그는 이 정도면 구유위를 상대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혈응위도 천악군과 싸워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무너졌으니 말이다.

또한, 그는 산골짜기에 숨어든 혈응위들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 우선이었고 구유위는 그다음에 손봐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쿠쿵!

천악군이 휩쓸며 지나가자 혈해가 휘몰아치는 것 같은 웅장한 암홍색 전의가 천만 개의 장창을 이뤄 구유위에게 향했다.

이는 5품 지존을 바로 죽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위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그런데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공격을 지켜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구유위를 무시하는군.”

잇따라 목진이 손을 가볍게 들고 다시 내리찍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구유위의 검은색 전의는 화산처럼 폭발해 거대한 검은빛 날개를 형성했는데 이는 공간을 가를 만큼 예리하였다.

슉!

목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색 날개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무도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다들 한 줄기 빛이 하늘을 가르며 지나는 것밖에 보지 못했는데 빛줄기가 지나자 수많은 장창이 순식간에 부서져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목진의 공격은 상대방의 공격에 비해 절대적인 우세를 지녔다.

슉!

그런데 빛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천악군을 넘어 저 멀리 산골짜기를 휘감은 전의의 보호막까지 공격했다.

촤 - 악!

천악군이 형성한 전의의 보호막은 취약한 유리처럼 와장창 깨졌고 그 속에 숨어있던 혈응위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서패 또한 화들짝 놀랐고 무덤덤하게 옆에 서 있던 방의마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구유위의 웅장한 전의가 깃든 공격에 잔뜩 놀란 모양이었다.

아무도 5천 명밖에 안 되는 구유위가 형성한 전의가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그때,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안색이 어두워진 서패한테 말을 건넸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나요?”

구유위의 실력을 확인한 사람들은 더 이상 목진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서패 역시 흠칫 놀라 살기를 품고 소년을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전의를 이 정도까지 장악했을 줄은 몰랐구나. 내가 너를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이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산골짜기에 갇힌 혈응위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서 산주님, 지금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될 게 없을 것 같군요. 허나 그쪽에서 기어코 혈응전을 없애려 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조용히 이곳을 떠나고, 대수렵전이 끝나고 다시 겨뤄보는 건 어떨까요?”

소년은 허공에 태연하게 서서 말을 이어갔다. 천악군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소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와 남다른 기백에 다들 흠칫 놀랐다.

서패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는데 소년의 말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가 정녕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서패는 엄청난 수의 천악군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비록 구유위가 선보인 웅장한 전의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5천 명밖에 안 되는 구유위와 만 명 정도 되는 천악군이 싸우면 구유위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 확신했다.

서패는 목진의 말이 너무 우습다고 생각했다.

한편, 산골짜기에 있는 혈응왕과 혈응위는 구유위와 천악군의 대치에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그들은 구유위가 전과 비교하면 환골탈태할 정도로 실력이 늘어났음을 알아챘다.

“혈응왕님, 구유궁은 절대 천악군의 상대가 아니에요.”

오천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구유궁이 한걸음에 달려와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천악군과 싸워본 그는 상대방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구유위가 전보다 실력이 부쩍 늘었다지만 그 수와 실력을 비교하면 조금 뒤처지는 듯했다.

오천은 수라왕이 이끈 수라위나 열산왕의 열산군 등 최정예 부대만이 천악군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가 생각하기에 구유위는 아직이었다.

혈응왕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살폈다.

“구유위가 나서면 넌 혈응위와 함께 저들을 도와줘라. 구유위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편이 좋겠지. 그리고 내가 전력을 다해 서패를 막아보겠다. 그러면 그는 전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다.”

이에 오천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해 구유위를 도와야지만 천악군을 제압하고 도망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목진은 상대방의 비꼬는 말투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서패는 수적 우세만 믿고 구유위를 전혀 상대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목진은 갑자기 결인하더니 체내에서 예리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풍겼다.

“구유위!”

목진이 고함을 지르자 구유위들은 장창을 힘껏 내리찍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웅장한 전의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멀리서 보면 검은색 바다가 하늘에 펼쳐진 것 같았다.

끼익!

잇따라 목진이 발을 구르자 웅장한 전의가 그의 뒤쪽에 모여 맑은 울음소리를 내었고 전의의 무늬를 온몸에 새긴 거대한 구유작이 날개를 떨쳐 하늘을 가렸다.

녀석이 울부짖자 검은색 전의는 폭포처럼 솟구쳐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전의의 령이라니!”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거대한 구유작을 쳐다봤다. 목진이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목진이 구유위의 전의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다니…….”

산골짜기에 있던 혈응왕과 오천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그제야 목진과 구유가 천악군의 존재를 알면서도 감히 이곳에 온 이유를 알아챘다. 두 사람은 절대적인 승산이 있어 그들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전의의 령은 군대의 실력을 무서울 정도로 끌어올려 주는 효과가 있었다.

“녀석…….”

오천은 이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한 해 전만 해도 그는 목진을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았는데 소년은 용봉록 3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거느린 군대의 성장 속도도 엄청났다.

오천은 더 이상 목진과의 차이를 메꿀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목진 같은 사람은 반드시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릴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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