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운락 원단 500방울에 나서다
“전의의 령이라니!”
서패 등도 웅장한 전의 속에 나타난 구유작을 뚫어져라 노려보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들은 목진이 선보인 필살기에 적잖게 놀랐다.
서패는 목진이 감히 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란 말을 한 이유를 알아챘다. 소년은 혈기왕성해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은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구유위는 그 수로만 보면 많이 뒤처지지만 서패는 전의의 령을 보유한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 또한 전의의 령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패의 옆에 서 있던 방의도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그는 처음으로 목진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목진이 용봉천에서 눈에 띌만한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이는 전부 채소 덕분이라 여겼다. 만약 채소가 없었다면 그는 분명 목진을 사정없이 짓밟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소년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그때 서패가 음침한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전의의 령으로 천악군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네 전의의 령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꾸나.”
서패는 전의의 령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와 싸우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목진, 너는 늘 우리한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군.”
“별말씀을.”
방의가 바로 공격을 하려는 서패를 말리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우리가 싸워봐야 다른 세력한테 빌미를 제공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이대로 물러서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이에 방의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답했다.
“그대도 천악군과 목숨 걸고 싸우고 싶지는 않나 보군. 그럼 구유위도 적잖은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그런데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도 않고 우리 손에서 혈응전 사람들을 데려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끝까지 싸워보려는 건가?”
목진이 던진 질문에 방의는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별 건 아니네. 우리가 손쉽게 혈응위를 풀어주면 신각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 한 말이네.”
“그럼 뭘 원하는가?”
목진은 히쭉 웃으며 용봉록의 패주를 쳐다봤다.
“서 산주님,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는 것이 어떨까요?”
방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서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의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천부적 재능이 남달랐고 앞으로 이룰 성과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서패는 그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또한, 구유궁 때문에 일이 복잡해졌던 참에 방의가 나서겠다고 하니 서패한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방의는 그제야 목진한테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유위와 천악군이 싸우면 적잖은 대가를 치를 거란 건 그대도 잘 알 것이네. 그렇다고 입만 놀려 우리 손에서 저들을 구할 수는 없을 걸세.”
“그럼?”
목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난 용봉천에서 자네 실력을 확인한 바 있는데 그토록 엄청난 성과를 따낸 것은 그 친구 덕분 아닌가?”
말을 마친 방의가 서서히 손바닥을 내밀자 손끝에 영력이 아른거렸는데 이는 전기처럼 번쩍이며 위험한 파동을 내뿜었다.
“나한테 최소한의 대가를 치르고 오늘 일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이를 받아들일 담력이 있나 모르겠군.”
목진이 눈가를 찌푸리자 방의는 상냥하게 웃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방법은 바로 나와 싸우는 것이네.”
방의는 산 정상에 한 손은 뒷짐을 쥔 채 서 있었는데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옷이 하늘거리는 모습이 제법 멋스러워 다들 몰래 혀를 끌끌 찼다. 방의가 북계 젊은이 중 최정예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들 생각했다.
그는 비록 용봉천에서 채소 때문에 체면을 구겼지만 그대로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실력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역경 속에서 돌파를 추구하는 강인함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자가 갖춰야 할 기질이었다.
그때 방의는 사람들의 주시하에 미소를 지으며 멀리 떨어져 있는 목진을 바라봤다.
“나를 이길 수만 있다면 오늘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네. 신각에서 알아서 철수할 것이네.”
방의의 말에 주위는 순간 떠들썩해졌다. 방의가 목진과 싸우려 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은 북계 젊은이 중 유명한 사람으로 그중 한 명은 용봉록 패주의 자리를 다년간 지켜왔고 나머지 한 명은 북계에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정예였다.
두 사람의 대결로 신예는 과연 이대로 몰락할까, 아니면 이를 발판으로 더 널리 이름을 알릴까?
그런데 신분으로만 보면 방의가 한 수 위라 일부는 그의 대결 신청이 공평한 게 아니라고 여겼다. 방의가 북계에 널리 이름을 알렸을 때, 목진은 무명 인사나 다름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너한테 결정권이 주어질 거라 여기는 것이냐?”
구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방의가 5품 지존경에 이르렀다는 걸 알아챘고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특히 4품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이 홀로 상대하기에는 더 불리했다.
“하하, 제대로 싸우고 싶으면 천악군에서 끝까지 상대해 줄 것이오. 그런데 싸우고 나면 구유위는 아마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을 것 같소.”
서패가 씨익 웃으며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구유를 쳐다봤다.
“그럼 천악군도 절대 무사히 물러나지 못할 것이오…….”
구유의 말에 방의는 반박하려는 서패 앞에 나서서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자넨 똑똑하니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 걸세. 자네가 구유위의 전의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 것은 대단하지만 그 수가 너무 적어 정말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걸세.”
방의는 손으로 주위에 모인 세력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저들 중에 흑심을 품은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그러니까 자네도 구유위와 천악군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는 거겠지.”
“하여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리 싸움을 개인전으로 돌리는 것이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방의를 바라봤다.
“말은 참 그럴싸한데 난 당신한테서 살기를 느꼈네. 보아하니 날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나?”
목진의 말에 방의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목진을 상대로 여기지 않았었다가 그가 전의의 령을 만드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목진한테서 진정한 위협감을 느꼈고 그의 발전 가능성에 흠칫 놀랐다.
만약 목진을 이대로 두면 그는 앞으로 엄청난 강적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최대한 빨리 없애는 것이 상책이었다.
“나와 싸우지 않겠다고 해도 이해는 할 걸세.”
방의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신인인 자네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나 또한 진심으로 자넬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욱해서 응전할 거라고 여기는 건가?”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방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이 깊어 젊은이라면 반드시 있을 법한 과도한 승부욕이 전혀 없었다. 이에 방의는 조금 당황했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녕 나와 싸우고 싶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조건은 별것 없네.”
목진은 다섯 손가락을 내밀며 방긋 웃었다.
“운락 원단 500방울이면 되네.”
목진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방의도 잠시 멍해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목진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 줄 몰라 다들 말문이 막혔다.
“운락 원단 500방울이란 말이냐?”
목진의 말에 서패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났다. 그는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목숨이 운락 원단 500방울의 값어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서패 등은 운락 전장에 들어와 여태껏 운락 원단을 500방울 조금 넘게 수집했는데 이건 천운으로 한발 앞서 유적지 몇 군데를 찾아내어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 그런데 목진이 바로 그 운락 원단 500방울을 요구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목진은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안색이 어두워진 방의를 바라봤다.
“당신이 정녕 나를 죽이고 싶으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내 방식대로 하고 싶지 않다면…….”
목진은 갑자기 웃음을 거두더니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냥 구유위와 싸웁시다. 천악군이 과연 구유위한테 얼만큼의 타격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
목진의 말에 깃든 엄청난 한기에 그 구역은 으스스해졌고 다들 그의 태도가 돌변하자 흠칫 놀랐다. 소년의 마음속에는 맹수가 살고 있어 누군가 그를 건드리면 바로 돌변할 것만 같았다.
이에 서패도 바로 정색하며 화내려 했는데 옆에 서 있던 방의가 다시 말리며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그리한다고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나? 자네가 탐낼 수 있는 물건이 있고, 탐낸다고 해도 절대 얻을 수 없는 물건이 있는 법이네.”
“운락 원단 500방울을 주면 싸워주고 안 주면 전쟁이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펴 보이자 서패는 너무 화가 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그는 당장 목진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반면, 목진의 옆에 서 있던 구유는 피식 웃으며 소년을 흘겨봤다. 그녀는 상대방의 도전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린 목진 때문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때 방의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정 그러고 싶다면 그리해주지.”
“서 산주님, 부탁드려요.”
방의의 말에 서패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운락 원단 500방울을 내주면 이들이 지금껏 고생한 것은 수포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들은 절대 우리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서패는 그제야 이를 악물고 운락 원단 500방울을 목진한테 건넸는데 구경꾼들은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바라봤다.
이곳 운락 전장에서 운락 원단 500방울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한편, 목진은 서패가 건넨 운락 원단의 양을 대충 확인하더니 방긋 웃으며 이를 거뒀다.
“역시 화통하군.”
이에 방의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시 자네한테 넘겨준 것뿐이네. 머지않아 자네한테서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을 걸세.”
“그러길 바라네.”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구유가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방의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운락 원단 500방울을 건넨 게 분명했다.
“구유위가 저들과 싸우면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방의 말대로 전쟁이 일어나면 구유위가 이길 수는 있겠지만 대가를 치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목진은 구유위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번 기회에 상대방한테서 뭐라도 뜯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 말했던 것이었다.
목진의 말에 구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혈응전을 신각에서 구해내려면 위압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싸워서 승부를 봐야만 했다.
그러나 방의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다년간 북계 용봉록 1위를 차지한 진정한 패주로 아무리 목진의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는 하지만 방의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운락 원단을 전부 거둔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나섰는데 예리한 눈빛은 벽도 뚫을 것만 같았다.
방의는 목진의 엄청난 기세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난 저 녀석의 목숨을 원하네.”
서패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운락 원단을 500알이나 꿀꺽한 목진이 너무 얄미웠다.
“내 반드시 저 녀석을 죽여드리죠.”
말을 마친 방의가 미소를 지으며 목진한테 다가가자 다들 두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다.
용봉록의 패주와 신예 강자의 대결이 드디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