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535화 (534/1,000)

535화. 전세 역전

“저 녀석은 누구기에 자넬 이렇게 만든 건가?”

염랑주의 질문에 방의는 목진을 힐끗 보며 답했다.

“저 녀석은 요즘 북계에서 부쩍 유명해진 신예 강자 목진이네. 랑주, 절대 녀석을 무시하면 안 되네. 전의의 조종으로만 보면 자네마저 그 상대가 아닐 걸세. 저 녀석은 구유위의 전의로 전의의 령까지 만들어냈다네…….”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염랑주는 물론이고 천웅주도 화들짝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다들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전의의 령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의의 령이 있으면 군대의 실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는데, 이는 대결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전진사가 될 자격을 갖췄단 소린데, 일단 전진사가 되면 극강의 힘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낮은 등급의 전진사라도 실력이 강대한 군대를 거느리면 전투력이 무서울 정도로 상승한다.

“왜 그렇게 급하게 구원 신호를 보냈나 했더니…….”

천웅주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목진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목진의 실력은 그한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전진사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기회만 되면 바로 없애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에 방의는 묵묵히 미소를 지었다. 그는 피범벅이 되었지만 태연한 모습을 한 채 칼 같은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일전의 대결에서는 기세등등했겠지만, 이번 대결이야말로 자네의 마지막이 될 걸세.”

방의는 마음을 완전히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는 일전의 대결 결과에 놀라긴 했지만 지원군과 함께 목진을 이곳에서 죽일 수만 있다면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북계에서 죽은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신각의 삼대 산주가 한곳에 모여 있어 이들한테서 완전히 도망가기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슉!

그때 구유가 목진한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떡해? 우리만이라도 저들의 포위를 뚫고 도망갈까? 그럼 혈응전은 구할 수 없을 거야.”

제아무리 똘똘 뭉쳐 앞길을 막는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전의를 펼치면 분명 도망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혈응전 사람들은 포기해야 하지만 말이다.

“허허, 설마 혈응전을 버리고 가기라도 하려는 건가?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구유궁은 앞으로 대라천역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네.”

방의는 목진이 답하기도 전에 구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먼저 입을 열었다.

이에 구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는 혈응전과 구유궁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속셈이었다.

“구유왕! 목왕! 기회가 오면 이곳을 빠져나가게. 그리고 언젠가 다시 적당한 기회가 찾아오면 혈응전의 원수를 갚아주게!”

혈응왕은 음산한 눈빛으로 방의를 바라본 뒤, 목진과 구유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눈빛이 상당히 부드러웠다.

그는 비록 속 좁은 사람이긴 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절대 대라천역의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방의의 의도를 바로 꿰뚫고 저리 말한 것이었다.

“허허, 역시 혈응왕이군. 아직 패기가 넘치네.”

방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구유궁이 이곳을 벗어나는 때가 곧 혈응전이 전멸하는 때겠군.”

“어디 해보든지!”

혈응왕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방의를 노려보며 외쳤다.

“여기는 신각과 대라천역의 전장이니 여러분은 멀리 떠나시게.”

방의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구경꾼들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신각에서 곧 공격을 개시하려는 걸 알고 불똥이 튈까 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이러한 광경에 구유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며 혈응전을 버리고 떠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에 서 있던 목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고개를 들어 방의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이런 상황에서 역전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자네 지금 영력이 얼마 남았나? 그런 상태로 구유위의 전의를 얼마나 잘 조종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지?”

방의가 이내 정색하며 묻자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절대 혈응전을 버리지 않을 것이네.”

목진의 말에 혈응위는 흠칫 놀랐고 혈응왕과 오천마저도 안색이 복잡해졌다. 그들은 목진과 사이가 나쁜 편이라 당연히 자신들을 버리고 갈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끝까지 그들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게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방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염랑주와 천웅주도 히쭉거리며 팔짱을 낀 채 목진을 흘겨봤다. 그들은 목진이 무슨 꼼수를 부리려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내가 무턱대고 이리 말했겠는가? 내가 왜 여기서 오랫동안 자네를 상대해줬다고 생각하나?”

목진이 고개를 들고 묻자 방의는 깜짝 놀랐다.

“시간을 끌었던 건 자네뿐만이 아니었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하늘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 지원군이 그쪽보다 많은 것 같은데…….”

쿵!

그때 저 멀리 하늘이 갑자기 진동하더니 빛줄기 세 갈래가 호호탕탕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가장 앞쪽에 선 세 사람이 내뿜는 엄청난 영력이 멀리서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대라천역 열산전!”

“대라천역 홍애동(洪崖洞)!”

“대라천역 영검산(靈劍山)!”

세 사람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천지가 뒤흔들렸고 염랑주와 천웅주는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누가 감히 대라천역 사람을 죽이려는 건가!”

저 멀리 하늘에서 호호탕탕 달려온 사람들을 본 구경꾼들은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숨을 고르며 상황을 살폈다.

대라천역에서도 왕급 세력이 세 무리나 달려온 것이다. 이에 그곳에는 신각과 대라천역의 군대가 십만 명 가까이 모였는데 이는 대형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규모였다.

소형 소각전이었던 것이 대규모의 대결로 변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정말 싸움이라도 나면 이곳은 분명 피바다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구경꾼들은 서둘러 물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불똥이 튀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방의와 서패, 염랑주, 천웅주 등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대라천역에서 이토록 강력한 지원군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중에서 열산왕의 실력은 대라천역 왕 중 3위권에 들었고 홍애왕(洪崖王)과 영검왕(靈劍王)도 제법 유명했다. 그들 휘하의 군대는 유난히 강했고 구유궁과 조금 타격을 입긴 했지만 혈응전까지 더해지면 손쉽게 전세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6품 지존이 세 사람밖에 없는 신각 무리와 달리, 대라천역에는 실력자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신각에서 치를 대가는 상당할 것이다.

반면, 구유와 혈응왕 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군이 제때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코앞에 닥친 큰 난관을 벗어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너도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어?”

구유는 목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소년 역시 방의처럼 교활한 사람이었고 그들은 각자 노리는 바가 있었다.

“구유궁만으로 천악군을 쓰러트리려면 대가를 치러야 했을 거야.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 최선이야.”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방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줄은 몰랐어. 저들보다 우리 지원군이 더 강해서 다행이야.”

이에 구유는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방의, 서패 등은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다.

“허허, 누가 우리 대라천역 사람을 괴롭히나 봤더니 신각이었군. 그런데 다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인걸? 천룡주(天龍主), 백호주(白虎主) 등은 오지도 않았네?”

엄청난 전의를 뽐내는 열산군 앞에 서 있던 열산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그 말은 강력한 위압감과 함께 주위에 퍼져나갔다.

기품이 남다른 열산왕은 대라천역의 왕 중 3위권에 드는 사람으로 그와 함께 온 다른 두 왕보다 더 유명하고 실력이 강했다.

목진도 이를 느꼈는데 열산왕의 체내에서 내뿜는 위압감은 다른 왕들보다 훨씬 강했다.

대라천역과 신각을 막론하고 이 구역에서만큼은 열산왕의 실력을 따라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말에 서패, 염랑주, 천웅주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감히 뭐라 하지 못했다. 열산왕은 실력이 6품 지존경 정상에 이르러 이들보다 한 수 위였다.

“천룡주와 백호주가 있었으면 열산왕도 그따위 말은 하지 않았겠지?”

예상외로 무덤덤한 방의는 열산왕을 직시하며 물었다.

방의는 신각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사람이라 그런지 배포가 남달랐다. 열산왕이 6품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다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따위 무의미한 가설은 왜 얘기하는 건가?”

그때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방의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오늘의 싸움은 신각의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 지을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변고에 전세가 확 꺾이고 말았다.

“자네 지원군의 실력이 조금 더 강하다고 대결에서 반드시 이길 거라 확신하는 건가?”

방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그쪽도 분명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니…….”

그런데 목진은 방의의 말 따위는 무시한 채 열산왕 등한테 고개를 돌렸다.

“바로 공격하시게. 이리 왔는데 피를 봐야지 않겠나? 안 그럼 사람들은 대라천역이 실력은 없고 우쭐대기만 하는 세력으로 알 걸세.”

잇따라 목진은 산골짜기에 갇혀있는 혈응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혈응왕, 우리가 싸우기 시작하면 그쪽에서 기회를 봐서 혈응위와 함께 그곳에서 나오게!”

“알겠네!”

열산왕은 목진의 결단력에 만족하듯 껄껄 웃었다.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으면 전력을 다해 상대방을 없애야 하는 법. 뭘 하든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 이를 겁내며 주춤할 필요는 없었다.

열산왕이 호탕하게 웃자 열산군도 힘차게 외쳤는데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놀라운 전의가 하늘을 찔렀다.

열산군은 만 명도 넘어 그 수만 봐도 구유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구유궁에서 그동안 최선을 다해 군대를 키웠다고 해도 대라천역의 최강 왕급 세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에 다른 두 왕도 각각 웅장한 전의를 끌어올렸다. 세 무리는 허공에 떠 있는 염랑군과 천웅군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방의, 서패 등은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들은 목진의 결단력에 깜짝 놀랐다. 소년은 전쟁으로 치를 대가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인제 어찌하면 좋겠나?”

방의와 서패, 염랑주와 천웅주는 목소리를 영력으로 휘감은 채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대라천역이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한 상황에서 목진, 열산왕 등이 정말 싸우려 들면 그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방의는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각자 알아서 철수합시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저들과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네. 앞으로 신각 군대가 한데 모이면 저들을 토벌할 기회는 분명 있을 걸세.”

그 말에 서패, 염랑주, 천웅주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앞뒤 안 가리고 싸웠다가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했다. 비록 대라천역에서도 일정한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쿵!

이야기를 마친 서패 등은 바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왔으니 뭐라도 남겨야지 않겠나?”

말을 마친 열산왕이 고함을 지르며 손을 휘두르자 열산군은 놀라운 전의를 내뿜으며 장창을 형성해 천웅군을 공격했고, 나머지 두 왕도 함께 염랑군을 공격했다.

쿵!

잔뜩 경계하면서 철수하던 천웅군과 염랑군은 상대방의 공격에 바로 전의를 끌어올렸고, 상대방의 전의와 부딪히자 그 구역 전체가 부들부들 떨렸고 산맥들은 와르르 무너져 평지가 되었다.

철수하려던 천웅군과 염랑군은 상대방의 거센 공격에 사기가 뚝 떨어져 전의가 무질서해졌고 일부는 다치거나 죽어 맥없이 추락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