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적을 쥐 잡듯 잡다
목진도 하늘 높이 날아올라 다시 구유위의 앞쪽에 나타났는데 방의와 싸우면서 다쳤던 곳은 신수의 체질 덕분에 대부분 치유되었다.
“우린 누굴 상대할까?”
오랜 기다림 끝에 이제야 싸울 수 있게 되자 구유는 바로 상대방을 응징해주고 싶었다.
이에 목진은 바로 천악군과 함께한 방의한테 눈길을 돌렸다. 목진은 방의를 잔뜩 경계하며 필살기를 모조리 소환하면서 전력을 다하여 싸웠는데도 대결에서 이기지 못했다. 이에 용봉록 패주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방의가 다친 이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녀석을 놓치면 안 돼.”
목진은 손으로 천악군과 함께 철수하는 방의를 가리키며 살기를 품었다.
“공격하라!”
목진이 손을 휘두르자 뒤쪽에 서 있던 구유위가 힘차게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드디어 여태껏 참아왔던 울분을 토할 길이 생겼다.
목진이 다시 구유위를 장악해 웅장한 전의를 조종하자 열산왕 등은 무언가를 눈치채고 순간 흠칫했으나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구유위의 위쪽에 서서 눈을 감고 전의를 체내에 들였고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전의의 포효에 피가 뜨거워졌다.
전의의 바다에 서 있는 그는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도 천지를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방의를 상대할 때, 구유 전의를 다스릴 수 있었다면 원고성진법신 따위는 손쉽게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의의 힘이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다스리기는 쉽지 않지만 잘만 다스리면 상당한 도움이 될 힘이었다.
원고 시기, 최정예 전진사는 최정예 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로 거느리는 부대가 곁에 없으면 실력이 확 줄어들지만 실력을 갖춘 부대의 전의를 장악하면 천지존을 상대할지라도 두렵지 않게 된다.
“일전에 우리가 무승부로 대결을 끝마쳤는데 다시 싸워보는 게 어떤가?”
목진은 예리한 눈빛으로 방어 대형을 취한 채 빠르게 철수하고 있는 천악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그 속에서 방의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끼익!
잇따라 목진이 사정없이 손을 휘두르며 마음을 움직이자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어두운 구유 전의가 휘몰아치다가 거대한 구유작을 형성했다. 온몸에 복잡한 전의의 무늬가 새겨진 녀석이 내뿜는 강대한 전의에 엄청난 파동이 일었다.
“전의의 령이라니!”
열산왕 등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전의를 이 정도까지 장악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소년일세.”
열산왕이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그의 휘하에도 강자가 많고 훌륭한 통령이 수두룩했지만 목진처럼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라천역 4대 통령 중 한 사람인 주악 역시 복잡한 표정으로 구유위의 위쪽에 나타난 전의의 령을 보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언젠가 목진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전의의 령을 보는 순간 기세가 확 꺾였다.
슉!
그때 전의의 령이 빠르게 날개를 퍼덕여 눈 깜짝할 사이에 천악군의 위쪽에 나타나 사정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한 줄기 빛이 지나가더니 공간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한편, 천악군의 앞쪽에 서 있던 서패는 한 줄기 눈부신 빛에 소름이 쫙 돋았는데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래고래 외쳤다.
“천악전의!”
쿵!
이에 천악군에서 선홍색 전의가 솟아올라 전의의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하늘을 가르며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풉! 풉!
그런데 그의 반격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한 줄기 빛이 지나가자 전의의 회오리는 사정없이 부서졌고 천악군은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한 줄기 빛이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을 가르며 내려앉자 천악군은 하나같이 피를 토하며 추락하였다.
천악군은 전의의 령의 공격에 스쳤을 뿐인데도 전사 수백 명을 잃었다.
이러한 광경에 서패는 눈가가 격렬하게 떨렸고 그 옆에 서 있던 방의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목진이 구유위의 전의를 장악해 이렇게까지 강해질 줄은 몰랐다.
“신속히 철수하라!”
산골짜기에 갇혀있던 혈응위마저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서패는 황급히 외쳤다. 혈응위가 나와 구유위와 함께 천악군을 앞뒤로 포위하면 이들한테 더 이상의 살길은 없었다.
염랑주와 천웅주 역시 열산왕한테 발이 묶여 도주하기 바빠 방의 등을 구하러 올 수도 없었다.
목진은 무덤덤하게 자리에 서서 황급히 철수하는 천악군을 바라봤지만 이대로 그들을 떠나보낼 그가 아니었다. 하여 목진이 손을 휘두르자 구유위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그 위쪽에서 날개를 퍼덕이던 전의의 령이 전의가 깃든 검은색 깃털로 변해 예리한 검처럼 상대방을 공격했다.
엄청난 규모의 부대가 빠르게 철수하자 다른 부대가 뒤쫓아와 공격했는데 양자의 전의가 부딪힐 때마다 공간이 격렬하게 떨렸고 아래쪽 대지는 사정없이 갈라졌다.
이러한 대결에 쌍방 모두 부상을 입었는데 천악군에 비하면 구유위가 다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천악군은 비록 수적 우세가 있지만 전의의 령이 있는 구유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때 목진이 전의의 령 머리 위에 나타나 철수하는 방의를 가리키자 웅장한 전의가 깃든 검은색 깃털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신속하게 천악군의 방어막을 뚫고 방의를 공격했다.
목진은 이번 기회에 방의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의는 상대방의 공격에 깃든 방대한 힘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는 구유위 전체의 힘이 깃든 공격으로 지금의 목진은 더 이상 그가 상대하던 소년이 아니었다.
쿵!
그러나 방의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지라 조금이나마 회복한 영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다시 원고성진법신을 소환하였다.
이에 목진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내리찍자 열 개도 넘는 검은색 깃털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성진법신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퍽!
난폭한 영력 파동이 휘몰아치자 목진과 싸우느라 부상을 입은 성진법신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 속에 있던 방의는 사색이 된 채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방의는 목진의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처참히 패배하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써 싸워도 방의를 이기지 못했던 목진이 지금은 단숨에 상대방을 쓰러트려 다들 깜짝 놀란 것이다.
그렇다고 목진이 구유위의 힘을 빌려 방의를 쓰러뜨렸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전쟁터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절대적인 공평이란 멍청한 사람들의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목진은 맥없이 바닥에 드러누운 방의를 막연하게 쳐다봤는데 이제 녀석에게는 그와 싸웠을 때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슉!
잇따라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천악군을 포위했던 검은색 깃털 십수 개가 방의를 향해 날아갔다.
엄청난 살기가 깃든 공격에 방의는 사색이 되어 황급히 도망갔다. 그는 이제 자신이 목진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녀석에게 도망갈 기회를 줄 목진이 아니었다. 웅장한 구유 전의가 새겨진 검은색 깃털은 예리한 날을 세운 채 신속하게 공간을 가르며 방의의 위쪽에 나타나 공격을 개시했다.
방의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쿵!
그런데 그때, 서패가 쏜살같이 나타나 포효하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깃털이 모조리 부서졌다.
“감히 내 앞에서 신각의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너무 오만방자하구나!”
서패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하더니 천악군의 통령들한테 말을 건넸다.
“내가 이 건방진 녀석을 상대할 테니, 너흰 먼저 철수하거라.”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서고 싶다고 하니, 당신으로 구유위의 군기를 달래야겠군요.”
서패의 포효에 목진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결인하자 전의의 령이 울부짖으며 무서운 전의를 끌어올렸다.
잇따라 수많은 양의 검은색 깃털이 살기를 싣고 서패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하자 구경꾼들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사람들은 한 부대의 힘만으로 6품 지존을 죽이려는 목진이 참으로 건방지단 생각을 했다.
위잉!
수많은 검은색 깃털이 예리한 화살처럼 공간을 가르며 상대방에게 향했고 그 끝에는 천악주 서패가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서 있었다.
그는 상대방의 기세등등한 공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록 목진이 구유위의 전의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지만 그 힘은 무궁무진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목진의 실력은 4품 지존밖에 안 돼 전의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겨우 6품 지존경에 이르는 힘을 지닐 뿐, 이것만으로 서패를 쓰러뜨리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악신결(天鱷神訣), 탄천구(吞天口)!”
그때 서패가 발을 힘껏 구르며 외치자 웅장한 영력이 휘몰아치며 앞쪽에 커다란 악어의 입을 만들었다. 악어의 입은 천지를 집어삼킬 듯 쩍 벌려 무서운 흡인력으로 전의의 검은색 깃털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퍽! 퍽!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난폭한 영력 충격파가 형성되자 거대한 악어 입은 한껏 일그러지더니 결국 폭발했고 그 여파에 맞은 서패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구유 전의만 믿고 너무 우쭐대지 말거라. 전의는 결국 네 것이 아니니 그것으로 천하무적이 될 수는 없다.”
“천하무적일 수는 없어도 당신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죠.”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진의 실력만으로 6품 지존경에 이른 서패의 상대가 안 되겠지만 전의의 힘이 있는 한은 그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거만한 녀석!”
서패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주먹을 꽉 쥐어 선홍색 조각달처럼 생긴 칼을 소환했는데 빨간색 무늬가 새겨진 칼이 내뿜는 살기로 보아 위력이 상당한 흉기인 듯했다.
슉!
서패가 있는 힘껏 칼을 휘두르자 앞쪽 공간이 찢어지며 수백 장 크기의 선홍빛 도망이 형성되어 구유위에게 향했다.
서패는 바로 6품 지존경의 힘을 끌어올려 공격하였다. 이는 5품 지존경 정상에 이른 방의도 받아내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었다.
한편, 목진은 무덤덤하게 서서 서패의 공격을 확인하고는 인법을 바꿔 웅장한 전의로 전의의 회오리를 만들었다.
퍽!
두 사람의 공격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산산이 부서지며 엄청난 영력 충격이 휘몰아쳤다.
막상막하였다. 그러나 서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며 예리한 도망을 이뤄 폭우처럼 목진과 구유위를 공격했다.
목진 역시 웅장한 구유 전의를 조종해 반격했는데 양자가 충돌하자 공간이 부단히 떨렸다. 결국 아무도 우세를 차지하지 못해 점차 대치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광경에 구경꾼들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은 홀로 방의와 싸워 무승부를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구유위의 힘을 빌려 서패와 같은 노참과의 싸움에서도 전혀 열세에 처하지 않은 목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대수렵전이 끝나 대라천역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목진은 방의를 뛰어넘어 북계 젊은이들의 새로운 패주가 될 것이다.
한편, 구유는 철수하는 천악군에게 향했고 혈응왕도 혈응위를 거느리고 미친 듯이 천악군을 공격했다.
천악군에도 통령이 제법 많았지만 6품 지존 두 사람에 혈응위까지 더해져 그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천악군은 목진처럼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여러 차례의 영력 충격으로 수많은 천악군 군인들이 사망해 우수수 떨어졌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천악군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고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사라진 채 황급히 도망가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