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화. 협력
신각 지원군인 두 부대도 열산왕 등의 공격이 버거웠지만 염랑주와 천웅주 덕분에 낭패를 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수라장이 된 전장과 겁에 질려 도망가는 신각 군인들을 보고는 이내 감탄했다. 신각은 이제 한물갔다.
드디어 목진의 의도를 파악한 서패는 더는 버티지 않고 철수하기로 했다. 목진은 서패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구유와 혈응전에서 천악군을 없앨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천악군을 잃은 서패는 절대 구유와 혈응왕의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내 언젠가 너를 찢어 죽일 것이야!”
서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목진한테서 벗어나더니 천악군한테 돌아가 함께 철수했는데 구유와 혈응왕의 절묘한 공격에 결국 또 타격을 입고 말았다.
“천악주가 이렇게 겁쟁이였나?”
목진은 히쭉 웃으며 바로 구유위와 함께 천악군을 쫓아갔는데 그 말에 서패는 너무 화가 나 피를 토했다. 그의 충혈된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당장 그를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목진이 일부러 그를 도발한다는 것을 알고 화를 다스리며 천악군을 거느리고 철수하였다.
목진은 반 시진 동안 천 리를 달리며 방의 등을 뒤쫓았고 천악군은 또 적잖은 타격을 입어 서패는 이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천 리 추격전을 목격한 사람들은 어느 하나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쫓기는 쪽이 신각 부대인 것을 알아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각은 북계 정예 세력 중에서도 존재한 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자가 가득해 아무나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이토록 낭패를 당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머, 저 사람은 신각의 천악왕이 아닌가! 어찌하다 저렇게 낭패를 봤단 말인가?”
“그를 추격하는 사람은 대라천역의 목진이네! 내가 용봉천에서 본 적 있네!”
“신예 강자 목진 말인가? 그럴 리가, 용봉천에서 목진은 유명 황자의 상대조차 안 되었네…….”
“틀림없네. 천악왕 곁에 방의도 함께 있는 것 같은데 저들이 이토록 낭패를 보다니. 보아하니 결과는 대라천역의 승리겠군!”
“저들의 대결을 보지 못했다니, 너무 아쉬운걸?”
* * *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에 서패와 방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지만 간신히 화를 가라앉히며 도주해야만 했다.
목진은 이들을 천 리 가까이 쫓다가 결국 포기했다. 계속 뒤를 밟아봐야 크게 득이 될 게 없었다. 그는 천악군을 모조리 없앨 수 없었고 서패가 앞뒤 안 가리고 덤비면 구유위도 크게 다칠 것이다.
더구나 다른 신각 군대와 마주치면 상황이 난감해질 거라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생각을 마친 목진이 철수 명령을 내리자 혈응왕은 저들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바로 생각을 접었다. 그는 더 이상 목진을 전처럼 대할 수 없었고 생명의 은인인 그의 결정에 반기를 들 수도 없었다.
혈응위와 구유위가 함께 신속하게 뒤돌아서자 황급히 철수하던 서패 등은 한시름 놓은 듯 숨을 고르고 천악군과 함께 조심스럽게 산속에 숨어들었다.
이에 천악군의 사기가 완전히 떨어졌고 통령들도 한껏 주눅이 들어 그 수를 파악했는데 놀라운 결과에 이내 사색이 되었다.
천악군은 대라천역과의 대결에서 3분의 1 정도의 군사를 잃었다.
엄청난 결과에 서패는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고 혈안이 되어 목진 등이 떠난 방향을 노려보며 포효했다.
“목진,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천악군은 그가 여러 해 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운 군대라 다시 그만큼을 키우려면 엄청난 양의 자원과 시간을 바쳐야 한다.
“서 산주님, 우리가 신각의 다른 군대와 회합하면 목진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거예요.”
방의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서패는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어린 나이에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다니, 제법이군.”
말을 마친 서패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전의의 령이라…… 그 사람한테 알려야겠군. 그녀라면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을 테니 말이야.”
서패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목진, 신각에도 전의에 조예가 남다른 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너만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목진과 구유, 혈응왕이 함께 평원에 있는 고봉에 내려앉자 그들을 기다리던 열산왕, 영검왕, 홍애왕이 마중을 나왔다.
“이번엔 고마웠네.”
목진 등은 열산왕 등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추격당하는 쪽은 바로 그였을 것이다.
이에 열산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같은 대라천역 사람을 도와준 것인데 고마워할 필요가 있을까? 목왕과 구유왕이 일전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연하지 않고 혈응전을 도우러 온 것이야말로 대단하네.”
말을 마친 열산왕은 어색하게 서 있는 혈응왕을 힐끗거렸다. 그는 평소에 우쭐거리던 혈응왕에게 호감이 없었던 터라 말에 가시가 있었다.
반면, 혈응왕은 목진 등이 자신을 구하러 한걸음에 달려와 준 것이 너무 고마워 열산왕의 말에도 화내지 않고 목진과 구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은혜는 내 반드시 갚겠소.”
진심이 담겨서 그런지 음산하기만 했던 혈응왕은 더 이상 전처럼 차가워 보이지 않았고 이에 열산왕도 인상이 조금 펴졌다.
그 말에 목진과 구유는 서로 마주 보며 웃기만 했다. 그들은 혈응왕이 했던 짓이 내키지 않았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어 후회할 선택을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진 등은 혈응전의 구조 신호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혈응왕도 이번 일로 느끼는 바가 있는지 더는 전처럼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목진과 구유가 더는 혈응왕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괜히 말썽부릴 필요는 없었다.
“이번 대수렵전을 무사히 마치면 목왕은 상당히 유명해지겠군. 전의의 령은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영검왕이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았고 열산왕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북계의 정예 세력 중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다른 정예 세력에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목진이 흠칫 놀라 물었다. 열산왕의 말대로라면 다른 정예 세력에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북계에는 천재가 수없이 많지 않나. 당연히 전의에 대한 장악력이 유난히 뛰어난 사람도 있다네. 정예 세력들은 그들을 얻지 못해 안달이 나 있지.”
열산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북계의 정예 세력 중에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다섯이나 있네. 그런데 그들은 방의와는 전혀 다른 인재라 대부분 그 정체를 감추곤 하여 일반인은 알기 어렵지. 또한, 각 세력에 이런 인재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암살로 이어지곤 하니 다들 감추려 하는 것이네.”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의도 목진이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 것을 보고 어떻게든 그를 죽이려 했으니 말이다. 녀석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신각에 엄청난 위협이 될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는 전진사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비록 성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만 만 명 중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했다. 엄청난 확률을 뚫고 성공하면 해당 세력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다들 전의의 천재를 감추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 어떤 세력에 속해있나요?”
잠시 망설이던 목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적어도 어떤 세력에서 전의 천재를 숨기고 있는지 알아야 앞으로의 대결에서 열세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신각, 유명궁, 천현전, 요문, 만성산…….”
열산왕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우리 대라천역도 이러한 천재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역주께서 늘 잠들어 계셨고 이에 크게 관심이 없으셔서 여태껏 단 한 사람도 들이지 못했던 것이네.”
열산왕은 흐뭇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은 자네 덕분에 우리 대라천역에도 전의 천재가 생겼군.”
이에 목진은 무안해서 그냥 웃기만 하였다. 만다라는 이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며 체내의 저주를 억제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었다.
“신각과 천현전의 전의 천재에 관한 정보가 있을까?”
목진은 신각, 천현전과 원한이 있어 두 세력을 유난히 주의해야 했다.
“신각의 전의 천재는 여인이고 천현전의 전의 천재는 미친놈이라고 들었네.”
열산왕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목진은 멈칫하였다.
“그게 다인가?”
“그렇네. 세력들이 애써 감춘 인재들인데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저들이 먼저 전의 천재를 내세우기 전까지 아무도 모를 걸세.”
열산왕의 말에 목진은 이내 혀를 내둘렀다. 이건 말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될 일이었다.
“이제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으니 우린 이만 떠나겠네. 빨리 다른 유적지를 찾아 운락 원단을 만들어내야지 않겠나?”
열산왕이 손을 털며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려 하자 목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제안이 있네. 우리가 함께 움직이면 오늘 같은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네.”
4왕이 어렵게 한곳에 모였으니 이들이 동행하면 효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열산왕 등은 목진의 말을 듣고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함께 움직이면 다른 세력에서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유적지를 찾는 속도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그들도 함께 움직일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운락 전장의 유적지를 찾아내기 너무 어려워 흩어져 찾아야 그나마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운락 원단을 얼마나 수집했나?”
그때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우린 3급 유적지를 두 군데 찾아 운락 원단을 300알 수집했네.”
혈응왕은 목진의 뜻을 몰랐지만 가장 먼저 대답했다.
“우린 200알 조금 넘게 수집했네.”
영검왕이 머쓱하여 답했다.
“우리도 그 정도밖에 안 되네.”
홍애왕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열산왕은 다른 3왕을 보더니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운이 좋았군. 우리는 500알을 수집했네.”
이에 나머지 3왕은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운락 전장에서 숨은 유적지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세력의 습격까지 조심해야 했다.
목진은 득의양양하게 서 있는 열산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우린 운락 원단을 1,200알 수집했네.”
열산왕은 순간 멈칫하였고 3왕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락 원단 1,200알은 엄청난 양이었다. 이는 3급 유적지를 적어도 일곱 군데나 찾아내야 가능한 수량이었는데 목진과 구유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를 찾아냈단 말인가?
그때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두르자 운락 원단이 홍류를 이뤄 주위에 맴돌았다.
“절반 정도는 서패한테서 빼앗은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것이네.”
“도대체 유적지를 몇 군데나 찾은 건가!”
열산왕은 자신의 두 눈조차 믿기 어려웠다. 그는 일전에 눈먼 두 세력이 감히 열산군에 겁도 없이 덤벼 이들한테서 500알 정도의 운락 원단을 얻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열산왕도 300알 정도밖에 없었을 것이다.
“3급 유적지가 아닌 곳까지 더하면 아마 일곱 군데 정도 될 것이네.”
목진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목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운락 전장에서 우연히 유적지를 찾아낼 수 있는 신통방통한 보물을 얻었네…….”
“젠장.”
목진이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다들 혈안이 되어 그를 노려봤고 열산왕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다들 목진이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말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유적지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보물은 운락 전장에서 신기나 다름없었다.
이 보물만 있으면 이들한테 운락 원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마 목진이 대라천역 사람이 아니었다면 열산왕 등은 바로 나서서 그를 쓰러뜨리고 보물을 빼앗았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나와 함께 할 텐가? 운이 좋으면 1급 유적지를 찾아낼 수도 있을 걸세!”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열산왕 등은 이내 입맛을 다시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무턱대고 운락 전장을 누비고 다니는 것보다 영라반이 있는 목진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나았다. 아무리 바보라도 목진을 선택할 것이다.
목진은 호탕한 네 사람의 결정에 흐뭇하게 웃으며 구유와 눈을 마주쳤다.
이들과 함께라면 목진은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