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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40화 (539/1,000)

540화. 가짜 전의의 령

잇따라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혈응위의 위쪽에 생성되었던 거대한 전의의 령이 혈광이 되어 떨어져 혈응위가 만든 전의의 바다에 스며들었다.

이번 시도를 통해 다른 군대의 전의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목진은 생각을 정리한 뒤 열산왕 등한테 다가갔다. 목진이 다가오자 혈응왕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인사를 전하려 했다.

“아직 고맙다고 하기엔 이르네. 혈응위는 아직 진정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네.”

혈응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목진이 말했다. 그 말에 다들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혈응위는 내 도움으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 전제는 내가 전의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네. 하여 일단 내가 없으면 저들은 자의로 전의의 령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네.”

목진이 쓸쓸하게 웃으며 말하자 혈응왕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목진은 혈응위의 통령이 아니라 항상 혈응위와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군대를 목진한테 넘길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보다 더 좋은 통령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정도 실력을 지닌 이라면 절대 혈응전의 통령으로만 남아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혈응왕 등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던 목진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정한 전의의 령은 안 되겠지만 가짜 전의의 령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네.”

“가짜 전의라니…….”

혈응왕 등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전의의 령에도 가짜가 있단 말인가?

“방금 내가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 것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네. 난 전의의 령의 흔적을 혈응위의 모든 전사의 머리에 봉인하였네. 그러니 다음번에 저들의 전의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걸세. 대신, 이는 혈응위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그 위력은 진정한 전의의 령보다는 못할 것이야. 그래서 가짜 전의의 령이라 불렀던 것이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혈응왕 등은 넋이 나갔다.

그들은 외부의 힘을 빌려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고 목진의 말에 조금이나마 시름이 놓였다. 전의의 령이 진짜든 가짜든 사용할 수 있으면 되는 법, 그들은 한 술에 배부를 거란 헛된 꿈을 꾸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봉인한 전의의 령의 흔적의 힘이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 때가 되면 보충해야 할 걸세.”

목진이 또 어깨를 들썩이며 한 말에 혈응왕 등은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들은 전의의 령을 이런 방식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고 앞으로는 절대 목진한테 밉보이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가짜 전의의 령은 부족한 점이 제법 있으니 아니다 싶으면 내 바로 여기서 멈추겠네.”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안 되네!”

열산왕, 영검왕, 홍애왕은 이구동성으로 외치더니 서로 눈치를 봤고 열산왕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짜 전의 령은 비록 진정한 전의의 령의 위력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이 엄청난 걸 원치 않는 전사는 없을 것이니 나머지 군대도 잘 부탁하네.”

“이 은혜는 반드시 배로 갚을 것이니 앞으로 뭐든지 필요하면 말만 하게.”

말수가 적던 홍애왕마저 한껏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이에 목진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같은 대라천역 사람인데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그리고 나머지 군대의 전의의 령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낼 것이네. 대신, 그대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 있네.”

“어디 말해보게!”

“필요할 때, 당신들의 군대를 잠시 빌려도 되겠나?”

목진이 다른 군대와 공명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상황에서 그들의 전의를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신, 4왕이 동의해야 전사들도 그를 받아들이고 전의를 맡길 것이다. 그들은 구유위가 아니기에 그가 함부로 장악할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열산왕 등은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답했다.

“그러시게. 자네가 우리 군대를 장악할 상황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니 여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네.”

열산왕 등도 목진이 기껏해야 자기 군대를 빌릴 뿐, 절대 낚아챌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통쾌하게 그의 부탁을 승낙했다. 전사들은 4왕이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사람들이라 이들의 명에만 복종했다. 그러니 4왕이 동의하지 않으면 목진이 전의에 대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사람의 전의를 몰래 장악할 수는 없다.

하여 4왕은 목진의 부탁이 전혀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가짜 전의의 령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별다른 마음을 먹고 한 말은 아니었고 중요한 상황에서 저들의 전의의 힘을 빌려 실력을 끌어올리려는 것뿐이었다.

그는 다른 정예 세력에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의 천재가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 만일에 대비해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유위는 최근에야 성장하기 시작해 그 수가 부족했는데 전의의 령의 힘은 군대의 규모에서 결정되었다. 이에 다른 군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구유위를 갑자기 충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충원한다고 해서 전사들의 전의가 완벽히 어우러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왕의 군대의 전의를 장악한다는 것은 훨씬 어렵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목진한테 더 낳은 선택은 없었다. 위험천만한 운락 전장에서 결국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이틀 동안은 유적지를 찾는 속도를 줄이고 내가 나머지 군대의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면 다시 속도를 끌어올립시다.”

목진의 말에 열산왕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최근에 천현전의 전의 천재에 대한 정보를 얻었네.”

목진은 순간 멈칫하였다.

“녀석의 악명이 이곳 운락 전장에 널리 알려졌다고 들었네. 그가 지나간 곳은 피바다가 되었고 그의 손에 살아남은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라네.”

열산왕은 목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녀석이 지금 자네를 찾고 있는 것 같네.”

“천현전이라…….”

목진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이 상당히 깊은 천현전에서 목진을 찾아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신각의 전의 천재에 대한 정보도 조금이나마 전해졌는데 적잖은 양의 일류 세력의 군대가 그녀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고 들었네. 왠지 그녀도 자넬 찾아다니는 것 같네.”

전의 천재가 둘씩이나 자신을 노리고 있다니. 일이 제법 복잡해졌단 생각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후우.”

목진은 바로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대로 하라 그러게. 저들이 정말 나를 노리는 것이라면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줄 것이니.”

목진은 여태껏 천재라 자칭하는 사람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두려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목진은 꼬박 이틀이 걸려서야 나머지 군대의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다. 기진맥진한 그는 하루 동안 꼼짝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전의의 령을 만드는 것은 엄청나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수만 명의 의지를 장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의지의 견인함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높았다. 그것이 바로 실력이 막강한 사람들이 전의를 장악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기도 했다.

또한 전의의 령을 네 개씩이나 만들고 모든 전사의 머리에 그 흔적을 봉인하기까지 해야 했다. 이 엄청난 일을 마친 목진은 하루가 걸려서야 비로소 체력을 회복하였다.

* * *

이튿날, 열산왕 등은 목진이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왔다. 그들은 목진이 쉬고 있을 때, 직접 가짜 전의의 령의 위력을 확인했는데 진정한 전의의 령보다는 못하지만, 이전보다 전투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힘을 직접 확인한 이들은 목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언젠가 전의의 령의 흔적이 담긴 봉인이 사라지면 이들이 이끄는 군대는 다시 전의의 령이 없던 때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한편, 목진 옆에 있던 구유는 열산왕 등의 태도에 피식 웃었다. 그녀가 대라천역의 왕이 됐을 때, 열산왕 등은 혈응왕처럼 비아냥거리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분명 못마땅해했을 것이다. 나이나 실력, 경험으로 봤을 때 그때의 구유는 절대 왕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구유는 어느새 실력이 부쩍 늘어 그 누구한테도 뒤처지지 않게 되었지만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열산왕마저도 지금은 구유궁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니, 그건 전부 목진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은 엄청난 실력자는 아니었지만 자기 고유의 수단과 방법으로 열산왕 같은 강자마저 굽신거리게 했다.

“괜찮네. 같은 대라천역 사람으로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번 대수렵전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를 도와야 하지 않겠나?”

목진도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목왕, 요즘 유적지를 찾는 속도를 줄였는데 이제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 어떻겠나?”

열산왕 등은 가짜 전의의 령을 만들어줬다고 뽐내지 않는 목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표정이 훨씬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결정권을 목진한테 넘겼다.

“요즘 운락 전장의 상황은 어떤가?”

그는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는 데만 집중하느라 운락 전장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점차 치열해지고 있네.”

열산왕이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우린 운락 전장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데 지금껏 살아남은 세력은 실력이 제법 있는 곳이라 일단 만나면 대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네. 그리고 이틀 사이, 운락 전장에서 소멸한 세력이 백 군데도 넘는다고 들었네. 그중에는 일류 세력도 있네.”

일류 세력은 북계에서 실력이 제법 좋았을 텐데 소멸했다니, 운락 전장에서의 싸움은 여간 잔인한 것이 아니었다.

“대라천역의 다른 세력 소식은 없나?”

“운락 전장이 너무 커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네. 지금은 다른 세력의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네.”

목진의 질문에 영검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앞으로 운락 원단을 더 많이 수집해야 할 걸세.”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은 영라반 덕분에 운락 원단을 만 알 넘게 수집했지만 지지존의 밀장의 봉인을 한층 뚫는 데만 해도 수만 방울이 필요해 더 많은 양을 수집해야만 했다.

“3급 유적지는 만들어낼 수 있는 운락 원단이 너무 적어 등급이 더 높은 유적지를 찾아야 할 것 같네.”

구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3급 유적지에서 얻을 수 있는 운락 원단의 양은 수백 알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닌데 규모가 상당한 목진 등에게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운락 원단 수백 알을 얻었다고 해도 나눠 가지면 얼마 되지 않았다.

영라반으로 3급 유적지를 최대한 많이 찾으면 운락 원단의 수를 메꿀 수는 있지만 왕들은 그 속에 남겨진 보물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등급이 더 높은 유적지라…….”

목진은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일전에 운이 좋아 3급 유적지보다 높은 등급인 2급 유적지를 발견한 적이 있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괜찮은 수확을 얻었다. 다만, 2급 유적지 한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운락 원단의 양은 3급 유적지 여러 곳과 비슷해 수천 알이나 되었지만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목진 등은 영라반이 있는데도 겨우 한 군데 밖에 찾지 못했다. 아마, 2급 유적지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면 다들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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