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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42화 (541/1,000)

542화. 소천

한편, 목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천이라 불리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쳐다봤다. 그는 상대방의 말에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어디서 온 멍청한 자식이 감히 여기서 우쭐대는 것이냐, 내가 한 방에 죽여줄까?”

음산한 기운이 깃든 소리와 함께 혈응왕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소천을 노려보며 나섰다. 감히 다른 왕들도 있는 앞에서 목진을 무시하다니, 혈응왕은 녀석의 오만방자함이 상당히 불쾌해하였다.

“우쭐대다니, 천현전 사람을 무시하는 건가?”

그때 소천 뒤에서 누군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목진과 구면으로 용봉천에서 육신을 폭발시킨 유염이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마자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유염 소전주였군. 유 전주께서 이렇게나 빨리 육신을 만들어주셨다니, 큰 대가를 치렀겠군.”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유염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당장 목진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용봉천에서 목진 때문에 체면이 바닥을 쳤을 뿐만 아니라 육신까지 잃은 유염은 아버지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육신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 너무 우쭐대지는 말게. 대라천역은 우리 천현전의 동의가 있어야 사망의 유적지에 발을 들일 수 있네!”

유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위에 튼실한 사내 네 명이 나타났다. 그들이 만들어낸 그늘만으로 목진을 완벽히 감쌌다.

그런데 이들 체형보다 더 놀라운 것은 실력이었는데 체내에서 발산하는 영력 위압감은 6품 지존급 강자라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천현전의 칠대 천장(七大天將)이군.”

열산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칠대 천장 중 순위가 바닥인 넷이 대라천역 군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허허, 설마 자네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어디 자네의 실력을 확인해볼까!”

유염 곁에 있던 이들 중 맨 앞에 있던 사람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열산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 해봅시다.”

열산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는데 순간 웅장한 영력 위압이 돌풍처럼 휘몰아쳐 천지가 어두워졌다. 다들 이미 6품 지존경 정상에 이른 열산왕의 실력에 흠칫 놀랐다.

천현전의 천장도 이를 알아채고 멈칫하였으나 그다지 두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가 싸우러 나가려 하자 유염이 막아 나서더니 피식 웃으며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목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 테지? 지금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그쪽은 이곳 사망의 유적지에 들어가 보지도 못할 것이네.”

목진은 천현전 무리가 전혀 두렵지 않았기에 다른 때였으면 바로 싸웠을 텐데 호시탐탐 서로를 집어삼키려고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위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싸우면 안 되었다.

“허허, 유염, 우리 함께 대라천역을 없애는 것은 어떤가?”

그때 다른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신각 무리가 있는 산봉우리에서 방의가 괴상을 표정을 지으며 목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에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하였다. 신각이 정녕 천현전과 함께 대라천역을 치겠다는 말인가? 이 일이 알려지면 엄청난 여파가 휘몰아칠 것이 분명했다.

“상갓집 개 주제에 감히 어디서 떠드는 건가? 지난번에 천 리를 쫓기고도 부족했던 건가?”

목진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방의와 서패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녕 힘을 합쳐 우리를 치려거든 얼마든지 하게. 그런데 우리도 절대 이대로 죽지는 않을 것이네. 만약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전부 숨지면 당신들도 함께 죽어야 할 것이네!”

목진의 흉수 같은 눈빛에 방의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라천역의 규모라면 이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 분명했다.

“신각은 지금 자네의 적이 될 생각이 없네. 일전의 원한은 언젠가 갚을 것이지만 지금은 천현전만 상대하게.”

갑자기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분위기가 조금 완화되었는데 이는 의자에 앉아있는 백의 여인의 목소리였다. 목진은 그녀의 수려한 외모에 흠칫하더니 바로 그 정체를 알아챘다. 그녀는 바로 신각의 전의 천재였다.

여인은 지금 당장 대라천역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천현전과의 싸움만 구경하려 했다. 연약해 보이지만 그녀 역시 상대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목진, 내 앞에서 너무 우쭐대지 말게. 자네가 우리 천현전과 싸운다면 절대 사망의 유적지에 있는 전진사의 계승을 받지 못할 걸세.”

유염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도대체 뭘 원하는가?”

이에 유염은 앞에 서 있는 소천을 바라봤는데 녀석은 한껏 충혈된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자네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다고 들었네.”

소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대라천역은 사망의 유적지에 들어가고 싶지만 천현전과는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으니 자네가 과연 사망의 유적지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하겠네.”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보게.”

목진 또한 씨익 웃으며 소천을 노려봤다. 그는 녀석이 그리 말할 줄 알았다. 아마 천현전은 처음부터 목진과 대라천역을 목표로 온 것이 분명했다.

목진을 죽여 분풀이하려는 천현전과 마찬가지로 목진도 저들을 꺾어 사람들한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실력을 보이지 않으면 대라천역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을 진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천이 한 짓은 바로 목진이 원하던 거였다.

“허허, 내가 자네 머리를 비틀었을 때, 부디 웃고 있었으면 하네.”

소천이 히쭉거리며 말했는데 그 말에 상당히 잔인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소천은 점차 웃음을 거두고 독사 같은 시뻘건 눈으로 목진을 쏘아봤고 목진도 무덤덤하게 상대방을 쳐다봤는데 두 사람의 살기에 주위의 온도마저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들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대라천역과 천현전의 전의 천재들의 대결이라니, 이는 동급 강자의 대결을 훨씬 뛰어넘는 세기의 대결이었다.

“내가 자네 군사를 모조리 죽일 것이네.”

소천이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휙 젓자 음산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현천부(玄天部), 나오거라!”

쿵!

소천의 말과 함께 천지가 파르르 떨리더니 뒤쪽 산속에서 무서운 전의가 치솟았다.

순간, 천지가 변했다.

쿵!

웅장한 전의가 돌풍처럼 휘몰아쳤는데 실력이 6품 지존경에 이른 강자들마저 그 위력에 흠칫 놀랐다.

“엄청난 전의군!”

혈응왕, 열산왕 등마저 정색하였다. 소천이 오만방자하긴 해도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녀석이 자신만만하고 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목진도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소천의 전의 장악력은 그가 북계에서 본 사람 중 최강이었다.

녀석은 역시 천현전의 전의 천재였다.

한편, 소천이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휘익 젓자 뒤쪽 산속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놀라운 전의를 발산하였다.

그들은 소천이 이끄는 현천부였다.

사람들 앞에 나타난 군사들이 입은 은색 갑옷은 눈이 부셨고 체내에서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는데 이는 목숨을 건 싸움을 치르지 않고서야 절대 가질 수 없는 정도의 살기였다.

더구나 현천부의 수는 대충 봐도 만 오천 명 정도 되었는데 열산왕의 열산군보다 많았다.

“저들은 현천부로 천현전에서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군대로 여태껏 소천이 거느렸네!”

열산왕은 처음으로 목진이 걱정되었다.

그는 목진의 재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똑같은 전의 천재인 소천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군대 규모도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해 상당한 강적이라 생각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옷깃을 휘날렸는데 뒤쪽에 서 있던 구유위가 하늘이 떠나가라 힘차게 외쳤다. 구유위는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쿵!

잇따라 웅장한 구유 전의가 주위에 퍼졌는데 그 위력에 다들 놀랐지만 그 수가 훨씬 적어서 그런지 구유위의 전의는 현천부의 것보다 많이 뒤처졌다.

“하하, 설마 5천 명밖에 안 되는 구유위로 현천부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이보다 우스울 수는 없군!”

소천이 피식 웃으며 목진의 뒤쪽에 서 있는 구유위를 쳐다봤다. 전의의 대결은 양쪽 군대의 실력과 인원수에따라 달라졌다.

그런데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 키운 현천부와 목진의 구유위는 하늘과 땅 차이로 정말 싸우기라도 하면 현천부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다.

쿵!

소천은 목진에게 기회 따위를 줄 생각이 없었기에 씨익 웃으며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뒤쪽 웅장한 전의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만 갈래의 빛줄기를 형성한 뒤, 목진한테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빛줄기가 지나간 곳마다 공간이 파르르 떨렸고 그 속에 깃든 영력 파동에 현장에 있는 6품 지존들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4품 지존밖에 안 되는 소천이 현천부의 전의를 장악하면 6품 지존도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목진도 상대방의 공격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는데 바로 인법을 바꾸자 뒤쪽의 웅장한 전의의 바다가 요동치며 그의 앞쪽에 커다란 전의 광막을 형성하였다.

퍽! 퍽! 퍽!

수많은 전의의 빛줄기에 적중한 전의 광막의 전의는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더니 결국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부서졌고 남은 전의의 빛줄기는 승자처럼 위풍당당하게 목진에게 향했다.

끼익!

그때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전의의 바다에서 방대한 전의의 령이 날개를 퍼덕이며 나타나 난폭한 영력 파동이 깃든 전의의 빛줄기를 모조리 없앴다.

사람들은 목진의 뒤쪽에 나타난 전의의 령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것이 바로 전의의 령이란 말인가? 역시 대단하군. 구유위의 전의가 순간 몇 배는 강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전의의 령을 가진 군대야말로 진정한 군대라고 한 거였군. 전의의 령이 이렇게나 대단하다니!”

* * *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전의의 령을 가진 군대는 아주 드물어 다들 신기해했다.

“하하, 저것이 자네가 만든 전의의 령인가?”

반면, 소천은 거대한 구유 전의의 령을 보더니 히쭉 웃었다.

“그럼 오늘 제대로 된 전의의 령을 보여주지!”

소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의 웅장한 전의가 미친 듯이 치솟더니 한데 모였는데 순간, 그가 서 있던 산맥에 커다란 균열이 일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떨렸다.

그러다 사람들은 소천의 뒤에 갑자기 생긴 커다란 그림자에 안색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입이 떡 벌어졌다.

수천 장 정도의 전의의 이무기가 나타났는데 녀석의 숨소리에 공간이 파르르 떨렸고 피부에 새겨진 밝은 전문에서 놀라운 파동이 느껴졌다.

전의의 이무기는 목진이 만들어낸 구유 전의의 령보다 훨씬 컸고 영력 파동만 봐도 그 차이가 엄청났다.

“목진은 참 겁도 없지. 현천부는 구유위의 3배나 되고 전의의 령도 천지 차이 아닌가?”

방의가 쌍방의 방대한 전의의 령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하자 앞쪽에 앉아있던 첨대유리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목진이 만들어낸 전의의 령을 바라봤다.

“목진이 만든 전의의 령은 전문이 4천 개를 넘고 소천의 전의의 령은 6천 개를 넘는군…….”

여인이 중얼거리는 말에 방의 등은 멈칫하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럼 목진이 질 수밖에 없겠군.”

방의 등은 비록 전문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첨대유리의 표정으로 보아 전문이 많을수록 실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첨대유리는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전의란 대부분 사람에게 신비롭고 낯선 힘으로 이를 조금이나마 장악한 통령일지라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여 첨대유리는 목진과 소천도 전문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를 거라 여겼다.

반면, 그녀는 고적에서 전의에 관한 정보를 얻어 전의의 령도 실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전의의 령의 피부에 새겨진 전문의 수에 근거한 것으로 군대의 전의와 직결된 전문은 그 수가 많을수록 전의가 강하다.

목진이 만들어낸 전의의 령의 피부에 새겨진 전문이 소천의 것보다 못하긴 하지만 후자가 장악한 군대의 규모는 구유위의 3배나 되지 않은가…….

즉, 구유위의 수가 현전부와 같았다면 목진은 이미 소천을 짓밟아 버렸을 것이다. 목진의 전의에 관한 이해력과 깨달음은 상당했다.

5천 명의 구유위 전의로 전의의 령에 전문을 4천 개 정도 새기는 것은 아무리 첨대유리라도 버거운 일이었다.

목진은 역시 진정한 실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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