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화. 5왕이 나서다
어둠을 가르며 전진하던 목진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앞쪽을 바라봤는데 그곳에 수천의 사람이 피범벅이 된 채 튕겨 나갔고 주위의 영력 또한 상당히 무질서해졌다.
이에 목진은 바로 사람들을 멈추게하고 잔뜩 경계하며 상황을 살폈다.
“저건 극무종(極武宗) 사람들이네…….”
열산왕은 황급히 도주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 말에 목진과 구유 등은 깜짝 놀랐다.
극무종은 북계의 일류 세력으로 실력이 제법 있고 사망의 유적지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6품 지존이 한 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극무종의 6품 지존은 살해되었네.”
먼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목진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열산왕 등은 순간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에 목진이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는데 어둠이 깃든 깊숙한 곳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검은색 안개가 몰려왔다.
천지는 저들의 질서정연한 움직임에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안개가 가시자 사악한 기운으로 온몸을 휘감은 한 무리가 놀라운 전의를 내뿜으며 목진 등의 눈앞에 나타났고 검은색 전의가 미친 듯이 모여 위쪽 하늘에 방대한 검은색 마랑을 형성하였고, 녀석의 포효가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번에 만난 부후 군대에는 전의의 령이 있었다.
“전의의 령이라니!”
열산왕과 구유 등은 순간 입이 떡 벌어졌고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극무종은 이들 앞에 나타난 부후 군대 때문에 패한 것이 틀림없었다.
목진은 자연스레 군대의 위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웅장한 전의 속에 검은색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목진은 가볍게 숨을 들이켜고는 조금 놀란 듯 중얼거렸다.
“군대를 거느리는 장군이 있다니!”
먹구름처럼 몰려온 군대는 목진 등의 위쪽에 빠르게 퍼져나가 엄청난 전의를 자랑하였고 커다란 마랑이 포효하며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해 구유, 열산왕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웅장한 전의의 위압감에 치명적인 위협을 느꼈는데, 극무종의 6급 지존이 죽을법했단 생각이 들었다.
목진도 한껏 정색하며 군대를 바라보다가 그 위쪽에 서 있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다.
“이 군대를 장악한 통령도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군.”
이에 구유 등은 흠칫 놀랐다. 이성을 잃은 부후 군대마저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사망의 유적지는 역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그때 상대편의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고개를 들어 생기 없는 눈으로 목진 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천진황(天陣皇) 휘하…… 다섯 번째 통령이다. 천진황의 전역에 침입한 자는 전부 죽인다.”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소리를 들으니 사내와 군인들도 몸에 사기가 깃들어 이성을 잃고 육신을 보존한 채 존재하고 있었다.
“천진황의 다섯 번째 통령이라…….”
사내의 말에 목진 등은 멈칫하였다. 그 말은 즉 사망의 유적지는 천진황의 구역이고 그는 목진 등이 찾으려던 전진사가 분명했다.
“전진사는 역시 남다르군. 휘하의 통령마저 전의의 령을 소환해 실력이 이토록 강한 군대를 통솔할 수 있으니 말이야.”
구유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이들 앞에 나타난 사내는 북계 정예 세력에 들여도 고위층에 오를 수 있는데 천진황 휘하에서는 다섯 번째 통령일 뿐이었다.
“이 군대는 우리의 군대보다 훨씬 강하네.”
목진이 허공에 떠 있는 마랑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수적 차이가 너무 커서인지 아무리 구유위라도 미랑의 체내에서 내뿜는 웅장한 전의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 수가 2만이 넘는 부후 군대에 비하면 소천이라도 그에 못 미칠 것이다.
“여러분, 우리 함께 움직입시다.”
목진이 구유와 열산왕한테 말을 건넸다.
저들의 전의는 웅장하고 난폭하기 그지없어 6급 지존이 한 명밖에 없었으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텐데 대라천역 무리에는 6급 지존이 무려 다섯 명이나 있었다.
또한, 목진도 구유위와 혈응위의 전의를 장악하면 실력이 6급 지존이나 마찬가지라 6급 지존이 여섯 명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목진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구유와 단둘이 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운락 전장은 위험천만한 곳이라 구유궁의 힘만으로는 절대 끝까지 갈 수 없었다.
“하하, 저 녀석은 우리 다섯 사람한테 맡기고 목왕은 옆에서 상황만 살피면 되네. 이런 대어를 놓칠 수 있나?”
열산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바로 앞으로 나섰다.
슉! 슉!
구유, 혈응왕 등도 바로 영력을 한껏 끌어올린 채 나섰는데 엄청난 영력 파동이 치솟아 그 구역에 난폭한 영력 돌풍이 일었다.
쿵!
부후 군대도 구역질 나는 케케묵은 냄새를 풍기며 난폭한 전의를 끌어올리자 마랑이 입을 쩍 벌려 천 장 크기의 검은색 전의의 빛을 내뿜어 앞장선 열산왕을 공격했다.
“마침 잘됐군!”
그러나 열산왕은 두려워하기는커녕, 껄껄 웃으며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힘껏 휘둘렀는데 그 웅장한 영력은 방대하기 그지없는 산악으로 변했다. 열산왕이 휘두른 주먹에는 산 한 채를 부술 만큼 무서운 힘이 깃들었다.
“오악신권(五嶽神拳)!”
열산왕의 공격에 앞쪽 공간은 바로 부서졌고 묵직한 권광은 빠르게 전의의 빛줄기와 부딪쳤다.
퍽!
난폭하기 그지없는 파동이 휘몰아쳐 공간이 파르르 떨렸고 열산왕은 그 충격파에 수천 장 정도 튕겨 나가고나서야 간신히 멈춰섰다. 그는 보랏빛이 맴도는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엄청난 전의로군. 나와의 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다니, 제법이야.”
구유 등은 최강 실력자인 열산왕마저 상대방의 전의에 튕겨나간 것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진 채 거의 동시에 나섰다.
“구유우(九幽羽)!”
“천령검술(天靈劍術)!”
“혈응쇄공익(血鷹碎空翼)!”
* * *
6급 지존 네 명의 매서운 공격에 공간은 쭉 찢어졌고 요동치는 영력에 주위를 맴돌았던 암흑의 기운이 대부분 사라졌다.
크으으으!
검은색 바다를 이룬 부후 군대의 전의의 위쪽에 서 있던 통령도 나지막하게 포효하였다. 그는 6급 지존들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위협을 느끼고 바로 전의를 끌어올렸는데 덩달아 마랑이 포효하자 피부에 새겨졌던 전문이 번쩍이며 입가에 검은색 조각달을 만들어냈다.
전문이 새겨진 검은색 조각달도 웅장한 전의를 내뿜었다.
이러한 광경에 목진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상대방이 조종한 전의는 그보다 더 응축되어 있었고 목진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해낼 수 없었다.
위잉!
그러다 마랑이 머리를 힘껏 휘두르자 검은색 조각달이 신속하게 날아가 구유 등을 공격했다.
퍽! 퍽!
검은색 조각달은 놀라운 파괴력을 자랑하며 네 개의 공격 중 세 개의 공격을 부순 뒤, 전의가 다해 사라졌다.
구유 등은 상대방의 엄청난 위력이 깃든 공격에 화들짝 놀랐다. 그 공격으로 6급 지존 세 명의 공격을 무산시켰기 때문이었다.
쿵!
마지막 남은 공격은 여전히 공간을 가르며 부후 군대에 적중했는데 난폭한 영력 돌풍이 휘몰아치며 수천 명의 부후 전사가 산산이 부서졌다.
크으으으!
이에 다섯 번째 통령은 화가 난 듯 포효하며 보다 난폭해진 전의로 구유 등을 미친 듯이 공격해 그야말로 장관을 이뤘다.
한편, 목진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쌍방의 대결을 지켜보며 군사들에게 이 구역을 봉쇄하라고 명하였다. 이번에 마주친 부후 군대는 상대하기는 쉽지 않아도 일단 쓰러뜨리면 수천 알의 운락 원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검은색 전의 속에서 전의를 조종하며 열산왕, 구유 등과 싸우고 있는 다섯 번째 통령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녀석한테서 천진황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쿠쿵!
목진이 사색에 잠긴 사이, 대결은 점차 치열해졌다. 난폭한 영력 파동에 목진마저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놀라운 건 부후 군대는 6급 지존 다섯 명의 맹렬한 공격을 버텨냈고 마랑의 위험한 공격에 열산왕 등은 마음껏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상대방이 강하긴 해도 6급 지존 다섯 명을 상대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여 1각 정도가 지나자 상황은 점점 대라천역 쪽의 우세로 넘어갔다. 상대편 군대의 웅장한 전의는 점차 무질서해졌고 열산왕, 구유, 영검왕의 포위 작전에 마랑의 체구는 빠르게 작아졌다. 그건 전의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 통령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내뿜는 파멸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다.
쿵!
그때 열산왕, 구유, 영검왕이 천 장 크기의 기의 회오리를 쏘자 마랑은 처량하게 울부짖으며 폭발하였고 부후 군대의 전의도 완전히 흩어져 한순간에 사라졌다.
크으으으!
다섯 번째 통령은 달갑지 않은 듯 포효하더니 물러나지 않고 다시 싸우려 했다. 군사들을 잃은 그의 전투력은 4급 지존보다도 못해 열산왕 등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 불굴의 정신에 다들 숙연해졌다.
다섯 번째 통령은 원고의 대전쟁에서 역외 사족과 싸우다 죽은 선배라 다들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그와 그가 이끄는 군사들은 대천세계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숨졌기 때문이다.
“내가 마무리하겠네.”
목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바로 다섯 번째 통령한테 다가가 그 가슴팍에 손을 얹었는데 손바닥에서 웅장한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치며 폭발하였다.
퍽!
난폭한 영력이 체내에 스며들자 다섯 번째 통령은 해탈한 모습을 드러내며 잠시나마 이성을 되찾았다.
“고…… 고맙네. 앞쪽에…… 사령전진(四靈戰陣)이…….”
“천진황을…… 조심하시오…….”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다섯 번째 통령이 완전히 사라지자 목진은 숙연하게 서서 가볍게 인사를 올렸다.
“사령전진이라…….”
잇따라 그는 중얼거리며 사망의 유적지의 깊숙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봤는데 어둠이 깃든 그곳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고 괜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열산왕과 구유 등이 달려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사령전진이라니?”
“앞쪽에 진정한 전진이 있는 것 같네.”
목진이 한껏 정색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진이란 말에 열산왕 등은 흠칫 놀랐다. 전진사만 전진을 칠 수 있는데 일단 전진이 효력을 발휘하면 그 위력은 천지를 뒤흔들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보통 영진사는 천지의 힘을 빌려 진을 치는데 전진사는 하늘과 땅마저 두려워할 전사들의 웅장한 전의로 전진을 친다.
하여 대라천역의 절반 정도 되는 세력이 나섰다고 해도 전진사가 친 전진과 마주치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열산왕 등이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한다면 대라천역의 왕들의 체면은 바닥날 거라 앞으로 북계에서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운락 원단부터 취합시다.”
목진이 눈길을 거두며 한 말에 사람들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주위에 퍼진 운락 원기를 수집하였다. 이는 정화된 부후 군대가 남긴 것이었다.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그 웅장한 운락 원기가 탐이 났지만 대라천역의 화려한 진영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편에는 열산왕 등을 제외하고도 정예 군사가 넷이나 있었다.
하여 그들은 목진 등이 나서 웅장한 운락 원기로 운락 원단을 제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그 수는 어느새 만 알에 이르렀다. 이는 2급 유적지 한 군데를 털어야 얻을 수 있는 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