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한데 모인 사람들
목진은 마지막 운락 원단을 만들어내자 그제야 만족한듯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한꺼번에 운락 원단을 9천 알 넘게 제련해 나눠 가진다고 해도 인당 2천 방울 넘게 가질 수 있었다. 이는 상당한 수확이었다.
“사망의 유적지가 1급 유적지인 것이 분명하네.”
열산왕이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통령이 이끄는 군사들한테서 만 알 조금 안 되는 양의 운락 원단을 취할 수 있다니, 이는 3급 유적지를 서른 곳이나 넘게 다니며 수집해야 가능한 양이었다.
그런데 1급 유적지에서는 한 번에 취할 수 있는 운락 원단의 양이 꽤 많았다. 물론 따르는 위험도 많아 만약 이들이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면 극무종과 비슷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럼 이젠 어딜 가야……”
열산왕 등은 하나같이 목진의 눈치를 살폈다. 다섯 번째 통령의 말대로라면 사망의 유적지의 깊숙한 곳에는 무서운 전진이 있고 그곳에 천진황도 함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보물도 상당히 많겠지만 그 어느 곳보다 위험할 것이다.
“일단 가봅시다. 전진이 너무 강하면 운락 원단만 취하고 떠납시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목진이 바로 결정을 내렸다. 전진사에 관한 정보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대라천역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이에 열산왕 등은 바로 동의하였다.
“그럼 갑시다.”
목진은 먼 곳에서 상황을 살피던 무리가 전부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사망의 유적지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군사들도 바로 뒤를 따랐다.
사망의 유적지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험난해 목진 등은 끊임없이 나타나는 부후 군대에 발목이 잡혀 전진 속도가 상당히 느려졌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손실도 생겼다. 그런데 만약 열산왕 등이 없었다면 목진 등이 입었을 피해는 더 엄청났을 것이다.
목진 등은 느리게나마 사망의 유적지의 깊숙한 곳에 부단히 가까워졌다.
한편, 그들은 처량한 결과를 맞이한 무리를 적잖게 마주쳤는데 북계의 일류 세력으로 6급 지존까지 있었지만 미친 듯이 몰려드는 부후 군대의 공격에 결국 전멸하였다. 눈치가 빠른 일부 강자들은 거느린 군사를 전부 버리고 도망갔다.
목진 등은 일류 세력의 몰락에 더 긴장했다. 아무리 규모가 상당하다고 해도 운락 전장에서 전멸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더구나 대라천역 정예가 반이나 모인 이들이 전멸하면 대라천역에도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 * *
목진 등이 어둠을 가르며 지나가자 하늘마저 파르르 떨렸고 앞장선 목진은 웅장한 영력을 휘감은 채 주위를 훑었다. 그는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수백 리 남짓한 거리를 거닐며 부후 군대를 수십 차례나 마주쳤고 규모와 실력이 이들 못지않은 무리를 만나 타격을 입었는데 영검왕마저 조금 다쳤다.
사망의 유적지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 사망의 유적지의 깊숙한 곳인 것 같군.”
목진이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한 곳을 살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에 열산왕, 구유 등은 한껏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왜 오히려 조용해진 거지? 여긴 부후 군대조차 없어.”
“사자가 자기 구역에 다른 맹수를 들이는 걸 봤어?”
구유의 말에 목진도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심해.”
목진이 영력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나서자 군사들도 대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다 목진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앞쪽을 바라봤고 뒤따르던 열산왕 등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런 젠장…….”
열산왕 등은 너무 놀란 나머지 욕설을 퍼부었다.
한편, 목진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앞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산맥 뒤편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어둠의 평원이 보였다. 그곳은 부후 군대로 꽉 차 있었는데 그들은 바닥에 박힌 것처럼 서 있었고 상당히 웅장한 부후 전의를 내뿜어 천지가 파르르 떨렸다.
수십만이나 되는 군대가 우뚝 솟은 전의를 중심으로 포효하자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엄청난 규모의 부후 군대에 열산왕 등은 겁이 났다. 일전에 마주쳤던 무리는 이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무 강하네. 이 정도면 우리가 뛰어들었다가 전멸할 수도 있네.”
열산왕은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거느린 군대는 기껏해야 인수가 2만 명인데 상대편에는 수십만 대군이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전진사까지 한 명 있으니 3황이 왔어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목진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에 관해서는 열산왕 등보다 월등한 목진은 평원에 맴도는 전의가 상당히 강할뿐더러 특이한 파동까지 느껴졌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전진일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슉!
그때 오른쪽에서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규모가 상당한 한 무리가 이들처럼 평원 밖에 내려앉았고 이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신각 사람들이네!”
열산왕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들도 여기 왔다니…….”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쪽을 쳐다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천현전 사람들도 장애를 뚫고 사망의 유적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하였다.
잇따라 속속 다른 세력들이 도착했다. 정예 세력은 아닌데도 규모가 상당해 자세히 살펴보니 일류 세력들이 연합군으로 뭉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력이 상당한 세력들의 출현에 목진은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화색이 되었다. 그들이 있으면 이곳을 뚫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신각 무리에서 한 줄기 빛이 폭발하더니 여인의 가냘픈 목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여러분, 우리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이 어떤가?”
어둠이 드리운 산맥에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들 흠칫 놀라 바로 주위를 살폈다.
서로 경쟁 상대인 이곳에서 다들 서로를 경계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데 첨대유리는 힘을 합치려 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진도 잠시 당황한 듯 눈가를 파르르 떨었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첨대유리는 연약해 보여도 패기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했다. 이 상황은 어느 한 세력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생각이 다른 각각의 세력의 뜻을 한데 모을 수 있을지는 결국 첨대유리한테 달렸다.
그 말에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는데 첨대유리의 뜻을 따르려는 세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다들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다들 운락 원단만 얻으러 온 것은 아닐 걸세. 보다시피 진정한 대어는 우리 앞에 있네. 저들을 정화하면 십수만 알도 넘는 양의 운락 원단을 제련할 수 있고 우리는 임무를 수월히 완성할 수 있을 걸세.”
첨대유리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에 사람들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운락 원단 십수만 알은 엄청난 양이었다. 그 정도 양이면 지지존 밀장의 봉인을 손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운락 원단 뿐만이 아니네. 저들 중에는 원고의 강자가 제법 있는데 우연히 강대한 원고의 신술이라도 얻으면 여러분한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네.”
“그런데 저들은 실력이 상당해 우리 중 한 무리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네. 그렇다고 저들이 천하무적인 것도 아니고. 내가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대군 내부에 위력이 상당한 사령전진이 있는데 이는 아무리 7급 지존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라고 하네.”
첨대유리의 말에 다들 멈칫하더니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7급 지존도 뚫을 수 없는 사령전진이라니!
“첨대유리는 참 아는 것도 많군.”
목진도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목진 등은 사령전진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된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첨대유리는 목진 등보다 사망의 유적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사령전진의 위력이 상당하긴 해도 뚫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네.”
“7급 지존도 뚫을 수 없는 전진이라더니 뭘 믿고 그리 말하는 건가?”
첨대유리의 자신만만한 말에 누군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여인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러분이 함께하기로 약속하면 그때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네. 대신, 그럴 마음이 없으면 강요는 하지 않겠네.”
첨대유리의 말에 사람들은 바로 여인이 과연 사령전진을 뚫을 방법이 있을까 우려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편, 목진과 구유 등도 적잖게 놀랐다. 첨대유리가 정녕 사령전진을 뚫을 방법을 안단 말인가? 정녕 그렇다면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대가 될 것이다.
“허허, 첨대 낭자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니 대라천역에서는 믿고 참석하겠네.”
잠시 고민하던 목진은 가장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망의 유적지가 최대 관심사인 목진은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첨대유리가 정말 해결책이 있다면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사심 없이 모든 걸 베풀 거란 허황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도 결국 다른 세력의 힘을 빌려 전진을 뚫으려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정말 전진을 뚫으면 그 속에 깃든 보물을 얻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 분명했다.
“첨대 낭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현전도 합류하겠네.”
조용히 서 있기만 하던 유염도 말을 덧붙였다. 그들이 사망의 유적지를 찾아온 이유는 전진사가 남긴 수련법을 얻기 위해서인데 천현전만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었기에 첨대유리의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유염 곁에 서 있는 소천은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았고 그 모습이 상당히 무서워 보였지만 정작 목진은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두 정예 세력의 결정에 연합군은 흔들렸다.
다들 바보가 아니라 첨대유리가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협력한다고 해도 자기 세력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할 것이다.
잠시 후,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세력들이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신각에서 합류한다고 하니, 청운종(青雲宗)도 그 뜻을 따르겠네.”
“금강문(金剛門)도 따르겠네.”
“천비산도 따르겠네.”
* * *
사방에서 말소리가 전해졌는데 그중 한 곳은 일류 세력을 대표했다. 일류 세력은 정예 세력보다 못하지만 한데 모이면 정예 세력마저 그 실력과 기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목진은 함께하려는 세력들을 쓰윽 훑고는 구유와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일류 세력들이 있어야 사령전진을 뚫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첨대유리가 제시할 해결책이 상당히 궁금했다. 어두운 평원에 가득 찬 부대에서 상당히 무서운 파동이 느껴졌고 이는 6급 지존이 전혀 감당 못 할 정도였다.
그때 신각 무리가 있는 곳에서 빛줄기가 솟구쳐 텅 빈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는데 그곳에 첨대유리도 있었다.
그녀는 하얀색 치마를 입고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유난히 연약해 보이는 몸에서 남다른 집착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녀 뒤에는 방의가 호위무사처럼 서서 목진이 있는 쪽을 힐끗거렸다.
“각 군대의 수장은 이리 와서 해결책을 의논합시다.”
첨대유리가 각 세력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목진은 열산왕 등과 눈길을 마주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구유와 함께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