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화. 사령전진
“청운종과 금강문은 전의를 소환하라!”
신각의 전의가 줄어들자 첨대유리는 가볍게 외쳤는데 가냘픈 그녀의 목소리에 엄청난 살기가 깃들었다.
이에 신각의 뒤쪽에 서 있던 청운종과 금강문 군사들은 각자 수령의 명에 따라 신속하게 강력한 전의를 내뿜어 신각의 군사들과 함께 앞쪽의 무서운 부후 군대 전의의 압박을 제압하였다.
쿠쿵!
웅장한 전의의 대결로 형성한 충격파에 공간은 부단히 일그러졌고, 그 광경에 5품 지존마저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유염 소전주, 우측은 천현전에 맡기겠네!”
첨대유리가 천현전 군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들은 마침 연합군의 우측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웅장한 전의가 휘몰아쳐 연합군을 쓰러뜨리려 했다.
이에 유염은 바로 승낙했다. 연합군이 부후 군대에 포위되어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연합군이 일단 흩어지면 천현전은 도망갈 수 있다고 해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가 곁에 서 있는 소천한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천이 손을 휘익 휘둘렀는데 천현전 군사들이 웅장한 전의를 끌어올려 대지가 뒤흔들렸고 우측의 공격도 바로 막아냈다.
뒤쪽에 서 있던 목진은 이러한 광경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소천이 얄밉긴 해도 제법 실력이 좋았다. 천현전 군사들만으로도 연합군의 우측의 안전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목왕, 연합군의 후방은 대라천역에 맡기겠네.”
첨대유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같은 배에 탔으니 대라천역은 최선을 다할 걸세.”
“고맙네.”
잇따라 첨대유리의 목소리는 연합군 전체에 닿았다.
“여러분, 각자가 속한 구역을 잘 지키고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으면 바로 알리게.”
첨대유리의 목소리는 상당히 느긋했다. 그녀는 연합군이 부후 군대한테 포위되었다고 해서 당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연합군은 질서 있게 방어와 공격을 하였는데 그 모습에 목진마저 감탄하였다. 첨대유리는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군사를 거느리는 데는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적어도 목진이었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각자 딴마음을 먹은 연합군을 이토록 잘 통솔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대단한 여인일세.”
목진의 옆에 서 있던 구유도 이내 감탄하였고 열산왕 등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 천재인 여인이 대규모의 연합군을 거느리고 싸우다니,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첨대유리는 정말 임시로 뭉친 연합군을 거느리고 사령군 외군을 뚫고 사령전진에 맞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
쿠쿵!
그때 연합군은 다시 웅장한 전의를 방출하며 사방의 부후 전의를 모조리 막아냈다.
쌍방의 공격에 기교 따위는 없고 전의의 대결만 있었는데 매번 부딪힐 때마다 수많은 무후 전사들이 잿더미가 되었고 연합군 쪽에도 다친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첨대유리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이미 전멸하여 여기까지 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연합군은 부후 군대의 방어벽을 뚫으며 부단히 어둠의 평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한편, 연합군의 최전방은 압력이 제일 강한 곳으로 다른 세력이 신각을 대체했다면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을 텐데 첨대유리는 수십 개 군대의 전의를 번갈아 가며 사용해 일정한 전의를 유지하며 전진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첨대유리는 연합군 기타 세력들도 완벽하게 지휘하였다.
다만, 외군과의 싸움에 전력을 다한 일류 세력과 비교하면 신각, 대라천역과 천현전은 실력을 보존하는 것 뿐이라 피해가 얼마 없었는데 첨대유리의 한마디에 피해가 상당한 세력은 말이 쏙 들어갔다.
“신각, 대라천역과 천현전은 힘을 보존해 사령전진을 뚫어야 하니 지금 전의를 너무 많이 소모하면 이곳 방어벽을 뚫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녀의 말에 일류 세력들은 바로 말문이 막혔다. 그들도 사령전진을 뚫어야 엄청난 수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령전진은 첨대유리, 목진, 소천한테 달렸기 때문이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첨대유리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더니 구유 등한테 눈길을 돌렸다.
“외군은 곧 뚫릴 것 같네.”
구유 등도 사방에서 몰려오는 부후 전의가 점차 약해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연합군이 곧 상대방의 방어벽을 뚫을 거라는 걸 의미하였다.
외군의 방어벽을 뚫는다고 안심할 수 있기는커녕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우뚝 솟아오른 어둠의 평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맹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소름이 끼쳤다.
그곳에 숨은 사령전진이야말로 사망의 유적지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다만, 아무도 사령전진을 뚫을 거란 확신은 없었는데 일단 실패하면 다시 외군을 뚫고 나오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꽈르릉.
하늘은 무서운 전의의 끊임없는 충돌에 파르르 떨렸고 대지에는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수많은 부후 전사가 전의의 충격에 잿더미가 되었으며 연합군 중에도 일부 전사들이 피를 토하며 숨졌다.
첨대유리가 아무리 지휘를 잘한다고 해도 전의의 충격에 자칫하면 한 군대가 전멸할 수도 있는지라 이 정도 타격은 정상이었다.
연합군의 가장 앞쪽에 있던 두 일류 세력이 전의를 끌어올려 싸우려 할 때, 앞쪽에서 몰려오던 전의의 압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는 꼭 등에 업었던 산 한 채가 갑자기 사라진 것과 같았다.
연합군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보니 끝이 보이지 않던 부후 군대는 뒤쪽에 멈춰 섰고 이들은 텅 빈 어딘가에 서 있었다. 녀석들은 뭔가를 두려워하듯 더는 나서지 않았다.
“드디어 통과했군!”
다들 이내 화색이 되었다. 한 시진이나 이어진 전의의 대결 끝에 그들은 드디어 사령군 외군을 뚫어냈다.
반면,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첨대유리와 목진, 소천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고개를 들고 멀리 떨어진 앞쪽을 쳐다봤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무서운 압박감이 먹구름처럼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져 숨이 턱 막혔다.
그곳에 사령전진이 있었다.
어두운 대지는 부후의 기로 가득 찼고 가끔 백골이 아른거렸으며 쫙 갈라진 것으로 보아 원고 시기에 얼마나 참담한 전쟁이 일어났었을지 상상이 갔다.
이렇게 대규모 연합군이 외군의 방어를 뚫고 외군과 내군 사이에 있는 텅 빈 구역에 들어서자 외군은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외군이 더는 침입자들을 잡으러 오지 않아 연합군은 드디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각 세력의 수장들은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앞쪽을 바라봤다. 그곳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들 무서운 위압감이 느껴졌고 6급 지존경에 이른 강자들마저 흠칫 놀랐다.
어둠 속에는 사망의 유적지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인 사령전진이 있었다.
이는 진정한 전진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위력은 상당했다.
그때 어둠이 깃든 곳을 한참 바라보던 첨대유리가 목진과 소천이 있는 곳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지금부터는 우리한테 맡기게.”
첨대유리의 말에 각 세력 수장들은 바로 목진과 소천한테 눈길을 돌렸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박한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외군을 뚫을 때, 첨대유리의 완벽한 지휘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지만 3대 정예 세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세력들은 약간씩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3대 정예 세력은 사령전진을 뚫어야 하니 다들 불만은 없었다.
외군의 공격을 무사히 뚫은 지금, 모든 건 3대 정예 세력에 달려 있었다.
목진도 다른 세력의 절박한 눈빛에 입을 삐쭉 내밀었다. 목진 등이 사령전진을 뚫는 데 실패하면 원성이 자자하겠지만, 이 일은 첨대유리가 나서서 주장한 일이니 대라천역에 불똥이 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자연스레 첨대유리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그녀의 수려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녀는 다른 세력들이 준 압력에 전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첨대유리는 정녕 사령전진을 뚫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저러는 걸까?
쿵!
그때 어둠의 평원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려와 다들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를 휘감았던 어둠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다 어둠이 완전히 가시자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빼곡하게 서 있는 암흑 부대로 오래된 기운을 풍기며 어둠의 평원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인수로 보면 외군보다 훨씬 적었지만 사람들은 석상처럼 조용히 서 있는 군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어려웠다.
한편, 드넓은 평원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상대편 군대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전진은 대충 나뉜 것 같았지만 열산왕 등마저 치명적인 위협을 감지하고 소름이 쫙 끼쳤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령군으로 천진황의 직속 부대였다.
위잉.
그때 대지가 갑자기 미세하게 떨리더니 석상처럼 조용히 서 있는 상대편 군사들이 만 년동안은 감았을 것 같은 눈을 서서히 떴다.
쿵!
잇따라 녀석들의 움푹 파인 눈에 빛이 스쳤는데 이는 전쟁에 대한 갈망이었다. 싸우기 위해 태어난 이들은 죽었어도 전쟁에 열광했다.
순간, 만 장 크기의 해일과 같은 검은색 전의가 휘몰아치자 천지마저 격렬하게 진동했다.
꽈르릉.
그러다 이곳 공간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져 목진, 첨대유리, 소천은 흠칫 놀랐다.
“참으로 무서운 전의군!”
나머지 세력의 수장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정도 전의라면 7급 지존이 들어가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첨대유리도 한껏 정색하며 상대편 군사들을 쳐다봤다. 아무리 무덤덤한 그녀라도 지금은 긴장되었다.
슉!
그때 사령군의 위쪽에 형성된 웅장한 전의에 다시 변화가 생겼는데, 그 속에서 검은빛이 스며져 나오더니 수만 장 정도 크기의 광막을 네 개나 형성하였다.
상대편에 분포된 광막에 오묘한 빛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서로 연결된 광막은 오묘하기 그지없는 특이한 파동을 내뿜었다.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광막을 쳐다봤는데 그 속에 한 군대가 잠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전의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사령전진으로 아직 전진이 열리지 않아 목진은 그 위력이 가늠이 가지 않았다.
“여러분, 저것이 바로 사령전진이네. 우리가 이를 뚫을 수만 있다면 사망의 유적지는 파괴된 거나 마찬가지고 부후 군대는 전부 정화되어 운락 원기가 될 것이네.”
첨대유리가 주위를 쓰윽 훑으며 말했다.
“첨대 낭자, 정말 사령전진을 뚫을 자신이 있는가?”
한 세력의 수장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령전진을 직접 본 그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우리한테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나?”
첨대유리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령전진의 위력은 엄청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네. 저들은 이미 사망한 사람들이라 전진의 위력은 훨씬 줄어들었으니 우리한테 승산은 있네.”
“그런데 이건 목왕과 소천 통령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네.”
첨대유리는 목진과 소천한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허허, 사령전진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지 당장 확인하고 싶군!”
소천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