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화. 전진을 뚫다
쿵!
파멸의 파동으로 가득 찬 굵직한 빛줄기는 신속하게 허공을 가르며 목진의 앞쪽에 나타나 사신의 날처럼 힘껏 내려꽂혔는데 정작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목진은 곧 닥칠 파괴성 공격을 확인하더니 손가락을 굽혀 가볍게 아래로 그었다.
“낙!”
목진이 나지막하게 외치자 귀청을 찌르는 찢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눈부신 빛기둥이 높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는데 그 속에는 완전히 다른 전의 다섯 갈래가 들어있었다.
이는 5군의 전의를 한데 모은 결과물이었다.
목진은 강한 의지로 5군의 전의를 억지로 융합시켰다.
이런 융합은 완벽할 수 없지만, 그 힘은 다섯 가지 전의가 각자 힘을 발할 때보다는 훨씬 강했다.
쿵!
눈부신 빛기둥은 사람들의 주시하에 검은색 전의가 목진을 적중하기 직전에 떨어졌다.
검은색 전의와 눈부신 빛기둥이 부딪친 순간, 눈부신 빛과 함께 육안으로조차 확인 가능한 전의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풉!
이에 적중한 목진은 바로 피를 토하며 뒤로 멀리 튕겨 나갔는데 한시름 놓은 듯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쿵!
눈부신 빛기둥은 사정없이 검은색 전의를 없앤 뒤, 하늘에 현란한 흔적을 남기며 현무 전령한테 다가가 파멸의 기운이 깃든 충격파를 내뿜었다.
* * *
이와 동시에, 백호 전진에서 강력한 전의로 수비 중이던 첨대유리는 백호 전령의 공격이 잠시 주춤해진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드디어 피곤해진 건가? 사령전진은 비록 오랜 시간 존재했지만 더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전의의 힘도 무궁무진한 것이 아니었군!”
미소를 짓던 첨대유리는 갑자기 정색하더니 이상한 인법을 그렸는데 그 속에 오묘한 무언가가 잔뜩 깃들어있는 것 같았다.
“유리전인(琉璃戰印)!”
첨대유리가 나지막하게 외치자 뒤쪽에 온몸이 유리로 만든 것 같은 거대한 그림자도 한 손으로 그녀와 똑같은 인법을 그렸다.
위잉!
난폭한 전의가 미친 듯이 유리전령의 인법을 향해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천 장 정도 크기의 광인이 나타났는데 그 표면에 가득 새겨진 무늬는 다름 아닌 전문이었다.
광인은 전의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첨대유리가 선보인 수법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누군가 전의를 이 정도로 장악한 것을 처음 보았다.
이는 목진, 소천의 기술보다 훨씬 정교했고 그녀는 전의를 다스리는 진정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쿵!
정작 첨대유리는 사람들의 태도 따위를 전부 무시한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백호 전령을 노려보며 손을 휘둘렀다.
이에 유리 전령도 커다란 손을 휘익 저었는데 유리 광인이 공간을 가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백호 전령의 위쪽에 나타나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꽈르릉!
공격이 채 닿지도 않았는데 백호 전령의 주위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녀석은 털을 한껏 세운 채 미친 듯이 포효하였다. 백호 전령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퍽!
그런데 제아무리 울부짖어도 괴상한 광인은 멈출 생각 없이 있는 힘껏 녀석의 방대한 몸을 때렸다.
쿠쿵!
어둠의 공간은 순간 격렬하게 진동하였다.
* * *
전진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백호 전진과 현무 전진을 관찰했다. 다들 우세를 차지했던 두 전령이 한순간에 열세에 처하게 된 것에 적잖게 놀랐다.
“첨대유리와 목진은 참 대단하군. 강한 전의의 령을 저렇게까지 몰아세우다니.”
“첨대유리가 목진보다 낫지 않은가? 그녀는 전의를 다스리는 능력이 목진보다 강한 것으로 보이네.”
“아니네, 목진은 완전히 다른 다섯 갈래의 전의를 한데 뭉쳐놓지 않았는가? 첨대유리는 아마 이를 해내지 못할 걸세.”
“거참 흥미롭군. 과연 누가 먼저 전진을 뚫을지 궁금한데.”
“이건 저들의 마지막 수단인 것 같은데 실패하면 더는 가망이 없겠지?”
* * *
사람들은 전진 밖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들 목진과 첨대유리의 출중한 실력에 적잖게 놀랐다.
구유와 열산왕 등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마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목진의 상황을 살피다가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 유염은 목진의 대역전에 잔뜩 화가 났다. 목진과 첨대유리는 곧 전진을 뚫을 것 같은데 소천 쪽은 여전히 제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사망자가 생겨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제아무리 화가 나도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목진이 현무 전령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라고 저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때 현무 전진 내부의 눈부신 빛이 점차 줄어들었고 천지를 반으로 가를 것 같은 난폭한 전의가 조금씩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현무 전령은 여전히 전의의 바다 위에 끄떡없이 서 있었다.
이에 구유 등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는데 녀석의 몸에서 갑자기 커다란 균열이 일더니 그 사이로 웅장한 전의가 스며져 나왔다.
균열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온몸에 퍼졌고 처량한 포효와 함께 폭발하였다.
쿵!
현무 전령이 폭발하자 아래쪽 전의의 바다도 빠르게 사라졌고 어둠의 공간은 경천의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풉.
현무 전령이 완전히 사라지자 목진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미친 듯이 피를 토했고 주위를 감싼 영력 파동마저 조금 무질서해졌다.
잇따라 하늘을 맴돌던 만 장의 광권도 사라졌고 5군 전사들의 주위를 맴도는 전의도 전성기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전사들은 현무 전령을 쓰러뜨리기 위해 적잖은 대가를 치렀다.
다행히 목진은 신수나 다름없는 강력한 용봉체 덕분에 체내의 상처가 신속하게 치유되었다. 그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고개를 들어 현무 전령이 폭발한 곳을 바라봤는데 어둠의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점차 검은색으로 된 공간 대문을 이뤘고 그 속은 까마득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목진은 눈부신 빛을 발하는 눈으로 어둠의 대문을 바라보다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다.
어둠의 대문을 지나면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천진황의 계승을 위해 어렵게 여기까지 왔으니 그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만일을 대비해 5군보고 밖에서 지키라고 명했다. 만약 변고가 생기면 바로 외부의 왕들에게 연락해 강제로 전진을 뚫으라고 말하였다.
목진의 예상대로라면 그는 외부 세계가 보이지 않았지만 구유 등은 전진의 내부가 보일 것이다.
전진 외부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이내 감탄하며 외쳤다.
“목진이 정말 전진을 뚫다니, 저 대문은 분명 사망의 유적지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통로일 것이네!”
“그 속에 천진황의 계승이 있을 텐데 정녕 목진이 차지한단 말인가?”
“백호 전진에도 어둠의 대문이 나타났네! 첨대유리와 목진이 동시에 전진을 뚫었네!”
* * *
백호 전령도 폭발해 어둠의 대문을 만들었고 첨대유리는 바로 뛰어들어 목진과 동시에 어둠의 대문을 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두 전진에서 사라졌다.
어둠의 대문을 넘은 순간, 어둠이 빠르게 사라지며 주위 환경이 바뀌었다.
그곳은 암홍색을 띤 곳으로 대지와 하늘 모두 암홍색이었고 만신창이 된 대지에 균열이 잔뜩 일었다. 이곳에서 상당히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게 분명했다.
목진은 어둠의 대문을 넘자마자 잔뜩 경계했는데 어깨 쪽에서 자금색 빛을 발하며 신속하게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신수나 다름없는 육신 덕분에 목진은 큰 상처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린 목진은 주위를 살피며 나아가려다 갑자기 멈칫하였다. 그의 우측 공간에 파동이 일더니 가녀린 여인이 일그러진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각자 뒤로 물러났다.
“목진?”
여인은 목진이 이곳에 나타난 것에 깜짝 놀랐다.
“허허, 첨대 낭자였군.”
목진은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첨대유리를 바라봤다. 이에 첨대유리는 머쓱하게 웃더니 목진의 눈을 피하며 가까스로 마음을 감췄다.
그녀는 목진이 자신과 동시에 사령전진을 뚫고 이곳에 왔을 줄은 몰랐다.
‘목진이 전혀 어우러지지 않은 5군의 전의로 현무 전령과 싸워 이겼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냈단 말인가!’
첨대유리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허허, 내가 여기 나타난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첨대유리를 바라봤다.
신각과 대라천역을 포함해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이 첨대유리의 술수에 놀아난 상황에서 목진이 강제로 5군의 전의를 융합하지 않았다면 절대 전진을 뚫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첨대유리가 정말 혼자 전진을 뚫었다면 다들 그녀가 천진황의 계승을 얻어가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을 것이다.
“실력이 출중한 목왕이 현무 전진을 뚫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네.”
첨대유리는 뒤로 두 보 정도 물러나며 말했다.
유리군이 없었으면 첨대유리 역시 4급 지존경에 이른지 얼마 안 되는 실력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온전히 자기 실력으로 방의를 때려잡은 목진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첨대유리는 유리군이 없으면 목진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전의에 관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영력 수련마저 방의 같은 천재 못지않은 괴물급 강자 목진과는 전혀 달랐다.
“첨대 낭자, 참 큰 그림을 잘 그렸더군.”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첨대유리는 애써 웃으며 더는 감추지 않고 이실직고하였다.
“대수렵전에 절대적인 아군은 없네. 더구나 신각과 대라천역은 대수렵전이 아니라도 적인데 몰래 수를 써도 정상이 아닌가? 목왕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면 아마 처음부터 날 믿지 않았을 것이네. 안 그런가?”
목진은 의외로 솔직한 첨대유리에게 조금 놀랐다.
“그럼 내가 자넬 어찌하든 할 말이 없다는 뜻인가?”
“우린 처음부터 적이었네. 그러니 자네가 지금 당장 나를 죽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네.”
“그렇단 말이지…….”
첨대유리의 무덤덤한 말투에 목진은 이내 살기를 품었다. 그녀는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목진한테 굽신거리는 것 같아도 언젠가 다시 유리군을 장악하면 목진이 5군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그녀를 쓰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목왕은 나를 죽이는 것보다 천진황의 계승이 더 얻고 싶지 않은가? 내가 우연히 이곳 상황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으니 자네와 내가 손을 잡으면 계승을 얻을 기회가 늘어날 것이네.”
“협력이라니, 내가 뭘 믿고 자네와 협력한단 말인가? 오히려 내가 자넬 당장 죽이면 나와 천진황의 계승을 다툴 사람도 없고 더 좋지 않은가?”
첨대유리의 말에 목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사망의 유적지 내부는 상당히 괴이하네. 목왕 역시 천진황의 계승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우리가 사령전진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고 더는 위험한 상황이 없을 거란 보장은 없지 않나?”
첨대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것 같았다.
“난 목왕이 아주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네. 당신이 날 죽이고 싶었으면 난 이미 죽었겠지. 안 그런가?”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첨대유리의 말을 듣고는 흠칫 놀랐다. 그는 여인의 뛰어난 지혜와 차분한 성격에 놀랄 따름이었다. 첨대유리의 말처럼 목진은 확실히 이 괴이한 곳을 경계하고 있었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비록 전진을 뚫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지만 사망의 유적지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은 사령전진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첨대유리는 이곳에 대해 목진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실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니 도움이 될 거라 여기고 여태까지 그녀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