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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55화 (554/1,000)

555화. 신임

위잉!

목진과 첨대유리 수중의 석인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자 어둠의 구역 아래쪽에 서 있던 만 명 정도의 군사들은 천만년 동안 꼭 감았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쿵!

이와 동시에, 암홍색 구역은 격렬하게 진동하며 무서운 전의가 휘몰아쳤다.

예리한 창처럼 이곳 천지에 구멍을 가득 낼 것만 같은 전의는 목진이 상대했던 그 어떤 군대의 전의보다 강했다. 전성기 때의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적어도 지지존이어야 가능할 것이었다.

더구나 이런 군대에 천진황까지 더하면 지지존 따위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유위가 백만 명 있어도 절대 만 명 남짓한 조각상 군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양자의 차이는 엄청났다.

잇따라 석좌에 앉아있던 ‘천진황’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과 첨대유리를 노려봤고, 그는 당장 두 사람을 찢어 죽이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못돼먹은 녀석들!”

‘천진황’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체내에서 흑광을 내뿜으며 한 갈래 빛줄기가 되어 날아올랐는데 백 장도 못 벗어나고 휘청거렸다.

‘천진황’은 회색 쇠사슬로 손발이 묶여있었는데 전문이 가득 새겨진 쇠사슬은 조각상 군대들의 소생에 점차 밝은 빛을 발하며 그를 자리로 끌어들였고 석좌에 덮였던 석회가 떨어져 그 표면에 새겨진 복잡한 전문도 모습을 드러내며 밝아지기 시작했다.

“죽은 지 만 년도 넘은 녀석이 감히 날 가두려 들어!”

‘천진황’은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포효하며 웅장한 흑기를 내뿜었는데 진득한 먹물과도 같은 흑기가 닿는 곳마다 부식되어 찢어졌다.

진득한 흑기에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

‘천진황’의 전력을 다한 반항에 쇠사슬은 움직임을 멈췄고 흑기는 그 표면에 새겨진 전문을 부식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천진황’은 조금씩 어둠의 구역 밖으로 향하며 목진과 첨대유리를 노려봤는데 살기 가득한 눈빛만으로도 두 사람을 죽일 것만 같았다.

목진과 첨대유리는 녀석의 완강한 모습에 흠칫 놀랐다.

“목왕, 남김없이 영력을 끌어올리게. 녀석이 전진을 뚫고 이 구역을 장악하면 안 되네!”

첨대유리가 황급히 말을 내뱉자 목진은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록 첨대유리를 믿지는 않았지만 ‘천진황’이 전진을 뚫으면 그와 첨대유리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이에 목진이 손을 휘두르자 체내의 영력은 밀물처럼 쏟아져 모조리 석인에 들어갔고 첨대유리도 영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석인에 주입하였다.

위잉.

석인은 점차 격렬하게 떨렸고 발하는 빛도 밝아졌다.

크으으으으!

석인의 변화와 함께 조각상 군대의 우레와 같은 고함이 들렸는데 이로 인해 천지마저 파르르 떨렸다.

쿵! 쿵!

조각상 군대는 체내에서 점차 강력한 전의를 내뿜어 천지가 뒤흔들렸고 발사한 광선도 급격하게 팽창해 만 갈래의 굵직한 빛줄기가 되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다 빛줄기들이 위쪽의 어두운 구역에 있는 석좌에 스며들자 ‘천진황’의 손발을 묶은 쇠사슬이 더 단단해졌다.

휘리릭.

쇠사슬은 다시 ‘천진황’을 천천히 석좌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젠장!”

‘천진황’은 잔뜩 화가 난 듯 포효하더니 혈안이 되어 목진과 첨대유리를 쏘아봤다.

“내 오늘 너희를 반드시 찢어 죽일 것이야!”

퍽!

말을 마친 ‘천진황’의 두 눈에서 검은색 액체가 흘러내렸는데 생명이 깃든 것 같은 액체는 얼굴에서 꿈틀거리며 지극히 괴이한 검은색 부적을 이뤘다.

우는 얼굴처럼 생긴 괴이하고 사악한 부적은 ‘천진황’의 일그러진 표정과 더불어 상당히 무서워 보였다.

휘리릭!

사악한 부적의 출현에 ‘천진황’이 다시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자 목진과 첨대유리는 이를 악물고 영력을 끌어올렸다.

쿵! 쿵!

목진과 첨대유리는 놀라운 파동이 끊이지 않는 공간에서 전력을 다해 석인에 영력을 불어넣었고 ‘천진황’도 도망갈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애를 썼다.

만 년도 넘게 봉인되었던 그는 천진황의 육신의 힘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고 이대로 계속 봉인되어도 언젠가는 잿더미가 될 것이기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천진황’은 미친 듯이 영력을 끌어올려 아래쪽 군사들이 내뿜는 전의에 저항했다. 그리고 목진과 첨대유리를 쏘아보며 외쳤다.

“벌레만도 못한 녀석들, 너희의 영력으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나 보자!”

두 사람의 실력을 제대로 눈치챈 ‘천진황’은 조각상 군대를 소환하려면 엄청난 영력을 소모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목진과 첨대유리는 절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다 두 사람이 포기하면 자신을 석화해 전진을 친 석군의 힘도 줄어들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무도 더는 ‘천진황’의 앞에 막아나서지 못할 것이다.

이에 목진과 첨대유리도 흠칫 놀랐고, 두 사람은 ‘천진황’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너흰 나와 겨룰 필요가 전혀 없다. 날 풀어만 준다면 그 녀석의 계승을 주기로 약속하겠다. 대신 한 사람한테만 줄 것이니 잘 생각해 보아라.”

‘천진황’이 갑자기 씨익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목진은 첨대유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그따위 이간질에 넘어갈 것 같으냐? 너를 풀어주면 바로 우리 두 사람을 죽일 것이 뻔한데 말이야.”

“목왕의 말이 맞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첨대유리도 옆에서 거들었다.

이간질은커녕, 두 사람이 오히려 똘똘 뭉치자 ‘천진황’은 더는 말을 섞지 않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진득한 흑기로 전문이 가득 새겨진 쇠사슬을 부식하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이렇게 쌍방은 대치 상태에 진입했다.

“목왕,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네. 저 녀석을 석좌로 돌려보내야 전진을 소환해 사령을 죽이고 진정한 천진황을 만나 계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네.”

첨대유리가 이를 악물고 한 말에 목진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뾰족한 수라도 있는가?”

목진도 이대로는 상황이 상당히 불리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써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석인의 힘을 끌어올릴 방법이 떠올랐네. 누군가 녀석과 싸워 쇠사슬의 힘을 일부 부담하면 다른 사람이 뒤에서 석인으로 녀석을 석좌로 끌어들이는 것이네.”

첨대유리의 말에 목진은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누군가는 ‘천진황’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데 현재 그들의 실력으로는 승산이 거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천진황’과 싸우다 죽을 수도 있었다.

설마 첨대유리는 이걸 노리고 그런 방법을 제시한 걸까?

정작 첨대유리는 고개를 치켜들고 떳떳하게 목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네. 허나 내가 이상한 마음을 품었다고 생각하면 못 들은 것으로 하게.”

목진은 첨대유리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고는 결국 어두운 구역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넬 한번 믿어 보겠네.”

목진이 무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첨대유리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그녀도 목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자처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가 손만 쓰면 목진은 바로 사지로 몰릴 텐데도 그는 결국 그녀를 믿기로 했다.

첨대유리는 목진이 자신을 믿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거짓에서 비롯된 믿음과 달리, 이번에 목진은 첨대유리의 교활한 성격과 사건의 위험성을 알고도 그녀를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조심하게, 목왕.”

첨대유리는 목진의 훤칠한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입술을 깨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바로 어둠의 구역으로 향했다.

그때 ‘천진황’은 전문이 가득 새겨진 쇠사슬과 힘겨루기를 하며 전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목진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살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녀석,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천진황’이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들자 주위에 모였던 진득하기 그지없는 흑기가 사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빠르게 목진 주위를 휘감았다.

슉!

이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커다란 자금색 봉인을 소환해 도주했다.

진정한 봉황의 무늬로 이뤄진 봉황의 날개를 얻은 목진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는 5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보다 훨씬 빨랐다.

사기로 가득 찬 흑기는 끊임없이 목진의 뒤를 따랐는데 깃든 힘이 급속도로 소모되어 점차 희박해졌다.

어둠의 구역에서 ‘천진황’의 힘은 전진 때문에 대부분 억제되어 체내에서 비롯된 흑기로 만든 공격마저 점점 약해졌다.

그렇기에 목진이 전진의 힘을 빌려 ‘천진황’을 제압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는 겁쟁이었군!”

‘천진황’도 목진의 속도에 조금 놀란 듯하더니 씨익 웃으며 메마른 손으로 허공을 내리찍었다.

“네가 그렇게 도망가기 좋아한다면 어디 마음껏 가보거라!”

쿵!

순간, 그의 주위에서 맴돌던 흑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백 장 정도의 흑마뱀 다섯 마리를 만들었는데 온몸에 비늘을 덮어쓴 뱀들에게서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진동했고 지나는 곳마다 부식되어 일그러졌다.

형태를 갖춘 흑마뱀들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목진을 포위하자 상대방한테서 치명적인 파동을 감지한 목진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천진황’은 비록 전진에 만 년 정도 깔려있어 실력이 전성기 때의 절반도 안 되었지만 목진한테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그가 대부분의 힘을 조각상 군대를 상대하는 데 쏟지 않았다면 목진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녀석이 지금 진정한 힘을 발하기 시작했으니, 목진한테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슉!

목진이 등에 달린 날개를 떨쳐 속도를 한껏 끌어올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잔영만 남기며 사라졌다.

전진 범위에서만큼은 ‘천진황’의 힘이 계속 소모된다는 걸 알게 된 목진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상대방의 힘이 어느 정도 약해질 거라 여겼고 그때 가서 다시 녀석을 쓰러뜨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역시 목진의 생각은 정확했으나 ‘천진황’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존재가 아니었다. 흑마뱀의 속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에서 날아와 공격을 날렸다.

쿠쿵!

목진의 우측 공간이 부서지더니 그 속에서 흑기를 내뿜는 흑마뱀이 나타나 예리한 마창과도 같은 꼬리로 목진의 심장을 찌르려 했다.

목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체내에서 금광을 발하며 엄청난 파동을 내뿜는 용봉금갑을 소환했고 황금빛을 발하는 두 팔로 앞을 가려 황금 방패를 형성하였다.

탕!

흑마뱀의 꼬리와 황금 방패가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고 그 공간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문이 일었다.

슉!

목진은 바로 수백 장 정도 튕겨 나갔는데 두 팔을 감쌌던 금갑은 움푹 파였고 팔은 찌릿했다. 흑마뱀 한 마리의 공격이 이 정도라니, 목진은 깜짝 놀랐다.

다행히 목진은 튕겨 나가는 힘을 빌려 흑마뱀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숨을 고르기도 전에 뒤쪽 공간이 찢어지며 그 속에서 다른 흑마뱀이 기세등등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목진한테 아무리 봉황의 날개가 있어도 녀석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목진은 흑마뱀의 힘이 처음보다 훨씬 줄어든 것을 느꼈고 더는 도망갈 여력도 없었다.

쿵!

그가 바로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자 뒤쪽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머리에 황금빛 태양을 얹은 지존법신은 불상과 같았고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이는 바로 대일불멸신이었다.

“삼양의 힘!”

목진이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대일불멸신의 체내에서 태양 세 개가 떠올랐다가 폭발해 황금빛을 발산했는데 이는 액체처럼 대일불멸신의 표면을 감쌌다.

꽈르릉!

잇따라 대일불멸신이 커다란 손을 휘두르자 주위를 감쌌던 금광이 팔에서 황금색 결정체를 이루었고, 그 위력은 산 한 채를 부수고도 남았다.

퍽!

그러다 대일불멸신의 커다란 손은 결국 흑기를 내뿜는 흑마뱀과 부딪쳤는데 순간 공간이 떨리면서 난폭한 충격파가 형성되었다.

또한, 대일불멸신은 한쪽 팔을 잃은 채 멀리 튕겨 나갔고 흑마뱀도 산산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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