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6화. 진정한 천진황
목진은 대일불멸신 안에서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대일불멸신은 전력을 다했는데도 흑마뱀을 쓰러뜨리기 위해 한쪽 팔을 잃었고 목진마저 일정한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아직 공간을 가르며 그를 향하고 있는 흑마뱀이 네 마리나 더 있었다.
‘천진황’이 진정한 힘을 선보이자마자 목진을 곤경에 빠뜨린 것을 보니, 양자의 실력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꽈르릉.
그때 목진 주위의 공간에 파동이 일더니 흑마뱀 네 마리가 사방에서 나타나 그를 포위하였다.
“내가 싸울수록 힘이 약해지는 너희를 죽이지 못할까!”
목진은 위험한 상황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녀석들을 바라보더니 대일불멸신의 다른 한쪽 팔로 대서미마주를 잡고 체내의 황금빛 태양 세 개로 가장 눈부신 빛을 발했다.
이어 목진은 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쿵!
이에 대일불멸신은 살기 가득한 대서미마주를 잡고 흑마뱀 한 마리에게 향했다.
이렇게 참혹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목진이 흑마뱀과 공격을 주고받을 때마다 대일불멸신에 균열이 일었고 본체마저 다쳐 피를 토하곤 했지만 그만큼 흑마뱀도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대서미마주의 공격에 녀석의 주위를 휘감은 진득한 흑기는 계속해서 약해졌다.
쿵!
대서미마주의 회심의 일격에 흑마뱀은 드디어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는데 완전히 사라지기 전, 꼬리로 있는 힘껏 대일불멸신의 가슴팍을 때렸다.
퍽!
온몸에 균열이 난 대일불멸신은 녀석의 공격에 못 이겨 폭발했고 그 속에서 목진이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토하며 천 장 정도 튕겨 나가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그때 흑마뱀 다섯 마리가 전부 부서진 것을 발견한 ‘천진황’은 쇠사슬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멈춰서서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그는 일전의 공격으로 목진을 죽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4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애송이가 무사히 살아남을 줄 몰랐다.
이는 5급 지존마저 한순간에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흥미로운 친구일세!”
‘천진황’이 사악하게 웃으며 메마른 얼굴에 그려졌던 부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목진은 이를 보고 흠칫하며 순간 지극히 무섭고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쿵!
‘천진황’의 얼굴에 그려졌던 부적이 반으로 쩍 갈라지더니 그중 한쪽은 한 줄기 흑광이 되어 목진에게 향했다.
이에 목진은 사색이 되어 속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런데 첨대유리는 도대체 언제 나선단 말인가? 설마 정말 ‘천진황’의 손으로 목진을 죽이려는 걸까? 정말 그런 거라면 목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첨대유리를 이곳에서 죽이리라 다짐했다.
이와 동시에, 전진 밖에 서 있는 첨대유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가볍게 숨을 내쉬며 손을 깨물어 피를 석인에 떨군 뒤, 신속하게 결인하였다.
“폭발하라!”
쿵!
그녀의 주문과 함께 오래된 석인이 산산이 부서졌다.
쿵!
첨대유리의 손에서 오래된 석인이 폭발하며 눈부신 빛이 발하자 암홍색으로 물들었던 구역이 순간 대낮처럼 밝아졌다.
슉! 슉!
그때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래된 전문이 가득 새겨진 수많은 빛줄기가 솟구쳐 어둠의 구역으로 향했는데, 이 빛줄기들은 조각상 군사들의 머리에서 내뿜은 회색 빛줄기와 아울어졌다.
위잉!
그러다 빛줄기들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자 그 강렬한 빛에 어둠의 구역의 어둠이 사라졌고 난폭한 전의가 화산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잇따라 오래된 석좌가 격렬하게 떨리더니 표면에 새겨진 전문은 힘을 일깨운 듯 전부 밝아졌다.
휘리릭!
석좌에서 뻗은 네 개의 쇠사슬에 새겨진 전문에서도 눈부신 빛을 발하며 한껏 팽창하더니 엄청난 전의를 내뿜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바뀌자 목진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천진황’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안 돼!”
녀석이 처량하게 울부짖자 얼굴에 새겨진 요상한 검은색 부적이 진득한 흑기를 내뿜으며 쇠사슬의 전의를 떨쳐내려 했다.
퍽!
그런데 첨대유리가 전진을 제대로 일깨워 위력이 엄청났고 녀석이 목진을 죽이려고 자기 힘을 분산시켜 부적을 그린 터라 반항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쇠사슬은 녀석을 억지로 전문이 가득 새겨진 석좌로 끌어들였다.
크으으으!
‘천진황’은 치명적인 위협을 느끼기라도 한 듯 혈안이 된 채 미친 듯이 포효했다. 일단 석좌에 돌아가면 그는 전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더는 이상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제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아무런 소용도 없자 맥없이 끌어가다가 결국 오래된 석좌에 앉았다.
“너희를 죽여버릴 테다!”
‘천진황’이 강제로 석좌에 앉은 순간, 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포효하자 목진을 향하던 반쪽 부적에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녀석은 혼자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에 전력으로 철수하던 목진은 봉황의 날개를 신속하게 펼쳐 체내의 영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려 허공에 잔영만 남기고 도망갔다.
그는 ‘천진황’이 죽기 직전에 펼친 최후의 일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았다. 그 공격에 적중하면 제아무리 육신의 힘이 강한 목진이라도 치명적인 위험이 따를 것이다.
퍽! 퍽!
목진이 지나간 공간을 부식시키며 빠르게 날아오는 어두운 빛을 보더니 더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다시 용봉금갑을 소환하였다. 그러자 가슴팍에서 진정한 용의 무늬가 꿈틀거리며 웅장한 영력으로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령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하였다.
이는 최하수지만 지금으로서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미약해 보이기만 한 어두운 빛이 결국 목진의 코앞까지 닥쳤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처량한 비명이 들리더니 ‘천진황’을 구속한 석좌에 새겨진 전문이 꿈틀대며 녀석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주위를 휘감았던 진득한 흑기가 빠르게 사라졌고 얼굴에 있던 반쪽 부적마저 사라져갔다.
촘촘한 전문이 ‘천진황’의 몸을 모조리 감싸자 귀청을 찢는 듯한 비명도 그쳤으며 녀석의 얼굴에 있던 반쪽 부적은 난폭한 전문으로 인해 녹아내렸다.
이와 동시에, 목진에게 향했던 다른 반쪽 부적도 처량한 울음소리와 함께 폭발해 사라졌다.
전신무장을 했던 목진은 이러한 광경에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의 최후의 일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던 목진은 그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공격이 무산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목진은 모든 방어를 거둔 채 이마의 땀을 닦았고 첨대유리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일전의 대결로 그녀도 영력 소모가 엄청난 모양이었다.
“고맙네.”
목진은 미소를 지은 채 첨대유리한테 말을 건넸다. 첨대유리가 꼼수를 쓰지 않은 것에 호감을 느낀 목진은 말투가 전보다 상냥해졌다. 적어도 더는 처음처럼 그녀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나란 사람을 알면서 목숨을 맡긴 사람을 실망시킬 수야 없지 않겠나?”
첨대유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법 유쾌했네.”
목진은 첨대유리가 한 짓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였어도 그리했을 것이다. 그 당시 첨대유리한테는 다들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진과 한배를 탄 입장이라 첨대유리는 더는 전처럼 할 수 없었고, 목진의 믿음이 깨지면 첨대유리한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첨대유리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진과 함께 어둠의 구역에 놓인 석좌에서 백 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천진황 체내의 사령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자칫 잘못했다가 바로 그 손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목진과 첨대유리는 온몸이 전문으로 덮인 채 오래된 석좌에 앉아있는 천진황을 쳐다봤는데 1각 정도가 지나서야 전문이 점차 어두워지며 조금씩 사라졌고 두 사람은 다시 영력을 끌어올려 돌발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천진황의 몸을 휘감았던 전문이 완전히 사라지자 얼굴이 다시 나타났는데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했던 전과는 달리 아주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창백해 보이는 천진황의 얼굴에 이제 음산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석좌에 앉아있던 천진황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서서히 눈을 떴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두 눈에 빛이 모이더니 지혜로운 느낌을 들었다.
잇따라 그는 고개 숙여 손을 확인한 뒤, 어둠의 공간과 아래쪽에 서 있는 조각상 부대를 살피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 사령은 만 년 만에 드디어 죽은 것인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는 더는 전처럼 거슬리게 들리지 않았다.
천진황이 고개를 들어 조용히 서 있는 목진과 첨대유리를 보자 두 사람은 바짝 긴장했다.
“너희가 전진을 소환하여 사령을 죽이고 나를 일깨운 것이냐?”
그가 상냥하게 웃으며 바라보자 목진과 첨대유리는 서로 마주 보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은 혹시…….”
목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가 손을 들어 가볍게 휘둘렀는데 아래쪽에서 휘몰아쳤던 웅장한 전의가 바로 가라앉았다.
목진과 첨대유리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조각상 군대의 전의를 이토록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천진황 뿐이었다.
암홍색 구역에서 발한 눈부신 빛으로 인해 어둠이 사라졌고 오래된 석좌에 앉아있던 천진황이 대충 손을 휘두르자 조각상 부대가 내뿜던 무서운 전의도 모조리 사라졌다.
이 엄청난 수단에 목진과 첨대유리는 적잖게 놀랐으나 한편으로 시름이 놓였다. 이렇게 쉽게 조각상 군대의 전의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천진황 뿐이었다.
신분을 밝힌 천진황은 역외 사족과 싸웠을 때와 똑같았지만 지금의 대천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아래쪽에 서 있는 조각상 군대를 보고는 마음이 아픈 듯했다. 저들은 그의 체내에 깃든 사령을 제압하기 위해 석상으로 변하면서까지 자기 몸을 던진 이들이었다.
한편, 목진과 첨대유리는 감히 추억 속에 빠진 천진황을 강제로 현실로 끌어오지 못했다. 지금의 천진황은 일부 신백이 남아 있을 뿐이라 그가 화라도 나면 바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천진황은 바로 마음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목진과 첨대유리를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여기까지 들어와 사령을 죽이다니, 의외구나.”
“저는 선배님께서 남기신 전인을 우연히 얻어 그것으로 전진을 소환한 거예요. 그 전인이 아니었다면 우리 두 사람의 힘만으로 절대 사령의 상대가 아니었을 거예요.”
말을 마친 첨대유리가 손을 내밀었는데 그녀가 일전에 폭발시켰던 석인 파편이 수중에 놓여 있었다.
이에 천진황이 손을 들어 첨대유리 수중의 파편을 가져와 힐끗 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그해에 남긴 석진인이구나. 넌 나와 인연이 각별한 것 같구나.”
첨대유리는 순간 화색이 되어 목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
“선배님, 이 사람이 나서서 사령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절대 녀석을 죽이고 선배님을 소환하지 못했을 거예요.”
첨대유리가 자신을 위해 말을 해줄 줄 몰랐던 목진은 흠칫하더니 가볍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기적이지 않은 그녀의 마음에 더욱 호감이 갔다. 첨대유리는 소천보다 훨씬 나은 사람으로 가깝게 지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록 잠들어 있었지만 일전의 상황을 다 보았다. 네가 저 아이의 공적마저 낚아채려 했다면 정말 실망했을 것이다.”
천진황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첨대유리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말이 오히려 천진황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이에 첨대유리는 으쓱하며 괜히 목진을 쳐다봤는데 그 귀여운 행동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하긴, 수만 명의 전사를 지휘하는 통령이란 신분을 벗겨내면 첨대유리는 목진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소녀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