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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58화 (557/1,000)

558화. 구겁전제(九劫戰帝)

“구겁뢰옥관상법이라…….”

목진은 꼭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는데 뇌리에서 맴돌던 뇌명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오래된 문자는 낙인처럼 머리에 박혔다.

아직 구겁뢰옥관상법의 내용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난폭한 압박감이 뇌리에 퍼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획득한 수련법 역시 범상치 않았다.

“네가 이것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한편, 천진황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구겁뢰옥관상법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천진황의 반응으로 보아 구겁뢰옥관상법의 출처 역시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구겁뢰옥관상법은 원고 때의 구겁전제께서 남기신 물건이란다.”

천진황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목진은 그의 목소리에서 특수한 파동을 느꼈다. 이는 누군가에 대한 숭배의 마음이었다.

“구겁전제라…….”

목진은 패기 넘치는 이름에 잔뜩 놀랐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라 괜히 머쓱했다. 그저 구겁전제도 전진사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구겁전제는 원고 때, 손에 꼽히는 천만문 등급의 전진사란다.”

“천만문이요?”

목진은 전진사만의 용어를 전혀 몰라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넌 역시 전진사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천진황은 목진의 반응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제 전의의 령 사이에도 실력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잘 알겠지?”

“전문의 수량 아닐까요?”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진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목진은 5군의 전의의 령을 동시에 만들어낸 사람으로서 전문의 수가 많을수록 전의의 령이 더 강하다는 것쯤은 알았다.

이에 천진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원고 때, 전진사는 전문의 수량으로 등급을 가렸는데 보통은 만문 전진사, 십만문 전진사, 백만문 전진시와 천만문 전진사 등 네 개의 등급으로 나눈단다.”

목진은 괴상한 구분에 저도 모르게 피식거렸다. 그는 등급을 이렇게 구분하는 전진사들이 게으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내가 말한 전문의 수량은 전의의 령의 몸에 있는 전문의 수량의 총합이 아니라 전의를 전부 모아서 만든 전문이란다.”

목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는 목진이 5군의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만들어낸 전의의 령들은 각자 수천 개의 전문을 지녀 전부 더하면 만 개를 넘는데 그렇다고 목진이 만문 전진사의 등급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이 5군의 전의를 한데 모아 새로운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을 때, 녀석한테 만 개 이상의 전문이 있으면 비로소 진정한 만문 전진사라 할 수 있다.

“전문을 만들어내기가 뒤로 갈수록 어려워진다네.”

옆에 서 있던 첨대유리도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내가 장악한 유리군의 수는 3만 명이나 되지만 이들의 전의를 합쳐 이룬 전문은 9천 개밖에 안 되네. 만 개를 이루려면 아직은 멀었지.”

첨대유리는 갑자기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9천 개는 내가 의식의 수련법에 관하여 몰라서였네. 이제 스승님의 의식 수련법을 익히면 만문 전진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네.”

소녀의 말에 목진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그는 5천 명인 구유위의 전의로 전문을 4천 개 정도 만들 수 있는데 첨대유리는 3만 유리군으로 고작 9천 개밖에 못 만들다니, 역시 전문은 수량이 많을수록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목진은 자신이 유리군 같은 군대를 장악했다면 전문을 만 개 정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영진사인 관계로 의식이 첨대유리보다 강했다.

“전문의 수량은 군대의 수량과 실력, 그리고 자신의 의식의 강약에서 결정된단다.”

천진황은 아무것도 모르는 목진을 위해서 계속 설명했다.

“군대는 곧 전의를 대표하니 전진사한테는 필수란다. 또한, 전의는 전문을 만드는 근본이고 의식의 강약은 네가 전의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구별해주는 존재란다.”

이에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진사한테 군대의 전의는 신기나 다름없고 의식은 신기를 장악하는 힘으로 의식이 강할수록 신기가 수중에서 바라는 위력이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전진사는 만 개의 전문이 고비로 일단 전의의 령이 전문을 만 개 보유하면 그 위력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란다. 또한, 전의의 령이 전문을 만 개 보유했다는 것은 전의의 수련에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때가 되면 전의로 전인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의로 전인을 만들어낸다…….”

목진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천진황을 쳐다봤다.

“전인은 전의의 령보다 높은 단계로 영력 수련 중 신술과 같은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전의의 힘의 최대치를 발할 수 있는 존재라네. 대신, 전인을 만들어내려면 적어도 전문을 만 개는 형성해야 하지. 그때가 되면 전의의 힘은 훨씬 강해져 더 많은 공격 수단을 형성할 것이네.”

첨대유리가 한 말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의를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자신이 다뤘던 방법은 졸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의의 령이 전문 만 개를 보유하면 7급 지존 정도의 실력에 이르고 5만 개에 이르면 8급 지존을 상대할만한 실력을 갖출 것이며 십만 전문은 9급 지존의 실력과 맞먹는다.”

천진황의 말에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전의의 령이 십만 전문을 지니기만 하면 9급 지존을 상대할 수 있다니, 그럼 천만문 전진사는 얼마나 무서운 존재란 말인가?

구겁전제 정도면 설마 천지존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백만 전문은 지지존과 실력이 엇비슷하고 천만 전문을 가진 전의의 령은 천지존이라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단다. 그때가 되면 가벼운 손놀림만으로도 하위면 하나를 없앨 수 있지.”

천진황이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하위면 하나를 없앤다니…….”

목진은 전진의 중심을 깨우칠 때 봤던 장면이 생각났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구두사가 작은 움직임만으로 하위면에 숨어든 역외 사족 사람들을 모조리 없앤 장면 말이다.

목진은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전의의 령인 구두사의 몸 표면에 전문이 천만 개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았다.

“구겁전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니…….”

목진은 감탄하며 말했다. 이는 원고 때에도 최정예 강자로 대천세계의 거장임이 분명했다. 목진은 아쉽게도 천진황의 계승은 못 받은 대신 더 무서운 존재가 남긴 물건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너무 으쓱하지는 말거라. 네 수중의 구겁뢰옥관상법은 내용이 4 겁까지밖에 없어 완전하지 않단다. 그런데 네가 4겁까지만 수련해도 수십만 전문을 만들어낼 수 있고 너한테 상당히 어울리는 수련법이라면 백만문까지도 가능할 거란다.”

“수십만 전문이라…….”

천진황의 말에 목진은 조금 아쉬웠지만 실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5겁 수련법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얻을 수 있는 물건이고 4겁까지 수련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선배님.”

목진은 천진황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는 비록 천진황의 계승을 얻지는 못했지만 전진사로의 길을 열어주셨고 상당히 귀중한 의식 수련법까지 선사해준 고마운 분이었다.

“내가 완전히 죽기 전에 계승자를 찾은 것은 네 공이 크단다. 그러니 너의 인연을 찾아주는 것은 내가 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천진황은 손을 저으며 말하고는 피곤한 모습을 보이자 목진은 눈빛이 흐려진 천진황이 곧 이생을 마감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챘다.

“난 곧 사라지겠지만, 떠나기 전에 너희한테 선물을 하나 주고 싶구나.”

천진황이 애써 웃으며 손을 휘익 젓자 아래쪽에 서 있던 조각상 군대 쪽 대지가 격렬하게 떨리더니 군사들이 회색 빛줄기가 되어 날아올라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

그의 손에 돌로 만든 것 같은 바둑판이 나타났고 조각상 군사들은 정교한 석상이 되어 바둑판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전의신반은 역시 위험한 물건이군. 나의 수만 전사들이 고작 2천 명의 기군을 이뤘으니 말이야.”

천진황은 두 석반 위에 놓인 석상의 수를 헤아리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다가 이를 목진과 첨대유리한테 전해 주었다.

“전의신반에는 각각 천 명 정도의 석군이 있는데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이 물건을 사용하거라. 그 속에 깃든 전의가 너희를 도와 난관을 극복해줄 것이다. 그런데 이 물건은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고 일단 사용하면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것이다.”

목진과 첨대유리는 조심스럽게 오래된 석반을 건네받고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에 천진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서히 석좌에 몸을 맡겼고 눈은 점차 빛을 잃어갔다.

그러다 안중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천진황의 몸은 점차 석화되어 결국 석좌에 조용히 앉아있는 석상으로 변하였다.

목진과 첨대유리는 고개를 들어 석상이 된 천진황을 보고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에게 전진사의 대문을 열어준 선배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천진황의 신백이 완전히 사라지자 외부에서 은은한 천광이 내리쬐어 암홍색 공간을 밝혔다.

첨대유리는 촉촉해진 눈으로 석상이 된 천진황을 보더니 아쉬운 듯 한숨을 쉬고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이만 갑시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록 천진황의 계승을 받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구겁전제의 의식 수련법을 얻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는 드디어 진정한 전진사가 될 방법을 찾았다.

사망의 유적지는 역시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첨대유리는 떠날 채비를 했는데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서 미간을 찌푸리며 돌골뱅이에 귀를 기울였다.

“왜 그러는가?”

목진은 순간 어두워진 소녀의 안색을 발견하고 물었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 사이, 사망의 유적지 중 스승님이 남긴 대군도 점차 사라져 나머지 세력들은 지금 운락 원기를 취하느라 바쁘다고 하네. 그리고 신각과 천현전은 함께 대라천역을 공격하고 있다는군.”

“뭐?”

첨대유리의 말에 목진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살기를 품었다. 참 야비한 녀석들이었다. 전진에 들어온 5군은 여전히 목진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대라천역 측은 열세일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구유, 열산왕 등이 있어도 신각과 천현전 등 양대 정예 세력의 협동 공격을 막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첨대 낭자, 우리가 여기서는 협력 관계였지만 일단 나가면 적이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탓은 하지 말게.”

목진이 살기를 품은 채 첨대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첨대유리가 일단 유리군을 장악하면 목진보다 실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목진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목진은 첨대유리와 싸우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그때 첨대유리는 목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난 신각에 아무런 감정도 없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었으면 절대 저들의 졸개가 되지 않았을 것이네.”

목진은 흠칫하며 첨대유리를 쳐다봤다. 그는 소녀가 신각의 편이 아니란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신각의 보통 세력 중 하나였는데 내가 전의 천재란 일이 알려지자 신각에서 나를 회유하려 들었네. 그런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는데 보름 뒤, 신비한 세력이 찾아와 가족들을 죽였고 때마침 신각 사람들이 나타나 나를 구했네.”

첨대유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는데 때마침 신각 사람들이 나타났단 말을 할 때, 목소리에 한기가 가득했다.

“신비로운 세력은 설마 신각 사람이었나?”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허허, 저들은 완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네.”

첨대유리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뒤로 신각에서는 내 가족을 강제로 신각으로 끌고 가 보호한다는 핑계로 감시했다네. 하여 난 결국 신각의 군대를 도맡게 되었고 내 여동생은 그날의 재앙으로 중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되었지. 오직 신각의 구천속혼초가 여동생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저들은 그 물건을 나한테 주지 않더군. 이는 나의 여동생을 이용하여 날 평생 구속하려는 속셈이 아니고 뭔가?”

말을 마친 첨대유리가 주먹을 꽉 쥐자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청순한 얼굴에 한이 가득 맺혀 있는 것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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