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살육의 신의 귀환
목진은 첨대유리의 안타까운 과거에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신각에서 제법 지위가 있어 보였지만 신각의 절대적인 신임은 받지 못한 듯했다.
“미안하네.”
목진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첨대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신 내가 진정한 전진사가 되면 더는 나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네. 신각이 별로이긴 하지만 신각이 필요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네. 진정한 전진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원이 가장 중요한지라 방대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신각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그렇게 나쁜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네. 그러다 기회가 되면 내가 직접 나서서 신각을 없앨 것이네.”
첨대유리의 한기 가득한 말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역시 여인은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신각은 아마 방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키운 여인이 자신들의 세력을 없앨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를 것이다.
“여기서 나가면 조심하게.”
“난 자네와 싸울 생각이 없네. 내가 유리군을 장악해도 자네를 쓰러뜨리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난 절대 멍청한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네.”
첨대유리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하였다. 그런데 방의가 과연 신각에 큰 보탬이 되는 첨대유리를 가만히 놔둘까?
“내가 무사하면 저들은 분명 나를 앞세울 텐데 만약 내가 다쳐서 더는 군사들의 전의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첨대유리는 여우처럼 씨익 웃더니 갑자기 자기 가슴팍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풉!
첨대유리는 피를 토하더니 안색이 창백해졌고 목진이 황급히 나서려 하자 괜찮다며 사양했다.
“괜찮네. 연기를 하려면 더 그럴싸하게 해야지 않겠나?”
첨대유리는 피식 웃더니 머리를 흐트러뜨렸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초라해 보였다.
“내가 먼저 나가겠네. 그리고 신각 사람들한테 자네 손에 이렇게 다친 것이라고 말할 것이네. 유리군이 없는 난 자네의 상대가 아니니 다들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야.”
목진은 멍하니 첨대유리를 바라보다가 숨을 고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이 은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갚을 것이네.”
첨대유리는 목진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가 참전한다면 목진을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구유 등이 양대 정예 세력을 상대하는 데 큰 방해가 될 것이다. 그리되면 대라천역이 전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네. 그런데 내가 나서지 않아도 여기 모인 대라천역 사람들만으로 신각과 천현전을 상대하긴 어려울 것이니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란 것은 명심하게.”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기를 품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방의 등만으로 대라천역을 삼키는 건 불가능하네.”
이에 첨대유리는 피식 웃더니 손을 휘익 저으며 말했다.
“그럼 이만 떠납시다.”
말을 마친 첨대유리는 먼저 떠났고 목진은 잠시 기다렸다가 속도를 한껏 끌어올려 살벌하게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신속하게 어둠의 공간 입구에 달려가 한껏 일그러진 공간 통로를 통과했다.
어둠의 공간은 다시 조용해졌다. 두 사람 뒤로 다시 이곳을 찾아올 사람은 없을 거라 시간이 흐르면 이곳의 모든 것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 * *
슉!
첨대유리와 목진은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 돌아갔는데 순간 난폭한 전의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령전진 속에 있었는데 현재, 사령전진은 부서지기 직전이었고 전의의 령들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목진은 나오자마자 현무전에 갇힌 5군과 마주쳤는데 목진이 없는 5군은 전의의 령을 만들어낼 수 없기에 곧 부서질 사령전진마저 뚫고 나가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두 전진은 텅 비어 있었다.
청룡전진과 주작전진에 들어갔던 소천과 세 통령은 이미 전진을 뚫고 나간 모양이었다.
“소천도 나갔군.”
목진은 눈앞의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으니, 곧 부서질 사령전진 밖에서 난폭한 영력이 폭발하였고 하늘과 땅은 혼잡한 전쟁 때문에 파르르 떨렸다.
목진은 밖에 포위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대라천역 사람들이었다. 이에 목진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때 첨대유리가 눈치를 주더니 황급히 도주하듯 유리군을 향해 질주하며 애원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목진, 절대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소녀의 목소리가 그 구역에 퍼지자 사람들은 바로 싸움을 멈추고 목진을 바라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목진이 무사히 나왔다!”
“신각의 첨대유리가 목진의 손에 다쳤네!”
* * *
목진은 정색하며 파손된 현무진 속 전진 밖을 애타게 쳐다보는 5군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목왕!”
군사들은 목진의 등장에 이내 화색이 되었다.
“전의를 끌어올려 나와 함께 나아가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쳤다.
* * *
꽈르릉!
어둠의 평원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의 앞길을 막아 나선 부후 대군은 천진황 체내의 사령이 사라져 점차 붕괴하였고 체내에 깃들었던 운락 원기가 스며져 나와 그곳에 퍼졌다.
그러자 사망의 유적지에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혈안이 되어 달려들었다. 이들이 사망의 유적지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에 깃든 운락 원기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사망의 유적지는 1급 유적지로 여기 있는 운락 원기로 운락 원단을 제련하면 수십만 알은 될 것인데 이는 지존밀장의 봉인을 뚫고도 남을 양이었다. 여기서 운락원단을 대량 확보하면 지존밀장을 뚫지 못해 애간장을 태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대라천역, 신각, 천현전 등 북계의 정예 세력마저도 탐 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후 대군이 방대한 운락 원기를 방출하자 3대 정예 세력은 동시에 나서 수집하느라 정신없었고 기타 세력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임시로 형성된 연합군은 대량의 운락 원기 앞에서 완전히 흩어졌다.
그러나 운락 원기의 양이 많다고 해도 3대 세력에서 미친 듯이 약탈하자 점점 바닥이 났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피 튀기는 쟁탈전을 벌였다.
한편, 3대 정예 세력은 기타 세력 수중의 운락 원기부터 빼앗았는데 그들이 물러나자 서로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3대 정예 세력이 드디어 힘겨루기를 시작하자 다들 흥미진진해졌는데 그중 두 세력이 결탁해 나머지 한 세력을 없애려 했다. 남은 세력은 바로 대라천역이었다.
그런데 대라천역 군사들은 전부 목진을 따라 전진에 들어갔고 남은 인력만으로는 절대 신각과 천현전의 상대가 안 되었다. 5군도 목진 없이는 전진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5군이 없어도 대라천역의 위엄만은 여전해 구유, 열산왕, 혈응왕 등 6급 지존들이 빠르게 전세를 장악하였다. 양대 정예 세력이 협력했다고 해도 6급 지존들을 없애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꽈르릉!
어둠의 평원 위쪽에서 휘몰아치는 난폭한 영력에 천지가 파르르 떨렸고 무서운 영력 충격파에 아래쪽 대지도 쩍 갈라졌다.
퍽! 퍽!
사람들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서로를 공격했는데 이로 인해 주위의 공간은 한껏 일그러졌다.
전세는 신각과 천현전에서 장악하고 있었고 대라천역 사람들은 이들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슉!
구유는 한기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보라색 화염이 들끓는 흑우 장검으로 천현전의 신장을 물리쳤다.
쿵!
그때 뒤에서 갑자기 놀라운 영력이 휘몰아치며 신각의 천악주가 나타나 철권을 휘둘렀는데 이는 하늘을 부술 듯한 기세로 구유에게 향했다.
이에 구유는 흠칫하더니 바로 결인해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뒤쪽에 커다란 구유명작을 만들어냈고 녀석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퍽!
난폭한 영력이 폭발해 공간마저 균열이 일었고 구유와 천악주는 뒤로 튕겨 나갔다. 그들은 각자 영력을 끌어올려 한껏 어두워진 표정을 한 채 멈춰 섰다.
“하하, 구유. 더는 발버둥 치지 말게. 대라천역은 신각과 천현전의 협동 공격을 이길 수가 없네. 대신 운락 원단을 전부 내주면 무사히 풀어주겠네.”
천악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구유를 노려봤다.
그때 구유의 공격에 맥없이 튕겨 나갔던 천현전의 신장도 달려와 그 뒤를 막았으니, 아무리 구유라도 6급 지존을 두 명이나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운락 원단을 빼앗을 담은 있고? 당신들이 대라천역을 없애려거든 이곳에 영원히 잠들 각오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구유의 말에 천악주와 천현전의 신장은 멈칫하였다. 신각과 천현전은 함께 대라천역을 토벌하고 있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녀석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지 않았다.
이는 신각과 천현전이 손을 잡은 원인이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하하, 구유왕의 말이 맞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 대가로 목숨 정도는 내놔야지!”
그때 신각과 천현전의 6급 지존 중 최강의 실력자에게 발목이 잡힌 열산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는데 그 속에 깃든 살기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흥, 다들 놀랄 것 없네. 우리 양대 세력이 힘을 합쳐도 대라천역을 없앨 수 없다면 객주한테는 뭐라 말할 건가?”
멀리 떨어져 이를 지켜보던 방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렇군. 천현전은 내 명을 따르라. 전력을 다해 대라천역을 공격한다. 저들은 절대 운락 원단 따위에 목숨을 걸 사람들이 아니다.”
천현전의 유염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에 신각과 천현전의 강자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목숨을 그 무엇보다 아끼긴 했지만 우세를 차지한 상황에서 대라천역을 없앨 기회를 이대로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라!”
신각과 천현전 사람들이 강력한 영력을 한껏 끌어올리자 순간, 영력 돌풍이 휘몰아쳤다.
구유, 열산왕 등은 이러한 광경에 심장이 철렁했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목진이 군사들과 함께 돌아올 때까지만 버티면 대라천역은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신각과 천현전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처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져 다들 화들짝 놀랐다.
“목진, 절대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갑자기 들리는 비명에 다들 흠칫하더니 파손된 전진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첨대유리가 휘청이며 모습을 드러냈고 기세등등했던 유리군도 기가 푹 죽었다.
“목진?”
반면, 구유 등은 첨대유리의 말에 이내 화색이 되었다. 역시 목진이 해냈다.
“녀석이 아직 죽지 않았다니!”
유염이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이를 갈며 한 말에 방의도 씩씩거리더니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첨대유리를 마중하러 나갔다.
“괜찮은가?”
“죽일 놈의 목진이 나와 계승을 다투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네.”
첨대유리가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계승은 빼앗긴 건가?”
방의가 황급히 물었다.
“각자 절반씩 얻었네.”
첨대유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신각에서의 지위가 떨어져 대량의 자원을 잃게 될 것이다.
“괜찮네. 내 반드시 녀석한테서 계승을 받아낼 것이네.”
방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더니 음침한 눈빛으로 파손된 전진을 바라봤다.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5군이 기세등등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그 위에 목진이 황금빛 봉황의 날개를 퍼덕이며 방의 등을 노려보다가 손을 휘익 저으며 외쳤다.
“5군은 내 명을 따르라. 공격하라!”
쿵!
무서울 정도로 웅장한 전의가 만 장 정도의 파도를 일자 방대한 전의의 령 다섯 마리가 무서운 전의의 위압감을 형성하며 목진의 뒤쪽에 나타났다.
살육의 신이 귀환한 것만 같은 목진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6급 지존인 천악주마저 흠칫하였다.
그는 목진이 전보다 훨씬 위험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