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5급 지존경 돌파
첨대유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쓰윽 훑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너무 성급할 필요는 없네. 이번 일은 잠시 묻어둡시다. 대수렵전의 관건은 대라천역을 토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이에 천악주 등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렵전의 관건은 세력의 최고층에 달렸다. 하여 신각 각주가 대수렵전에서 돌파를 이루면 실력이 다른 정예 세력의 주인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고 신각은 비로소 북계의 최강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생각에 천악주 등은 순간 화가 가라앉았다. 그때가 되면 대라천역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만 갑시다.”
다들 화가 가라앉자 첨대유리는 현천부 전사들을 찾아 헤매는 천현전 쪽을 힐끗 보더니 먼저 북쪽으로 향했고 신각 사람들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유염은 조용히 떠나간 신각 사람들을 보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고, 다시 목진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살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목진, 네가 신각의 미움을 제대로 샀으니 대라천역과 신각의 대전은 불가피해졌다. 우리 천현전은 어부지리만 노리면 되겠구나!”
“대라천역은 이번 대수렵전에서 반드시 없어질 것이다!”
* * *
목진은 대라천역 사람들과 함께 사망의 유적지를 벗어난 지 꽤 됐지만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속도를 늦춰 전진하다가 외진 산맥을 찾아 숨어들었다.
목진 같은 강자는 사망의 유적지에서 여러 차례의 혈전을 치르고도 버틸 수 있지만 군사들은 이미 기진맥진하였다. 더구나 사망의 유적지에서 나와 미친 듯이 질주했기에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여 대군은 잠시 쉬기로 했고 목진, 구유, 열산왕 등 고위층은 사망의 유적지에서 얻은 전리품을 자세히 확인하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우리는 사망의 유적지에서 운락 원단을 8만 방울 얻었고 신각에서 받은 것까지 더하면 현재, 20만 방울 정도 가지고 있네.”
구유의 말에 열산왕 등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지지존 밀장의 봉인을 뚫기에 충분하니 우리는 임무를 미리 완성한 거나 마찬가지군.”
열산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건 다 목왕 덕분이네. 목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대량의 운락 원단은커녕,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것이네.”
영검왕이 목진을 바라보며 한 말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목진과 사이가 안 좋았던 혈응왕도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을 통해 혈응왕 같은 노참들마저 진심으로 목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목진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서 쉽시다. 이번 기회에 사망의 유적지에서 얻은 물건을 정리하고 싶으니.”
목진은 왕들을 쓰윽 훑으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날 도와줬으면 하네.”
“뭘 하려고?”
구유는 뭔가 눈치를 챈 듯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사망의 유적지에서 뭘 얻은 거야?”
그 말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에 전진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열산왕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넋을 놓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대라천역에 드디어 전진사가 생긴단 말인가!
* * *
어둠이 깃든 운락 전장은 대낮보다 훨씬 떠들썩했다.
이곳저곳에서 공간을 가를 것 같은 파괴력이 강한 영력 돌풍이 불었는데 주위의 영력 파동을 감지할 수 있는 녀석은 주위의 영력을 모조리 흡수하였다.
운락 전장 속에 있는 세력들은 강한 영력 파동을 내면 영력 돌풍을 불러올까 봐 휴식을 취하곤 했다.
다른 세력도 아니고 영력 돌풍 때문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누구라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대수렵전은 계속되었다.
대수렵전이 시작된 지 어느새 한 달이나 되었지만 북계의 세력들이 얼마나 사라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대신 대수렵전이 끝나면 북계의 세력 판도에 큰 변화가 일 것이란 사실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 * *
어둠 속 산맥들은 바닥에 움츠리고 있는 맹수처럼 짙은 압박감을 주었는데 그곳에서 군사들이 조용히 앉아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리며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는 군사들은 대라천역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목진 등이 잠시 쉬어가는 장소로 일부 강자들이 주위의 산봉우리에서 매의 눈으로 주위를 살폈고 멀리서 순찰대도 돌았다. 하여 외진 산맥은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목진은 산맥의 깊숙한 동굴로 들어가 수련에 집중하기 위해 바위로 입구를 봉쇄했다. 이번 수련은 목진한테 상당히 중요했다.
그는 5급 지존경에 이르러야 할 뿐만 아니라 구겁뢰옥관상법의 수련도 성공시켜야만 했다.
목진은 현재 4급 지존경에 이른지도 꽤 되었고 운락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는 전쟁을 겪으면서 실력이 점차 늘어 어느새 4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지를 돌파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5급 지존에 이르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4급 지존경에 오랫동안 머물러있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다.
다른 때였으면 돌파할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운락 원단이 있어 감히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운락 원단은 운락 전장에만 있는 물건으로 지지존 밀장의 영진을 뚫는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운락 원단에는 이곳 원고의 전장에서 별세한 강자들의 영력 정화의 힘인 순수한 운락 원기가 깃들어 있었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영력의 정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이곳의 독특한 지리와 환경 때문에 일정량 남아있었다.
영력의 정화인 운락 원단은 지존급 강자들한테 유익한 물건으로 이를 제련해 흡수하면 영력 증진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이에 목진은 그 힘을 빌려 경지를 돌파하기로 했다.
보통 운락 원단을 수집하면 전부 세력의 윗선에 바쳐 지지존 밀장의 봉인을 뚫는 데 사용한다. 그렇기에 다들 좋은 것은 알지만 감히 수련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 등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구유, 열산왕 등은 20만 방울도 넘는 운락 원단을 임무의 수에 맞게 나눠 가진 뒤, 의논을 거쳐 남은 양은 각자 챙기기로 했다. 목진 역시 운락 원단을 이만 방울이나 받았고 구유, 열산왕 등은 만 알을 받았다.
이는 목진의 공이 커 그에게 더 많은 양의 운락 원단을 준 것이다.
목진이 아니었으면 다들 아직도 유적지를 찾아 헤매면서 운락 원단 만들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고 이렇게 빨리 임무를 완성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후우.
동굴 속 목진이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숙연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는 바로 수련을 시작하지 않고 영력을 돌리며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다 반나절이 지나 어둠이 가시자 목진은 눈을 떴는데 또렷한 눈동자에서 더는 피곤함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영력도 웅장하기 그지없는 것이 4급 지존경 정상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목진이 옥병을 꺼내 부수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 속에서 운락 원단이 흘러나와 안개가 자욱해졌다. 이는 운락 원기 때문이었다.
잇따라 목진이 안개를 들이마시자 뜨거운 암장이 체내에서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순수한 영력 정화로 암장이 흐르는 곳의 경맥은 굶주린 맹수가 사냥감을 본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는데 운락 원단을 미친 듯이 원하는 느낌이 들었다.
목진 체내의 영력은 영력 정화를 남김없이 흡수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영력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다니.”
목진은 체내에 일어난 변화에 흠칫 놀랐다. 영력은 지존영액보다 운락 원단에 대한 반응이 훨씬 강했다.
“운락 원단 2만 방울의 효과는 20만의 지존영액보다 훨씬 좋을 것 같군.”
목진은 이내 감탄하였다. 그는 이제야 북계 세력들이 대수렵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이유를 알았다. 이곳에는 지지존 같은 엄청난 강자가 탐내는 영신액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력 증진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운락 원단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운락 원단 만 알은 지존영액 10만 방울의 위력과 비슷한데 일류 세력한테도 엄청난 양이었다.
목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공에 떠 있는 운락 원단들을 바라보며 결인하였다.
위잉!
순간, 목진의 손바닥에서 웅장한 영력이 샘솟았는데 그 속에서 보라색 화염이 들끓어 뜨거운 온도를 방출하였다. 이는 목진이 영력과 융합했던 불사화였다.
운락 원단에 깃든 영력 정화를 흡수하려면 녀석을 제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슉! 슉!
잇따라 목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운락 원단들이 줄을 서서 활활 타오르는 보라색 화염에 몸을 던졌다.
퍽!
운락 원단들은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고 보라색 화염의 제련을 거쳐 안개가 되어 스며져 나오더니 연기 기둥을 이뤄 목진의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갔다.
활활!
순수한 영력 정화가 체내에 스며든 순간, 목진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피부도 빨갛게 달아오르며 하얀색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체내에서 암장이 미친 듯이 샘솟아 지나는 곳마다 경맥에 경련이 일어 너무나 괴로웠다. 그러나 체내의 경맥과 피, 살들은 살아 숨 쉬듯 탐욕스럽게 영력 정화를 흡수하였고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목진은 운락 원단을 2만 방울이나 지니고 있었지만 그건 그의 전부로 이번에 경지 돌파에 실패하면 다음번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대수렵전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는 지금, 4급 지존의 실력만으로는 부족했고,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돌파에 성공해야만 했다!
위잉!
널찍한 동굴에 가득 찬 안개는 파르르 떨며 미세한 울림을 형성했다. 지금 동굴에는 지극히 순수한 영력 정화가 깃든 안개가 퍼져 있었는데 이는 1급 지존이 천지의 영력을 한 달 동안 모아도 절대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그때 동굴 깊숙한 곳에서 소용돌이가 나타나자 짙은 안개는 갑자기 파동을 일으키다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한편, 목진은 소용돌이의 저편에서 끄떡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코로 안개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는 5급 지존경에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안개를 흡수한 목진의 피부는 점차 뜨거워져 빨갛게 그을렸고 계속해서 땀을 쏟았는데 땀은 뜨거운 피부에 닿자마자 바로 증발했다.
운락 원단에 깃든 영력 정화는 그리 쉽게 제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목진은 어느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운락 원단에 깃든 영력은 너무 순수해 흡수하려면 자기 영력으로 희석해야만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대로 영력을 제련한다면 운락 원단 2만 방울을 전부 흡수하는 데 두 달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목진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곳은 구유궁처럼 안전한 곳이 아닌 위험천만한 운락 전장이었다. 두 달 사이에 변고라도 생기면 목진의 수련에 큰 영향을 줄 것이고 만약 목진이 실패한다면 앞으로의 수련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이에 반드시 수련 시간을 단축해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 단축이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영력을 불사화에 융합해 운락 원단의 제련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빠르다 해도 말이다. 운락 원단에 깃든 영력 정화를 제련하는 것은 역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제련에는 화염의 힘이 최고의 선택으로 제련 속도를 끌어올리고 싶으면 불사화보다 더 난폭한 힘을 찾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명심마뢰도 제련의 작용을 하긴 하지만 영력 제련이 불사화보다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