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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68화 (567/1,000)

568화. 왕들의 회합

“이틀 전, 우리는 유명궁 사람들과 만나 싸웠네.”

홍어는 한껏 정색한 채 말했고 목진은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유명궁은 최근 들어 유난히 활발하게 움직였고 목진한테도 상당한 관심을 보여 목진 또한 이들이 궁금해졌다.

“우리 요문에도 전의 천재가 한 사람 있는데 이틀 전의 대결에서 유명궁 임명한테 진 뒤로…….”

홍어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어갔다.

“임명과 대결한 뒤로 요문의 전의 천재는 혼절 상태에 빠져 있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변화가 없어.”

임명은 바로 유명궁의 전의 천재였다.

“너도 전의 천재고 사망의 유적지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는데 그럼 이제 전진사가 됐겠지? 그럼 너 정도면 요문의 전의 천재를 혼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홍어는 상당히 간절해 보였다.

“대수렵전은 위험천만한 곳인데 내가 요문의 전의 천재를 구했다가 앞으로 그쪽에서 대라천역을 치려고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홍어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적을 두는 것보다야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더구나 유명궁에서 너를 찾아다닌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유명궁에 복수할 우리와 같은 적을 두었으니 동맹이나 마찬가지 아니야?”

“유명궁의 임명은 너를 기필코 쓰러뜨리겠다고 말했는데 정작 넌 상대방의 수단도 전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우리 요문의 전의 천재를 구해서 정보를 알아가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전의 천재 따위는 더는 네 상대가 아니지 않나?”

홍어는 정말 영리했다. 이는 목진의 속을 꿰뚫어 본 듯한 발언이었고, 요문과 대라천역에 나쁠 것 하나 없는 제안이었다.

목진은 대수렵전에서 절대적인 협력 관계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요문과 가까워지는 것이 대라천역에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그 사람을 데려오게.”

목진은 홀로 요문 진영에 들어갈 만큼 멍청하지 않았고 홍어도 이를 잘 알고 있어 바로 하명하였다. 군사들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두 눈을 꼭 감고 누워있는 사내를 들고 왔다.

목진은 안색이 창백한 사내를 살피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건가? 체내의 영력은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잇따라 구유, 열산왕도 다가와 물었다.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상대방의 미간을 가볍게 찍었는데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목진, 어때?”

홍어가 황급히 묻자 목진은 서서히 손을 거두고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답했다.

“의식을 잃었네. 이제 더는 전의를 장악할 수 없을 것이네.”

목진도 그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는 유명궁의 임명이 사람의 의식을 빼앗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토록 괴이한 수법은 도대체 어디서 얻었단 말인가?

요문의 전의 천재는 이제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

임명은 생각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분명했다.

“인제 더는 전의를 장악할 수 없을 것이네.”

목진의 말에 홍어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구유 등마저 흠칫 놀랐다.

“그럴 리가!”

홍어는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말했다. 요문의 전의 천재는 유명궁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뿐이고 체내의 영력은 여전한데 왜 전의를 장악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런데 목진은 홍어의 표정은 무시한 채 창백한 얼굴로 두 눈을 꼭 감고 누워있는 요문의 전의 천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요문의 전의 천재는 앞으로 더는 전의를 장악할 수 없을뿐더러 깨어나지도 못할 것이네. 그는 현재 식물인간 상태로 체내의 영력이 고갈되면 육신마저 서서히 사라질 것이네.”

이에 홍어 등은 너무 놀라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홍어는 목진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았다. 요문의 유일한 전의 천재는 유명궁의 임명의 손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임명의 수단은 제법 괴이하고 독하네. 이렇게 사람의 의식을 부수는 건 나도 처음 보는군.”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무언가가 요문의 전의 천재의 의식을 강제로 뽑아가 흡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괴이한 수법에 저도 모르게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대수렵전은 역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요문은 반드시 유명궁에 복수할 거야!”

홍어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는 유명궁의 악독한 수법에 너무 화가 났다. 요문에서 전의 천재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데 임명은 단번에 이를 낚아챘다.

“홍어, 혹시 유명궁에서 요즘 뭘 하고 다니는지 아는가?”

목진은 아직 임명을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 한 번은 싸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임명이 이끄는 유명궁은 보름 전부터 갑자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전에는 제법 조용했어.”

홍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임명은 보름 동안 유명궁 사람들을 거느리고 8개의 세력을 공략했는데 전부 전의에 관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통령이 있는 세력이었어. 녀석은 상대방을 모조리 쓰러뜨려 점점 악명이 쌓여갔지. 그래서인지 다들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아.”

“임명과 싸웠던 통령들은 상황이 어떻다던가?”

목진의 질문에 홍어는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더는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설마 그들도……”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임명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다른 통령들도 요문의 전의 천재와 똑같은 상태라면 임명이 타인의 의식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임명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다가 일전에 첨대유리를 만나서야 처음으로 실패의 쓴맛을 봤지. 그러나 그 대결은 무승부로 끝나 결국 완전히 패배했다고 말할 수도 없어.”

“보아하니 임명도 전진사가 된 것 같군.”

홍어의 말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천진황의 계승을 획득한 첨대유리와의 대결을 무승부로 끝냈다는 것은 녀석이 전진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홍어는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이는 요문에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 생각인가?”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미 운락 전장 내역에 들어왔으니 요문의 다른 세력과 회합해야지. 대라천역도 그러려는 거 아니야?”

홍어는 굳이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내역에 진입한 세력 중 이리 생각하지 않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야 다른 세력에서 토벌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두 세력 사이에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그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그때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요문에서는 유명궁을 어찌할 생각인가?”

“요문은 북계의 정예 세력으로서 반드시 유명궁에 복수할 거야. 요문 사람이 전부 모이는 날이 바로 유명궁을 찾아가는 날이 될 거야.”

홍어의 한기 어린 눈빛에서 임명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가 되면 유명궁 사람들도 똘똘 뭉쳤을 텐데 요문 못지않은 규모에 전진사인 임명까지 있으니 상대해봐야 이기긴 어려울 것이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홍어는 흠칫하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럼 어떡할 셈이야?”

“우리 함께 임명을 없애고 유명궁을 꺾읍시다.”

목진은 명쾌하게 답했다.

“임명은 분명 곧 너를 찾아올 텐데, 지금 그 말은 우리 요문과 함께 유명궁을 상대하자는 거야?”

홍어가 생긋 웃으며 물었다.

“임명이 아무리 대단해도 나를 겁먹게 할 만큼은 아니네.”

목진의 아무렇지 않은 말투에는 자신감이 듬뿍 담겨 있었다. 목진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홍어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괜히 목진한테 믿음이 갔다.

“유명궁은 실력을 제법 갖춰 우리만으로는 버겁지만 요문의 협조가 있으면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네. 이건 대라천역과 요문 모두에게 유리한 방법이야.”

“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윗선에 전달해줄게. 대신 결과가 어떨지는 나도 보장할 수 없어.”

홍어는 싸울 의향이 있는 것 같았지만 목진의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협력한다고 해도 요문은 유명궁만 상대할 뿐, 다른 정예 세력과의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을 거야.”

대라천역이 신각, 천현전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아는 홍어는 유명궁을 때려잡으려다 괜히 다른 두 정예 세력까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요문에서 신각과 천현전을 상대하는 것을 도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수렵전에는 이익에 따른 협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 우린 이만 떠날게. 내가 윗선에 알린 뒤, 그 결과를 알려줄게. 만약 싸우게 되면 너만 믿을게.”

구두 협상을 마친 홍어는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요문 군사들을 거느리고 신속하게 떠났다.

“요문과 손잡으려는 건가?”

요문 사람들이 떠나자 구유, 열산왕 등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비록 목진은 5급 지존경에 이른지 얼마 안 됐지만 열산왕마저 더는 그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에 다들 목진의 말에 귀 기울였다.

“협력 관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이 한 군데라도 적어지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정예 세력을 전부 적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않나?”

목진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요문 역시 유명궁과 원한 관계가 있는지라 일단 녀석들이 대라천역을 노린다고 하면 요문과 함께 녀석들을 때려잡을 의향은 있었다.

“우리도 이만 갑시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왕들과 회합해야 그나마 안전이 보장되네.”

목진의 말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문 같은 정예 세력마저 유명궁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렀으니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슉! 슉!

이렇게 목진은 대라천역 사람들과 함께 회합 장소로 향했다.

목진 등은 이틀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나아갔는데 마주친 수많은 세력 중 이들한테 감히 덤비려는 세력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목진 등은 드디어 속도를 줄였다. 이들 앞쪽에 커다란 산골짜기가 나타났는데 그 위쪽에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고 웅장한 영력이 천지를 휩쓸었다.

목진은 상대방을 쓰윽 훑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대라천역 사람들로 이곳이 바로 대라천역 왕들의 회합 장소였다.

“드디어 도착했군.”

뿔뿔이 흩어졌던 대라천역의 왕들은 사흘 만에 다시 모였는데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대라천역의 왕 중 가장 최약체였던 목진은 어느새 3위권에 드는 강자가 되었다!

목진은 석 달 동안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우우우우!

그런데 그때, 산골짜기 내부에서 급박한 울림이 들려와 목진, 구유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건 대라천역의 구원 신호였다!

우우우우!

거대한 산골짜기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명을 받고 신속하게 골짜기로 들어갔고 막 도착한 구유와 목진 등은 흠칫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열산왕, 일단 들어오게.”

그때 산골짜기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이는 다름 아닌 수라왕이었다.

“들어갑시다!”

목진, 구유왕, 열산왕 등이 군대를 외부에 신속하게 배치하고 바로 산골짜기로 향하자 밖에서 산골짜기를 지키던 사람들이 금세 길을 터줬다.

슉!

목진 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산골짜기의 깊숙한 곳에 도착했다. 그중 높이 솟아오른 석대에 사람이 여럿 서 있었는데 그 중심에 수라왕과 나머지 왕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고 왕들도 안색이 어두웠다. 이에 목진은 구유 등과 눈을 마주치더니 신속하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드디어 왔군.”

수라왕은 목진 등을 보더니 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수라왕, 무슨 일인가?”

열산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명망이 가장 높은 수라왕에게 물었다.

그때 수라왕이 옷깃을 휘날려 동경을 꺼냈다. 동경은 허공에 빛을 쏘더니 거울을 형성했고 그 속에서 난폭한 영력이 치솟으며 수많은 사람이 지나는 장면이 나타났다.

화면에는 두 세력이 싸우고 있었는데 한쪽은 한빙으로 만든 것 같은 갑옷을 입은 채 엄청난 한기를 내뿜어 주위 온도가 확 떨어졌고 눈꽃처럼 생긴 깃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빙하왕(冰河王)이군!”

열산왕 등은 눈꽃 표식을 보고 흠칫했다. 이는 대라천역의 빙하전(冰河殿)의 깃발로 대전 쌍방 중 한쪽은 빙하왕과 그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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