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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69화 (568/1,000)

569화. 달라진 태도

“그럼 빙하왕의 상대는…….”

목진은 상대편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먹구름이 자욱한 곳에 음산한 기운이 물씬 풍겼고 녀석들은 해골처럼 생긴 깃발을 휘둘렀다. 그들은 바로 유명궁 사람들이었다!

“유명궁이네!”

빙하왕이 유명궁을 상대하게 되었다니, 영검왕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다 먹구름이 자욱한 곳에서 검은색 도포를 입은 채 온몸에서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가 나타났는데 고개를 살짝 들어 빙하전 대군을 보더니 씨익 웃으며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쿵!

순간, 그의 뒤쪽에 있던 먹구름에서 무서운 전의가 휘몰아쳐 전문이 가득 새겨진 수천 장 크기의 검은색 해골을 만들었다.

크으으으!

잇따라 해골이 입을 쩍 벌려 아우성치자 검은색 음파가 미친 듯이 퍼져 대지가 갈라지고 주위 산맥이 와르르 무너졌다.

쿠쿵!

이에 빙하전 군대 중 전의에 관한 천부적 재능이 남다른 통령들이 나서 전의의 회오리를 쐈지만 양쪽의 차이는 너무 컸다.

검은색 음파가 지나가자 전의의 회오리는 바로 부서졌다.

풉!

빙하전의 통령들은 바로 중상을 입었고 뒤쪽에 서 있던 군사 중 일부와 함께 피를 토했다.

그러나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엄청난 기세로 공격을 개시했고 빙하전 전사들은 전의의 충격파에 심맥이 상해 하늘에서 맥없이 추락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빙하전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고 빙하 대군은 더는 전의를 모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그 속에서 누군가 나서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에게 전력을 다해 공격했는데 그 충격에 하늘마저 반으로 갈라졌다.

그 사람은 바로 빙하왕으로 참다못해 드디어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의 공격도 예상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가 나선 순간, 유명궁에서 네 사람이 함께 나서서 웅장한 영력으로 허공을 가르며 맞섰다.

풉.

빙하왕 못지않은 실력자 네 명이 동시에 공격하자 빙하왕은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고 몸에 혈흔이 잔뜩 생겼다.

네 사람은 빙하왕의 뒤쪽에 나타나 혼절한 그를 포획했고 이로 인해 사기가 떨어진 빙하전 대군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죽이거라. 모조리 없애야 한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유명궁 군사들은 벌레떼처럼 달려들어 빙하전 전사들을 도살했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차례 도살 끝에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빨갛게 물든 대지 위쪽에 서서 혼절한 빙하전 통령들한테 손가락을 튕겼는데 무언가 빠르게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통령들은 괴로운 듯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고 안색이 점차 창백해지더니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몸이 굳어진 통령들을 쓰레기 버리듯 버리고 고개를 들어 거울 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명궁은 사흘 뒤, 해골 산맥(骨骸山脈)에서 군웅회를 열 것이니 대라천역은 반드시 참석하길 바라네. 만약 참석하지 않으면 그날, 빙하왕의 육신을 사람들 앞에서 반으로 가를 것이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잠시 멈칫하더니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목진도 반드시 와야 할 것이네. 자네의 맛있는 의식을 먹을 생각에 무척 기분이 좋네.”

풉.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웃음소리와 함께 화면이 사라지자 수라왕은 동경을 산산조각냈고 다른 왕들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유명궁의 도발에 화가 났다!

목진과 구유 등도 안색이 어두워지긴 마찬가지였다. 유명궁은 공격 수법이 악독할 뿐만 아니라 대라천역을 망신 주려고 일부러 일을 꾸민 듯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바로 최근 들어 부쩍 유명해진 유명궁의 전진사, 임명이네.”

수라왕의 말에 다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임명이란 이름은 최근 들어 적잖게 들은 바였다.

왕들은 임명 본인은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군대를 거느린 전진사 임명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더구나 빙하전 대군이 얼마나 빨리 무너졌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전의의 힘을 확보한 임명은 6급 지존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한편, 목진은 녀석이 나서자마자 그 신분을 파악했는데 그가 만들어낸 검은색 해골에도 전문이 만 개를 넘은 것으로 보아 임명도 만문 전진사가 된 것이 분명했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수라왕이 왕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명궁에서 주최한 군웅회에 초대된 세력은 제법 많다고 들었네. 빙하왕을 사람들 앞에서 죽이기라도 한다면 대라천역의 체면을 깎는 일로 사기에 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네.”

“그럼 해골 산맥에 가서 빙하왕을 구합시다.”

영검왕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명궁에서 함정이라도 팠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설마 저들이 우리를 전부 쓰러뜨릴까?”

혈응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다 빙하왕이 죽어 대라천역이 체면을 잃으면 역주님께서도 엄청 화를 내실 것이네.”

* * *

수라왕은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열산왕을 바라봤다. 대라천역에서 수라왕 다음으로 열산왕의 명망이 가장 높아 그의 의견이 궁금했다.

“열산왕은 어찌 생각하는가?”

그런데 열산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자연스레 목진을 바라보았다.

“목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라왕과 대라천역의 기타 고층은 열산왕의 반응에 흠칫하였다. 목진은 비록 대수렵전을 하기 전에 봉왕제를 통해 대라천역의 가장 젊은 왕이 되었지만 겨우 왕이 될 자격을 얻었고 실력으로 따지면 꼴찌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열산왕은 지금 공손하게 목진의 의견을 묻고 있으니 수라왕과 다른 대라천역 고층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 목왕을 무시하지 말게. 이제 그는 대라천역의 유일한 전진사로 거듭났네. 목왕은 무려 첨대유리를 다치게 한 사람이라네.”

열산왕은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히쭉 웃으며 말했다.

“정녕 그렇단 말인가?”

열산왕의 말에 수라왕마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정색하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전진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목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라왕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는 더 이상 목진이 경험이 부족하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난 빙하왕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목진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랐으나 묵묵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관계에 대해서 다들 잘 알 것이네. 빙하왕은 대라천역의 왕이라 유명궁이 사람들 앞에서 그를 죽이면 우리 세력한테는 큰 타격이 될 것이네. 휘하의 강자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세력을 떠받들 사람은 없으니 말이야. 하여 빙하왕을 죽여 대라천역의 사기를 꺾어 전투력에 영향을 주려는 것 같은데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꼼수에 넘어가는 것이네.”

목진의 말에 왕들은 안색이 더 어두워진 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들도 유명궁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빙하왕을 구하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야. 저들은 분명 엄청난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구유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쌍방이 최정예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유명궁의 실력만으로는 절대 대라천역을 무너뜨리지 못해. 저들은 절대 우리를 이기지 못할 거야.”

목진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말을 이어갔다.

“군웅회라 했으니 신각과 천현전 등 다른 세력도 불렀겠지. 마침 이 두 세력은 대라천역과 사이가 안 좋으니 유명궁과 손을 잡으면 우릴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몰라.”

목진의 말에 수라왕마저 흠칫 놀랐다. 신각, 천현전, 유명궁이 정말 협력한다면 대라천역의 강자들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구하러 간단 말인가?”

누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대라천역을 양난의 궁지에 빠뜨린 유명궁이 얄미웠다.

“유명궁에서 동맹을 맺듯, 우리도 마찬가지네.”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다들 어리둥절해 그를 쳐다봤다.

“일전에 유명궁은 요문의 전의 천재를 쓰러뜨려 쌍방의 원한이 상당하네. 하여 난 요문과 상의해 유명궁을 상대할 때, 잠시 협력하기로 하였네. 그 밖에 만성산은 신각과 원한이 있으니 신각에서 나서려 하면 만성산을 끌어들이면 될 것이네. 그리되면 우리 역시 저들이 협력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이미 요문과 말을 끝낸 건가?”

수라왕을 포함해 나머지 왕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쳐다봤다. 대수렵전에서 소속이 다르면 적이기 때문에 잠시나마 협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북계의 정예 세력인 요문과 손을 잡기로 했다니 다들 적잖게 놀랐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렵전에서 협력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네. 서로 득이 되는 바가 있으면 아무도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네. 신각, 천현전, 유명궁이 협력하게 되면 그 이유는 우리 대라천역을 없애려는 똑같은 목표가 있기 때문일 것이네.”

목진의 말에 수라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위를 쓰윽 훑으며 물었다.

“목왕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열산왕 등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목진이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 이상, 더는 유명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유명궁의 난폭함을 이대로 참고 넘어가면 대라천역은 앞으로 북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사흘 뒤, 해골 산맥에 갈 거라 이르겠네. 유명궁에서 과연 우리 대라천역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지!”

수라왕의 말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락 원단 수집 임무를 완성해 만다라와 3황의 명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유명궁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할 터. 그들은 북계에서 대라천역을 건드리고도 무사히 살아남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리라 다짐했다.

“목왕, 드디어 전진사가 된 건가?”

수라왕은 끓어오르는 분위기에 이내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허허, 목왕이 열산왕 등의 군대의 전의의 령을 만들어냈다고 들었네.”

수라왕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다른 왕들도 두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쳐다봤다. 그 속내가 훤하였다.

이에 목진은 소름이 끼쳤다. 아직 입 밖에 내지도 않은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니, 수라왕은 역시 소식이 빨랐다.

목진은 이를 숨길 생각도 없었기에 바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를 믿는다면 나한테 군대를 잠시 맡겨주게. 그럼 내가 전의의 령을 만들어줄 것이니. 대신 내가 만든 전의의 령에 폐단이 있다는 것만은 명심하게.”

목진이 대신 전의의 령을 만들어주면 그의 흔적이 남는다. 저들이 목진을 상대하려 하면 목진은 바로 마음을 움직여 저들의 전의를 망가뜨리면 그만이었다.

“목왕 마음대로 하게.”

수라왕 등은 이미 폐단을 아는 눈치였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절대 목진을 토벌할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정말 그리되면 대라천역 내부는 큰 균열이 일어날 것이고 그걸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사흘 뒤에 전의의 령이 있는 군대를 돌려주겠네.”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문 전진사의 실력으로 다른 왕들 휘하 군대의 전의의 령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일단 그의 손에서 벗어나면 위력이 크게 줄어드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다만, 가짜 전의의 령이라도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 대전이 코앞인 상황에서 군대의 전투력이 조금이라도 좋아져 나쁠 건 없었다. 다른 왕들도 휘하의 군대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퍼부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왕들은 이내 화색이 되어 고마움을 전했다. 그들은 그제야 열산왕을 비롯해 구유와 관계가 나빴던 혈응왕까지 목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이유를 알아챘다. 전진사란 신분만으로 목진은 존중받아 마땅했다.

더구나 목진은 자기가 전진사라고 우쭐거리지 않아 수라왕 등은 더 마음에 들었다. 목진은 나이는 어리지만 겸손했다. 그들은 목진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상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제 더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목진의 현재 모습은 만다라와 구유 덕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 끝에 스스로 이뤄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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