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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71화 (570/1,000)

571화. 군웅 대치

“대라천역에 적이 이렇게 많다니, 그럼 우리 천현전이 동참한다고 해도 결과에 큰 영향은 주지 않겠지? 어디 대라천역에서 오늘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지 봅시다.”

천현전 최전방에 서 있던 황금색 갑옷을 입은 튼실한 사내도 덩달아 입을 열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들은 유명궁, 신각, 천현전 등 3대 정예 세력이 함께 대라천역을 상대하려 할 줄 몰랐다!

3대 정예 세력의 협동 작전이라면 아무리 대라천역 같은 정예 세력이라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설마 대라천역이 대수렵전의 결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멸할 거란 말인가?

그 구역에 잠시 정적이 흘렀는데 4대 정예 세력의 대치로 인해 형성한 압박감에 다들 숨이 막혔다.

특히 유명궁의 유명 황자, 신각의 방의, 천현전의 유염, 소천 등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대라천역 무리의 앞쪽에 서 있는 목진을 사냥감 노려보듯 쳐다봤다. 그들은 오늘, 대라천역이 없어질 거라 확신했다.

3대 정예 세력의 협동 작전을 이길 세력은 없었다.

그런데 목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너를 잡으면 더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을 거야!”

네 사람은 피식거리며 생각했다. 그들은 목진이 괜히 센 척한다고 여겼다.

목진도 정적 속에서 방의 등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전부 무시하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점차 긴장을 풀었다. 그건 바로 요문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어머, 셋이서 하나를 공격하려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유명궁이 일전에 우리 요문의 전의 천재를 폐인으로 만든 일부터 일단 해결해야 할 텐데 말이야.”

요문의 아름다운 요선자가 생긋 웃으며 유명궁 쪽을 바라봤는데 목소리에 깃든 한기에 다들 소름이 쫙 끼쳤다.

요문에서 정적을 깨고 나서자 유명궁의 천사왕은 멈칫하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물었다.

“요문에서도 나서려는 건가?”

“다들 각자 원한을 해결하러 온 것 같은데 만성산도 동참하겠네.”

요문의 요선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만성산의 성장로가 먼저 나섰다.

“신각의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만성산도 호락호락하진 않네. 일전에 당신들이 만성산의 청장로를 공격해 별세한 일도 오늘 청산해야겠네.”

만성산까지 나서자 사람들은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설마 6대 세력이 오늘 이곳에서 싸우기라도 한다는 건가?

정말 싸움이 나면 북계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사람들은 어느새 흥미진진해졌다. 다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반면, 유명궁, 신각과 천현전의 우두머리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요문과 만성산이 갑자기 끼어들어 이들의 계획을 망쳐놓았다.

대라천역에서도 몰래 다른 정예 세력과 결탁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리되면 대라천역을 없애려던 이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었다.

대라천역, 만성산, 요문이 손을 잡으면 그 실력은 이들 못지않아 강제로 싸움을 일으키면 대가는 엄청날 것이다.

“허허, 거참 떠들썩하군. 그런데 우리 사신전은 오늘 일에 끼어들지 않겠네.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우리는 옆에서 구경만 하겠네.”

아직 뜻을 밝히지 않은 사신전의 만망 노인이 괴이하게 웃으며 군사들을 거느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천사왕 등은 사신전의 태도에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은 6대 정예 세력이 싸우고 난 뒤, 어부지리로 전장을 휩쓸 작정이었다.

이렇게 숨 막혔던 현장은 어느새 떠들썩해졌고 분위기도 조금 어색해졌다. 쌍방의 실력이 비슷하면 싸울 확률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정예 세력들이 싸우길 원했던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일류 세력들한테도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역시 대라천역이군…….”

천사왕은 한참 지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3대 세력의 협동 작전을 어색한 대치 상태로 만든 대라천역이 너무 얄밉게 느껴졌다

“별말씀을.”

수라왕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니 옆에 서 있는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만성산, 요문과 몰래 손을 잡은 목진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수라왕의 눈빛을 느낀 목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유명궁은 대라천역과의 원한 관계를 이용해 신각과 천현전을 영입했지만 이런 수는 그들만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6대 세력의 대결은 불가능해졌으나 아무도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그런데 그때, 천사왕 뒤에 서서 목진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임명이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씨익 웃더니 서서히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천사왕 뒤에서 걸어 나오는 임명을 쳐다봤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임명이 누군지 몰랐는데 지금,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다들 소름이 끼쳤다. 그는 한 달 사이에 각 세력의 정예 강자들 못지않게 유명해졌다.

녀석을 상대했던 전의 통령 중, 첨대유리를 제외하고 다들 전의를 장악할 수 없는 폐인이 되었다.

하여 운락 전장에 들어온 전의 천재들은 유명궁의 임명이 제일 두려웠다.

일단 전의에 관한 천부적 재능을 잃으면 세력에서 지위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데 그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이에 다들 임명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편, 임명은 천사왕 옆에 멈춰 서더니 수라왕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수라왕, 지금 상황에서 그리 말하는 것은 크게 유용하지 않아 보이네. 그 후과는 아무리 자네라도 감당하지 못할 걸세.”

이에 수라왕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을 노려봤다.

“오늘 일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네. 만성산과 요문을 끌어들이다니, 대라천역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졌군.”

임명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수라왕 뒤에 서 있는 목진을 쳐다보며 옷깃을 휘날렸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유명궁 대군에서 전의가 치솟아 전의의 쇠사슬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쓰러져있는 빙하왕을 가뒀다.

“그런데 빙하왕을 구하려면 그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이네!”

“싸우고자 한다면 대라천역은 끝까지 상대해 줄 것이네!”

수라왕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고 임명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내가 한 말도 있으니 더는 그것으로 위협하지 말게. 아무런 소용도 없네. 그런데 내가 혼절한 빙하왕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게다가 내가 빙하왕을 죽인 후에 대라천역에서 나서려 한다고 해도 유명궁은 전혀 두렵지 않네. 어디 누가 끝까지 웃을 수 있나 두고 보지.”

임명도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 쌍방이 싸우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걸 알았고 대라천역에서 빙하왕 한 사람 때문에 나서지는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임명의 말에 수라왕은 너무 화가 나 녀석을 당장 집어삼킬 것처럼 쳐다보며 7급 지존의 영력 위압감을 내뿜었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막아 나섰고 수라왕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목진이 대신 나섰다.

“저 사람이 대라천역의 새로운 왕, 목진인가? 5급 지존경의 실력이면 왕들 중 최약체가 아닌가?”

목진의 등장에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런 막말은 하지 말게. 일전에 사망의 유적지에서 목진이 다스린 대라천역 무리가 최종 승자가 된 것을 모르는가? 또한, 목진은 천현전의 전의 천재 소천의 한쪽 팔을 부러뜨렸고 명성이 자자한 첨대유리마저 다치게 했다네.”

“목진도 전진사라고 들었는데 임명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할지 궁금하군.”

* * *

천현전의 유염과 그 뒤에 서 있는 소천은 사람들의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특히, 소천은 목진을 찢어 죽일 것처럼 쏘아봤다.

반면, 첨대유리는 태연하게 앉아 목진을 관찰했다. 그녀는 목진한테서 지난번보다 더 위험한 파동을 읽었다.

한 달 사이, 목진도 실력이 부쩍 는 것이다.

“임명도 전진사의 계승을 받았는데 수련법이 상당히 괴이한 것 같군. 녀석의 의식도 점차 성장하는 것 같던데 목진이 그와 싸우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군.”

첨대유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그녀는 임명이 상대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천진황의 계승을 온전히 물려받지 않았다면 아마 일전의 대결에서 패배했을 것이었다.

더구나 임명은 전의 천재를 찾아다니며 의식을 수련해 첨대유리는 녀석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가 대라천역의 전의 천재 목진인가?”

미간을 찌푸린 채 목진을 노려보던 임명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물었다.

“뭘 원하는 건가? 대라천역은 대전이 두렵긴 하나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대가는 천사왕이나 자네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한 말에 임명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그런데 사망의 유적지에서 신각 군사들을 인질로 잡은 뒤, 운락 원단을 받고 풀어줬다고 들었네.”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임명은 대라천역이 운락 원단으로 빙하왕을 구하도록 하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목진, 너한테도 이런 날이 있구나.”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던 신각의 방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빙하왕은 6급 지존이니 운락 원단 20만 알로 데려가게.”

“네가 정녕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냐!”

임명이 히쭉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열산왕 등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수라왕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녀석을 노려봤다. 임명 뒤에 실력이 상당한 천사왕이 없었더라면 그는 이미 나서 녀석을 죽였을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임명의 말에 몰래 혀를 내둘렀다. 대라천역에서 운락 원단을 20만 알 내놓으면 빈털터리가 된다.

“유명궁은 사람을 내줄 생각은 아예 없고 대라천역을 욕보이게 할 생각뿐인 것 같군. 이리되면 유명궁은 신각의 환심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라천역까지 제압할 수 있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군.”

누군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요문과 만성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대라천역과 손을 잡은 이들은 신각, 유명궁의 공동의 적인 대라천역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아 나섰던 것이었다. 그러다 정말 대라천역이 없어지면 그다음은 자신들을 목표로 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 요문과 만성산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선에서는 대라천역을 도와줄 수 있었지만 그 선을 넘으면 묵언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어떤가? 운락 원단 20만 알을 주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떠나도 좋네. 하지만 그리하면 빙하왕은 바로 죽을 것이네.”

임명은 씨익 웃으며 목진을 쳐다봤다.

역시 유명궁은 대라천역에서 운락 원단을 20만 알이나 내주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대라천역이 이대로 떠나면 임명은 그 기회를 빌려 상대방의 명성을 제대로 짓밟아주리라 결심했다.

그때 목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임명을 힐끗 보더니 입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영력을 끌어올려 몰래 다른 왕들한테 말을 전했다.

해골 산맥에 들어선 이상, 더는 되돌릴 수 없는데 이대로 떠난다면 대라천역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고 유명궁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빙하왕이 인질로 잡혀 선수 칠 기회를 놓쳤으니 전세를 돌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여 열산왕, 구유 등은 목진의 말을 듣고는 점차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조금은 망설여졌다. 목진의 계획은 너무 위험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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