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화. 명화노인(冥火老人)
목진이 장풍을 쏘자 임명의 권풍은 바로 무산되었고 다시 손에 힘을 주자 녀석의 손목은 맥없이 꺾였다.
으악!
손목이 부러진 임명은 처량하게 울부짖었고 그제야 반항할 힘을 잃었다. 그 모습은 목진을 상대할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손목이 꺾인 임명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내 감탄했다. 전진사가 강하긴 하지만 군대의 전의에 대한 의지가 엄청나 일단 전의를 잃으면 별 볼 일 없었다.
전의는 특수한 만큼 제한이 많아 전진사는 영력 수련자처럼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혼자 대천세계를 넘나들기 힘들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힘은 역시 없었다.
“네가 감히!”
천사왕은 목진이 임명을 붙잡자 정신을 차리고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영력 위압감을 형성했다.
“자네 따위가 감히 대라천역 사람한테 손찌검을 하는 건가!”
이번엔 수라왕이 피식 웃으며 나서서 천사왕의 영력 위압감을 떨쳐냈다.
7급 지존들의 대결은 목진과 임명의 대결 때보다 훨씬 숨 막혔다.
이와 동시에, 대라천역과 유명궁 강자들도 영력을 끌어올린 채 싸울 준비를 했다.
“허허, 천사왕! 싸우고 싶으면 대라천역이 끝까지 상대해줄 것이네. 그런데 일단 약속한 운락 원단부터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천사왕을 비롯한 유명궁 강자들은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유명궁에 원한이 맺힌 세력들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허허, 우쭐거리더니 드디어 그 죗값을 치르는군.”
“유명궁에서 과연 운락 원단을 줄까? 운락 원단을 순순히 내주면 유명 궁주께서 절대 저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그렇다고 내주지 않으면 유명궁의 체면은 어떡한단 말인가?”
* * *
사람들의 말을 들은 천사왕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이길 거라 확신했던 임명이 대결에서 패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진, 너무하는 것 아닌가? 빙하왕을 풀어줄 테니 오늘의 대결은 유명궁에서 패배한 것으로 하지!”
“여기 온 사람들이 우리 내기를 명확히 들었는데 그리 말하면 안 되지 않나? 만약 내가 대결에서 패배했어도 그리 말할 건가?”
목진의 말에 천사왕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목진이 이번 일을 쉽게 넘기지 않을 거란 걸 알았지만 운락 원단 40만 알을 내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궁주께서 아시면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렇다고 북계 강자들 앞에서 약속을 어기면 유명궁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유명궁은 비로소 진퇴양난이 되었다.
한편, 신각, 천현전 등 정예 세력들은 궁지에 몰린 유명궁을 보고는 아찔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명궁에서 먼저 나서지 않았으면 자신들이 지금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유명궁은 과연 오늘 일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목진과 임명의 대결로 해골 산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산맥 사이사이에는 커다란 균열이 일었고 산맥들은 대부분 와르르 무너졌는데 이로써 두 사람의 대결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경천의 대결은 드디어 서막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이는 전부 두 사람이 전리품으로 내건 물건 때문이었다.
운락 원단 40만 알이라니, 아무리 정예 세력이라도 그 양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목진 등이 몇 개월 동안 고생해서 얻은 운락 원단을 전부 합쳐봐야 겨우 40만 알인데 이를 내주면 지지존의 밀장을 여는 건 불가능했고 오히려 바로 대라천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들도 그런데 유명궁이라고 다를까?
유명궁 사람들은 목진한테 잡힌 임명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오늘, 대라천역을 없애려고 덫을 만들었는데 그 덫에 자신들이 빠지고 말았다. 반면, 대라천역은 유명궁을 발판 삼아 곤경에서 빠져나왔다.
“이건 다 저 녀석 때문이네!”
유명궁 강자들은 이를 갈며 목진을 노려봤다. 오늘 일은 전부 목진 때문이었다. 목진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진퇴양난으로 고민에 빠진 것은 분명 대라천역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목진이 미워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유명궁에서 나서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해야 했다.
“유명궁은 북계의 정예 세력이니 약속을 어길 정도로 파렴치하지 않겠지?”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입 다물라!”
천사왕은 두 눈을 부릅뜨고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목진이 일부러 저리 말해 유명궁을 궁지에 몰려는 것을 눈치챘다.
“천사왕, 아무리 못해도 북계에서 유명한 강자인데 대결에서 졌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물건을 내주게. 결과를 번복하려 한다면 대라천역에서는 끝까지 상대할 것이네.”
수라왕의 말에 천사왕은 이를 악문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그 뒤에 서 있는 유명궁 강자들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사람들은 유명궁에서 오늘 일을 어찌 처리하는지 궁금해 전부 유명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숨 막힌 정적이 찾아왔고 한참 지나서야 천사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유명궁에서 운락 원단을 내놓으려는 건가 하여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천사왕이 입을 열려는 순간, 나이든 목소리가 뇌명처럼 울려 퍼져 천지마저 파르르 떨렸다.
잇따라 엄청난 위압감이 공간을 뚫고 이 구역을 휩쓸어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유명궁의 위쪽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연로한 사람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으로 회백색 머리에 눈은 혼탁해 보였지만 공간을 꿰뚫을 것 같은 빛을 발했고 해골 지팡이를 쥔 채 허공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했다.
“명화노인?”
천사왕 등 유명궁 강자들은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보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유명궁의 3대 장로 중 한 사람인 명화노인이라니!”
반면, 수라왕 등의 안색은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갑자기 명화노인이 나타날 줄 몰랐다.
“명화노인이라니…….”
목진도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유명궁 3대 노인은 대라천역 3황과 비슷한 존재인데 운락 전장의 깊숙한 곳에 있을 사람이 왜 여기 나타났단 말인가?
“조심하게. 명화노인은 8급 지존급 강자로 실력이 엄청나네.”
수라왕이 잔뜩 경계하며 목진 앞에 나섰다. 그는 명화노인이 갑자기 목진을 공격할까 봐 두려웠다.
“8급 지존이라…….”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 정도로 강한 실력은 지존경에서 최고 등급에 속하는지라 전의를 장악해도 절대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다른 세력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명화노인을 쳐다봤다.
“명화노인을 뵙습니다!”
유명궁 강자들은 하나같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흥, 무능한 녀석들, 운락 원단을 내주면 궁주한테는 뭐라 말할 것이냐?”
명화노인은 음산한 눈빛으로 천사왕 등을 쳐다봤는데 그 속에 깃든 위압감에 다들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번 일은…….”
천사왕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임명이 이길 거라 확신했는데 괴물 같은 목진 때문에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거라.”
명화노인의 말에 천사왕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일에서 발을 빼기 바빴던 참이었다.
잇따라 명화노인은 목진과 수라왕 등을 쏘아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라천역은 참 겁도 없지. 감히 유명궁의 물건을 탐내다니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먼저 오늘 일을 계획했는지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내기도 쌍방의 합의 끝에 한 건데 유명궁에서 이리 나오면 안 되죠. 유명궁에서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야 할 말은 없지만요.”
“감히 네가 유명궁의 체면을 운운하는 것이냐?”
수라왕의 말에 명화노인은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내기는 임명 저 멍청한 녀석이 저지른 일인데 4급 지존밖에 안 되는 녀석이 과연 우리 유명궁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러니 내기에서 진 임명보고 운락 원단을 내놓으라고 하거라.”
명화노인의 말에 대라천역 사람들은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노인네가 유명궁의 책임을 일개 통령한테 넘겼다.
“그럼 임명을 깨워 유명궁의 다른 고위층의 동의를 받고 일을 벌인 건지 물어볼까요?”
그때 목진이 쓰러진 임명을 집어 들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임명이 유명궁을 대표하지 못하면 여기 있는 다른 유명궁의 고위층은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이에 천사황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나와 말을 섞는 것이냐?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명화노인은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수라왕은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목진의 가슴팍을 때렸다.
목진이 멀리 튕겨 나가자 그가 서 있던 공간에서 손이 나타나 주먹을 꽉 쥐었는데 순간, 그곳의 공간이 와장창 깨졌다.
잇따라 명화노인이 나타나더니 공격에 실패한 것을 발견하고 다시 손가락을 뻗었는데 흑광이 공간을 가르며 목진에게 향했다.
목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 앞에 나타난 흑광에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임명을 앞세웠다.
퍽!
흑광이 지나가자 임명의 머리가 폭발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잇따라 목진은 몸에 묻은 피를 털고 어두워진 얼굴로 머리가 폭발한 시체를 바라봤다. 이제 임명은 절대 되살아날 수 없었다.
슉!
그때 구유, 열산왕 등이 달려와 목진의 앞을 막아섰고 잔뜩 경계하며 명화노인을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들 놀라긴 마찬가지였는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임명이 죽은 것을 보고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사실 명화노인은 목진이 아니라 그한테 잡힌 임명을 죽이려 했던 것이었다.
“대단하시군요, 명화노인.”
수라왕도 이를 발견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명화노인은 모든 책임을 임명한테 떠넘기려 한 것이다.
“멍청한 녀석, 전진사가 되었다고 그렇게 눈에 뵈는 게 없어서야…… 이번 대수렵전은 유명궁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만문 전진사 따위가 뭐가 대단하다고…….”
명화노인은 임명의 시체를 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임명도 유명궁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전진사지만 명화노인은 운락 원단 40만 알이 더 중요했다.
한편, 사람들은 명화노인의 사악함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 내기는 임명 때문에 한 것이니 운락 원단을 원하면 임명보고 내놓으라고 하거라.”
명화노인은 훨씬 차가워진 눈빛으로 목진, 수라왕 등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지금부터 유명궁 전진사를 죽인 대가를 물어야겠구나!”
말을 마친 명화노인은 손을 번쩍 들어 하명했다.
“일단 빙하왕부터 죽이거라!”
이에 천사왕이 살기 가득한 얼굴로 빙하왕한테 다가가 영력을 끌어올리자 목진, 수라왕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당장 죽이거라!”
“네!”
명화노인의 말에 천사왕이 씨익 웃으며 장풍을 쏘려 했는데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다.
“명화, 노인네가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후배를 괴롭히다니. 내가 있는 이상 유명궁에서는 절대 대라천역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이네.”
그때 천사왕의 뒤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노인 한 명이 나타나 주먹을 쥐었는데 무서운 영력 위압감이 휘몰아쳐 공기가 잠시 흐름을 멈춘 것 같았다. 천사왕은 꼼짝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목진, 구유, 수라왕 등 대라천역 고위층들은 노인을 바라보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천사왕 뒤쪽에 나타난 이는 대라천역 3황 중 한 사람인 천취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