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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82화 (581/1,000)

582화. 구유 출전 (1)

“흉수를 한 마리 쓰러뜨릴 때마다 봉인이 하나씩 사라지는 거군.”

천취황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런데 흉수들의 실력이 탄천마교와 비슷하다면 승산이 그리 큰 것은 아니라네.”

곁에 서 있던 영동황도 입을 열었다.

대라천역 왕들 중 수라왕만 7급 지존경에 이르렀고 일단 싸우면 이길 확률이 높지 않았다.

“탄천마교는 10대 흉수 중 상위 실력자라 전투력이 상당한 거란다. 그러니 전부 상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전부 이길 필요는 없단다. 열 개의 봉인 중 네 개만 없애면 나머지는 내가 강제로 없앨 수 있단다.”

만다라는 황금색 눈동자를 굴리며 왕들을 쓰윽 훑었다.

“그러니 네 차례의 승리만 거두면 청동 대문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왕들은 그제야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10번의 대결 중 네 번 정도 승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두 번째는 누가 나서겠느냐?”

이에 왕들이 서로 마주 보았는데 열산왕이 먼저 나섰다.

“두 번째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열산왕은 수라왕 다음으로 실력이 강한 사람으로 6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러 두 번째로 나설만했다.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열산왕은 바로 방대한 석대로 향했다.

쿠쿵!

잇따라 다른 기둥의 끝자락에 있던 조각상이 진동하더니 살기 가득한 녀석이 묵직하게 석대에 내려앉았는데 용음과 함께 용의 위압감을 형성했다.

목진 등은 녀석의 몸집이 탄천마교보다 더 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혈마룡(血魔龍), 10대 흉수의 우두머리…….”

만다라도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목진 등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다들 열산왕이 10대 흉수의 우두머리를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커다란 석대에 나타난 녀석이 살기를 거두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났는데 그 역시 인간의 몸에 영수의 머리를 가진 존재로 머리는 교룡이 아닌 용수였다.

혈마룡은 생전에 9급 지존경에 이른 실력자로 이미 죽었음에도 남은 실력만으로도 탄천마교를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녀석의 몸집은 탄천마교보다 컸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압감을 형성했다.

전대에 오른 열산왕은 혈마룡한테서 상당히 위험한 파동을 읽었는데 그 모습을 확인하고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자신의 실력을 잘 아는 열산왕은 탄천마교보다 실력이 조금 뒤처진 녀석이 나오면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이렇게 10대 흉수 중 최강자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 대결에 반전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열산왕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지만, 전대에 오른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노력해야 했다.

후우.

이에 열산왕은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알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열산왕은 바로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곧 7급 지존경에 이를 실력을 지녔지만 진정한 7급 지존인 수라왕과 비교하면 차이가 상당했다.

쿵!

잇따라 열산왕이 주먹을 쥐어 암홍색 도끼를 꺼냈는데 예리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것으로 보아 위력이 상당한 신기인 듯했다.

열산왕은 수라왕처럼 주먹으로 혈마룡 같은 강자를 상대할 수 없었다.

슉!

열산왕은 눈 깜짝할 사이에 혈마룡한테 다가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도끼를 휘둘렀다.

“열천신술(裂天神術), 열천참(裂天斬)!”

짙은 살기가 깃든 고함과 함께 수백 장 정도 크기의 도끼의 빛이 상당히 난폭한 자태로 휘몰아쳤는데 빛이 닿은 곳 공간에 순식간에 균열이 일었다.

혈마룡의 실력을 잘 아는 열산왕은 전력을 다해 살수를 날렸다.

쿠쿵!

도끼의 빛은 하늘을 가르며 혈마룡에 닿았고, 목진 등은 손에 땀을 쥔 채 이를 지켜보았다.

그러다 휘몰아치던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자 다들 혈마룡이 서 있던 곳을 바라봤는데 녀석은 끄떡없이 서서 두 팔로 머리를 가린 채 열산왕의 맹렬한 공격을 막아냈다. 팔에 깊숙한 상처가 하나 났지만 이는 놀라운 속도로 치유되고 있었다.

혈마룡의 강력한 육신과 회복 속도는 정말로 엄청났다.

깜짝 놀란 열산왕과 달리, 전대 밖에서 관전하던 왕들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혈마룡은 너무 어려운 상대였다. 그 상대가 수라왕이었다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열산왕에겐 아직 무리였다.

“젠장!”

열산왕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이를 악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살기를 품고 도끼를 꽉 쥐었는데 체내의 영력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그는 전력을 다해 혈마룡을 상대하려 했다.

“열산왕, 그만 나오거라. 두 번째 대결은 포기하자꾸나.”

그런데 그때, 만다라의 말이 들려왔다. 열산왕은 흠칫하더니 수중의 도끼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전대에서 나왔다.

그가 전력을 다해 녀석을 상대한다고 해도 승산이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리하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열산왕이 전대에서 나오자 혈마룡은 빛을 발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다시 기둥의 끝자락에 있던 조각상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열산왕은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이에 만다라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열산왕의 말을 끊었다.

“이건 네 탓이 아니란다. 지지존의 밀장이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였으면 다른 정예 세력들도 여태껏 애를 쓰지 않았겠지. 상고 천궁의 네 번째 전주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존재란다.”

“허허, 한 번 패배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천취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세 번만 더 이기면 역주님께서는 강제로 영진을 뚫을 수 있으실 거다.”

“우리한테 나쁜 일만은 아니란다. 적어도 혈마룡이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지 않더냐?”

만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 규칙에 따르면 도전자든 상대든 각자 한 번씩밖에 출전할 수 없어 승패를 떠나 혈마룡은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왕들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라왕이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 중 혈마룡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목진도 몰래 한숨을 쉬었다. 만약 곁에 군대가 있었다면 전의의 힘을 빌려 혈마룡을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여기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실력뿐이었다.

“아직 여덟 차례나 더 도전할 수 있는데 누가 나설 것인가?”

만다라가 다시 묻자 왕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번엔 혈응왕이 나섰다.

“세 번째는 제가 해보겠습니다.”

다들 남은 여덟 차례의 도전이 쉽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라천역의 고위층으로서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대라천역에서 지지존 밀장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지 못해 네 번째 전주의 영신액이 다른 정예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면 이들한테는 엄청난 타격일 것이다.

슉!

혈응왕이 발을 힘껏 구르며 방대한 전대로 향했다.

쿠쿵.

잇따라 대전이 떨리더니 청동 조각상이 신속하게 부활해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전대에 내려앉았다.

“저 녀석은 상고 천궁의 10대 흉수 중 하나인 천룡웅(天龍熊)으로 6급 지존경에 이른 실력자이다. 힘이 상당히 세지.”

만다라는 혈응왕 앞쪽에 나타난 커다란 생명체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혈응왕은 과연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천취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고 만다라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천룡웅은 실력이 6급 지존밖에 안 되지만 혈응왕도 기껏해야 6급 지존 초기인지라 승산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만다라의 예상대로 처음엔 제법 치열하게 상대방과 공격을 주고받던 혈응왕은 어느새 열세에 처했다.

그러다 결국 빈틈을 보인 혈응왕은 천룡웅의 용장에 맞고 방대한 전대에서 튕겨 나갔다.

세 번째 대결도 혈응왕의 패배로 끝났다.

두 번의 패배로 대라천역 왕들은 화가 났지만 상고 천궁의 10대 흉수의 실력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어진 몇 차례의 대결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네 번째 대결은 영검왕과 10대 흉수 삼두마망(三頭魔蟒)의 대결이었으나 패배했고, 다섯 번째는 빙하왕과 유명령견(幽冥靈犬)이 겨뤘으나 이 역시 패배했다.

* * *

대라천역은 수라왕의 첫 번째 승리 이후, 연속 네 차례나 대결에서 실패했다.

오래된 대전, 전대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결과에 표정이 어두웠다. 그들은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만약 우리가 나머지 대결에서도 전부 패배하면 내가 나서서 강제로 영진을 뚫으면 된단다.”

만다라는 가볍게 한숨만 쉴 뿐, 왕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다라의 말에도 구유 등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만다라가 강제로 영진을 뚫으면 영력 소모가 상당할 거라 앞으로 다른 정예 세력의 최정예 강자를 만나면 큰일이었다.

하여 영신액을 발견하기 전까지 만다라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때 거대한 기둥의 끝자락에 있는 청동 조각상을 노려보던 목진이 주먹을 꽉 쥐며 나서려 했는데 옆에 서 있던 구유가 한발 앞섰다.

“역주님, 여섯 번째 대결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구유의 말에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인 것 같으면 바로 물러나거라. 나한테 다 방법이 있단다.”

이에 구유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바로 방대한 전대로 향했다.

여섯 번째 대결의 출전자는 구유였다.

구유가 방대한 전대에 들어가자 청동 조각상 하나가 부활해 살기를 가득 품은 채 내려앉았다. 목진 등은 바로 눈길을 돌렸다.

녀석의 온몸은 황금빛으로 번쩍였고 몸 역시 황금으로 빚는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머리는 포악한 사자의 머리를 했는데 역시나 황금색이었고 눈만 잔혹한 기운으로 가득 찬 빨간색이었다.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짙은 살기가 휘몰아쳤다.

“10대 흉수 중 하나인 황금마사(黃金魔獅)라…….”

만다라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녀석은 육신이 무척 강하고 실력은 전에 출전했던 흉수들보다 더 강하단다.”

이에 왕들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구유의 본체가 구유명작이니 혈맥이 황금마사보다 강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결에서는 밀리지 않을 거다.”

만다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유는 구유작 종족의 천재라 저토록 어린 나이에 구유명작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는 구유작 종족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고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불사조의 혈맥까지 일깨울 거란다.”

천취황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옆에 서 있던 혈응왕 등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불사조는 신수방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천세계의 엄청난 신수로 진화에 성공한 존재 중 유명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한편, 목진은 구유의 늘씬한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의 체내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영력을 느끼며 감탄했다. 목진과 구유가 대라천역에 왔을 때, 한 사람은 지존경에 이른지 얼마 안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진화를 마친지 얼마 안 되어 겨우 5급 지존경 강자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의 목진은 더없이 평범했고 구유도 왕들 중 가장 최약체였는데 어느새 목진은 목왕이 되었고 구유의 실력은 6급 지존경에 이르렀다.

목진과 구유를 비교하면 목진이 더 많은 걸 이뤄낸 것 같지만 신수의 수련은 인간과 달라 일단 혈맥의 힘을 일깨우면 실력은 미친 듯이 늘어난다.

구유 역시 지금까지 열심히 수련했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목진은 수라왕, 열산왕을 제외하고 지금의 구유를 이길 왕은 없을 거라 여겼다.

오늘 대결을 통해 대라천역에서의 구유의 지위는 크게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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