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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583화 (582/1,000)

583화. 구유 출전 (2)

전대에 서 있는 구유는 예리한 눈빛으로 황금빛을 발하는 존재를 쳐다봤다. 이미 네 차례의 대결에서 패배해 남은 다섯 차례 대결 중 세 차례는 이겨야 쉽게 영진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거두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유가 이번 대결에서 패배하면 대라천역은 영진을 뚫을 가능성이 확 줄어들 것이다.

하여 구유는 이번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때 그녀가 검을 꺼냈는데 장검에서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이는 불사화였다.

쿵!

이와 동시에, 황금마사도 시뻘건 눈을 굴리며 구유를 노려보더니 한발 앞서 공격을 개시했다.

황금마사는 순식간에 발을 굴러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구유 앞쪽에 나타나 황금으로 빚은 것 같은 주먹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녀석의 권풍에 공기가 모조리 폭발했고 그 엄청난 압력에 바닥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황금마사의 공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녀석의 공격에 구유도 이내 정색하더니 수중의 흑우 장검으로 앞쪽을 가렸는데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흑우 장검은 잔뜩 휘었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다.

치익.

구유가 정색하자 흑우 장검의 표면에서 활활 타오르던 보라색 화염이 갑자기 황금마사의 주먹으로 옮겨갔고 녀석이 발하던 금광은 점차 어두워졌다.

황금마사의 방어력은 강하지만 구유의 불사화도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다.

크으으으!

엄청난 고통을 느낀 황금마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먹에 힘을 실었고, 구유는 순식간에 멀리 튕겨 나갔다.

끼익!

그때 구유의 뒤쪽에서 웅장한 영력이 모이며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자 보라색 화염이 요동치는 검은색 깃털을 발사했다.

황금을 뚫고 바위를 부술 정도의 힘을 가진 흑우는 구유의 영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불사화까지 더해져 그 위력이 엄청났다. 제아무리 6급 지존이라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크으으으!

불사화를 보고 놀란 황금마사가 소리를 지르며 체내에서 눈부신 황금빛을 발하며 주위에 황금색 종을 만들어냈다.

온통 황금색을 띤 종은 황금마사의 호신술로 제법 튼튼해 보였다.

탕! 탕!

그때 보라색 화염이 깃든 흑우가 닿자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황금색 종에 파문이 일었는데 끝까지 부서지지는 않았다.

“녀석의 방어력은 역시 엄청나군. 그럼 구유왕은…….”

혈응왕 등은 이러한 광경에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구유의 공격은 황금마사의 방어벽을 뚫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영력만 소모할 뿐이라 황금마사한테 빈틈이라도 보이면 바로 승패가 갈릴 것이다.

그런데 그때 상황을 살피던 만다라는 흠칫 놀랐고 목진도 뭔가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보니 황금마사의 주위에 흑우가 가득 꽂혀 있었다.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흑우는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것 같았지만 전진사인 목진은 그 속에서 이상한 파동을 읽었다.

탕탕!

흑우의 공격은 드디어 사그라들었는데 마지막 한 개가 황금종에 닿자 휘청이다가 산산이 부서졌다.

황금종이 부서졌는데도 황금마사는 제자리에 서서 시뻘건 눈으로 구유를 노려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구유의 강력한 공격은 여기까지라 여기고 지금부터는 자기 차례라 말하는 듯했다.

크으으으!

녀석이 자기 가슴팍을 때리며 포효하자 눈부신 황금빛을 발했고 그의 영력은 상당히 난폭해졌다.

녀석이 공격을 개시하려던 그때, 정색하고 있던 구유도 씨익 웃었다.

활활!

구유가 인법을 그리자 황금마사 주위에 떨어졌던 흑우들에서 보라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며 보라색 화로가 되어 녀석을 가뒀다.

“불사염로(不死炎爐)!”

크으으으!

보라색 화로가 형태를 갖추자 황금마사는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자세히 보니 육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화로 내부는 엄청난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일었다.

전대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혈응왕 등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들의 자신이 보라색 화로에 갇혔다면 지존법신을 소환해도 큰 소용이 없었을 거라고 여겼다.

불사화의 위력은 상당했다.

크으으으!

황금마사가 미친 듯이 포효하며 마지막으로 필살기를 날리려 했는데 그럴 기회를 줄 구유가 아니었으니, 구유가 주먹을 꽉 쥐자 보라색 화로가 순식간에 작아지다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이와 동시에, 보라색 화염이 사방에 튕겨 전대 주위를 둘러싼 광막에 닿자 바로 그을리며 파문이 일었고 대전도 후끈거렸다.

이에 구유가 앞쪽을 바라보니 황금마사의 육신 대신 바닥에 황금색 액체가 놓여있었다.

치익.

황금색 액체는 결국 폭발해 황금색 광점이 되어 구유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황금색 광점은 바로 황금마사의 영력 정화였다.

조용히 서서 영력 정화를 흡수하던 구유는 반 시진 뒤에야 꼭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는데 그녀의 영력은 전보다 훨씬 웅장해졌다. 구유는 황금마사의 영력 정화로 큰 수확을 얻었다.

혈응왕 등은 구유가 너무 부러웠으나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은 그들 탓이었다. 어찌됐든 여섯 번째 대결은 대라천역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대라천역에서 두 번만 더 이기면 오래된 대전의 청동 대문을 넘어 지지존 밀장의 깊숙한 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나서지 않은 네 사람은 왕들 중 최약체였다.

이들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 * *

구유는 가녀린 몸을 이끌고 전대에서 내려왔는데 황금마사의 영력 정화를 흡수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이에 왕들은 그녀를 전보다 더 정중하게 대했다. 특히, 혈응왕은 구유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외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일전의 대결로 구유의 실력이 자신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게 된 왕들은 이제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왕은 수라왕과 열산왕 뿐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열산왕마저도 더는 그녀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혈응왕 등은 이내 감탄했다.

과거 구유는 천취황의 추천과 구유작 종족의 배경 때문에 대라천역의 왕이 됐는데 이에 혈응왕 등은 어린 소녀를 적잖게 무시했고 종종 시비를 걸어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대결을 본 이들은 자신이 무시했던 구유왕이 어느새 실력이 부쩍 늘어 자신들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허허, 고생했구나.”

천취황은 흐뭇하게 웃으며 구유를 바라봤다. 구유가 대결에서 이겨 기분이 좋았다.

만다라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구유의 깔끔한 공격을 보니 천취황의 말대로 소녀는 천부적 재능이 뛰어났다.

한편, 구유는 가볍게 웃으며 아직 전대에 들어가지 않은 나머지 4왕을 쓰윽 훑었는데 그 속에는 목진도 있었다.

여섯 번째 대결이 끝났다. 대라천역은 이제 남은 네 차례의 대결 중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둬야 했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진은 나머지 네 왕 중 가장 최약체로 군대가 있으면 전의의 힘을 빌려 수라왕 다음으로 강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하여 목진은 오직 5급 지존경의 실력에만 의지해야 했는데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6급 지존이라 경지로만 보면 목진이 가장 약했다.

그렇게 나머지 대결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만다라도 미간을 찌푸린 채 네 사람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포기하면 안 되는 법이었고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을 알지만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다라는 철망왕(鐵蟒王), 금강왕(金剛王), 홍애왕, 목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목진은 5급 지존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6급 지존경에 이른지 얼마 안 되어 혈응왕 등보다 실력이 훨씬 뒤처졌다.

승산이 크지 않은 걸 잘 아는 만다라는 가볍게 손을 휘두르며 4왕의 의견을 물었는데 구유 뒤로 나선 철망왕과 금강왕의 대결에는 역시나 반전은 없었다.

철망왕, 패배!

금강왕, 패배!

두 사람의 대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지만 두 눈으로 결과를 확인하자 다들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운이 나쁜 철망광과 금강왕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만나 생각보다 빨리 대결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전대에서 내려왔다.

지지존의 밀장은 역시 엄청나게 위험한 곳이었다. 이들한테는 그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것마저 어려웠다.

“아홉 번째 대결은 내가 나갈게요.”

철망왕과 금강왕의 패배를 본 홍애왕이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발을 힘껏 굴러 전대에 올랐는데 몸이 산처럼 묵직했다.

다들 몰래 한숨을 쉬며 홍애왕을 쳐다봤다. 아무도 그가 대결에서 이길 거라 여기지 않았다. 그의 실력은 철망왕, 금강광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쿠쿵!

홍애왕이 전대에 오르자 오래된 대전에 우뚝 솟아오른 기둥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청동 조각상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살기를 가득 품은 채 나타났다.

녀석은 몸집이 작고 피부는 까만 것이 흑철로 만든 것처럼 보였고 머리는 원숭이 모양이었다.

“10대 흉수 중 하나인 흑철마후(黑鐵魔猴)라…….”

만다라는 검은색 그림자를 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흑철마후는 10대 흉수 중에서 실력이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그 엄청난 속도라면 6급 지존을 농락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홍애왕의 대결도 패배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끽!

흑철마후는 나타나자마자 예리한 이를 드러내고 괴이하게 웃더니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속도가 엄청나군!”

대라천역 왕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퍽!

그때 전대에 서 있던 홍애왕은 큰 타격을 입은 듯 멀리 튕겨 나갔고 팔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할퀸 흔적이 깊게 생겨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끽!

흑철마후는 홍애왕이 서 있던 자리에 귀신처럼 나타나 피식 웃더니 다시 흑광이 되어 사라졌다.

퍽! 퍽! 퍽!

이렇게 홍애왕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궁지에 몰렸다. 흑철마후의 엄청난 속도에 홍애왕은 완전히 열세에 처했고 몸에 난 상처에서 흐른 피는 어느새 온몸을 적셨다.

이러한 광경에 다들 풀이 죽었는데 상황을 살피던 만다라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홍애왕은 맞기만 해서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방어력이 뛰어난 그한테는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또한, 홍애왕의 체내에서 난폭한 영력이 미친 듯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는데 몰래 필살기를 준비하는 듯했다.

쿵!

또 한 번 공격당한 홍애왕은 뒤로 수십 장 정도 튕겨 나갔고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엄청난 살기와 함께 원숭이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잇따라 한광이 지나자 녀석은 신검 같은 손톱으로 홍애왕의 가슴팍을 찌르려 했다. 이에 홍애왕이 손을 번쩍 들어 가슴을 가리자 녀석의 손톱은 예리한 검처럼 팔에 꽂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런데 그때, 홍애왕은 자기 팔에 손톱이 박힌 흑철마후를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자세히 보니 홍애왕의 다른 손에 무서운 영력이 미친 듯이 모여 손바닥만 한 산맥을 이룬 것이 보였다.

이는 홍애왕이 영력으로 만든 것으로 무서운 파동을 방출해 공간마저 파르르 떨렸다.

“네 이놈, 인제 내가 나설 차례다.”

홍애왕이 씨익 웃더니 빠르게 주먹을 휘둘러 흑철마후의 머리를 때렸다.

끽!

흑철마후는 황급히 도망가려 했는데 손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홍애왕의 팔에서 피와 살이 꿈틀거리며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이렇게 흑철마후는 꼼짝 못 하게 되었다.

쿵!

홍애왕의 철권은 어느새 녀석의 머리에 닿았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수박 깨지듯 폭발했다. 흑철마후의 몸뚱이는 휘청이다가 쓰러졌고 수많은 광점으로 변해 홍애왕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전대 밖에 서 있던 다른 왕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상황을 살폈다. 심지어 목진마저도 절대적인 열세였던 홍애왕이 마지막까지 참았다가 한방에 녀석을 죽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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