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밀장의 중심
“이만 가자꾸나!”
청동 대문이 열리자 만다라의 말이 주위에 울려 퍼졌고 목진 등은 바로 그녀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위잉.
청동 대문에 들어간 순간, 목진은 주위의 공간 파동이 변하는 것을 느꼈고 주위는 어두워졌다가 바로 밝아졌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사방에서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것만 같은 살벌한 기운이 몰려왔다.
목진 등은 섬뜩한 기운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크으으으!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그들은 이미 다른 세상에 도착해 있었다. 누런 하늘 아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평원에는 커다란 균일이 잔뜩 나 있었고, 그 속에서 엄청난 양의 사기와 함께 검은색 홍류가 스며져 나왔다.
검은색 홍류에서 비롯된 괴이한 울음소리는 대천세계에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듯 소리가 울려 퍼지면 천지의 영력이 곧바로 도망갔다.
이에 목진이 검은색 홍류를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그 속에 흐릿한 검은색 그림자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났다. 연기로 만들어진 듯한 녀석들의 몸은 조금 일그러진 것 같았고 암홍색을 띤 두 눈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진 등이 일전에 들었던 괴이한 포효와 천지의 영력이 배척하는 소리는 전부 이들이 낸 것이었다.
그러다 공간 균열에서 스며져 나온 검은색 홍류가 주위에 퍼지자 천지의 영력은 들끓기 시작했고 저 멀리 하늘에서는 구름이 몰려왔다. 그 속에 수많은 그림자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대천세계의 진정한 강자들이었다.
크으으으!
대천세계의 강자들을 본 검은색 홍류는 이내 포효하며 상대방에 맞섰다.
양자가 부딪치자 천지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한편, 검은색 그림자들은 연기처럼 공간을 가르며 대천세계 강자들의 방어를 뚫고 그 육신을 공격했다.
으악!
강자들은 처량하게 울부짖더니 육신이 빠르게 메말라갔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검은색 그림자는 이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목진 등은 놀라운 광경에 머리가 아픈 듯했지만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들을 멈출 방법은 없었다.
* * *
치열한 싸움을 지켜보던 목진 등의 눈이 어느새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쿵!
그런데 그때, 갑자기 맑은 종소리가 들려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고 두 눈은 금세 맑아졌다. 그들은 종소리 덕분에 엄청난 살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만다라가 그들 앞쪽에 서서 가볍게 손을 튕기며 영력으로 맑은 종소리를 낸 것이었다.
목진 등을 구한 건 다름 아닌 만다라였다.
“이건 역외사족이 대천세계를 점령하려고 운락 전장에서 벌인 전쟁이었다.”
만다라가 주위를 쓰윽 훑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경악스러운 모습이었다.
연기 같은 검은색 그림자가 바로 역외사족이란 말인가?
“역외사족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해충처럼 천지의 영력을 집어삼키곤 했단다. 이들이 대천세계를 점령하면 이곳은 바로 무너질 것이고 대천세계 주위의 수많은 하위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난 역외사족이 점령한 대륙을 직접 본 적 있단다. 그곳은 영력이 전부 사라져 영력을 수련하기 적합하지 않았고 그곳에 있는 이들도 영력이 모두 사라져 보통사람이 되어 있더구나…….”
만다라의 말에 목진 등은 소름이 쫙 돋았다. 그들은 영력이 없는 세상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대천세계를 놓고 보면 세계 종말이나 다름없었다.
역외사족이라면 무조건 대천세계가 똘똘 뭉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이곳을 점령하면 수련자들한테는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전장은 허상일 뿐이니 그 속에 깃든 살기에 휩쓸리지 말거라. 그러다 그 속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만다라의 말에 목진 등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다라가 아니었으면 목진 등은 이미 절반쯤 죽었을 것이다. 지지존 밀장의 깊숙한 곳은 역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만다라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아래쪽에서 휘몰아치는 엄청난 양의 살기를 짓누른 채 그 구역의 끝자락으로 향했고 목진 등은 영력으로 몸을 휘감은 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아무리 전진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래쪽에서는 계속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곳은 전쟁으로 인해 퍼진 살벌한 기운에 빨갛게 물들어갔다.
목진 등은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하는지 궁금했지만 만다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뒤를 따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만다라는 드디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다들 조심하거라!”
만다라의 갑작스러운 말에 목진 등은 흠칫하더니 바로 영력을 끌어올렸다.
위잉!
전쟁으로 인한 살벌한 기운은 사라지고 주위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드넓은 전장은 이미 사라졌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가 이들 눈앞에 나타났다. 암청색을 띤 바다는 파도를 일으키곤 했는데 파도가 내려앉을 때마다 주위 공간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곳의 바닷물은 한 방울이 천 근은 되는 것 같았다.
목진 등은 깊이조차 가늠되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암청색 바다의 깊숙한 곳에 영원한 어둠이 깃들어있는 듯 보였다.
낯선 바다는 원고의 전장처럼 잔혹한 기운을 내뿜지는 않았지만 목진 등은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는데 그건 낯익은 것 같으면서도 뭐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제법이군.”
만다라가 허공에 서서 암청색 바다를 살펴보더니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역주님, 여기는…….”
천취황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마저 눈앞의 바다에 무기력해졌다.
“내 예상대로라면 이건 네 번째 전주의 지존해가 이룬 바다일 것이다.”
“지존해가 이룬 바다라니요?”
만다라의 말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존해는 지존의 힘의 원천이라 다들 익숙한데 이처럼 바다까지 이루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실력이 네 번째 전주 정도가 되면 지존해는 공간이나 다름없단다. 하여 적을 만나면 지존해를 펼쳐 상대방을 그 속에 빠트리지. 제아무리 8급 지존이라도 영력의 파도 한 방이면 즉사할 거란다.”
만다라의 말에 목진 등은 혀를 내둘렀다. 목진처럼 아직 실력이 부족한 이들은 안전을 위해 지존해를 체내의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겼다. 육신을 잃으면 되돌릴 수가 있지만 지존해가 파괴되면 여태껏 한 수련이 수포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여 아무도 감히 적을 지존해에 들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 지지존한테는 이토록 무서운 수단이라니…….
“여기가 곧 지지존 밀장의 중심이겠구나.”
만다라는 바다 깊숙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조심하거라.”
드디어 지지존 밀장의 중심에 도착했단 말인가? 다른 정예 세력들은 어디까지 들어왔을까?
만다라의 말에 목진 등은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들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잔뜩 긴장했다.
창망한 바다에 파도가 휘몰아쳤지만 물소리 하나 없이 주위의 공간만 잔뜩 일그러졌다.
만다라는 목진 등의 앞쪽에 서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의 깊숙한 곳을 보고는 다시 떠나려 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으니 얼른 떠나자꾸나.”
만다라의 말에 목진 등은 곧장 만다라의 뒤를 따랐다.
대라천역 무리는 웅장한 바다 위를 빠르게 지나갔는데 주위에 형성된 위압감은 갈수록 강력해졌다.
3황마저 그 엄청난 위압감에 속도가 줄어들자 만다라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웅장한 영력으로 목진 등에게 나는 배를 만들어줬다.
영력으로 만들어진 배는 결정처럼 눈부셨다. 목진 등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력 결정화를 이토록 쉽게 해내다니, 역시 지지존은 남달랐다.
중품 신기 못지않은 배는 수수해 보였지만 주위에 형성한 위압감을 모조리 떨쳐내 주었다.
그곳은 네 번째 전주의 지존해로 이뤄지긴 했지만 만다라도 지지존이라 상대방이 형성한 위압감을 막아내는 것 정도는 쉬웠다.
목진 등은 다시 속도를 끌어올려 반 시진 정도를 날았는데 앞장선 만다라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며 속도를 줄였다.
이에 목진 등이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 커다란 물체가 나타난 것이 보였다.
드넓은 바다에는 황량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섬이 허공에 떠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만 장 정도의 물기둥이 부단히 바다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꼭 신비롭고 오래된 섬에서 흘러내리는 물기둥이 바다를 이룬 것 같았다.
한편, 허공에 있는 섬에서 엄청난 기운이 스며져 나왔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섬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섬은 아마도 여기서 별세한 네 번째 전주가 만들어 놓은 것 같구나.”
만다라가 애써 찾아다녔던 물건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네 번째 전주의 영신액도 분명 저 섬에 있을 것이다.
만다라의 말에 목진 등은 순간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대수렵전에서 여태껏 고생한 이들이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단 말인가?
“역주님, 바로 들어갈까요?”
영동황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만다라는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쓰윽 훑으며 말했다.
“네 번째 전주의 물건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첫 번째가 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란다.”
이에 목진은 흠칫 놀라 주위를 훑어봤다. 다른 정예 세력들도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허허, 대라역주는 역시 대단하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다니 말이야.”
그때 호탕한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들려오자 아래쪽 바다에 순식간에 파도가 일었다.
만다라가 고개를 돌려보니 공간이 파르르 떨리다가 균열이 일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순간, 그 구역의 영력 파동이 들끓기 시작했다.
“신각이군!”
목진 등은 바로 방의, 첨대유리 등 낯익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이 속한 세력은 다름 아닌 신각이었다.
목진은 자연스레 가장 앞쪽에 선 백색 도포를 입은 사내한테 눈길이 갔는데 수수한 외모에 선홍빛 눈동자를 가진 사내는 뒷짐을 쥔 채 서 있었다. 주위에 강력한 영력 파동이 없는 것을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반인처럼 보였다.
그의 등장에 만다라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목진 등은 만다라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백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신각의 주인으로 북계에서 상위 지지존에 가장 가까운 지지존이기도 했다. 게다가 북계의 정예 세력 중 신각 각주의 명성은 만다라보다 높았다.
그 밖에 신각 각주의 뒤에는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이가 네 명 서 있었는데 전부 천취황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신각의 동서남북 각주로 지위는 대라천역의 3황과 비슷했다.
또 그 뒤에는 방의와 산주 등이 서 있었다. 상당히 화려한 진영이었다.
그러나 곳곳에 안색이 창백하고 영력이 무질서해진 사람이 적잖게 보였는데 보아하니 이들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일정한 대가를 치른 모양이었다.
역시 목진 등한테만 장애물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신각에서는 제법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나 보군.”
“허허, 아랫것들이 무능해 별것도 아닌 걸 해결하느라 시간을 빼앗겼네.”
만다라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신각 각주는 피식 웃더니 오래된 섬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신액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바칠 수 있지.”
신각 각주는 멈칫하더니 만다라한테 눈길을 돌렸다.
“대라 역주,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오랜데 이번에는 나를 도와 네 번째 전주의 영신액을 얻는 게 어떻겠나? 그럼 앞으로 북계는 우리 두 사람의 세상일 것이네.”
이에 만다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은 고마운데 영신액은 각자 알아서 얻읍시다.”
“아쉽군.”
신각 각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 대수렵전이 끝나면 북계의 정예 세력 하나가 사라지겠군.”
상대방의 말에 목진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고 만다라도 이내 정색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네. 그러다 실수하면 북계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 말이야.”
신각 각주는 더는 말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는데 목진 등은 그의 태도에서 영신액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신각 각주가 영신액을 얻어 상위 지지존이 되면 북계에서 그의 상대가 될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머지 정예 세력들이 바싹 엎드리지 않으면 전멸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이렇게 양대 세력은 각자 멀리 떨어진 채 자리를 잡았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쳐다보기만 했다.
분위기는 더없이 살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