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화. 네 번째 전주
잠시 후,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동한 곳에서 동시에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우리 유명궁은 전력을 다해 오느라 애썼는데도 대라천역보다 늦었군.”
음산한 기운이 깃든 웃음소리에 주위의 온도가 확 떨어졌다.
이에 목진이 흠칫 놀라 서북쪽을 바라보자 검은색 그림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선두에 있는 자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로 눈에서 흑기가 이글거렸고 미간에 검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꼭 그 속에 눈을 숨긴 것처럼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유명궁 궁주라…….”
목진은 방금 말한 사람이 지지존급 강자인 유명궁 궁주란 것을 바로 알아챘다.
“여러분, 보물찾기에 우리 천현전을 빼놓으면 안 되지.”
또 다른 누군가의 말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천현전의 전주 유천도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그 외, 동북쪽에 만성산 강자들이 몰려왔는데 선두에 선 자는 성진 백포를 입은 채 백옥 지팡이를 쥔 만성노조(萬聖老祖)였고, 서쪽에서 몰려온 검은색 무리의 선두는 검은색 갑옷을 입은 채 요괴의 기운을 내뿜는 사내로 보라색 눈동자를 지녔다. 그는 다름 아닌 요문의 요제(妖帝)였다.
또한, 남쪽에서 뱀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뱀 모양의 지팡이를 쥔 파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천 장 정도의 거대한 이무기를 타고 있었는데 녀석이 뿜은 독기는 주위에 독운을 형성했다.
그는 바로 사신전의 전주 천사로귀(天蛇老鬼)였다.
그들은 북계의 최정예 강자들로 한곳에 모이기 상당히 어려운데 오늘은 지지존의 밀장 때문에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지지존 7명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북계의 정예 강자들이 모두 모였으니 영신액 쟁탈전은 얼마나 치열할까? 목진 등은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웅장한 바다 위쪽에 오래된 섬이 조용히 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지지존 7명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이는 목진이 대라천역에 온 뒤로 본 제일 화려한 진영이었다.
7대 정예 세력이 전부 모여 있는 모습은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도 감히 지지존 7명의 대치 상태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발하는 위압감에 다들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현재, 이곳에서 발언권이 있는 이들은 지지존급 강자들뿐이었다.
엄청난 진영에 놀란 목진과 구유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몰래 혀를 내둘렀다.
“허허, 이번 대수렵전에서 우리가 똑같은 목표를 정했을 줄은 몰랐군.”
그러나 대치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신각 각주가 먼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지지존 밀장은 이곳 운락 전장의 최강 밀장으로 여태껏 아무리 애써 찾아봐도 소용이 없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닿았으니 포기할 리가 없지 않겠나?”
만성산 무리 중, 성진 백포를 입은 만성노조가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창로한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주위에 퍼져 천지의 영력이 진동했다.
그때 신각 각주가 암장의 세계를 방불케 하는 눈동자를 굴리며 미소를 지었다.
“난 7명 중에서 상위 지지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네 번째 전주의 영신액을 얻으면 경지를 돌파하는 건 더없이 쉽다네. 하지만 당신들은 실력이 미흡하여 영신액을 얻는다고 해도 상위 지지존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네.”
신각 각주의 말에 다른 정예 세력 주인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하여 여러분이 영신액을 나한테 넘긴다면 북계를 함께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것이고 북계 이외의 지역도 곧바로 장악해 함께 나누겠네. 천라대륙이 이렇게 넓으니 다들 북계 따위에 만족하지 않을 거라 믿네.”
신각 각주의 말에 6대 지지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 마음을 접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각 각주, 말 한마디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그만 접게. 이 세상에서 온전한 내 것이야말로 가장 믿음이 가는 것이니 내가 영신액을 넘길 거란 망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그러니 실력으로 승패를 가르지.”
그때 요문에서 검은색 갑옷을 입은 튼실한 사내 요제가 입을 열었다.
“흠, 자네가 경지를 돌파하면 다른 정예 세력을 모조리 집어삼키려 할지 알게 뭔가? 절대 그런 위험 부담이 큰 짓은 하지 않겠네. 난 그렇게까지 멍청하지 않네.”
사신전의 천사노귀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
그 밖에 다른 지지존들도 조용히 서 있었지만 양대 지지존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한 눈치였다.
“아쉽군.”
신각 각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는데 암장의 세계가 깃든 것 같은 두 눈은 더 빨개졌다.
“잔소리는 그만합시다. 그리고 영신액의 소유권은 직접 보고 다시 말하지요.”
만다라는 황금색 눈동자를 굴리며 오래된 섬을 바라봤다.
“영신액은 저기 있는 섬에 있을 텐데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만다라의 말에 지지존들을 바로 오래된 섬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도 오래된 섬에 들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섬 주위의 공간은 특수한 힘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네. 아주 강력한 힘이 섬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군.”
천현전의 유천도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건 확인해보면 알 터.”
말을 마친 유명궁 궁주가 손을 힘껏 휘두르자 체내에서 무서운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쳐 거대한 검은색 수인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검은색 결정으로 만든 것 같은 수인은 아래쪽 바다에 커다란 균열을 내며 호호탕탕 날아갔다.
유명궁 궁주의 가벼운 공격에도 지지존급 강자의 위력이 영락없이 드러났다. 이는 천취황, 심지어 9급 지존경에 이른 수황이라도 한순간에 중상을 입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쿠쿵!
검은색 수인은 세상 만물을 잿더미로 만들 것 같은 기세로 날아갔는데 오래된 섬에서 갑자기 빛을 내뿜더니 수정 같은 광막을 만들어 주위를 감쌌다.
쿠쿵!
검은색 수인이 수정 광막을 힘껏 때리자 영력 기랑이 휘몰아치며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충격파가 폭발해 주위 만 장을 감쌌다.
그러나 그 충격파는 만다라 등 지지존들에게 닿기도 전에 완전히 사라져 뒤쪽 사람들은 무사했다.
충격파가 가시자 다들 바로 오래된 섬을 바라봤는데 수정 광막은 여전히 끄떡없었다.
“엄청난 방어력이군!”
목진 등은 이내 감탄했다.
“제법이군.”
유명궁 궁주는 크게 놀라지 않은 듯했다. 하긴, 이들이 네 번째 전주가 친 방어막을 쉽게 깼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여러분, 보물을 얻고 싶으면 함께 수정 광막을 깹시다.”
만다라는 수정 광막을 한참 쳐다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에 나머지 여섯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무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자기가 애써 뚫은 광막에 다른 세력이 비집고 들어가면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하여 동시에 나서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었다.
결정을 내린 지지존들은 각자 오래된 섬의 부동한 위치에 다가갔고 목진 등은 서둘러 물러났다. 지지존들의 공격에 불똥이라도 튀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잇따라 지지존들이 천천히 손을 들자 천지의 영력이 갑자기 미친 듯이 비등하더니 지지존 7명의 등 뒤에서 휘몰아쳤는데 멀리서 보면 커다란 태양 일곱 개가 떠 오르는 것 같았다.
이는 영력이 무서울 정도로 많이 모여야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쿵!
만다라 등은 바로 영력을 끌어올리고 장풍을 쐈다.
일곱 갈래의 기의 회오리에 주위의 공간은 모조리 부서졌고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쿠쿵!
일곱 갈래의 기의 회오리가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사정없이 수정 광막을 공격했다.
순간, 그곳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충격파가 돌풍처럼 휘몰아쳐 아래쪽 바다에 만 장 정도의 파도가 일어 주위 공간이 전부 부서졌다.
목진 등은 멀리 물러났지만 엄청난 충격파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각자 영력을 끌어올리고 나서야 겨우 몸을 가눴다.
그들은 천지를 부수고도 남을 지지존의 힘에 적잖게 놀랐다.
아마 저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이곳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이 정도 무서운 공격이라면 제아무리 네 번째 전주가 남긴 광막이라 해도 부서졌겠지?”
다들 이리 생각하며 결과를 확인했는데 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저 멀리 하늘에 있는 커다란 섬은 여전히 눈부신 빛을 발했고 부서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정 광막은 지지존들의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에 지지존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 것 같네.”
만다라의 말에 신각 각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살펴봤는데 수정 광막에 빛이 반짝이며 한데 모이는 것을 발견했다.
만다라 등도 바로 이를 눈치채고 눈길을 돌렸는데 수정 광막에 모인 빛은 어느새 청색 도포를 입은 누군가로 변했다.
눈을 꼭 감고 조용히 광막에 앉아있는 사내는 눈썹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목진 등은 갑자기 나타난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보더니 흠칫 놀라 만다라 등을 쳐다봤는데 이들의 안색이 확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
그때 신각 각주가 조금 놀란 듯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건…… 설마 네 번째 전주란 말인가?”
커다란 수정 광막에서 발하는 빛이 모여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만들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만다라 등 지지존급 강자들마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지존들은 바로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는 이곳 밀장의 주인, 원고 시기에 별세한 네 번째 전주였다.
“네 번째 전주라…….”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네 번째 전주는 별세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유명한 인물이었다. 원고 시기, 상고 천궁이 천라대륙을 통치했을 때, 네 번째 전주가 북계의 통치자라고 들었는데 현재의 북계는 지지존급 강자 7명이 나눠 다스리고 있었다. 북계의 패주가 될만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있는 이들 중 네 번째 전주를 따라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래된 섬 주위에 다가간 만다라 등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기만 했는데 아무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별세한 네 번째 전주가 특수한 방법으로 남긴 영신이었지만 다들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네 번째 전주는 생전에 상위 지지존일 뿐이었지만 하위 지지존인 만다라 등과는 실력이 천지 차이였다.
7대 지지존은 무서울 정도로 웅장한 영력 파동을 내뿜으며 허공에 서서 네 번째 전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은 네 번째 전주의 영신을 잔뜩 경계했다.
그때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서히 눈을 떴는데 아래쪽 웅장한 바다에 만 장 크기의 파도가 일었고, 이는 꼭 주인의 복귀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잇따라 엄청난 영력 위압감이 형성되자 만다라 등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신의 실력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하단 말인가?”
천현전의 유천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아무리 생전에 상위 지지존이었어도 일단 죽으면 실력을 이렇게까지 보존할 수는 없었다.
“눈이 멍하니 초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건 일반 영신이 아닌 것 같네.”
요문의 요제가 한 말에 만다라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네 번째 전주의 영신의 눈에 영광이 전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상위 지지존이 남긴 영신은 조금이나마 의식이 깃들어야 정상인데 이들 눈앞에 나타난 영신은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