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화. 강력한 영괴(靈傀)
신각 각주가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일반 영신이 아닌 것 같군. 내 생각대로라면 이건 특수한 방법으로 제련한 영괴로 네 번째 전주가 죽기 전, 자신의 영력을 주입한 뒤 이곳을 지키고자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 보존한 것 같네.”
신각 각주의 말에 만다라 등은 흠칫 놀랐다. 이런 꼭두각시를 만들어내다니 네 번째 전주는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제아무리 대단해 봐야 실력이 상위 지지존에 이를까? 그러니 우리가 함께 나서면 녀석을 반드시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네!”
유명 궁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우리 함께 녀석을 공격합시다.”
유명궁 궁주의 말에 만다라 등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섬에 들어가려면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괴를 쓰러뜨려야 하는데 이는 만다라 등이 협력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쿵!
지지존들은 순식간에 만 장 크기의 영력 홍류를 이뤘는데 그 속에 수많은 영력 결정이 깃들어 주위의 공간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일그러지다가 부서졌다.
“공격하라!”
7대 지지존의 고함과 함께 영력의 하천은 공간을 가르며 호호탕탕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에게 향했다.
이에 네 번째 전주의 주위에도 수정 광막이 형성됐는데 그는 만다라 등의 무서운 공격을 확인하더니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쿵!
순간, 아래쪽 웅장한 바다가 파르르 떨리더니 만 장 크기의 파도가 일었고, 이는 일반 바닷물이 아니라 한데 응축된 영력이었다.
그러다 영력 파도가 휘몰아쳐 네 번째 전주의 주위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형성하자 주위 만 장 범위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며 빨려 들어가 소용돌이의 파괴력은 더 강해졌다.
퍽! 퍽!
일곱 갈래의 영력 하천이 날아와 커다란 소용돌이와 부딪치자 천지가 파르르 떨렸고 소용돌이의 회전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마지막 한 갈래의 영력 하천의 공격에 커다란 소용돌이는 산산이 부서져 영력 폭우를 이뤘다.
“네 번째 전주는 너무 무서운 것 같아!”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목진 등은 어느새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 네 번째 전주는 이미 죽었는데도 7대 지지존의 합동 공격을 여유롭게 물리쳤다.
대라천역의 3황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네 번째 전주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의 영괴마저 이렇게 놀라운 실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쿠쿵!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네 번째 전주의 영괴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한 만다라 등은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웅장한 영력으로 뒤쪽에 공간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이룬 눈부신 영력 결정체로 네 번째 전주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난폭한 공격에 오래된 섬 주위 수만 장의 공간이 산산이 부서졌고 아래쪽 바다에도 커다란 균열이 일어 한참 지나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7대 지지존의 난폭한 공격에도 네 번째 전주는 오래된 섬의 위쪽에 무덤덤하게 서서 방어만 했다. 그러나 방어만으로도 다들 섬에 한 발도 가까이하지 못했다.
쿵!
그때 만다라가 영력 결정으로 만든 기의 회오리로 네 번째 전주를 공격하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괴는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았고 모든 힘을 오래된 섬을 수호하는 데만 사용했다.
게다가 7대 지지존이 협동한다고는 하지만 전력을 다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영신액도 나타나지 않은 지금, 벌써 힘을 빼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오래 공격한들 그들은 절대 오래된 섬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영신액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괴의 영력이 닳을 때까지 공격하는 건 너무 멍청한 방법이었다.
하여 만다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오래된 섬 외부에 있는 수정 광막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대로라면 언제 오래된 섬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네…….”
오래된 섬에 멀리 떨어져 있는 수황은 경천의 대결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지지존들이 진심으로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이에 목진 등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각 정예 세력의 주인들이 딴마음을 품는 것은 정상이었고 진정한 협력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라천역 전사들은 들으라…… 내가 기회를 봐서 수정 광막에 균열을 낼 것이니 너흰 바로 들어가 영신액을 찾거라!”
그런데 그때 만다라의 묵직한 목소리가 대라천역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3황과 목진 등은 흠칫 놀라더니 서로 마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7대 지지존 모두 발목이 잡혀 있으니 앞으로의 일은 이들한테 달렸다.
* * *
쿠쿵!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괴는 무서운 영력 충격파가 휘몰아치는 구역의 중심에 서서 7대 지존의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력 여파로 인해 수정 광막도 파르르 떨렸다.
영괴는 네 번째 전주의 힘을 물려받았지만 지능이 없어 빈틈이 생겼다.
쿵!
또 한 번의 살벌한 공격이 이어졌다. 만다라 등은 영력을 더 끌어올려 보다 난폭한 공격을 개시했고 네 번째 전주의 영괴는 뒤로 몇 보 물러났다.
“기회가 왔다.”
네 번째 전주가 물러선 순간, 만다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눈부신 검광이 엄청난 속도로 녀석의 방어권을 뚫고 수정 광막의 한구석을 공격했다.
치익.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광은 견고한 수정 광막에 마침내 균열을 만들어냈다.
“바로 지금이야!”
만다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력의 배가 빠르게 날아가 곧 사라질 균열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건 3황과 목진 등이 탄 배였다.
“들여보냈어!”
만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위를 살폈는데 나머지 지지존들도 강력한 힘을 끌어올려 수정 광막에 균열을 낸 뒤, 부하들을 들여보냈다.
교활한 여우들 역시 생각해낸 방법도 똑같았다.
그들 역시 부하들을 들여보내 영신액을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이에 만다라는 고개를 들어 나머지 지지존들과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교활한 여우들…….”
만다라는 각 세력의 주인들이 부하들을 몰래 섬에 들여보낸 것을 발견하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허허, 역시 오랜 벗이라 그런지 생각도 비슷하군.”
신각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다른 지지존들을 쓰윽 훑었다. 다들 웃는 척하며 서로 비위를 맞췄다.
“각자 생각이 다르니 연기는 그만합시다. 우리가 할 일은 네 번째 전주가 남긴 영괴를 붙잡고 있는 것이니 나머지는 부하들한테 맡깁시다.”
만다라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애초부터 그럴 계획이었던 게 분명했다.
의견을 통일한 7대 지지존은 바로 나서서 무서운 공격을 개시했다. 그들이 부단히 공격해야 영괴가 오래된 섬에 들어간 부하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섬 내부는 오래된 기운으로 가득 찼고 부서진 바위에 영광이 번쩍이며 침입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대라천역 강자들로 섬에 들어오자마자 영력으로 몸을 감싼 채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관찰하였다. 그들은 섬에도 무서운 존재가 있을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섬은 더없이 조용했고 습격도 없었다. 이에 목진이 안심하며 영신액을 찾으러 가려 했는데 옆에 조용히 서 있던 3황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하구나!”
목진의 질문에 수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내 체내의 영력이 엄청난 제한을 받고 있구나!”
수황의 두 눈은 전과 달리 놀라운 위압감을 형성한 채 부릅뜨고 있었다.
그들은 일전에 영력을 끌어올려 온몸을 감쌀 때, 체내의 영력이 엄청난 제한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상당히 강력했던 영력이 지금은 유난히 느리게 흘렀다.
알 수 없는 힘이 이들 체내의 지존해를 봉쇄해 영력 순환을 억제하는 듯했다.
“내 영력도 마찬가지네!”
천취황과 영동황도 흠칫 놀라 말했다.
이에 다른 왕들도 황급히 체내의 영력을 확인하더니 하나, 둘씩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목진도 체내의 영력이 억제된 것을 발견했는데 아직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이었다.
“내 영력은 7할 정도 줄어들었네!”
수황은 안색이 너무 안 좋았다. 7할의 영력이 억제된 수황은 기껏해야 7급 지존경일 뿐이었다.
“난 6할 정도인 것 같네.”
천취황과 영동황이 마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절반 정도 억제되었어요.”
구유, 수라왕 등 6급 지존들의 말에 목진 등은 흠칫 놀랐다.
“우리도 영력이 억제되긴 했지만 2할 정도일 뿐이네.”
섬에 들어온 사람 중, 실력이 강할수록 영력 억제가 더 많이 되는 것 같았다.
“섬 내부도 역시 범상치 않군.”
수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렇게 대라천역의 전투력은 확 줄어들었다.
“다른 세력 사람들도 우리와 상황이 비슷할 것이네.”
천취황은 여기 들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영력이 억제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움직여 일단 영신액부터 찾읍시다.”
수황이 고개를 들어 섬의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수라왕 등은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확 줄어들었으니 함께 움직여야 돌발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바로 섬의 중심으로 향했다. 혹시나 하여 지면에서 십수 장 정도 떨어진 채 낮게 비행하였다.
목진 등은 비행하면서 섬이 상당이 크고 산맥과 방대한 숲 뿐만 아니라 사막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친 기운을 발하는 섬의 모습에 경외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아무런 걸림돌이나 습격이 없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그들은 1각이 채 안 돼 섬의 중심에 근접해 드디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한 산맥의 정상에 내려앉은 목진 등은 앞쪽에 펼쳐진 만 장 크기의 호수를 지그시 바라봤다.
비취색을 띤 호수는 그윽한 향기를 내뿜었고 은은한 영무가 퍼져 선경이 따로 없었다.
“이곳이 바로 섬의 중심이고 영력이 가장 그윽한 곳이니 영신액도 분명 여기 있을 것이다.”
수황이 호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인기척이 들리는군!”
그런데 그때, 영동황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빛줄기가 날아와 방대한 호수 주위의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다른 정예 세력 사람들로 각자의 주인이 만든 균열 사이로 섬에 들어온 것이었다.
“참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사람들이군.”
열산왕이 이를 갈며 말했다. 저들 때문에 영신액을 취하는 것이 훨씬 귀찮아졌다.
이에 목진과 구유도 마주 보며 무안한 듯 피식 웃었다. 각 정예 세력의 주인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각 세력의 회합에 분위기는 다시 살벌해졌지만 다들 서로를 경계하느라 바빠 바로 싸우지는 않았다.
쏴아아.
그때 웅장한 호수에서 청량한 물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다들 마음이 차분해졌는데 수황은 흠칫하더니 잔잔한 영무가 덮인 호수를 바라봤다.
잇따라 수황이 옷깃을 휘날리자 웅장한 영력이 돌풍을 일으켜 그윽한 영무를 물리쳤고 방대한 호수는 그제야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의 중심에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있었는데 눈부신 빛덩이를 내뿜었다. 놀라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빛덩이는 꼭 태양 같았다.
“저건…….”
목진 등은 빛덩이를 발견하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눈부신 빛덩이 속에서 족자, 광정 같은 물건을 발견했다.
빛덩이에 든 물건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영력 파동만 봐도 절대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저건 밀장에 있는 영보일 것이다.”
수황은 빛덩이들을 한참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영신액도 분명 저 안에 있을 거다.”
이에 열산왕 등은 화들짝 놀라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빛덩이를 쳐다봤다.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음을 추스르며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다른 세력 사람들도 어느새 혈안이 되었지만 먼저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건 폭풍전야의 고요함일 뿐이었다. 보물이 나타났으니 곧 치열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