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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00화 (599/1,000)

600화. 운락

“네 번째 전주도 참 대단하군. 이런 꼼수를 부리다니!”

상황을 살피던 만다라 등도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왜 그래?”

목진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네 번째 전주는 우리가 제련해 흡수한 영신액 중에 몰래 자신의 흔적을 남겼는데 이를 너무 깊게 숨겨 나조차 발견하지 못했어.”

만다라는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그 흔적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흔적이지만 그 전에 네 번째 전주가 다시 장악하려 하면 체내에서 다시 뽑아가는 건 식은 죽 먹기야.”

목진은 깜짝 놀랐다. 네 번째 전주가 신각 각주가 흡수한 영신액을 그리 쉽게 꺼낼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네 번째 전주가 신각 각주만 상대해서 다행이었지 만다라 등한테까지 불똥이 튀었다면 대라천역에 큰 화가 닥쳤을 것이다.

상고 천궁의 정예 강자인 네 번째 전주는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신각 각주는 이번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그때 성진진마탑에 갇힌 신각 각주의 체내에서 웅장한 영력이 솟구치자 그의 영력 파동은 미친 듯이 줄어들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하위 지지존 정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신각 각주가 대수렵전에서 노력한 것이 모두 수포가 되었고, 신각 각주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네 번째 전주!”

신각 각주가 한이 맺힌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체내에서 지극히 난폭한 영력 파동을 발했다. 그러자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졌고 그를 묶었던 성진 사슬도 산산이 부서졌다.

“녀석이 미쳤군. 감히 지존해를 폭발시키려 하다니!”

신각 각주가 지존해를 폭발시키려 하자 만다라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건 목숨을 걸고 덤벼보겠다는 뜻이었다.

멀리 떨어진 채 상황을 살피던 신각 사람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마 대수렵전이 끝나면 신각은 더는 북계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쿵!

그런데 신각 각주는 신각의 미래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미친 듯이 어딘가를 봤는데 몸에 균열이 일더니 그 속에서 영광이 스며져 나왔고 순간,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결국 육신이 폭발했다.

쿠쿵!

이루 말할 수 없는 영력 충격이 미친 듯이 휘몰아쳐 금자탑은 격렬하게 떨렸다. 또 내부 공간이 부서졌으며 표면에 파문이 일어 그 무서운 영력 충격으로 부서질 것만 같았다.

신각 각주가 아무리 하위 지지존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지존해를 폭발시키면 천지를 부수고도 남았다. 아마 성진진마탑이 아니었으면 그곳에 있는 이들 중 지지존에 이른 여섯 사람을 제외하고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이에 네 번째 전주는 곧 부서질 것 같은 성진진마탑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신각 각주의 미친 짓에 그마저 놀란 것 같았다.

그러다 성진진마탑이 부서져 신각 각주의 신백이 도망가면 큰 화를 부를 것은 분명했다.

“이미 죽은 나에게 목숨을 걸고 덤비다니, 생각을 잘못했구나.”

그런데 네 번째 전주는 씨익 웃더니 바로 결인하였다. 이미 죽은 그는 조금이나마 남은 의식으로 영괴를 조종할 뿐인데 신각 각주가 폭주했으니 북계 패주였던 그가 주춤할 필요가 없었다.

잇따라 영괴의 육신에도 균열이 일더니 그 속에서 무서운 영력이 스며져 나왔고 결국 폭발해 무서운 영력 홍류를 이뤘고, 이는 미친 듯이 성진진마탑으로 스며들었다.

네 번째 전주의 놀라운 양의 영력으로 인해 성진진마탑은 점차 움직임을 멈췄고 신각 각주가 지존해를 폭발시켜 형성한 무서운 충격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잠시 후, 성진진마탑 내부 공간이 완전히 진정되자 영광 한 갈래가 나타났고 이는 팽창하더니 사람의 형태를 갖췄다. 그는 다름 아닌 신각 각주였다.

육신이 폭발해 신백만 남은 신각 각주는 어느새 사색이 되었다.

그는 지존해를 폭발시켰는데도 아직 성진진마탑을 벗어나지 못했다.

“네 번째 전주, 난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고 지금은 육신까지 폭발시켰는데 뭘 더 원하는 건가?”

신각 각주는 제발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때 네 번째 전주가 성진진마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역외사족과 연관된 사람은 대천세계의 배신자란다. 궁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은 누구든 신백까지 없애라 명하셨다!”

네 번째 전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인법을 바꿨는데 하늘에서 성광의 힘이 내려앉으며 오래된 부적이 깃들어 세상 만물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서운 힘을 지닌 성광 입체 삼각형을 이뤘다.

“이건 다 욕심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네 탓이란다!”

성광 봉인에 갇힌 신각 각주가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네 번째 전주가 주먹을 꽉 쥐자 성광 봉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손바닥 크기로 작아지다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해 성광 파편을 이뤘다.

목진 등은 수많은 성광 파편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북계의 최강자가 네 번째 전주의 손에 이토록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

비록 성진진마탑 덕분이긴 했지만, 한때 북계를 다스린 패주의 위엄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신각 각주가 죽자 대라천역의 위기도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또한, 만다라가 반보 상위 지지존이 되었으니 북계에서의 지위도 훌쩍 오를 것이고 대라천역 역시 최강 세력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방대한 바다의 위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건 지지존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위 지지존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커다란 성진진마탑 내부에 인 파문도 어느새 사라졌는데 금자탑이 형성한 위압감에 다들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러다 네 번째 전주한테 밉보이면 큰일이었다.

목진도 신각 각주의 죽음에 혀를 내둘렀다. 네 번째 전주는 한때 북계의 패주로서 수단이 상당히 매서웠다. 그는 신각 각주에게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성진진마탑은 참 대단한 물건이야.”

목진이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네 번째 전주한테 성진진마탑이란 강력한 성물이 없었다면 신각 각주를 제압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죽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연하지, 안 그러면 무슨 수로 지지존을 손쉽게 제압하겠어?”

만다라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신각 각주가 죽어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앞으로 대라천역은 북계의 최강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저걸 빼앗을 수는 없을까?”

목진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대라천역에서 성물을 얻으면 실력이 폭등할 거라 북계의 패주가 되지는 못해도 최정예 세력의 지위 정도는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만다라도 끌리는 듯 괜히 성진진마탑을 힐끗거렸다.

“저런 성물이라면 탐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야.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지는 말자. 신각 각주의 꼴이 되기 십상이야.”

잠시 생각에 빠졌던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각 각주의 죽음으로 인해 만다라는 네 번째 전주가 더 두려워졌다. 그한테 다른 필살기가 없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다른 지지존들도 성진진마탑을 탐욕스럽게 보고 있었다. 다들 네 번째 전주가 두려워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위잉!

그때 검은색 금자탑의 앞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영괴를 폭발시켰던 네 번째 전주였다.

다만, 지금의 그는 온몸이 투명해 곧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뒷짐을 쥔 채 모습을 드러낸 그를 두고 허튼 마음을 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희가 내 무덤에 들어온 걸 보면 천궁은 사라졌겠구나…….”

네 번째 전주는 사람들을 쓰윽 훑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원고 시기, 역외사족이 천라대륙을 침범했을 때 천궁 궁주께서는 그쪽 왕자와 싸우시다가 중상을 입어 별세하셨고 천궁 전체도 함께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만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번째 전주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채 중얼거렸다.

“궁주님도 돌아가셨다니…….”

멍하니 한참을 서 있던 네 번째 전주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만다라 등을 바라봤다.

“너희는 내 유품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냐?”

이에 만다라, 만성노조 등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괜찮다. 난 이미 죽었으니 내 물건이 새 주인을 찾아가는 것도 정상이지.”

네 번째 전주는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떠 있는 성진진마탑을 가리켰다.

“저걸 갖고 싶으냐?”

만다라 등은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들은 성진진마탑이 너무 탐이 났다. 일단 그것을 얻으면 진정한 상위 지지존과 맞서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성물은 실력이 되어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인데 하위 지지존 정도면 괜찮을 것 같구나. 그러니…….”

네 번째 전주의 말에 지지존들은 순간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런데 네 번째 전주는 지지존들의 이러한 반응에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만다라 뒤에 서 있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영탑인(靈塔印)은 네가 찾아낸 것이냐?”

목진은 흠칫하더니 네 번째 전주가 말한 영탑인이 삼각형 흑철이란 걸을 알아챘다.

“이 물건은 내가 공들여 숨긴 것인데 네가 찾아냈다니, 넌 나와 잘 맞는 것 같구나.”

네 번째 전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목진을 바라보며 이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조금이나마 남은 나의 의식을 일깨우지 않았다면 녀석은 오늘, 탄천사제의 힘을 가져갔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괜히 머쓱해 웃었다. 그는 영괴의 도움이 필요해 그랬을 뿐이었는데 신각 각주까지 깨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가 무슨 연유로 그랬든지 날 도운 건 사실이란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탄천사제를 수만 년 동안 봉인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느냐?”

네 번째 전주는 목진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난 빚지는 걸 아주 싫어한단다.”

그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특히, 만다라를 제외한 다른 지지존들은 왠지 불안해졌다.

그때 네 번째 전주가 손을 들자 커다란 성진진마탑이 파르르 떨며 신속하게 작아져 손바닥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이건 성진진마탑으로 천궁의 성물 중 하나란다. 난 이것으로 탄천사제를 제압했는데 녀석이 이미 죽었으니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구나. 그러니 이 물건은 연이 닿은 사람한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잇따라 네 번째 전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성진진마탑은 한 줄기 빛이 되어 목진한테 날아가더니 미간에 스며들었다.

목진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옆에 서 있던 왕들은 부러운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네 번째 전주의 성물을 5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목진이 가질 줄은 몰랐다.

현재 목진의 실력으로는 절대 성물의 위력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만성노조, 요제 등 나머지 지지존은 어느새 혈안이 되어 목진을 쏘아봤다. 만다라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네 번째 전주만 아니었으면 그들은 이미 목진을 공격했을 것이다.

5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녀석이 성물을 차지했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진진마탑에 영신액 한 방울이 있는데 이건 방금 죽은 녀석한테서 제련한 거란다. 그 사용 권한도 너한테 있으니 알아서 하려무나.”

네 번째 전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과거 궁주께서 상고의 천궁을 봉인했을 것이니, 성진진마탑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전주의 말에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성진진마탑만 있으면 오래도록 실종된 상고의 천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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