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화. 장대해진 구유궁
한편, 첨대유리도 흠칫하더니 머뭇거렸다.
“첨대 낭자, 가족이 걱정되어 그러는 건가? 대수렵전이 끝나면 신각에 있는 자네 가족을 데려올 테니 절대 걱정하지 말게.”
목진은 첨대유리의 반응에 바로 입을 열었다.
“내 가족만 구해낸다면 최선을 다해 대라천역에 보답할 것이네!”
첨대유리는 그제야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첨대유리!”
“신각에서 심혈을 기울여 너를 배양해 전진사가 되게 해줬건만 감히 우리를 배신하는 건가!”
신각 사람들은 순간 너무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특히, 4대 각주가 첨대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만다라 등만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첨대유리를 죽였을 것이다.
이에 첨대유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양은 무슨. 신각에서 내가 전의에 관한 천부적 재능이 있는걸 발견하고 몰래 내 가족을 죽여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한 것뿐이네. 그런데 당신들은 여전히 불안해 내 동생한테 독을 먹여 폐인을 만들었지. 내가 계속 신각을 위해 움직이도록 말이야.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는데 잊을 리가 있겠나? 그러니 난 신각이 이 지경이 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신각도 자기 만행에 죗값을 치를 때가 되었네!”
첨대유리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신각 사람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는 이제야 울분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신각의 4대 각주는 순간 말문이 막혀 첨대유리를 쏘아보다가 뭐라 하려 했다. 그런데 때마침 만다라가 옷깃을 휘날려 무서운 영력 위압감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울컥 피를 토했다.
“허허, 훌륭한 부하를 영입한 것을 축하하네, 대라역주.”
만성노조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만다라는 아부를 떠는 만성노조의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더니 아직 태도를 밝히지 않은 나머지 지지존들을 쓰윽 훑었다.
“신각 각주가 죽었으니 신각도 더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신각의 영토는 어떻게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나?”
만다라의 말에 만성노조, 유천도, 요제 등은 흠칫했다. 신각은 북계의 최강 정예 세력이었는지라 보물과 영토가 엄청났다. 그 자원을 나눠 가지면 세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수렵전에서 몰락한 정예 세력의 땅과 자원은 실력에 근거해 나누었고 보통은 신각이 가장 많은 양을 가져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라천역이 다른 정예 세력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만다라의 결정에 달렸다.
“대라역주의 생각은 어떤가?”
지지존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만성노조가 입을 열었다. 만다라는 그들의 반응에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라천역은 신각 영토의 절반과 자원의 절반을 가질 걸세.”
절반이라니!
만성노조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럼 다른 정예 세력에서 나머지 절반을 나눠 가져야 한단 소리인데 그리되면 결국 수중에 들어오는 건 1할도 안 될 것이다.
목진과 구유도 만다라의 말에 몰래 혀를 내둘렀다. 지존영액으로 치면 신각 보물의 절반은 적어도 천만 방울정도일 텐데 대라천역에서 정말 이걸 얻을 수 있다면 횡재한 거나 다름없었다.
또한, 신각의 영토 중 절반은 대라천역이 차지한 모든 영토보다 많아 이를 획득하면 대라천역은 확실히 북계의 최강 정예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대라역주, 너무한 것 아닌가?”
유명궁 궁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러분, 내가 북계의 규칙을 다시 설명해줘야 하는가?”
그런데 만다라는 지지존들의 뜨거운 눈빛을 전부 무시한 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북계에서는 강자가 제일이라 실력이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했고 다들 이 규칙을 지켜왔다. 이제 대라천역이 신각을 대체해 북계의 최강 세력이 되었으니 한몫 크게 챙기는 건 정상이었다.
만성노조 등은 언짢았지만 만다라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게. 내가 따로 의논할 일이 있으니 말이야.”
만다라는 조용히 서 있는 지지존들을 보더니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 무슨 일이 있단 말인가?”
“난 여러분과 동맹 협의를 체결할까 하네.”
“동맹 협의라니?”
만다라의 말에 지지존들은 흠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물었다.
“설마 대라역주께서도 신각 각주처럼 북계를 통일하려는 건가?”
이에 만다라는 언짢은 듯 입을 삐쭉 내밀며 답했다.
“그딴 짓은 하고 싶지도 않네.”
만성노조 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다라가 신각 각주처럼 북계를 통일하려고 한다면 북계에 분명 큰 파동이 일 것이고 정예 세력들도 버텨내기 힘들 것이었다.
그때 만다라가 성진진마탑을 다시 꺼내 말을 이어갔다.
“이 물건이 상고의 천궁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는 건 다들 잘 알 것이네.”
“그런데 상고의 천궁이 일단 나타나면 천라대륙의 모든 정예 세력이 몰려올 거라 대라천역 혼자서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네.”
만성노조 등은 순간 두 눈이 초롱초롱해져 만다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서 당신들과 동맹 협의를 맺고자 하는 것이네. 내가 상고의 천궁 유적지를 찾아내면 우리가 함께 나서 다른 세력을 물리치도록 하세. 그럼 상고 천궁의 물건은 우리끼리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 제안이 어떤가?”
만다라의 말에 만성노조 등은 눈이 빨갛게 상기되더니 믿기 어렵다는 듯 재차 물었다.
“정녕 우리와 상고 천궁의 자원을 공유하겠단 건가?”
일반 지지존은 절대 상고의 천궁을 찾아낼 수 없는데 만다라가 그 엄청난 기회를 준다고 하니 다들 화들짝 놀랐다.
“우리가 상고의 천궁을 찾아낼 수는 있으나 혼자 꿀꺽할만한 실력을 갖춘 건 아니라네.”
만다라는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북계는 천라대륙의 일부일 뿐이었고 대라천역은 절대 천라대륙의 최정예 세력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하여 만다라는 북계의 다른 정예 세력과 협력해야만 비로소 천라대륙의 최정예 세력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가? 의향이 있는가?”
만다라가 다시 묻자 만성노조 등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대라역주가 우리한테 기회를 준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네!”
만다라는 그제야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럼 신각은 어떻게…….”
“대라역주가 원하는 대로 합시다!”
만성노조 등은 더 이상 언짢아하지 않았다. 상고 천궁의 유적에 비하면 신각의 자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맙네!”
목진은 만다라 등이 대화만으로 신각의 운명을 결정한 것에 조금 놀랐다. 아무리 강한 신각이라도 주인이 죽으면 맹수에서 사냥감이 되어 반항 따위는 할 수조차 없었다. 목진은 이토록 잔혹한 현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와 동시에, 목진은 자신이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언젠가 만다라처럼 강해지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후우.
목진은 고개를 들고 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건 이번 대수렵전은 완전히 막을 내렸고 대라천역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었다.
북계를 들썩였던 대수렵전은 몇 개월을 걸쳐서야 드디어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놀라운 결과에 다들 적잖게 놀랐다.
신각 각주가 죽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북계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북계의 최정예 강자가 이리 허무하게 죽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수렵전에서 정예 세력이 몰락한다고는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북계의 최강 세력이 사라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신각 각주를 잃은 신각은 다른 세력들한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고 그들만으로는 절대 신각을 지켜낼 수 없었다. 이에 다들 신각의 자원을 호시탐탐 노렸으나 자원의 분배는 피 튀기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대라천역에서 신각의 자원 절반을 가져가자 흠칫 놀랐다. 그리고 그제야 이번 대수렵전에서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잇따라 만다라가 반보 상위 지지존에 이르렀다는 소식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반보 상위 지지존이라니?
놀라운 소식에 사람들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는 대라천역의 실력이 다른 정예 세력을 훌쩍 뛰어넘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계에서 대라천역은 진정한 최강 세력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북계 최강 세력은 대라천역을 보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아무도 북계의 패주나 다름없는 대라천역을 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목진도 함께 유명해졌다. 이번 대수렵전에서 대라천역이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목진 때문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절대 이런 결과를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은 대수렵전에서 전진사가 되어 대라천역 군사들을 거느리고 운락 전장을 휘젓고 다녔고 신각 각주마저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밖에 북계에서 유명한 신각의 방의, 유명궁의 유명 황자 등 젊은이 중 정예였던 이들은 이번 대수렵전에서 목진의 들러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여 대라천역이 북계 제일의 세력이 되자 목진도 방의를 대신해 진정한 용봉록 패주가 되었고 북계 젊은이들의 최강자가 되었다. 이제 더는 그의 놀라운 성과를 의심하지 않았다.
* * *
북계는 신각의 몰락으로 떠들썩해졌고 대라천역은 대수렵전을 마친 뒤로는 잠잠할 날이 없었다.
그들은 신각 자원 중 절반을 받아와야 했는데 아무리 대라천역이라도 그 넓은 땅과 보물들을 짧은 시간 내에 다 차지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신각의 부속 세력들이 꼼수를 쓰는 바람에 상황이 복잡해졌고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하지만 3황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제압한 덕분에 큰 파란은 일으키지 못했다.
난동을 부린 세력들은 신각에 무한 충성한다기보다 대라천역 휘하에 들어가면 손해를 볼까 봐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러나 대라천역의 예외 없는 수단을 보더니 자신들이 행동이 대세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들은 순순히 대라천역의 명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고, 안 그러면 북계에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라천역의 명망이 높아졌고 따르려는 세력들도 많아져 대라천역은 점점더 강대해졌다.
대라천역이 신각 자원의 절반을 모조리 건네받는 데는 한 달이 걸렸다. 비록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지만 녀석들은 큰 동란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신각 영토의 절반을 꿀꺽 삼킨 뒤, 만다라와 3황은 새 사람들에게 바로 중임을 부여하지 않고 대라천역의 고위층을 선택해 새로 영입한 세력과 영토를 책임지게 했다.
대라천역은 무사히 과도기를 넘기며 새로 건네받은 땅과 부속 세력을 진정한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안정기에 들어서면 북계에서 더이상 대라천역을 따르지 않을 세력은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북계의 진정한 패주가 될 것이다.
* * *
대라천역, 대라천, 구유궁.
대라천역의 확장에 따라 구유궁도 전보다 훨씬 커졌고 강자의 수도 대폭 늘어나 휘하의 도성만 해도 600개가 훌쩍 넘어갔다.
이에 구유궁의 규모는 왕 중 으뜸이 되었다. 아무리 수라왕이라도 더는 구유궁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만다라의 처사에 반대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대수렵전에서 대라천역이 승자가 된 것은 전부 목진 덕분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목진은 성진진마탑까지 만다라한테 넘겼다. 하여 다들 구유궁 세력이 넓어지는 게 부러웠지만 이건 목진과 구유궁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었다.
구유궁 사람들은 휘하에 관리할 도성이 부쩍 늘어나 무척 기뻤지만 어려움도 있었는데 당빙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당빙의 지휘 아래 구유궁에 많은 강자를 영입한 덕분에 한 달 만에 600개나 되는 도성을 완전히 접수할 수 있었다.
앞으로 구유궁이 휘하 도성들한테서 받는 공양만 해도 지존영액 수십만 방울은 될 것이다.
구유궁이 대폭 확장되긴 했지만 구유궁 깊숙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몇 명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