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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04화 (603/1,000)

604화. 유청

천작 장로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만다라를 쳐다봤다.

“대라 역주, 이건 구유족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니 부디 저 아이를 넘겨주게. 구유족은 절대 오늘 일을 잊지 않을 것이네!”

“그건 불가능하네. 목진은 대라천역을 위해 엄청난 전공을 세웠으니 누구든 내 구역에서 저 아이를 건드린다면 대라천역과 적이 되겠다는 것으로 알겠네!”

만다라는 천작 장로를 힐끗 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그 결연함에 상대방은 흠칫 놀랐다. 천작 장로는 만다라가 이렇게까지 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

“대라 역주, 고작 5급 지존 때문에 구유족과 싸우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천작 장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라천역이 생각보다 강하게 밀어붙이긴 해도 역사가 유구한 구유족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라천역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 하나 지켜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북계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 이참에 해산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리고 구유족이 존재한 지 오래되긴 했지만 대라천역을 쓰러뜨리려면 지지존 여러 명이 죽어야 할 것이고 그중에 당신, 천작도 있을 것이네!”

만다라의 살기 가득한 말에 천작 장로는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대라역주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작 5급 지존 하나 때문에 대라천역 전체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구유족이 아무리 역사가 유구한 종족이고 실력이 대라천역보다 뛰어나도 지지존 여러 명을 잃는 것은 엄청난 타격이었다.

지지존의 실력자는 천만년이 지난 지금이라 할지라도 몇 명 없기에 한 사람이라도 잃으면 구유족에게는 상당한 손해였다.

“천작 장로님!”

그때 구유도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과거 중상을 입었을 때, 목진이 아니었다면 전 이미 죽었을 거예요. 저 아이는 구유족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정녕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건가요?”

“구유야, 네가 착한 아이란 것은 나도 잘 안단다. 그런데 구유족에서 혈맥이 가장 순수한 사람으로서 혈맥을 연결해도 고귀한 혈맥이 있는 신수와 연결해야지 저토록 평범한 소년과 혈맥을 연결하면 어떡한단 말이냐? 이건 저 아이한테도 좋은 일이 아니란다.”

“평범하다고 했는가?”

만다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현재, 북계 용봉록의 패주이고 북계 젊은이 중에서 저 아이를 따라올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네.”

천작 장로와 그 뒤에 서 있던 유청은 흠칫했다. 두 사람은 목진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청년일 줄은 몰랐다.

“북계는 제법 크던데 여기 젊은이들이 그렇게까지 무능할 줄은 몰랐군. 구유족 젊은이 중에서 5급 지존경은 기껏해야 괜찮은 정도인데 여기서는 패주라니, 참으로 우습군.”

천작 장로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투덜거렸다. 그는 북계의 용봉록이란 순위권이 미덥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목진은 이런 천작 장로의 발언에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제가 북계 용봉록의 패주가 된 것에 운이 따른 건 부정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시험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목진은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천작 장로를 상대로 마냥 숨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만다라가 구유족을 정면으로 상대하면 압박이 상당할 걸 잘 알고 있었고 최대한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지존인 천작 장로를 상대로 함부로 덤비지는 않았다. 하위 지지존이 5급 지존을 없애는 건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천작 장로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남은 건 그 뒤에 서 있는 유청이란 청년뿐이었다. 보아하니 유청은 구유와 실력이 비슷했는데 진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제아무리 6급 지존이라도 절대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천작 장로는 목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간사한 아이로구나. 내가 나서면 아무도 널 살릴 수 없을 거란다. 그런데도 감히 이렇게 나서다니. 오늘, 네 진정한 실력을 확인해 보자꾸나!”

“유청!”

“네!”

청색 도포를 입은 훤칠한 청년이 나서며 외쳤다.

“열 차례 공격으로 녀석을 쓰러뜨리거라!”

말을 마친 천작 장로는 만다라와 3황한테 고개를 돌렸다.

“후배들 대결에 간섭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목진이 평범한 사내란 걸 증명한 뒤, 이 소식을 구유족에 알리면 장로들이 구유족 천재의 혈맥을 더럽힌 무능한 인간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때가 되면 대라천역에서도 감히 나서지 못할 것이다.

이에 만다라와 3황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작 장로는 구유족을 대표해 온 사람이라 무작정 밀어붙일 수 없었다. 더구나 천작 장로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유청을 출전시켰으니 더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잇따라 만다라는 유청을 힐끗 쳐다봤는데 녀석이 구유족 젊은이 중 실력이 제법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너무 오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단 열 번의 공격으로 목진을 제압하려 하다니,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목진을 무시한 사람 중 단 한 사람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만다라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역시 대라 역주는 통쾌하군.”

천작 장로는 만다라의 묵인에 흐뭇하게 웃더니 뒤쪽에 서 있는 유청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청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나서려 했는데 구유가 갑자기 앞을 막아 나서며 그를 쏘아보았다.

“구유 전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전 그저 녀석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것뿐이에요.”

유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유야, 넌 이 일에 개입하지 말거라! 저 녀석이 네 뒤에 숨어 살아가는 거라면 너무 무능한 것 아니냐? 이 일을 네 아버지께서 아셨다고 해도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천작 장로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난 네가 너무 창피해 고개를 들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 타이르려고 나선 거야.”

구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청은 미간을 찌푸리며 구유를 넘어 목진에게 향했다.

순간, 뜨겁고 난폭한 영력 파동이 요동쳤고 눈빛은 더 날카로워졌으며 영력 파동으로 인해 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체내에서 놀라운 기를 내뿜었다.

3황은 유청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흠칫했다. 대라천역 왕 중에서 수라왕만이 녀석을 겨우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유족의 젊은이는 역시 남달랐고 천작 장로가 우쭐거릴 만했다.

한편, 유청은 목진과 10장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더니 목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이리 나섰네.”

정작 목진은 녀석의 말을 못 들은 척 태연하게 서서 한쪽 손을 내밀더니 살짝 굽히며 말했다.

“대라천역의 목진이네. 잘 부탁하네.”

유청과 목진은 영력을 끌어올리며 서로를 쏘아봤는데 두 사람이 내뿜은 강력한 영력 파동에 주위 공기가 진동하며 소리를 냈다.

유청은 그의 기세에도 전혀 꿀리지 않는 목진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는 목진이 5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어찌 이토록 강력한 위압감을 형성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목진이 겁이 많든 용맹하든 소년을 쓰러뜨리면 그만이었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두 사람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실감하며 더는 까불지 않을 것이고 구유의 일에 감히 입도 놀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큰 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혈맥 연결을 풀 것이다.

“자네가 정말 실력이 좋았으면 하네. 안 그럼 구유 전하의 고귀한 혈맥을 더럽히는 것이니 말이야.”

유청은 목진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더는 말을 섞지 않고 주먹을 꽉 쥐었는데 순간 체내에서 난폭하고 뜨거운 영력 파동이 폭발해 주위가 점차 뜨거워졌다.

퍽!

그러다 유청이 발을 힘껏 구르자 대지가 파르르 떨리며 그의 발아래에서 화염이 폭발해 단단한 청석반에 균열이 일었고 그는 어느새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녀석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목진의 오른쪽으로 다가가 선홍색 영력을 두 손가락에 모았는데 그 엄청난 고온에 공간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유청은 목진을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공격에 일반 5급 지존은 물론이고 6급 지존경에 이른 강자가 적중하면 육신은 엄청난 고온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것이다.

“허허, 유청의 적염령지(赤炎靈指)가 날따라 정진해지는구나.”

천작 장로는 유청의 공격에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만다라, 3황, 구유 등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목진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상대방이 5급 지존경 밖에 안 된다고 목진을 무시했다가는 분명 큰코다칠 거라고 확신했다.

한편, 목진은 상대방의 공격을 보더니 덩달아 두 손가락을 굽히며 내밀었다.

순간, 그의 몸에서 금광을 발하더니 용음과 함께 자금색 용문이 손가락에 나타났다.

“용봉체, 진정한 용의 무늬!”

황금으로 빚은 것 같은 손가락이 공간을 가르며 적염령지와 부딪치자 영력 충격파가 폭발해 두 사람이 서 있는 지면은 와르르 무너졌고 견고한 청석반은 와장창 깨졌다.

피식거리던 유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난폭한 상대방의 힘에 깜짝 놀랐다.

또한, 목진의 손은 상당히 견고했다. 유청은 신수라 손가락이 일반 신기보다 단단해 심혈을 기울여 육신을 수련한 사람이라도 절대 상대가 안 되는데 목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네놈의 육신은 왜 이토록 강력한 거지? 그러나 제아무리 강해 봐야 신수인 나보다 강할까!”

유청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고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수많은 잔영을 이뤄 목진 주위를 감쌌다.

슉! 슉!

이와 동시에, 목진도 사정없이 금광을 발하는 손가락을 내밀어 잔영을 공격했다.

퍽! 퍽! 퍽!

손가락과 그림자가 부딪쳐 영력이 폭발하자 주위의 바닥에 깊숙한 흔적이 생겨났는데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유청이 남긴 흔적은 난폭하고 뜨거웠으며 주위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반면, 목진이 남긴 흔적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 반듯했고 상당히 날카로웠다.

쿵!

목진의 지풍과 마지막 잔영이 부딪치자 난폭한 충격파가 폭발해 두 사람 모두 뒤로 튕겨 나갔다.

목진은 뒤로 수십 장 정도 물러나서야 겨우 멈춰 서서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는데 그 모습에 유청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역시 북계 젊은이 중 최강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군.”

유청은 서서히 손을 들어 팔에 자그마한 혈흔이 생긴 것을 확인하더니 가볍게 흔들었는데 선홍색 화염이 활활 타올라 상처를 치유했다. 신수의 놀라운 회복력은 역시 대단했다.

이에 목진도 피식 웃었는데 피를 흘리던 손가락에서 금광을 발하더니 그 역시 상처가 가볍게 아물었다.

목진의 용봉체도 신수의 육신 못지않게 강력했다.

일전의 대결에서 용봉체의 힘을 빌려 유청의 예리한 공격을 전부 받아냈지만 목진 역시 상대방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목진의 생각대로라면 유청은 이미 6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다. 이는 수라왕보다 조금 뒤처질 뿐이라 방의나 유명 황자 보다 훨씬 강했다.

유청도 일전의 대결로 더는 목진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5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이렇게까지 놀라운 전투력을 자랑하다니 목진은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유청이 시험 삼아 공격했듯 목진도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을 거라 여겼다.

“흥미롭군.”

유청은 전의로 불타올랐고, 그는 자신과 겨뤄볼 만한 상대를 만난 것이 제법 마음이 든 모양이었다.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유청의 옷깃이 퍼덕이더니 난폭하고 뜨거운 영력이 화산처럼 폭발했고 이는 유청의 뒤쪽에 모여 수천 장 정도의 커다란 적조를 이뤘다. 온몸에서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적조가 내뿜는 고온에 하늘의 구름마저 증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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