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610화 (609/1,000)

610화. 구유계(九幽界)

구유대륙(九幽大陸)은 북계와 비슷했고 대천세계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는데 그건 대륙의 주인인 구유족 때문이었다.

구유족은 강대한 실력과 더불어 존재한 지 오래되어 대천세계의 진정한 일류 세력이라 말할 수 있었다.

반면, 대라천역은 북계에서는 영락없는 정예 세력이지만 드넓은 대천세계에서 놓고 보면 일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류 세력은 지지존 한 사람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만다라가 이미 상위 지지존이 되었다고 해도 대라천역은 절대 일류 세력이 될 수 없었다.

대천세계의 일류 세력은 세력 전체의 실력을 보는지라 지지존이 한 사람은 더 나와야 일류 세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천세계에서 구유족은 대라천역보다 훨씬 유명했고 실력 차이도 엄청 났다.

사람들은 구유대륙 전체보다는 대륙의 중심에 있는 구유계를 대단하게 생각했는데 구유계는 대천세계에서 독립된 위면 공간으로 구유족 조상의 땅이기도 했다.

원고 시기, 구유족도 하위면에서 올라온 종족으로 처음엔 전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실력이 막강한 선조들이 나타난 뒤로 대천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유족이 전성기였을 때는 족장이 3대 연속 천지존이었다. 그때는 봉황족마저 구유족을 동급으로 여겼다.

또한, 구유계는 구유족이 생활하던 하위면으로 그들이 엄청난 수단을 이용해 대천세계와 연결한 후에야 구유족 조상의 땅이 되었다고 전해졌다.

대천세계는 수많은 하위면과 연결되었고 위면의 한계를 넘고 대천세계에 올라온 강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극소수 행운이 따른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천부적 재능과 의지로 대천세계에서 적응해 나가면서 자기만의 눈부신 빛을 발하곤 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과를 이룬 이들이 바로 무한의 화역 염제와 무경의 주인인 무조였다.

이 두 사람은 대천세계에서 최정예 강자일 뿐만 아니라 휘하의 세력도 대천세계의 최상급 세력으로 다들 우러러보는 존재이다.

염제와 무조는 강제로 자신이 몸을 뒀던 하위면과 대천세계를 이은 뒤, 그 통로를 각각 무한의 화역과 무경에 접목해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구유족이 구유계를 대천세계와 연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목진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구유계였다.

* * *

구유계, 구유산(九幽山).

구유계에 떠 있는 구유산은 대륙처럼 방대하기 그지없었는데 이 곳이 바로 구유계의 성지이면서 조상의 땅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첫 번째 구유작이 구유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커다란 산맥에서 오래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새들이 하나같이 울부짖어 천지가 들썩였으며 그 중심에 산맥 하나가 경천의 기둥처럼 우뚝 솟아올랐다.

구름이 자욱한 정상에는 커다란 청석 광장이 있었는데 주위 산맥에 수많은 사람이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광장 중심의 맞은편에 있는 가파른 절벽에는 거대한 석좌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천지마저 파르르 떨 만큼 웅장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구유족의 장로들이었다.

또한, 청석 광장에는 두 사람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는데 각각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이는 절대 오만함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었다.

그때 오래된 석좌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는데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보니 장로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소란이 벌어진 듯했다.

하여 두 사람뿐만 아니라 광장 주위에 모인 구유족 사람들 모두가 석좌 쪽을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구유는 구유족에서 천년 만에 나타난 천재로 가장 순수한 불사조의 혈맥을 지녔네. 우리 종족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기회를 쥔 사람인데 인간 따위가 어찌 망치게 놔둘 수 있겠는가!”

청색 도포를 입은 장로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목진을 지금 잡아 오게. 구유족의 밀법으로 구유와의 혈맥 연결을 없애야 하네!”

“나도 그리 생각하네. 대라 역주가 아무리 대단해도 목진 한 사람 때문에 구유족을 적으로 돌릴까!”

다른 한 장로도 동의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때 천작 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목진도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년으로 진정한 봉황의 혈맥을 획득하였다네. 그래서 목진이 강아(姜犽)와 진현(秦玄)을 이길 수만 있다면 구유족을 대표해 신수지원에 들어가 구유를 도와 원고의 불사조의 혈맥을 얻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네.”

그러나 청포 장로는 천작 장로의 말이 미덥지 않은 듯 피식 웃었다.

“천작, 목진은 5급 지존경 밖에 안 돼 분명 강아와 진현한테 사정없이 짓밟힐 것이네. 그러니 그가 구유족을 대표해 신수지원에 들어간다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분명 짐이 될 텐데 일을 그르치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그리고 이미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을 보면 두려워서 감히 찾아오지 못하는 게 분명하네. 그따위 겁 많은 녀석을 믿는다는 것은 구유의 순수한 혈맥을 더럽히려는 거나 다름없네!”

천작 장로는 쏘아붙이는 청포 장로 때문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지만 계속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묵묵히 광장의 중심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황금색 석좌가 놓여 있었고 중년 사내가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그한테서 무서운 위압감이 형성되어 주변 공간마저 응고되는 것 같았다.

그 중년 사내가 바로 구유족의 족장, 천황(天荒)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구유가 서 있었는데 장로들의 말다툼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족장님, 이 일은 최대한 빨리 결론을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수지원이 곧 나타날 거라 강아와 진현 중에서 최후의 1인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겁먹고 숨어든 녀석을 기다린다고 시간을…….”

청포 장로의 말에 다른 장로들도 천황 족장한테 고개를 돌렸고 구유족 사람들도 모두 족장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다들 두 달간의 기다림과 끊임없는 말다툼을 끝내고 싶었다.

그때 천황 족장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얼굴이 창백해진 구유를 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소년은 구유의 생명의 은인이고 천작 장로가 한 말도 있으니 약속은 지켜야 한다. 목진이 하루 내로 구유계에 나타나 강아, 진현과 싸워 이긴다면 난 신수지원에 들어갈 마지막 한 사람을 목진으로 정할 것이다.”

천황은 이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대신, 소년이 겁에 질려 숨어든다면 구유족에서는 순수한 혈맥을 더럽힌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전력을 다하여 녀석을 잡아 올 것이고 대라 역주가 막아 나선다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천황의 우레와 같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구유족 사람들은 그 속에 깃든 살기에 흠칫 놀랐고 장로들도 더는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족장의 결정에 동의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정작 구유는 목진이 일단 대라천역을 떠나면 구유족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를 찾아내기 힘들 거라 여겼다. 그리고 목진이 충분히 강해졌을 때, 다시 찾아오면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구유는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다.

‘지금쯤, 목진은 이미 대라천역에서 멀어졌겠지?’

그런데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천황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을 부릅뜨고 허공을 쳐다봤다. 그러자 하늘이 한껏 일그러지더니 공간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그 속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람들은 바로 눈길을 돌렸고 그 정체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잇따라 명쾌한 목소리가 구유산 전체에 퍼졌다.

“안녕하세요, 대라천역의 목진이에요.”

광장에 있던 두 사람도 눈을 번쩍 뜨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겁쟁이가 드디어 나타났단 말인가?

청석 광장의 위쪽에 형성된 공간 소용돌이에서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 명은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로 무서운 위압감을 내뿜었는데 구유족 강자들은 장로들보다 더 강한 위압감에 흠칫 놀랐다.

그리고 소녀 옆에는 늘씬한 사내가 서 있었다. 훤칠한 외모에 또렷한 눈매를 가진 소년은 구유족의 강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저 사람이 바로 구유 전하와 혈맥을 연결한 인간, 목진이란 말인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감히 구유족에 오다니! 목진은 절대 강아와 진현을 이기지 못할 것이네.”

“인간 따위가 감히 구유족 천재를 쓰러뜨리려 하다니, 참 겁도 없지.”

* * *

사람들은 목진을 훑어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목진을 무시하는 눈치였다. 구유와 혈맥을 연결한 일로 구유족에서 목진은 상당히 유명해졌다.

특히, 두 달이 거의 다 돼가는데도 나타나지 않아 다들 그가 겁을 먹고 도망갔다고 여겼다.

광장 앞쪽에 놓인 석좌에 서 있던 구유작 장로들도 예리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네가 바로 목진이냐?”

천작 장로의 말에 반기를 들었던 청포 장로가 칼 같은 눈빛으로 목진을 훑어보며 물었다.

“네가 정말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이리 왔으니 구유와의 혈맥 연결을 없애고 가거라!”

다른 장로들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그들은 목진의 일로 오래도록 싸웠지만 그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저 녀석이 불사조의 혈맥이 가장 순수한 구유와 혈맥을 연결했단 말인가? 보아하니 특별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무슨 수로 구유족의 천재를 이긴단 말인가?

광장 중심에 앉아 있던 천황 족장도 목진을 훑어봤다. 무뚝뚝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옆에 서 있던 구유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목진의 등장에 실망은커녕 왠지 기뻤다.

머리로는 목진이 구유족에서 멀어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목진이 와주길 바랐던 모양이었다.

구유는 아버지를 힐끗거렸다. 이 일은 결국 구유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거라 만약 목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그가 구유족의 완벽한 혈맥을 더럽히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험이 풍부한 천황 족장은 목진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 구유는 조금 걱정되었다. 그녀는 혹시라도 목진이 아버지께 미움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때 허공에 서 있던 만다라가 청포 장로를 쏘아보며 피식 웃었다.

“목진은 대라천역 사람이고 오늘 내가 이 아이를 구유족에 데려왔으니 갈 때도 반드시 데려갈 것이네.”

이에 청포 장로가 히쭉거리며 말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대라 역주 따위가 감히 구유족에서 그따위 말을 하다니! 함부로 끼어들었다가 대라천역이 어찌 될지는 나도 장담 못 하네!”

말을 마친 청포 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무서운 영력 위압감이 휘몰아쳐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광풍이 일었다.

잇따라 그의 뒤에 도천의 영력이 요동치더니 커다란 염작을 이뤘고 녀석은 울부짖으며 놀라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청포 장로는 만다라의 기를 죽이려고 선수를 쳤다. 일단 만다라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목진의 실력으로는 절대 구유족에서 내린 결정을 번복할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은 상대방이 형성한 위압감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고 몸이 산 한 채를 떠안은 것처럼 무거워졌으며 체내의 영력 순환이 매우 느려졌다.

“흥!”

이에 만다라도 이내 정색하더니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나섰는데 아래쪽 공간은 유리 깨지듯 와장창 깨지며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그 파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청포 장로의 위쪽에 나타난 커다란 염작을 감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