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천라진
커다란 청석 광장에 깊숙한 흔적이 양쪽으로 쭉 뻗어있었고 그 끝자락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바닥에 박힌 발을 꺼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목진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목진이 육신만으로 진현의 공격을 막아내어 다들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그때 바닥에서 발을 꺼낸 진현도 목진을 한참 쳐다봤는데 두 눈에 경계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한번의 대결로 그는 소년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느꼈다. 신수의 육신에 실력도 목진보다 강한데도 대결에서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진현은 목진이 전력을 다해 상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라고 판단했다.
“내 오산이었군.”
진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별말씀을.”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진현의 실력은 역시나 강력했다. 목진 역시 용봉체를 한껏 끌어올렸는데도 진현과의 육박전에서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다.
일전에 유명 황자 등과 싸울 때, 육박전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는데 이번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신수의 육신은 역시나 엄청났다.
“내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할 것이네.”
말을 마친 진현이 다시 정색하며 발을 힘껏 구르자 체내에서 한빙 돌풍이 솟구치더니 뒤쪽에 거대한 새를 이뤘다.
끼익!
한빙으로 만들어진 새는 나타나자마자 날개를 떨쳤는데 순간,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이와 동시에, 한기 어린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강력한 영력 위압감이 확산되었다.
“진현이 신수를 소환했다니, 인제 더는 봐주지 않겠군.”
“목진도 제법이군. 진현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다니 말이야.”
“진현이 신수까지 소환했으니 이번 대결 결과는 뻔하네.”
* * *
한빙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새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다시 수군대기 시작했고 구유족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들은 진지해진 진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구유한작이라…….”
목진도 고개를 들어 진현 뒤쪽에 나타난 방대한 빙작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건 진현의 본체로 구유명작과는 완전히 다른 신수였다. 그렇다고 구유명작보다 실력이 뒤처진다는 말은 아니었다. 녀석의 극한의 힘도 상당히 강했다.
진현은 이제야 대결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에 목진이 정색하며 주먹을 꽉 쥐자 손끝에서 영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슉!
한편, 구유한작의 방대한 몸 위에 올라탄 진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는데 눈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래된 눈꽃 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빙궁으로 변했다.
빙궁을 쥔 진현이 내뿜는 기는 본체를 소환하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 녀석이 목진을 쏘아보며 신속하게 활을 당기자 눈꽃이 휘몰아치며 십수 장 정도의 눈꽃 화살을 이뤘다. 파란색 한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눈꽃 화살의 끝에서 공간을 뚫을 듯 예리한 기운을 방출했다.
치익.
진현은 활을 힘껏 당겨 목진한테 화살을 쏘았다.
퍽!
구경꾼들은 한 갈래 백광이 하늘을 가르며 목진의 미간으로 향하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화살의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목진도 그 엄청난 속도에 소름이 끼쳤지만 바로 마음을 다잡고 순간 발을 힘껏 굴러 왼쪽으로 몇 장 정도 이동했다.
쿵!
목진이 물러나기 바쁘게 백광은 그가 서 있던 곳을 공격했고 바닥이 와장창 깨지며 커다란 구멍을 냈는데 그 속은 한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새 수십 장 밖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목진은 깊숙이 파인 바닥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 주위 암석은 이미 무서운 한기가 스며들어 가볍게 치기만 해도 바로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눈꽃 화살의 위력은 엄청났고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목진은 전력을 다해서야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한작 위에 서 있는 진현이 다시 활을 당겼는데 이번에는 표면에 오래된 빛의 무늬가 새겨진 화살이 세 개였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백광 세 갈래가 하늘을 가르며 목진에게 향했다.
이에 목진이 용봉체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몸에서 황금빛을 발하더니 잔영이 나타났는데 눈꽃 화살은 바로 잔영을 뚫고 지나갔다.
퍽! 퍽! 퍽!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다시 한빙 구멍이 나타났고 목진은 조금 휘청이며 먼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진현은 무덤덤하게 목진을 바라보더니 다시 활을 당겼고 이번에는 화살이 다섯 개나 생성되었다.
이에 목진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진현의 공격을 그대로 두면 목진은 언젠가 화살에 맞을 텐데 그때가 되면 대결은 끝이 날 것이다.
“진현의 원거리 전투력이 근거리 전투력보다 강할 줄이야.”
말을 마친 목진은 바로 진현한테로 다가갔고, 녀석이 더는 화살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진현이 목진의 반응에 가볍게 웃더니 발을 힘껏 구르기 시작했다. 잇따라 커다란 한작이 날개를 힘껏 펼치자 주위에서 폭풍이 휘몰아치더니 한작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그는 다시 활을 잡아당겼다.
퍽!
그중, 화살 한 개가 목진의 바로 앞쪽 지면에 꽂혀 한빙이 빠르게 퍼졌고 목진은 어쩔 수 없이 바로 방향을 바꿨다.
퍽! 퍽! 퍽!
목진은 진현의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진현한테 다가가려 하면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바로 앞쪽에 꽂혀 어쩔 수 없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며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그 광경에 구유족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껏 진현의 이러한 전술에 수많은 이들이 당했는데 그들은 대결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모양새도 상당히 초라했다.
보아하니 진현이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석좌에서 관전하던 구유족 장로들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현의 수법이 조금 과하긴 했지만 결과만 보면 대결에서 수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신수지원에서 만난 적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빌 것이다.
“대결의 결과는 뻔하군.”
청포 장로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강아는 아직 나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대로라면 목진은 절대 신수지원에 들어갈 수 없겠군.”
“바보야, 왜 대일불멸신을 소환하지 않는 거야…….”
구유는 주먹을 꽉 쥔 채 도망가기 바쁜 목진을 쳐다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지금 상황이 목진한테 상당히 불리했다.
구유는 목진이 너무 걱정되었다. 목진이 지존법신을 소환하면 바로 진현을 이길 수는 없어도 이렇게까지 낭패를 보지는 않을 텐데 왜 도망가기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그 옆에서 대결을 지켜보던 천황 족장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저 녀석…….”
천황 족장은 목진의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영력을 지면에 주입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한참 지켜보던 천황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장의 바닥 밑에 거대한 광진이 형태를 갖춰가는 것이 보였는데, 그 외에는 숨겨진 영진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건 설마…… 영진?”
“목진이 정녕 영진사란 말인가!”
천황 족장은 흠칫 놀랐다. 목진은 진현의 공격을 피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이를 핑계로 광장에 거대한 영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도망만 다니던 목진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발로 가볍게 바닥을 굴러 마지막 한 갈래 영력을 주입했다.
“드디어 포기한 건가?”
진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대결을 끝냅시다.”
말을 마친 진현이 다시 활을 당겼는데 이번에는 무서운 한기가 깃든 화살이 수십 개나 형성되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들고 활을 한껏 당긴 진현을 보더니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태껏 놀아줬으니 이제 끝낼 때도 되었지.”
말을 마친 목진이 발을 힘껏 구르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이 부서지며 광장에서 만 장 정도의 빛을 발했고 놀라운 영력 파동이 폭발했다.
“천라진을 소환한다!”
쿵!
거대한 청석 광장이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며 눈부신 빛을 발하자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구유족 사람들은 눈부신 빛이 진현을 감싼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목진이 뭔가를 한 것 같네!”
누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석좌에 서 있던 구유족 장로들도 깜짝 놀라 광장을 한참 살피더니 그제야 눈치를 챘다.
진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발아래에 형성된 균열에서 내뿜는 특이한 영력 파동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당황한 진현은 바로 구유한작을 소환해 그곳에서 물러나려 했다.
그는 그제야 목진의 도주가 눈가림일 뿐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목진이 광장에 뭘 했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얼른 전력을 다한 공격으로 목진과의 대결을 끝마치고 싶었다.
쿵!
이에 구유한작은 눈보라를 휩쓸며 신속하게 날아갔는데 진현을 바라보던 목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한쪽 손을 들었다.
위잉!
지면에서 아까보다 더 밝은 빛이 발하더니 수천 장 정도의 광막을 형성해 진현의 주위를 완벽하게 감쌌다.
슉! 슉!
이와 동시에, 광막은 수만 갈래의 빛줄기를 내뿜었는데 그 속에는 오래된 부적이 새겨진 거대한 쇠사슬이 깃들어 있었다.
빛줄기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구역을 뒤덮었다.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빛줄기에 흠칫 놀란 진현은 재빨리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빛줄기가 날아와 구유한작의 커다란 몸을 휘감았다.
쿵!
구유한작은 체내에서 눈부시고 난폭한 영력을 내뿜으며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빛줄기는 끄떡없었다.
구유한작은 그대로 손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에 진현은 혼자라도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휘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빛줄기가 빠르게 날아와 독사처럼 그의 사지를 휘감았다.
퍽! 퍽!
진현은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구속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빛줄기가 계속해서 날아와 그의 몸을 감싸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영진이라니!”
진현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나조차 바로 벗어날 수 없다니, 영진의 구속력이 엄청나군. 녀석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영진으로 내 손발을 묶어두고 날 쓰러뜨릴 계획이었어.”
진현은 그제야 목진의 계획을 알아챘다. 목진은 진현이 원거리 공격이 뛰어난 것을 발견하고 못 이기는 척 도망 다니며 몰래 구속 영진을 쳐 그를 완전히 구속한 것이다.
진현은 목진의 놀라운 수법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목진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바로 적을 쓰러뜨릴 방법을 알아내고 실행시켰다는 게 놀라웠다.
쿵!
그때 영진 밖에 서 있던 목진의 주위에서 금광이 폭발하더니 머리에 커다란 태양을 얹은 거대한 황금색 허상이 나타나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이는 다름 아닌 목진의 지존법신인 대일불멸신이었다.
잇따라 목진이 바로 인법을 바꾸자 대일불멸신의 방대한 몸에 황금색 태양 다섯 개가 나타나더니 한꺼번에 폭발했다.
쿠쿵!
지존신통, 오양창!
황금색 홍류는 신속하게 천 장 정도의 황금색 거창을 만들었는데 창끝에는 태양 다섯 개가 떠 오른 듯 무서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진현은 황금색 거창의 무서운 파동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는 그의 사지가 묶이지 않았어도 전력을 다해야 겨우 막아낼 수 있을 공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태라면 아마 중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목진이 너무 교활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처음부터 지존법신을 소환해 지존신통을 사용했다면 진현도 이렇게까지 낭패를 보지 않았을 것이고 목진한테 몰래 영진을 칠 기회를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