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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14화 (613/1,000)

614화. 묵봉(墨鋒)과 묵령(墨鈴)

“구유족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종족이다. 네가 강아, 진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으니 신수지원에 들어갈 마지막 1인은 너로 정하겠다.”

천황 족장이 의자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고 목진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수지원은 그한테 엄청난 기회이긴 했지만 구유를 돕는 것이 우선이었다. 목진은 이번 기회에 혼탁해진 구유의 혈맥을 다시 정화하고 싶었다.

목진은 자신 때문에 혼탁해진 구유의 혈맥을 다시 정화하지 못하면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고마워요, 천황 족장님!”

목진은 바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구유와의 혈맥 연결로 벌어진 사단을 조금이나마 수습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는 대라천역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고 구유도 종족과 목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 천황 족장이 가볍게 웃으며 목진한테 말을 건넸다.

“난 네가 여기 온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단다. 네가 강아 진현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목진은 순간 흠칫했다.

“사내가 되어서 사사건건 도망갈 줄밖에 모르면 천부적 재능이 아무리 많아도 대성할 수 없을 거란다.”

천황 족장은 만족한듯 목진을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약속했던 시간에 여기 오지 않았다면 난 반드시 너희 둘 사이의 혈맥 연결을 없앴을 거란다. 그리고 네가 어디에 숨었든 종족 전체를 움직여서라도 반드시 찾아냈을 것이다.”

“난 내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구유가 이번만큼은 사람을 제대로 본 것 같구나.”

말을 마친 천황 족장이 목진을 인정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구유족 장로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몇 년 동안, 천황 족장의 인정을 받은 구유족 젊은이는 10명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천황 족장의 말에 따르면 그는 목진이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던 구유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녀마저 아버지께서 목진을 이렇게 높이 살 줄 몰랐다. 그리고 목진이 자신이 바란 대로 대라천역을 떠나 도망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목진이 구유 아버지의 미움을 샀다면 그는 어떻게든 혈맥 연결을 끊어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구유는 괜히 목진을 힐끗거렸는데 정작 목진은 구유의 놀란 듯한 표정을 보고는 히쭉 웃었다.

목진은 구유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진이 위험해질까 봐 걱정되어 그리 말한 것뿐이었다. 아무도 목진이 정말 진현과 강아를 이기고 신수지원에 들어갈 최후의 1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때 두 사람의 눈빛이 오가는 것을 발견한 천황 족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수지원은 영수계의 중요한 장소로 기회가 많은 만큼 엄청난 위험도 따른단다. 원고 시기, 역외족은 신수지원을 부수면서 사기를 불어넣었고 그 사기는 아직도 남아있어 변고가 제법 있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계에 온 뒤로 역외사족의 사기를 여러 번 접한 그는 대천세계에 속하지 않은 힘이 얼마나 괴이하고 상대하기 어려운지를 잘 알았다.

“그런데 신수지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영수, 신수 종족의 천재들이란다. 그들은 신수지원의 보물을 얻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고 천만년 사이, 그곳에서 숨진 사람도 제법 있단다.”

목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결을 통해 그는 영수 종족, 신수 종족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파악했다.

강아와 진현은 유명 황자, 방의 등보다 훨씬 강한데도 구유족 젊은이 중 최강자가 아니었으니, 구유족과 실력이 비슷하거나 더 강한 종족의 천재들은 얼마나 강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여 이번에 구유를 도와 불사조의 신혈을 획득하려면 치열한 싸움은 불가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목진은 전력을 다할 것이다. 여태껏 구유의 도움만 받아왔으니 이제는 보답할 때가 되었다.

“이번에 구유족에서 신수지원에 들어갈 사람은 너를 제외하고도 세 사람이 더 있단다.”

천황 족장은 옆에 서 있는 구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구유는 이미 알고 있으니, 나머지 두 사람도 알아야겠지?”

목진은 구유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이 자못 궁금해졌다. 실력이 뛰어난 구유족 젊은이 중, 3위권에 드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슉!

천황 족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두 사람이 광장 밖에서 달려와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자 목진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으로 남자는 늘씬한 몸매에 훤칠하게 생겼지만 무뚝뚝했다. 그리고 목진이 아무리 쳐다봐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상대방한테서 느껴지는 극강의 압박에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뚝뚝한 사내의 실력은 수라왕과 비슷했고, 이미 7급 지존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왜소한 소녀는 보라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묶었는데 성격이 아주 쾌활해 보였다.

“난 묵령이라고 해요. 이쪽은 나의 오라버니인 묵봉이에요. 우리도 대결을 지켜봤는데 제법이던걸요?”

목진의 눈빛이 느껴진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목진을 훑어보더니 손을 휘익 저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목진도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전했는데 소녀의 실력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묵봉은 구유족에서 구유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충분히 신수지원에 들어갈 만한데 묵령은 6급 지존경으로 실력이 강아와 진현보다 못해 보이는데 어찌 4인 중 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때 묵봉도 고개를 돌려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최후의 1인이니 신수지원에 들어갔을 때만큼은 서로 벗이야. 잘 부탁한다.”

묵봉은 벗이라고 말했지만 표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차가웠다. 목진은 왠지 어색했지만 언짢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묵봉은 목진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성격이 무뚝뚝한 것 같았다.

“오라버니는 늘 저러니까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마세요.”

옆에 서 있던 묵령이 오빠를 대신해 해명에 나섰다.

“괜찮아.”

목진은 묵봉과 묵령 남매를 오늘 처음 봤지만 강아와 진현보다 훨씬 낫다고 느꼈다.

천황 족장은 목진 등이 인사를 마치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휙 저었다.

“열흘 뒤, 신수지원이 완전히 열리니 목진은 일단 구유족에서 머무르거라. 그때 가서 너희 넷은 함께 신수지원에 들어가 구유족을 위하여 싸워야 할 것이다!”

이에 목진, 묵봉, 묵령과 구유는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숙였다.

“족장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목진은 강아, 진현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신수지원에 들어가는 최후의 1인이 되었고 구유계에 남아 신수지원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열흘 동안, 목진은 구유한테 부탁해 조용한 곳을 찾아 수련에만 집중했다. 목진이 비록 강아와 진현과의 대결로 실력을 증명했다고는 하지만 구유족한테 이방인을 바로 받아들이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고 목진도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수련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나았다.

목진이 원고의 불사조의 신혈을 얻기로 한 것은 구유족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유를 돕기 위해서였다.

하여 목진은 구유계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구유족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고 구유가 가끔 들러 신수지원에 관해 알려주곤 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열흘이 지나갔다.

* * *

열흘째 태양이 천지를 밝히자 수련에만 집중하던 목진은 눈을 번쩍 떴고 그의 눈빛은 예리하게 빛났다.

창밖을 보니 구유산은 어느새 떠들썩해져 있었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수지원은 구유족의 큰 행사인 듯했다.

이에 목진이 정원으로 나가니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달려왔는데 그녀는 바로 구유였다.

“이만 가자, 신수지원이 곧 나타날 거야.”

목진을 바라보며 생긋 웃는 구유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혈맥 연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한 뒤로 그녀는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서인지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졌다.

이에 목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구유와 함께 우뚝 솟은 구유산 정상으로 향했다.

구유산 정상으로 향하는 이들은 목진과 구유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신수지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었지만 밖에서라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구유족 사람들도 바삐 움직였다.

목진과 구유는 1각 정도가 지나 정상에 올라갔는데 그곳은 이미 사람으로 넘쳐났다. 광장 중심에는 천황 족장이 뒷짐을 쥔 채 다른 장로들과 함께 서 있었고 만다라도 그 옆에 있었다.

목진과 달리 만다라는 구유족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 만다라는 상위 지지존인 데다 구유족은 물론이고 대천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강자이기 때문이었다.

묵봉과 묵령도 이미 와 있었다.

목진과 구유는 바로 달려가 묵봉 옆에 섰는데 무심한 묵봉과는 달리, 묵령은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천황 족장은 한곳에 모인 이들을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신수지원은 곧 나타날 것이니 나와 장로들이 공간을 가르면 너희들은 그 틈을 타서 들어가면 된단다.”

이에 목진 등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천황 족장이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수지원은 허무한 공간에 있고 들어가는 과정에 공간 난류를 만날 것이다. 일단 공간 난류에 휩쓸리면 바로 죽음이니 신수지원에 처음 들어가는 만큼 구유와 절대 멀어지지 말거라.”

“네.”

목진은 지금까지 위험한 곳에 적잖게 뛰어들어 신수지원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움직이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친 천황 족장이 하늘을 보며 최적의 시기를 노리고 있을 때, 만다라가 목진한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네가 신수지원에 들어가면 난 대라천역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네가 무사히 돌아오면 구유족에서 널 북계로 돌려보낼 줄 거야.”

만다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신수지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성진진마탑으로 상고의 천궁을 열심히 찾아볼게. 그리고 네가 돌아오면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게.”

만다라는 목진이 상고의 천궁에 있는 대일불멸신의 진화체 때문에 북계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목진의 도움에 보답하고 싶었다.

“고마워.”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만고불후신은 목진한테 너무 중요한 일이라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상고의 천궁을 찾아내 대일불멸신의 진화체 수련법을 얻고 싶었다.

“받은 게 있으면 베풀어야지.”

만다라는 생긋 웃으며 말하더니 바로 정색했다.

“그런데 이건 꼭 명심해. 상고의 천궁이 나타나면 천라대륙은 분명 떠들썩해질 거고 수많은 세력이 몰려올 거야. 네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치열한 싸움이 될 거야.”

“그리고 대일불멸신의 진화체의 수련법을 원하는 건 너뿐만이 아니야.”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갑자기 만다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사람이 목진 한 사람뿐만이 아니란 것 말이다.

목진처럼 천운이 따른 다른 누군가도 대일불멸신의 수련법을 획득했을 것이고 분명 목진처럼 비범한 인물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만고불후신을 획득하는 데 목진이 걸림돌이라 생각할 것이다.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사람은 많아도 만고불후신으로 진화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었다.

만고불후신의 수련법을 얻는 일은 목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고, 약육강식의 진리를 증명해야 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대일불멸신의 수련은 목진한테 엄청난 기회이면서 상당한 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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