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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26화 (625/1,000)

626화. 잠시 머물다.

종등, 한산 등은 수중에서 영광을 발하며 각자의 보물을 꺼냈다.

종등은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힐끗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는데 수중의 동로가 활활 타오르더니 푸른색 화염을 내뿜어 그를 감쌌다.

이는 피풍염(避風炎)으로 아주 특이한 화염이었다. 피풍염은 바람을 막는 데 효과가 출중해 이곳의 강풍을 상대하는데 제격이었다.

“네가 이번에도 나를 따라잡을 수 있나 보자.”

종등은 피식 웃더니 동로와 함께 광막에서 나와 한 줄기 녹광이 되어 전진했고 다른 사람들도 전력을 다해 나아갔다.

묵봉 역시 괴상한 눈빛으로 꼼짝 않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황염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신속하게 전진했다.

목진은 사람들이 멀어져서야 다시 눈을 떴는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종등 등을 바라봤다. 저들은 보물로 빠르게 갈 수 있지만 신통지법에 눈이 멀어 연체탑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놓치고 있었다. 연체탑에서 가장 좋은 보물은 다름 아닌 육신에 대한 단련이었다.

그렇다고 목진이 적광과 하늘색 한기를 견뎌내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었다. 용봉진경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고 목진처럼 이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너흰 신통지법을 쫓고 난 내 목표를 완성할 것이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휘날리며 광막에서 나왔다.

연체탑의 2층을 거닐면 그의 육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목진은 곧 용봉진경 두 번째에 이를 것이다.

넓고 황량한 구역에 매서운 강풍이 휘몰아쳤고 한기가 깃든 하늘색 한류는 곳곳에 퍼져 이 구역을 사지로 만들었다.

아무리 실력이 6급 지존, 심지어 7급 지존경에 이르렀다고 한들 이런 곳에 오래 머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한기가 깃든 강풍이 휘몰아치는 구역에서 은은한 하늘빛을 발하는 대지를 밟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엄청난 양의 영력을 소모했고 전진 속도도 상당히 느렸지만 단 한순간도 멈춰 서지 않았다.

그는 바로 연체탑 2층에 들어선 뒤로 육신을 단련하기 시작한 목진이었다.

그때 하늘색 한류가 지나가자 목진의 피부는 순식간에 찢어졌고 뼈가 보일 정도로 깊숙이 파였다. 그러나 피는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고 살은 은은한 하늘색을 띠었다.

몸에 상처가 나자 하늘색 한류는 목진의 몸에 스며들어 피와 살을 얼려 버리며 엄청난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목진은 몸을 파르르 떨기만 할 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는 적광과는 전혀 다른 고통으로 누군가 몸 안에서 바늘로 계속 찌르는 것 같았고 그저 살을 도려내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하여 목진은 잠시 멈칫하다 한껏 찌푸렸던 미간을 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고통이 한계치에 이르자 뼛속까지 스며들던 한기는 점차 사라지고 꽁꽁 얼어붙었던 피와 살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목진은 되살아난 육신이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육신의 수련 과정은 너무 험난하고 영력 수련보다 훨씬 괴로웠다. 사람들이 육신의 수련보다 영력 수련에 더 집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육신이 점차 강해지는 느낌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목진은 자신을 위로하며 계속 전진했고 황량한 대지를 거닐며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생겼지만 결연하게 나아갔다. 그는 육신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괴로움도 견딜 수 있었다.

* * *

한편, 연체탑 밖의 분위기는 조금 이상해졌는데 이는 전부 목진 때문이었다.

두 번째 층의 광막에서 목진을 나타내는 광점이 또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비웃지 않았다. 일전의 대역전을 목격한 이들은 목진이 무능해서 그러는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유청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비록 속이 좁긴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목진 때문에 창피를 당한 그녀는 이번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목진을 나타내는 광점을 바라보며 움찔하더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구유를 흘겨봤다. 유청은 이번만큼은 목진이 정말 2층을 건너기 어려워서 저러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다 종등이 3층에 오르면 구유를 제대로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구유 언니, 목진 오라버니가 왜 또…….”

묵령도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구유를 바라봤다. 그녀는 목진이 수단과 방법이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히 걱정되었다. 혹시나 목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들 사정없이 구유족을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구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조용히 서서 상황이나 살피자꾸나. 목진은 분명 무언가 목적이 있어 저러는 게 분명해.”

구유는 소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더없이 나약했던 소년이 지금껏 어떻게 실력을 키우고 자신을 따라잡은 지를 직접 봐왔다.

하여 구유는 목진이 절대 상고 연체탑 따위에 타협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고 사람들은 선두에 있는 이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맨 뒤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나아가는 광점에 집중했다.

그들은 단번에 나머지 아홉 명을 따라잡고 2층에 가장 먼저 들어간 목진이 다시 기적을 창조할지 궁금했다.

운인지 실력인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벌써 2층의 관문에 도착한 사람이 생겼네…….”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는데 선두를 달리던 사람들은 이미 2층의 관문 앞에 도착했다.

이를 통과하면 그들은 바로 3층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아직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 같군.”

누군가 맨 뒤쪽에서 천천히 전진하는 목진의 광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그가 일전에 특수한 수법을 사용해 그들을 앞질렀다고 여겼고 2층에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아 여태껏 큰 움직임이 없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구유는 여전히 태연하게 서서 상황을 살폈다.

“한산, 서곤, 종등, 묵봉 등은 이미 3층에 오르기 위해 관문을 통과하고 있네.”

다시 들리는 말에 다들 눈길을 돌려보니 최전방에 있는 광점의 속도가 확 줄어들었다. 보아하니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들 이번만큼은 3층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그들 중에서 나타날 거라 짐작했다.

사람들은 이미 목진 따위는 잊은 채 앞쪽의 상황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나머지 아홉 사람은 전부 두 번째 관문에 뛰어들었고 상당히 느린 속도로 3층으로 향했다.

“종등 등이 3층에 올랐네!”

누군가의 말에 정적이 깨지자 다들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연체탑 3층의 광막이 나타났고 광점 여러 개가 동시에 표시됐다.

“종등 오라버니가 3층에 진입했어!”

유청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외쳤다. 그리고 바로 2층을 바라봤는데 목진을 나타내는 광점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구유야, 역시 최후의 승자는 네가 아닐 것 같아!”

유청이 히쭉거리며 구유를 바라봤다.

그러나 구유는 으쓱하는 상대방을 힐끗 보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목진을 나타내는 광점에만 집중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지?”

유청은 구유의 태도에 콧방귀를 뀌더니 이번 연체탑 수련만 끝나면 진정한 실력이 무엇인지 알게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청은 목진이 괴상한 수단으로 1층을 넘었을 뿐이라 영원히 2층에 갇혀 못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 따위가 감히 천붕족 천재를 상대하려 하다니, 이보다 우스울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연체탑 2층에서 반짝이는 광점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목진은 역시나 이대로 몰락하는 건가?

* * *

그때 목진은 어느새 한기 어린 대지의 산맥에 올라갔다. 그곳은 2층의 유일한 고지로 목진이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정상에 오르고 보니 상당히 짙은 하늘색 한류가 맴돌았고 음산한 강풍도 이곳에서만큼은 유난히 난폭했다.

목진의 육신이 강력하지 않았다면 산 정상에 오른 순간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

다행히 비인간적인 고통을 겪고 나니 목진은 육신이 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는 잠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산 정상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휘익!

강풍이 휘몰아쳐 목진의 몸에 부단히 상처를 냈는데 그는 온몸을 파르르 떨고는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쳐다봤다.

종등, 한산 등이 이미 3층에 오른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급하지 않았다. 그가 일단 2층에 완벽히 적응하면 육신 수련에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용봉체 2번째 단계에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그때가 바로 목진이 움직일 시기였다.

“일단 앞에서 달리고 있어. 그리고 곧 만나.”

목진은 차가운 강풍이 휘몰아치는 산 정상에 앉아 가볍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 *

꽈르릉!

어두운 공간에서 벼락이 사정없이 바닥을 내리찍었고 검은색 구름층에서 뇌광이 번쩍이며 난폭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발했다.

한편, 한 무리가 영력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거대한 벼락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비행했는데 그 모양새가 제법 초라해 보였다.

이곳은 바로 연체탑 3층이었고 그들은 가장 빨리 3층에 들어선 종등, 한산 등이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3층에 진입하긴 했지만, 이전보다 속도가 훨씬 줄어들었다. 3층은 1, 2층보다 훨씬 건너기 어려웠다.

종등의 앞쪽에는 황금색 깃털이 떠 있었는데 오묘하고 오래된 무늬가 새겨진 황금색 깃털에서 지극히 난폭한 파동이 스며져 나왔다.

그러다 난폭한 벼락이 떨어지면 황금색 깃털은 한 줄기 금광을 내뿜어 벼락을 내치곤 했는데 종등은 여전히 피부가 찌릿했지만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이 깃털은 천붕족의 금시대붕의 황금 깃털로 제련한 보물로 공격력은 약하지만 방어력만큼은 절품 신기 못지않았다.

종등은 연체탑을 건너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다.

“녀석은 더 이상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겠군.”

종등은 뒤쪽을 힐끗 봤는데 여전이 목진의 영력 파동이 느껴지지 않자 히쭉 웃었다. 보아하니 아직도 2층을 건너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는 목진이 어떻게 1층을 건넜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계속 2층을 헤매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자신보다 먼저 2층에 오른 거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참.”

종등은 목진이 조용히 뒤따라오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하필 1등을 하려고 무리했다가 결국 2층에 남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리되면 구유족의 체면도 바닥을 칠 것이다.

“묵봉이야말로 강적이군.”

종등은 먼 곳에서 적염을 온몸에 휘감은 채 비행하고 있는 묵봉을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벼락이 강림할 때마다 묵봉은 잠시 멈춰 서야만 했지만 적염은 대부분의 벼락을 흡수했고 본체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종등은 비록 묵봉과 싸운 적은 없지만 구유 못지않은 실력자라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3층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는 갈 것 같은데 거기가 한계치겠지.”

종등은 뇌광이 번쩍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준비만 잘하고 오면 연체탑의 3층까지는 어렵지 않지만 4층부터는 탈락률이 엄청날 것이다.

아마 열 사람 중 4층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절반 정도 될 테지만 종등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그의 실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비록 한산, 묵봉 등과 치열한 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4층에는 오를 자신이 있었다.

“4층에만 들어가면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제대로 가려보자꾸나. 천붕족은 아무도 두렵지 않아!”

종등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 앞쪽의 황금색 깃털이 금광을 발하며 부단히 뇌광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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