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화. 5위권
목진의 말에 다들 조용해졌고 연체탑 밖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육수가 사라진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은 아직 일전의 대결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육수가 선보인 무서운 공격에 다들 승패가 갈렸다고 생각했는데 목진이 다시 역전해 녀석을 연체탑에서 쫓아낼 줄이야…….
사람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광막을 쳐다봤다. 목진은 영진을 사용하지 않고 6급 지존경의 실력으로 무려 7급 지존인 육수를 쓰러뜨렸다. 비록 육수가 목진을 무시한 것이 한몫했지만 목진의 무서운 전투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결이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연체탑에 들어간 최정예 강자를 상대해도 충분할 것이다.
한편, 천붕족 유청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광막 속 늘씬한 젊은이를 쳐다보고는 처음으로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목진이 선보인 전투력과 강력한 영진까지 더하면 아마 종등마저 그와의 대결에서 우세를 보지 못할 것이다.
“목진이 이렇게까지 강할 수가!”
유청 옆에 서 있던 종염도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 또한 목진이 영진 덕분에 연체탑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영진을 사용하지 않은 목진도 여전히 강했다.
“종등 형님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군.”
천붕족의 다른 강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유청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물론이고 종등마저 목진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녀석은 요물이었다.
슉!
그때 탑 외부의 석대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누군가 초라한 모습을 한 채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연체탑에서 나오자마자 뇌아족으로 돌아갔는데 그는 다름 아닌 영력이 고갈되어 안색이 창백해진 육수였다.
이에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광막 속 목진을 노려보다가 구유와 묵령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옆에 서 있는 뇌아족 강자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구유는 그들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상갓집 개 주제에 센 척하기는.”
육수는 중상을 입어 전투력을 잃었고 뇌아족의 나머지 강자들은 그보다 실력이 훨씬 뒤처졌다. 녀석들이 달려들면 구유는 그들을 전부 죽일 수도 있었다.
이에 육수는 눈길을 거두며 물러나더니 연체탑과 멀리 떨어진 건물에 내려앉아 상처를 치유했고 뇌아족의 다른 강자들이 그 주위를 지켰다.
구유도 그제야 눈길을 거두고 광막 속 소년을 바라며 꽉 쥐었던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
그녀마저 목진이 이토록 깔끔한 승리를 거둘 줄 몰랐다.
목진이 다른 영수 종족의 강자들을 겨우 따라잡을 수는 있어도 6급 지존경의 실력으로는 절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변고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거라 여겼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보아하니 목진은 연체탑을 거닐며 육신이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절대 이토록 놀라운 힘을 선보이지 못할 것이다.
“연체탑의 4층은 상당히 신비로워 들어만 가면 육신의 수련 효과가 1, 2, 3층보다 훨씬 좋을 거라고 들었는데…….”
구유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상황을 보니 이제 더는 목진의 앞길을 막을 자는 없을 것 같고 묵봉의 실력도 믿을 만했으니 그 둘이 최종 5인에 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연체탑 수련에서 구유족이야말로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 * *
한산, 서곤 등마저 목진이 꺼려져 감히 나서지 못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잠시 고민하다 빠르게 목진이 서 있는 구역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행동으로 말을 대신했다.
이에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었으나 속으로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목진의 기세등등한 모습만 봤지만 일전의 공격은 3층까지 오면서 육신이 흡수한 방대한 힘을 방출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목진의 육신은 물을 잔뜩 머금은 해면 같아 그 속에 깃든 힘을 모조리 방출하자 잔뜩 부풀었던 몸도 다시 정상이 되었다.
그러니 목진이 똑같은 공격을 한다고 한들 더는 전처럼 위력이 상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육신에 힘을 누적하는 것은 용봉진경을 수련해야만 가능한 수법으로 제법 좋은 필살기였다.
“용봉진경의 힘은 역시 엄청나.”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용봉진경은 필경 신통급 수련법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엄청난 물건임이 분명했다.
목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 상황을 살폈다. 이제 그를 건드리는 자는 없을 거라 조용히 서서 탈락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육수는 종등이 내세운 앞잡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녀석을 상대할 최적의 시기가 아니라 일단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다만, 목진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종등을 노려봤는데 온몸에서 발하는 영력 파동으로 보니 꼭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사나워 보였다.
종등은 그 모습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는 묵봉을 상대하면서 목진이 갑자기 나타나 그를 공격할까 봐 상당히 신경 쓰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영력을 거두고 먼저 묵봉이 서 있는 뇌운대에서 물러났다.
“묵봉, 우리가 싸워봐야 승패를 가르기 어려울 테니 각자 상대를 찾아 최종 5인에 드는 것이 어떤가?”
종등이 뒤로 물러나며 한 말에 묵봉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끝까지 싸워봐야 승패가 갈리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았고 목진과 협력하다 종등이 미쳐 날뛰어 무슨 일을 벌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서 4층에 오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종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신속하게 목진과 묵봉이 서 있는 구역에서 멀어진 뒤, 실력이 조금 약해 보이는 천재를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목진도 종등이 떠나자 더는 그를 노려보지 않고 묵봉과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묵봉의 표정도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는 육수와의 대결에서 이긴 목진을 동급으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태도도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
그도 목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속하게 돌아서서 상대를 골랐다.
쿠쿵!
사람들이 하나둘씩 상대를 고르자 뇌운대에서 순간 난폭한 영력이 휘몰아치며 충격파를 형성하더니 주위의 공간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런데 어느새 아수라장이 된 뇌운대에서 목진의 주위만 조용했다. 그는 사람들의 공격 수법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억했다.
그들과 더는 여기서 싸우지는 않겠지만 아직 4층과 5층이 남아있으니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잠시 후, 뇌운대의 대결이 모두 끝났고 결과 역시 예상대로였다.
목진 다음으로 최종 5인에 든 사람은 서마족의 한산이었고 그 뒤로 묵봉과 종등이 빠르게 대결에서 승리했으며 마지막 1인은 연체탑 밖에서 한산과 싸우다 아쉽게 패배한 서곤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뇌운대는 잠시 조용해졌고 최종 5인은 웅장한 기운을 내뿜으며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바로 뇌광 방석에 올라타 뇌운대 뒤에 있는 공간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곳에서 유성 같은 빛줄기가 휘몰아쳤는데 그 속에는 뇌수가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뇌운대 뒤쪽에 있는 요동치는 공간에 수많은 빛줄기가 지나쳤는데 이는 유성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그 속에는 뇌수가 깃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목진 등이 호시탐탐 노리는 물건이었다. 원고 시기, 신수들은 뇌수로 육신을 제련해 튼튼하고 강한 육신을 얻었고 이는 절대 흔치 않은 물건이었다.
물론 대천세계의 대형 경매장에서도 뇌수를 구매할 수는 있지만 가격이 상당했고 나타난다고 해도 바로 다른 누군가가 낚아채 일반인이 얻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뇌수가 눈앞에 비처럼 내리고 있으니 어찌 탐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최종 5인에게 주어진 보상이란 말인가?”
목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만약 이 공간을 무사히 넘을 수만 있다면 뇌수의 세례를 받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는 육신의 단련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연체탑은 역시나 곳곳에 육신 단련시킬 기회가 차고 넘쳤다.
목진은 1년 동안 열심히 수련해도 얻지 못할 성과를 연체탑에 들어온 지 반나절 만에 해냈다.
“신수지원의 강자가 신수대륙의 3할을 차지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
목진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이토록 좋은 수련 조건이 있어 신수지원의 정예 강자의 수와 실력이 다른 곳보다 높은 게 분명했다.
위잉!
그때 목진 등이 딛고 있던 뇌광 방석이 갑자기 진동하더니 서서히 날아올라 빛줄기가 솟구치는 공간으로 향했다.
이에 목진 등은 흠칫하더니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석에 몸을 맡겼다.
슉!
다섯 개의 뇌광 방석이 공간에 진입하자 사방에서 빛줄기가 날아왔는데 그 속에 깃든 뇌수에 다들 눈이 빨갛게 그을렸다.
그중, 한산이 가장 빨리 나서 주먹을 꽉 쥐자 한 갈래 빛줄기가 강제로 빨려 들어갔다.
한산은 방향을 틀어 자신한테 날아온 빛줄기를 보더니 히쭉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맞았다. 뇌수같이 신비로운 물질은 영력으로 다룰 수 없었기에 이 세상에서 이것을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육신뿐이었다.
하여 뇌수를 흡수하려면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퍽!
빛줄기는 결국 한산의 가슴팍을 적중해 구멍을 냈고 그 속에서 뇌광이 번쩍이는 벼락처럼 생긴 액체가 빠르게 몸에 스며들었다.
한산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느라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뇌수는 체내에 스며들면 육신을 단련하며 조금씩 사라지는데 이런 과정은 한참 지나서야 끝이 난다.
한산이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뇌수를 흡수하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일인 줄 몰랐다. 일반 사람은 절대 이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한산은 잠시 몸을 추스른 뒤 다시 뇌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목진, 묵봉 등도 뇌수를 흡수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한산처럼 괴로워 표정이 말이 아니었고 온몸을 파르르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 고통이 가시자 묵봉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지만 목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가슴팍에 난 구멍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피부에서는 은은한 은광을 발했는데 이는 육신이 뇌수를 흡수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뇌수를 흡수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훨씬 튼튼하고 강대해졌다.
그런데 목진이 놀란 건 따로 있었다. 뇌수가 몸에 스며들자 서서히 헤엄치던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그것을 흡수한 것이었다.
이에 목진이 두 팔을 보니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상당히 활발해졌고 뇌수를 흡수하고 싶은 갈망을 목진한테 전달하는 듯했다.
“참, 배부른 법을 모르는 녀석들이군.”
목진은 그제야 용봉진경의 수련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그는 용봉진경의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나태한 적이 없었고 대량의 자원까지 들였지만 아직도 두 번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용봉진경의 경지를 돌파하지 못하면 목진은 적어도 한 해는 더 수련해야 두 번째 단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절대 그렇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대량의 자원이 주어진 지금 기회를 잘 활용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