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화. 청동등 일곱 개
연체탑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도 흠칫 놀랐다. 종등은 역시 남달랐다. 서곤도 해내지 못한 일을 그가 해냈다.
이에 유청은 득의양양했다. 그는 그제야 목진 때문에 잔뜩 언짢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녀석, 제법이군.”
오래된 광장에 서 있던 목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종등이 얄밉긴 하지만 실력만은 인정해줘야 했다.
이에 묵봉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잉!
그때 청동등 여섯 개가 켜진 검은색 석비는 다시 흔들리더니 혼돈의 기를 내뿜어 거대한 천붕으로 향했다.
천붕이 탄천신수의 정기를 흡입하자 체내에서 금광을 발했는데 황금색 깃털의 색이 더 짙어진 것 같았다.
잠시 후, 정기를 전부 흡수한 천붕은 빠르게 작아져 다시 사람의 형태로 변하더니 광장에 내려앉았다.
종등은 뒷짐을 쥔 채 흐뭇하게 웃으며 묵봉과 목진 등을 바라봤다.
“이제 여러분 차례네.”
녀석은 제법 으쓱해져서 말했다.
이에 묵봉은 종등을 힐끗 보더니 묵묵히 나섰는데 본체를 소환하지 않고 조용히 장풍을 쐈다. 묵봉이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휘두른 것 같지만 다섯 손가락은 어느 때보다 예리했고 봉황의 깃털이 박힌 장갑을 낀 것처럼 손에는 황금색 봉황의 깃털이 얼핏 보였다.
이와 동시에 봉황의 울음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쿵!
묵봉의 장풍이 석비에 닿자 표면이 진동하더니 청동등은 한순간에 다섯 개나 켜졌다!
잇따라 여섯 번째 청동등에 불꽃이 튀기더니 금세 활활 타올랐다!
이를 본 종등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묵봉이 강한 줄은 알았지만 청동등 여섯 개를 이토록 쉽게 켤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대로 끝이라면 묵봉의 성적은 그와 같았다.
그런데 그때, 일곱 번째 청동등에도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너무 희박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묵봉은 종등을 이겼다!
묵봉은 일곱 번째 청동등을 켤 능력이 충분했다!
검은색 석비의 일곱 번째 청동등에 잠시 불꽃이 솟아올라다가 결국 꺼졌다. 하지만 묵봉은 전혀 슬퍼하지 않았고 서서히 손을 거두자 팔에 드러났던 황금색 봉황의 깃털도 점차 사라졌다.
묵봉이 쏜 장풍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한편, 뒤에 서 있는 종등은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일전에 묵봉과 대치했을 때는 분명 막상막하였는데 육신의 힘은 자신이 더 뒤처진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건 묵봉의 진짜 전투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이 강한 종등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허허, 묵봉, 제법인걸? 그런데 일전에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봉황족과 관련이 있는 건가?”
한산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묵봉은 검은색 석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위잉.
그때 검은색 석비가 파르르 떨리더니 혼돈의 기를 내뿜었는데 이는 종등이 획득했던 것보다 훨씬 짙었다.
잇따라 묵봉이 탄천신수의 정기를 흡수하자 눈에서 적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고 피부 표면에도 화염이 타오르며 웅장한 무언가를 방출했다.
묵봉은 1각 정도가 지나서야 다시 눈을 떴는데 자연스레 은은한 위압감을 형성했다. 탄천신수의 정기를 흡수하는 묵봉도 실력이 확 좋아졌다.
묵봉은 완전히 안정을 되찾은 뒤에야 검은색 석비에서 물러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한산과 목진 뿐이었다.
“두 사람의 도전을 보고 있으니 나도 손이 근질거리는데 내가 먼저 나서도 되겠나?”
한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산이 나서자 연체탑 안과 밖의 사람들 모두 그한테 집중했다.
한산은 연체탑에 들어간 열 사람 중 최정예에 꼽히는 실력자로 아무리 종등이라도 이 점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육신의 힘에서는 서마족 한산이 우세했다.
육신의 힘은 전투력의 일부만 차지하지만, 목숨을 내걸고 싸울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육신이었다.
종등 등은 일정한 수단을 쓴 후에야 한산과의 육신의 차이를 보완할 수 있었다.
한산은 천천히 걸어 나가더니 뒷짐을 쥔 채 검은색 석비를 바라봤는데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위압감을 형성했다.
지금의 그는 원고의 흉수처럼 무서워 보였다.
한산이 눈을 감자 피부가 점차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는 체내의 기혈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일으킨 현상이었다. 그의 기혈이 결국 체내에서 스며져 나와 뒤쪽에 수십 장 정도의 선홍색 코뿔소로 변했다.
오래된 광장에 떡하니 나타난 코뿔소의 선홍색 뿔이 움직이자 공간마저 찢어졌다. 녀석의 뿔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또한, 코뿔소는 한산의 뒤에 서서 앞발로 지면을 쓸었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목진 등은 그 엄청난 기가 명확히 느껴졌다.
한산 주위의 기혈의 광은 점차 한계치에 이르렀다.
그때 한산이 눈을 번쩍 뜨고 시뻘겋게 그을린 눈으로 앞쪽을 바라보며 두 손가락을 힘껏 휘둘렀다.
이와 동시에, 선홍색 코뿔소도 한산의 몸을 타고 머리를 살짝 드리운 채 나서자 마침 한산의 손가락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한산의 손가락에는 이 세상의 모든 방어벽을 뚫을 것 같은 엄청난 힘이 깃들었다.
쿵!
한산의 두 손가락은 공간을 가르며 석비를 힘껏 때렸는데 그 엄청난 충격에 손가락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이에 석비도 진동했고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동이 퍼졌다.
그 힘은 분명 묵봉 보다 강했다!
목진 등도 잔뜩 긴장해 석비의 위쪽을 바라봤는데 어두웠던 청동등에 순간 눈부신 화염이 휘몰아쳤다!
활활!
청동등 다섯 개가 한순간에 켜졌고 여섯 번째 등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확 달아올랐다.
이에 목진 등은 하나같이 일곱 번째 청동등을 바라봤다. 다들 한산의 힘이 이것밖에 안 될 거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역시나 일곱 번째 청동등에 불꽃이 튀기더니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비록 느렸지만 묵봉 때보다 상황이 훨씬 좋았다.
치익!
한데 모인 불꽃이 조금씩 피어오르더니 활활 타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청동등도 드디어 켜졌다.
연체탑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한산은 역시 서마족에서 가장 훌륭한 천재였다. 그는 나서자마자 바로 종등, 묵봉 등을 제쳤다.
“한산은 역시 대단해.”
구유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록 석비는 육신의 힘만 사용해야 하지만 구유는 한산의 전투력이 7급 지존경에서도 제법 뛰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동등을 일곱 개나 켜다니.”
묵령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오라버니도 일곱 번째 청동등을 점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육신의 힘만으로 본다면 한산이 묵봉보다 강했다.
“이제 목진 오라버니만 남았네요. 오라버니는 청동등을 몇 개나 켤 수 있을까요?”
묵령의 말에 구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도 목진의 육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목진은 뇌신체에 지금의 용봉체까지, 여태껏 한시도 육신의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육신 수련법 중에서도 유난히 어려운 수련이었는데 목진은 이것마저도 무리 없이 해냈다.
목진은 신수는 아니지만 신수 못지않은 육신을 지녔다.
“목진 정도면 5층을 오르는 데는 문제 없을 거야. 그런데 한산보다 좋은 성적을 따낼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구유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산의 성적은 지금껏 연체탑에 들어간 사람들의 성적 중에서도 제법 훌륭한 편에 속했다. 그런데 목진이 과연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 * *
오래된 광장에 나타났던 선홍색 코뿔소는 어느새 사라졌고 한산은 서서히 손을 거두더니 파르르 떨자 상처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더니 가볍게 웃었다. 성적이 예상을 빗겨나가지 않은 듯했다.
위잉.
그때 검은색 석비가 다시 진동하더니 표면에 은은한 혈문이 나타났고 그 속에서 혼돈의 기를 내뿜었는데 이번에 방출한 기에는 암홍색의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저건…….”
목진은 전과 조금 달라진 탄천신수의 정기를 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건 탄천신수의 피와 살에 깃든 혈기로 정기보다 훨씬 순수해. 성적이 상당히 좋은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거야.”
묵봉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한편,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종등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혼돈의 기를 쳐다봤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동등을 일곱 개는 밝혀야 탄천신수의 혈기를 얻을 수 있다니…….
석비 앞에 서 있던 한산은 깊게 숨을 들이켜 암홍색을 띤 혼돈의 기를 전부 흡수하더니 육신이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라졌던 선홍색 코뿔소가 다시 나타났는데 빠르게 팽창하며 내뿜는 기운도 훨씬 난폭해졌다.
후우.
코뿔소는 한참 지나서야 서서히 사라졌고, 한산도 안정을 되찾더니 고개를 숙여 손바닥을 바라보며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얻은 보상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잇따라 종등과 묵봉은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고 연체탑 밖에 서 있는 사람들도 흥미진진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연체탑에서 몇 차례 기적을 선보인 목진이 4층에서는 또 얼마나 놀라운 성과를 따낼지 궁금했다.
목진은 과연 이대로 탈락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적을 창조할 것인가?
다들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되었다.
그때 목진은 서서히 검은색 석비로 향했다.
목진은 검은색 석비 앞에 멈춰 선 채 그 표면에 박힌 수많은 자국을 자세히 살폈다. 사람들이 이곳에 서서 혼신의 힘으로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원고 시기, 누군가는 청동등 아홉 개를 켰다고 했다. 비록 그것을 해낸 사람의 실력이 목진보다 훨씬 좋고, 심지어 8급이나 9급 지존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과거에 신수지원은 육신을 단련하는 곳이라 그때의 사람들은 대부분 육신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 청동등 아홉 개를 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신수지원이 파괴된 후, 연체탑에 들어온 강자 중 청동등 아홉 개를 밝힌 사람이 거의 없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목진은 청동등을 아홉 개나 밝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강한 한산도 전력을 다해봐야 일곱 개밖에 켜지 못했는데 자신이 몇 개의 등을 켤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전력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우.
목진은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게 숨을 들이켜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잇따라 그는 체내에서 은은한 금광을 발하며 온몸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목진이 발한 황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졌는데 꼭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황금 조각상 같았다.
그리고 목진은 용봉체를 소환해 체내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모았다. 용봉체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종등, 한산, 묵봉은 이러한 목진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은 목진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광장에 우뚝 솟아오른 커다란 산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목진이 용봉체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두 팔에 새겨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파르르 떨렸고 체내에서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목진의 힘이 다시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어느덧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한껏 높아지자 목진의 육신은 비등하기 시작했고 두 팔에 새겨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도 확 달아올랐다.
그리고 목진의 두 눈은 눈부신 황금빛을 발했고 호흡도 점차 가빠졌다. 현재, 목진 체내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뭉쳐졌는데 이는 뇌아족의 육수(陸隋)를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