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아홉 개를 전부 밝히다
한산 등은 계속해서 금광을 발하는 목진을 바라보더니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금광은 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목진 체내의 기혈이 한계치에 이르며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런데 목진이 발한 빛에는 이들마저 압박감을 받을만한 파동이 깃들어 있었다.
“6급 지존경의 실력으로 이토록 무서운 힘을 모을 수 있다니…….”
한산은 예리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는 비록 목진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뛰어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목진이 종등, 묵봉, 심지어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은 역시 엄청났다.
정작 목진은 체내의 피와 살이 비등할수록 외부 환경이 느껴지지 않아 한산 등의 반응을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그 혼자만 있는 것 같았고 이러한 상태에서만 고도로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목진은 눈으로 짙은 금광을 발했고 체내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데까지 모으자 피와 살, 심지어 뼈까지 찌릿했다.
이건 한계치에 이르렀다는 표시였다.
한계치에 이르렀으면 나서야지!
목진은 오른손을 꽉 쥔 채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순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목진의 오른손에 모여 자금색 빛을 발했고 황금색 용장과 봉황의 날개가 목진의 주먹을 감쌌다.
크으으으!
맑은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목진의 몸을 비집고 나와 오래된 광장에 울려 퍼지자 한산, 묵봉, 종등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들은 목진이 무서운 위압감을 내뿜는 것이 느껴졌다.
이로 인해 묵봉 등의 혈맥마저 파르르 떨렸다.
이건 혈맥의 제압이었다!
묵봉 등의 고급 혈맥은 영수계에서도 정예급에 속하는데 목진이 형성한 위압감에 혈맥이 억제되다니!
이건 엄청난 신수의 엄청난 혈맥이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진정한 봉황과 진정한 용으로 휘감은 목진의 황금 주먹이 공간을 부수며 황금색 파문과 함께 검은색 석비를 때렸다.
쿵!
한산 등은 광장 전체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고 단단한 검은색 석비마저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한산 등은 목진의 주먹과 검은색 석비가 부딪친 곳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진의 주먹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졌고 피는 사방으로 튀었다. 목진이 휘두른 주먹의 위력은 그의 육신마저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목진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지 나지막하게 소리를 지르며 체내의 모든 힘을 미친 듯이 주먹에 모았다. 이에 목진의 주먹을 중심으로 황금색 파문이 일어 석비 전체를 감쌌고 그가 서 있는 바닥에는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위잉!
그때 청동등에 드디어 불꽃이 튀기더니 불이 붙는 소리가 부단히 들려왔다.
청동등이 빠르게 켜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개나 켜졌고, 잇따라 일곱 번째 청동등에도 불꽃이 솟아오르더니 바로 켜졌다.
“일곱 번째 청동등이 켜지다니!”
묵봉 등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목진이 일곱 번째 청동등을 켠 속도는 한산보다도 빨랐다.
이에 한산도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여덟 번째 청동등에 눈길을 돌렸다. 여덟 번째 청동등은 아직 켜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왠지 목진의 힘이 아직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덟 번째 청동등에도 불이 들어오자 묵봉과 종등은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목진이 무려 여덟 번째 청동등에도 불을 켜다니!
이건 한산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타닥.
목진의 주먹은 계속 피가 흘렀고 뼈가 보일 정도였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서서 황금빛을 발하는 주먹으로 검은색 석비에 미친 듯이 힘을 주입했다.
치익.
미약했던 불꽃이 점차 밝아졌고 드디어 한계치에 이르더니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활활 타올랐다.
여덟 번째 청동등이 드디어 켜졌다!
한산 등은 활활 타오르는 여덟 번째 청동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석비 앞에 조각상처럼 서 있는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목진이 여덟 번째 청동등까지 밝힐 줄이야!
목진의 주먹에 깃든 힘은 도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아무리 이들이라도 전력을 다해야 그 힘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연체탑 밖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러나 목진은 검은색 석비 앞에 서서 황금색으로 물든 석비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는 주먹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새까맣게 잊었고 머리도 한계치에 이른 힘 때문에 순간 백지장이 되었다.
목진은 순간 본능적으로 이게 끝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검은색 석비에 주입한 힘을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힘이 일단 폭발하면 놀라운 파괴력을 선보일 것이다.
그러다 아홉 번째 청동등마저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폭발하라!”
목진은 석비를 주먹으로 누른 채 나지막하게 소리를 질렀다.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목진 앞쪽의 검은색 석비에서 눈부신 금광을 발했는데 이는 석비 본연의 빛이 아니라 그 깊숙한 곳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슨 물체든 표면이 아무리 튼튼해도 내부는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마련이었다. 목진의 앞에 놓인 검은색 석비처럼 말이다.
하여 금광이 폭발하자 석비는 파르르 떨렸는데 그 세기가 전보다 훨씬 강렬했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산 등은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는 검은색 석비를 보더니 순간 넋이 나갔다. 그들도 그 속에서 폭발한 힘이 느껴졌다.
그들은 그 힘이 목진이 일전에 주먹을 휘둘러 석비에 주입한 것임을 알았는데 목진이 무슨 수로 손에서 벗어난 힘을 폭발시킨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석비는 어떤 힘이든 일단 닿기만 하면 바로 흡수하고 소화했다. 석비는 탄천신수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거라 소화력이 엄청나 한계치를 뛰어넘은 힘이 아닌 이상 눈 깜짝할 사이에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목진의 힘을 소화하지 않고 그한테 조종당한 걸까?
쿵!
그때 석비의 가장 위쪽에 놓인 마지막 청동등이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그 속에 미약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이는 발견하기 아주 어려웠지만 불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목진은 지금 아홉 번째 청동등을 밝히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상황을 보니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종등은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는 전력을 다해봐야 청동등을 여섯 개밖에 켜지 못했고 한산마저 일곱 개가 전부였는데 인간인 목진이 바로 여덟 개의 청동등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아홉 번째 등을 밝히려고 하고 있었다.
청동등 아홉 개를 전부 밝히다니!
종등은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여태껏 신수지원에 들어온 각 영수 종족의 천재는 많았지만 연체탑 4층에서 청동등 아홉 개를 전부 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를 해낸 사람들은 얼마 후 대천세계에서마저 유명한 거장이 되었다.
그런데 6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인간 따위가 이를 해내려 하다니!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종등은 목진이 너무 부러워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한산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6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인간 따위가 그를 훨씬 뛰어넘었단 사실은 죽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천붕족의 천재인 그는 뭐가 된단 말인가?
이에 종등은 눈에서 쏜 한기로 불씨를 없애려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아홉 번째 청동등을 노려봤다.
그런데 종등이 노려보자 아홉 번째 청동등은 신기하게도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불꽃이 완전히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묵봉이 이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의 힘도 이제 다한 것인가? 이대로라면 그는 아홉 번째 청동등을 절대 밝히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외치자 검은색 석비에 닿은 손의 껍질이 모조리 부서지며 사방에 피가 튀었고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활활 타올라라!”
쿠쿵! 쿠쿵!
목진이 일전에 석비에 주입했던 모든 힘이 갑자기 미친 듯이 폭발하더니 아홉 번째 청동등이 다시 밝아지다가 완전히 켜졌다.
목진이 드디어 아홉 번째 청동등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순간 연체탑 안팎에 정적이 흘렀다.
한산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아홉 번째 청동등을 노려봤고 묵봉마저 깜짝 놀랐다.
그 누구도 목진이 정말 아홉 번째 청동등을 밝힐 줄 몰랐다.
연체탑 밖에 서 있던 사람들도 입을 떡 벌린 채 광막 속 아홉 번째 청동등을 쳐다봤다.
유청과 천붕족 강자들은 아홉 번째 청동등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청동등 여섯 개를 밝힌 종등은 천붕족 젊은이 중 최정예 강자인데 목진 앞에서 과연 최정예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섯 개와 아홉 개의 차이는 너무 컸다.
연체탑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도 그 차이를 잘 알았다. 석비는 비록 육신의 힘만 평가하지만 목진이 일전에 선보인 힘은 7급 지존경이라도 절대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목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괴물이란 말인가?
종화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목진이 그를 상대했을 때,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면 그는 적어도 중상을 입고 혼절했을 것이다.
목진을 상대로 비아냥거렸던 자신을 돌이켜보자 숨이 턱 막혔다. 아홉 번째 청동등이 밝혀진 순간, 목진은 이미 이곳의 최강자로 거듭났다.
“저 녀석은 왜 이렇게 강한 거야…….”
유청도 이내 사색이 되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이제 목진의 실력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목진은 정말 무서운 인간이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천붕족 강자들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들도 목진이 어떻게 6급 지존경의 실력만으로 이렇게까지 강한지 알 수가 없었다.
“목진 오라버니는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오라버니보다 훨씬 강해요.”
묵령은 눈을 부릅뜨고 광막 속에서 밝게 빛나는 아홉 번째 청동등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녀는 지금까지 묵봉이 영수계 젊은이 중 최정예 강자라고 여겼는데 목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구유도 멍하니 광막을 쳐다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묵령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한테 그렇게 말해도 돼? 목진은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서 아홉 번째 청동등을 밝힌 거야. 그리고 청동등은 육신의 힘만 가늠할 뿐이라 목진이 청동등을 전부 밝혔다고 해도 한산 등보다 강하다고 할 수 없어. 육신의 힘은 전체 실력의 절반도 차지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이에 묵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검은색 석비 앞에 서 있는 소년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구유는 그제야 잔뜩 졸였던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광막 속에 비친 소년을 보고 있으니 너무 뿌듯했다. 구유족의 장로들은 지금도 목진을 무시하겠지만 그가 연체탑에서 얼마나 놀라운 성적을 따냈는지를 알게 되면 분명 생각이 바뀔 것이다.
* * *
아홉 번째 청동등 속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바라보던 목진은 드디어 다시 정신을 차렸는데 손에서 전해진 고통에 금세 얼굴을 찌푸리며 황금빛을 발하는 주먹을 거뒀다.
다만, 이번에는 힘을 전부 끌어모았는지라 체내의 근육마저 무기력해졌고 발조차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힘이 다 닳은 모양이었다.
목진은 간신히 서 있었는데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석비에서 경락 혈맥같이 생긴 선홍색 무늬가 나타나더니 파르르 떨며 선홍색 혼돈의 기를 내뿜었다.
상당히 짙은 정기가 깃든 혼돈의 기는 탄천신수의 혈기 정화가 모여 이루어진 것 같았다. 목진이 한 모금 마시자 피범벅이었던 주먹이 바로 치유되었고 온몸의 피와 살이 순간 비등하더니 혼돈의 기에 대한 갈망을 토해냈다.
이번의 혼돈의 기는 한산, 묵봉, 종등이 획득한 것의 수십 배는 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청동등 아홉 개를 전부 밝힌 보상이었다. 역시 엄청났다.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어 혼돈의 기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고 선홍색 기류는 부단히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던 종등이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
그는 목진이 무기력해진 것을 발견하고 지금이야말로 그를 처치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을 죽이고 혼돈의 기를 차지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