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화. 습격
쿵!
지면이 파르르 떨리더니 종등은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린 채 쏜살같이 석비 앞에 서 있는 목진에게 향했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움직임에 연체탑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구유와 묵령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비록 연체탑 밖에 있었지만 목진이 기진맥진해 더는 종등을 상대하지 못할 거란 걸 잘 알았다.
하여 녀석이 지금 살수를 두면 목진한테는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종등!”
구유는 이를 갈며 눈빛으로 녀석을 쏴 죽일 듯 노려봤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지금 연체탑 4층에는 목진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묵봉도 함께 있었다. 묵봉은 비록 무뚝뚝하지만 절대 종등을 가만둘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묵봉이 이내 정색하더니 귀신처럼 종등의 앞쪽에 나타나 강력한 영력을 폭발한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을 노려봤다.
“당장 물러나게, 안 그러면 절대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걸세!”
묵봉의 차가운 말투에 종등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묵봉, 목진은 구유족 사람이 아니라 일개 인간일 뿐인데 정녕 천붕족과 적이 되면서까지 나설 건가?”
이에 묵봉은 피식 웃더니 종등을 노려보는 눈빛이 더 사나워졌다. 그는 종등이 조금만 더 나서면 바로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하여 종등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묵봉과 목진을 보더니 갑자기 옆에 조용히 서 있던 한산한테 고개를 돌렸다.
“한산, 이번 연체탑 시험의 승자는 자네인데 인간 목진이 감히 신수지원에 와서 우리의 기회를 뺏지 않았는가? 자넨 이걸 보고만 있을 건가?”
종등의 말에 묵봉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한 사람 정도는 막을 수 있지만 한산까지 합세하면 어려웠다.
한산도 종등의 말에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일에 왜 나까지 엮으려 하는 건가?”
“자넨 목진이 획득한 탄천신수의 정기가 탐 나지도 않은가? 자네가 저걸 흡수하면 7급 지존 중 최강자가 될 것이네. 그때가 되면 용봉족의 정예 강자들을 만나도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란 말이네.”
종등의 말에 한산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목진이 흡수하고 있는 선홍색 정기를 보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목진이 획득한 정기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묵봉 등이 획득한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가 선홍색 정기를 흡수하면 종등의 말대로 될 것이 분명했다. 이에 한산은 순간 마음이 흔들렸고 묵봉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편, 연체탑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구유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종등의 행동과 한산의 반응으로 얼추 짐작이 갔다.
만약 한산이 지금 끼어들면 목진한테는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종등, 이런 버러지 같은 놈!”
구유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옆에 서 있던 묵령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목진과 묵봉을 바라봤다. 지금 목진은 서 있을 힘조차 없어 묵봉만으로는 절대 종등과 한산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다른 종족 사람들도 연체탑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변고에 수군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기적을 창조하고 연체탑에 들어간 강자 중 1위를 차지할 유망주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단 말인가?
뇌아족 강자들에 둘러싸여 정력을 회복한 육수도 어느새 눈을 뜨고 상황을 살피더니 피식 웃었다.
“목진, 인제 더는 우쭐거리지 못하겠구나!”
“여태껏 애써 획득한 보상을 전부 내주게 생겼어!”
연체탑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연민이나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광막을 쳐다봤다.
그러나 한산은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산, 시간이 없네. 목진이 탄천신수의 정기를 전부 흡수하면 끝이네.”
한산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자 종등은 바로 그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목진이 힘을 회복하면 한산이 합류한다고 해도 대결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여전히 석비 앞에 조용히 서 있는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선홍색 정기에 둘러싸인 목진한테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수련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싸움을 펼쳐온 한산은 목진이란 인간한테서 남다른 기운을 느꼈다.
이건 아주 잘 감춰진 위험한 느낌이었다.
그가 오늘 나서서 목진을 죽이지 못한다면 앞으로 마음 편할 날이 단 한순간도 없을 것이다.
탄천신수의 정기를 위해 목진처럼 위험한 사람을 건드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한산은 쥐 죽은 듯 조용한 광장에 선 채 사색에 잠겼고 종등과 묵봉은 손에 땀을 쥔 채 한산의 결정만을 기다렸다. 그의 결정에 따라 상황은 확 바뀔 것이다.
잠시 후, 한산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서서히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탄천신수의 정기가 특이하긴 하지만 내가 누릴 건 아니니 마음만 고맙게 받겠네.”
한산은 목진이 획득한 탄천신수의 정기를 빼앗고 싶었지만 경험에서 비롯된 직감을 믿고 결국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에 종등은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고 묵봉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소를 지으며 한산한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생각이 없다니 나도 포기하는 수밖에…… 묵봉, 실례가 많았네.”
종등이 금세 안정을 되찾고 물러나려 하자 묵봉도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다.
쿵!
그런데 그때, 종등이 갑자기 엄청난 살기를 방출하며 폭주했다.
“종등, 자네 감히!”
묵봉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종등한테 다가가 주먹을 휘두르자 봉황의 울음소리와 함께 웅장한 영력이 깃든 권풍이 적염을 싣고 날아가 종등이 이룬 잔영을 부쉈다.
이에 종등이 손을 휘두르자 금광을 발하며 예리하기 그지없는 장풍이 천지를 가를 기세로 상대방에게 향했다.
퍽!
권풍과 장풍이 부딪치자 영력 기랑이 퍼져 공간이 파르르 떨렸는데 종등은 상대방의 공격에 한 줄기 금광이 되어 튕겨 나갔다.
그런데 그때 묵봉은 갑자기 공간을 가르며 지극히 괴상한 방식으로 그의 뒤쪽에 나타난 금광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금시대붕의 신통, 공간이동인가!”
묵봉은 바로 뒤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으나 순간 그의 무서운 권풍이 닿은 공간에 균열이 일었다.
슉!
금광은 묵봉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하더니 예리한 빛을 쐈는데 그 빛은 공간을 가르며 목진에게 향했다.
그 빛은 암금색 깃털로 절세의 신검처럼 날카로웠고 난폭하기 그지없는 기를 내뿜었다.
이는 엄청난 신수인 금시대붕한테서 떨어진 깃털로 천붕족의 제련을 통해 절품 신기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일반 7급 지존이 이에 적중하면 바로 육신에 구멍이 날 것이다.
종등은 묵봉의 공격에 적중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목진을 죽이려 했다.
그의 공격에 묵봉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날뛰는 종등을 잡고 있을 수는 있지만 이미 날아간 검우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목진은 분명 검우에 맞고 죽을 것이다.
묵봉은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에 너무 화가 났다. 그는 오늘, 절대 종등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위잉!
금광은 빠르게 날아가 목진의 뒤통수를 찌르려 했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목진이 정녕 이대로 죽는단 말인가?
사람들은 광막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종등은 히쭉거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제아무리 천재인들 결국 나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종등의 표정이 확 굳었다!
조용히 서 있던 목진이 갑자기 자금색 빛을 발하는 손을 내밀어 자신의 뒤통수로 향하는 검우를 한 손으로 쥔 것이다.
그는 7급 지존경의 육신마저 뚫을 수 있는 검우를 손으로 꽉 잡았다!
목진은 드디어 눈을 뜨더니 금광을 발하는 눈동자를 굴리며 돌아서서 종등을 노려봤다.
길쭉한 손에 잡힌 예리하기 그지없는 암금색 검우는 미친 듯이 금광을 발할 뿐 꼼짝도 못 했다.
한편, 목진은 검우를 수중에 쥔 채 금광을 발하는 눈동자를 굴리며 종등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종등, 자넨 역시 악질이군.”
종등은 어느새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는 목진이 가장 중요한 시간에 힘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절품 신기의 위력을 지녀 7급 지존의 몸을 뚫고도 남을 검우를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일전의 목진이었다면 절대 이를 해낼 수 없었을 텐데 탄천신수의 정기를 흡수하더니 육신이 부쩍 강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 목진한테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참으로 골칫덩어리군!”
종등은 3층에서 바로 목진을 죽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목진을 죽였어야 했다.
다만, 제아무리 후회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목진의 예리하기 그지없는 눈빛에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몸만은 잔뜩 긴장한 채 그의 공격에 대비했다.
지금의 목진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종등은 서둘러 목진이 잡은 검우를 회수하려 했다.
그런데 검우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했고 목진이 손에 힘을 주자 금광이 점차 어두워졌다.
“나한테 내줬으면 돌려받을 생각은 말아야지. 종등, 선물은 고맙게 받겠네.”
목진은 피식 웃더니 체내의 영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려 검우에 주입했다. 요긴하게 사용할 무기가 부족했던 목진은 검우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이에 종등은 버럭 화를 내려다가 바로 차분해졌다. 검우는 금시대붕의 깃털로 만들어졌는데 녀석의 기가 깃들어 있어서 진정한 신수인 천붕족 사람이 아니면 분명 그 기운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역시나 종등의 예상대로 목진의 몸이 갑자기 굳었고 황금색 검우는 격렬하게 발버둥을 치며 지극히 난폭하고 예리한 기운을 내뿜었다.
“금시대붕의 기라…….”
그런데 목진은 당황은커녕, 미소를 지으며 손에 힘을 주자 팔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나타나 양자의 기를 주입해 남아있는 금시대붕의 기를 완벽히 제압했다.
금시대붕이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기운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황금색 검우는 바로 차분해졌고 금광을 거두더니 황금색 장검으로 변해 목진의 손에 내려앉았다. 이에 검을 자세히 살펴보니 칼날이 미세한 톱니처럼 가득 차 있었고 은은한 금광을 발하며 지극히 예리한 기운을 내뿜었다.
“괜찮은 녀석이군.”
목진이 금광을 발하는 장검을 휘두르며 생긋 웃자 종등은 순간 넋이 나갔다.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의 손에서 유난히 조용한 장검을 바라봤다.
목진이 정녕 장검에 깃든 금시대붕의 기를 제압했단 말인가?
무려 엄청난 신수인 금시대붕을?
설마 목진은 사람이 아니라 체내에 엄청난 신수의 혈맥이 흐른단 말인가?
그때 목진이 황금색 장검을 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이제 우리 사이의 원한을 풀어야겠군.”
종등은 목진의 미소에서 엄청난 살기를 느꼈다. 그가 몇 번이나 목진을 없애려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잇따라 묵봉이 반대편으로 달려가 종등의 퇴로를 차단하자 녀석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종등은 목진과 묵봉을 상대로 이길 확률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보상을 받으러 연체탑에 들어온 것이니 여기서 이럴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아직 4층밖에 안 되는데 나를 죽이려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리되면 당신들은 5층에 올라가더라도 좋은 성적은 따내지 못할 것이네.”
종등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한 말에 목진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연체탑에서 내치는 것쯤은 해낼 수 있지 않겠나?”
종등은 순간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이대로 연체탑에서 쫓겨나면 그는 5층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보상 역시 얻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