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화. 만수묘로 향하다
한산은 목진 등의 표정을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상고다보수는 실력이 엄청난 신수에 이를 만큼 아주 강했다고 들었네. 아마 그날의 전쟁만 아니었으면 녀석은 엄청난 신수로 거듭났을 것이네.”
상고다보수가 신수로 진화했다면 성물의 위력을 지닌 병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목진 등은 아쉬워하기는커녕, 눈빛이 점차 밝아졌다.
녀석이 곧 엄청난 신수에 이를 실력자라면 체내에 준 성물이 있단 말이 아닌가!
“녀석의 체내에 준 성물이 적어도 한 개 이상은 있을 걸세.”
한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더니 눈이 밝게 빛났다. 그는 준 성물을 한 가지라도 얻을 수 있다면 신수지원에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소식이 퍼지면 다들 만수묘로 몰려들 것이다. 이에 목진 등은 소름이 쫙 끼쳤다.
“이토록 엄청난 정보를 우리한테 말해줘도 되는 건가?”
묵봉은 믿기 어렵다는 듯 한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런 물건은 혼자 차지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아무리 좋은 물건인들 능력이 닿아야 취할 수 있는 법.”
한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만수묘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상고다보수의 묘 주위에는 상대하기 아주 귀찮은 녀석들이 있는데 이걸 아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네.”
“우리 종족 외에 다른 종족도 이 소식을 들었는데 그들도 분명 만수묘를 찾아갈 것이네. 그래서 난 믿음직한 벗이 절실하네.”
한산은 목진 등을 한참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목진의 실력이 미흡했다면 절대 여기로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네…… 그럼 어떻게 하겠나?”
목진은 구유, 묵봉, 묵령과 몰래 의논하더니 빠르게 결론을 내린 뒤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해봅시다.”
목진은 한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수묘는 불사조가 있을 거란 정보만으로도 한번 가볼 만한 곳이었다.
그가 신수지원에 들어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구유를 도와 불사조의 신혈을 얻어 혈맥 연결로 인해 혼탁해진 혈맥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신수지원은 너무 크고 넓을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해 이곳에서 불사조의 신혈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목진은 절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렇게 목진과 구유는 바로 한산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묵봉과 묵령도 반대하지 않았다. 만수묘가 위험하긴 하지만 엄청난 기회가 따르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 바로 떠납시다. 이곳은 만수묘와 상당히 멀어 전력을 다해 가도 닷새가 걸려야 도착할 것이네.”
한산은 이내 화색이 되어 멀리 떨어져 그를 기다리고 있던 벗들을 소환했다.
검은색 갑옷을 입고 엄청난 살기를 내뿜는 녀석들은 서마족의 강자들로 두 사람은 이미 7급 지존경에 이르렀고 나머지 한 사람도 6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다. 그들은 제법 실력을 갖춘 무리였다.
살기를 내뿜는 녀석들은 목진 등한테만은 유난히 다정했다. 일전에 목진이 선보인 실력에 완전히 넘어간 녀석들은 한산의 뜻에 찬성하는 바였다.
이에 목진 등도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어 인사를 나누고 주위를 쓰윽 훑었다. 뇌아족 사람들은 종등이 떠나가자마자 육수를 데리고 떠났고 다른 구경꾼들도 대부분 떠났다.
한편, 목진은 뇌아족 녀석들이 얄밉긴 했지만 모조리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도망가게 놔뒀다. 실력을 제법 갖춘 영수 종족을 적으로 두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목진은 어떻게든 종등과 똑같은 꼴을 만들어 줄 것이다.
더구나 육수는 종등보다 실력이 뒤처져 목진이 신경 쓸 만큼 위협이 되지도 않았다.
목진과 한산은 대략적인 의논을 마치고 바로 오래된 폐허의 도성을 떠났다. 이제 그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오래된 석탑만이 우뚝 솟아올라 있었고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 *
그때 저 멀리 어딘가에서는…….
슉!
황금색 대붕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산봉우리에 내려앉아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다름 아닌 종등으로 유청 등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그 뒤를 따랐다.
“종등 오라버니…….”
유청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종등을 바라봤다.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채 서 있는 종등은 한쪽 팔이 잘려 피를 철철 흘렸다. 그는 바로 도망갔지만 목진의 마지막 공격에 한쪽 팔이 잘렸다.
“목진, 내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종등은 잘린 팔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천붕족의 천재인 자신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낭패를 보고 한쪽 팔까지 잘렸단 사실이 알려지면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종등, 인제 어떻게 할 셈인가?”
종화도 이내 사색이 되어 물었다. 종등이 다쳐 전투력이 확 줄어들어 다른 강족과 싸우다가는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이에 종등은 씩씩거리며 한참 서 있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곤붕족부터 찾아가자꾸나. 종청봉(宗青峰)이 곤붕족의 다른 천재들과 함께 신수지원에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그가 있으면 목진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네.”
종청봉이란 말에 유청, 종화 등은 순간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천붕족 젊은이들한테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곤붕족 장로는 천붕족이었던 종청봉이 마음에 들어 곤붕족에 영입했는데 천재로 가득한 그곳에서도 최정예에 꼽힐 만큼 훌륭했고, 그 천부적 재능과 실력은 종등보다 훨씬 강했다!
종청봉만 나서준다면 목진 따위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유청 등은 꼭 목진의 처참한 꼴을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 * *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신수지원의 밤은 너무 추웠고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 찼는데 이는 사망의 기운 때문이었다. 비록 수만 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 죽은 신수족 강자가 너무 많아 밤이 되면 더 을씨년스러웠다.
하여 사람들은 보통 적당한 곳을 찾아 쉬며 죽음의 기운을 멀리하곤 했다.
한때는 웅장했지만 지금은 보잘것없어진 고봉에 누군가 동굴을 뚫고 들어가 특수한 하얀색 화염으로 사망의 기운을 떨쳐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목진 일행이었다.
한산은 미리 준비한 화석으로 불을 피웠는데 신수지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만수묘에 들어가려고 준비한 듯했다.
“이대로라면 나흘쯤이면 만수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네.”
한산이 손가락을 튕기자 화염이 활활 타올라 지도를 이뤘다.
“이틀 뒤, 우린 이곳을 지나는데 여기는 자유 무역점이라 각 종족의 강자들이 모일 것이네. 여기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야 하네. 그리고…….”
한산은 지도를 가리키며 목진과 구유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곳에 좋은 물건이 많으니 운이 좋으면 엄청난 걸 얻을 수도 있을 것이네. 어떤 멍청이가 우연히 획득한 잔편신통을 알아보지 못하고 헐값에 팔았단 소리도 들었네.”
“잔편신통(殘篇神通)이라…….”
목진, 구유 등은 흠칫하더니 몰래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멍청했으면 신통을 헐값에 판단 말인가? 그들은 한산의 말을 듣고 제법 솔깃해졌다. 신수지원은 땅이 크고 넓은 데다 보물이 셀 수 없이 많아 진귀한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헐값에 내놓는 일이 다분했다.
“자유 무역점에서는 지존영액으로 거래를 할 수 있고 자기 물건과 바꿔도 된다네.”
한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등한테서 빼앗은 지존영액 100만 방울까지 더해 목진한테는 지존영액이 200만 방울이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일단 여기서 쉬고 내일 일찍 떠납시다.”
한산은 자유 무역점에서 주의할 사항과 규칙에 대해 말해주고는 눈을 감았고 구유, 묵봉, 묵령 등도 각자 자리를 잡고 수련을 시작했다.
목진은 구멍을 파 수련실을 만들어 들어갔는데 바로 수련하지 않고 깊게 숨을 들이켜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잇따라 그의 뇌리에 참혹한 기운으로 가득 찬 오래된 전장이 펼쳐졌다. 그 중심에는 암홍색을 띤 누군가가 조용히 서 있었는데 달려오는 천군만마를 보고도 끄떡없었다.
그는 엄청난 살기를 품더니 위쪽에 선홍색 글을 셀 수 없이 만들었다. 그 글을 자세히 살펴보던 목진은 깜짝 놀랐다.
사신마권 제1식, 사신입마(舍身入魔)!
목진은 비록 무사히 연체탑에서 나왔지만 아무도 그가 5층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사실 5층의 시험은 실력이 아니라 몸을 내던질 담력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목진은 상대방의 공격에 육신이 부서진 순간, 자신이 성공했음을 알아챘다.
그 보상은 바로 혈전왕이 만든 신통, 사신마권이었다!
살기와 참혹한 기운으로 인해 목진의 두 눈은 어느새 빨갛게 상기되었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살기가 차올랐다.
이에 목진은 바로 생각을 멈추고 눈을 번쩍 뜨더니 이내 정색했다.
사신마권은 역시나 엄청난 수련법이었다. 수련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살기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신통이 쉽게 수련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신통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부터 매일 신통에 깃든 살기를 느끼며 적응해야겠어. 그러다 살기에 완전히 적응하면 수련을 시작할 수 있겠지?”
살기를 품고 자기 몸을 내던진단 생각으로 덤벼야 사신마권의 진정한 위력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신마권의 수련이 상당히 어렵긴 하지만 목진은 왠지 모르게 기뻤다. 그는 제1식 밖에 얻지 못했지만 일단 수련에 성공하면 최강 필살기가 될 것이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살기로 가득 찬 전장을 떠올리며 살기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는 사신마권의 위력이 무척 기대되었다.
* * *
이튿날 아침, 목진 등은 하늘이 밝아지자 수련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한 뒤 다시 떠났다.
목진은 그제야 신수지원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실감이 났다. 일부 구역에는 만 장 정도로 깊게 파인 구멍이 있었는데 이는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내리찍은 자국으로 지면 전체가 그 엄청난 힘에 찢어진 것 같았다.
신수지원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역외족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목진 등은 만 장 정도로 깊게 파인 구멍에서 보물의 기운을 느꼈지만 감히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곳은 만 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들어가면 천지의 영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망의 기운 때문에 체내의 영력이 빠르게 소모돼 신백까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밖에 목진 등은 다른 종족 무리와 적잖게 마주쳤지만 다들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여리여리해 보이는 묵령을 제외하고 7급 지존 다섯 명에 나머지 사람들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아 함부로 덤볐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낮에는 전력으로 전진했고 밤에는 수련에 집중해 이틀이 훌쩍 지났다.
그러다 사흘째가 되자 목진 등은 주위에 영력 파동이 훨씬 많아진 것을 느꼈다. 한산이 말한 자유 무염점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목진의 눈앞이 탁 트이더니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커다란 산맥이 나타났고 그 위에 오래된 바위로 이뤄진 건물이 우뚝 솟아올랐다. 그 속에서 웅장한 영력 파동들이 느껴졌는데 사방에서 사람들이 날아와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한산이 말한 자유 무역점이었다.
“도착했네.”
한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역점에 들어가면 각자 흩어져 사망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해야 하네. 그래야 만수묘에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것이네. 자네 수중에 구해야 할 재료가 적혀있으니 일단 발견하면 바로 사들이게. 물건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말이야.”
“알겠네.”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슉!
그들은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날아가 자유 무역점 외곽에 내려앉았다.
목진은 예상외로 번화하고 커다란 무역점의 모습에 적잖게 놀랐다. 그곳은 사람 천명이 드나들어도 될 만큼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