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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41화 (640/1,000)

641화. 봉염정(鳳炎精)

무역점에 들어간 한산은 서마족의 벗들과 함께 먼저 떠났고 목진 등은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특히 묵령은 무역점에 들어서더니 유난히 활발해졌고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듯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목진 등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뒤를 따랐다.

무역점 내부는 널찍했고 주위에 오래된 바위가 각자 다른 자태를 뽐내며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도로의 양측에 놓인 바위에 앉아 앞쪽에 놓인 나뭇가지에 각종 물건이 깃든 수정구를 달아놓고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족자, 오래된 검, 해골 외에도 아주 특이해 보이는 보물이 가득했는데 눈부신 빛을 발하는 것이 이목을 끌었다.

한편, 묵령 뒤에서 걷던 목진은 사망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는 재료를 발견하면 바로 물건을 사들였다. 밖에서는 보기 드문 재료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지존영액 수만 방울이면 구할 수 있어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목진은 진정한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물건도 적잖게 발견했는데 가격이 엄청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물건을 구하려고 대량의 지존영액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대부분은 최상급이라 외부의 경매장에서 경매하면 분명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무역점 깊숙이 들어가던 목진 등은 유난히 튼실해 보이는 나무 밑에서 발길을 멈췄다.

다른 나무보다 훨씬 튼실해 보이는 나무에는 수정구도 많이 달렸는데 발하는 빛 또한 상당히 눈부셨다. 하여 다들 이곳에 달린 물건을 보러 오곤 했다.

목진도 수정구 속 물건을 살폈는데 상당히 오래된 봉인이 덮인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목진마저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볼 수 없었다.

“이건 뭔가?”

목진은 나무 밑에 조용히 앉아있는 삐쩍 마른 사내한테 물었다. 그는 겉모습과 달리 아주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그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이것들은 내가 폐허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건들로 특이한 봉인이 있어 무엇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네. 그렇다고 봉인을 강제로 없애려 했다가는 보물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하네. 성공 확률은 3할 정도 되는데 한 번쯤 시도하고 싶으면 지존영액 50만 방울을 내고 해보게. 승패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자네가 봉인을 뚫고 성물을 얻었다고 해도 바로 물건을 넘길 것이네.”

마른 사내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녀석의 규칙은 다른 곳과 달랐는데 운이 나쁘면 봉인을 뚫었다고 해도 지존영액 50만 방울로 쓸모없는 것을 얻을 수도 있었다.

“지존영액 50만 방울에 기회를 한 번밖에 주지 않다니, 너무 하지 않나?”

누군가 씩씩거리며 묻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수정구의 봉인을 뚫고 그 속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보고 싶었지만 성공 확률이 3할밖에 안 되고, 지존영액을 50만 방울이나 줘야 해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메마른 사내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정성 들여 고른 물건이라 안목이 있는 사람은 분명 알아볼 거라 여겼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으면 그는 이 물건들을 전부 독차지했을 것이다. 그는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보물은 결국 다 부서졌다.

이에 목진은 구유 등을 힐끗 보고는 나서려 했다. 봉인으로 뒤덮인 보물들이 특이해 한 번쯤은 시도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바로 수정구들을 쓰윽 훑었는데 목진과 묵령이 똑같은 수정구에 눈길을 멈추고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오른쪽 아래편에 걸린 수정구에 깃든 검은색 돌이 무언가에 그을린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목진은 검은 돌을 보다가 자신과 같은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묵령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불에 탄 것 같은 검은 돌은 평범해 보였지만 목진은 그 속에서 유난히 뜨거운 파동을 느꼈다.

그때 묵령이 눈을 부릅뜬 채 목진의 옷깃을 잡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목진 오라버니, 저 안에 봉염정이 있어요!”

“봉염정이라니!”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봉염은 봉족 특유의 화염으로 난폭하기 그지없고 봉염정은 봉염을 제련한 정화로 불 속성 영력인 수련자한테 엄청난 도움이 되는 보물이었다.

검은 돌 내부의 특이한 파동밖에 느끼지 못한 목진과 달리 묵령은 봉인 속 물건을 알아챘다.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목진이 영력으로 목소리를 숨긴 채 조심스럽게 묻자 묵령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난 감지력을 타고났어요. 그 어떤 봉인이든 나한텐 소용이 없죠.”

목진은 소녀의 타고난 감지력에 깜짝 놀랐다. 역시 검은 돌에 봉인된 보물을 한눈에 알아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봉염정의 가치는 지존영액 50만 방울을 훨씬 넘을 뿐만 아니라 영력이 화의 속성인 수련자들한테 더없는 보물이었다.

이에 목진은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검은 돌을 바라보는 소녀에게 물었다.

“갖고 싶어?”

봉족 출신으로 보이는 묵령은 봉염을 지녀 봉염정을 흡수하면 수련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나한테는 지존영액이 없어요. 그리고 저 안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아도 봉인을 뚫을 자신도 없고요.”

묵령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쭈뼛거리며 말했다.

봉인을 뚫을 확률이 너무 낮아 자칫 잘못하면 보물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시도는 해봐야지.”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수지원에 들어온 뒤로 자신이 대부분의 보상을 독차지했단 생각에 목진은 묵령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묵봉은 목진과 함께 연체탑에 들어갔고 구유와는 각별한 사이라 이런 걸 따지지 않아도 되지만 묵령은 달랐다. 지존영액 50만 방울쯤은 충분히 내어줄 수 있었다.

목진은 한 손으로 검은 돌이 들어있는 수정구를 잡고 다른 손으로 지존영액이 들어있는 옥병을 삐쩍 마른 사내한테 건넸다.

사내는 옥병에 깃든 지존영액의 수를 확인하더니 손가락을 튕겨 수정구에 연결한 영력 광선을 잘라냈다.

이에 목진이 손에 힘을 주자 수정구는 터졌고 뜨거운 검은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면이 거칠고 불에 그을린 것 같은 검은 돌에 오래된 무늬가 가득 새겨졌는데 이것이 바로 봉인으로 상당히 오묘하고 난해해 보였다.

목진은 눈을 감고 영력을 주입해 오래된 봉인을 알아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봉인을 강제로 뚫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봉인이 사라지기 전에 그 속에 깃든 물건이 먼저 폭발할 가능성이 컸다.

하여 봉인을 뚫으려면 특수한 방법이 필요했다.

“봉인하는 데 사용한 재료가 특이해 보이는군.”

봉인을 한참 연구한 목진은 검은 돌 표면에 새겨진 무늬가 곧 봉인을 뚫는 관건으로 암홍색을 띤 무늬에서 특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엄청난 신수의 혈맥으로 봉인의 무늬를 그렸군. 그래서 수만 년이 지났는데도 끄떡없었던 거야.”

목진은 봉인에서 느껴진 위압감이 엄청난 신수한테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목진의 체내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이 깃들어 그 위압감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목진 오라버니, 어때요? 봉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묵령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묻자 주위 사람들도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들 지존영액 50만 방울을 내고 목진이 과연 어떤 물건을 획득했을지 궁금했다.

심지어 삐쩍 마른 사내마저 목진을 쳐다봤다. 그는 자신이 판 물건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를 전부 열려고 마음도 먹었었다. 그러나 그의 운은 생각보다 나빴고 몇 개를 열어봤지만 전부 폭발해 사라졌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겁이 난 사내는 더는 함부로 봉인을 뚫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얻은 보물들이 전부 폭발해 없어지면 자신은 헛수고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런 방식으로라도 지존영액을 얻는 것이 그한테는 훨씬 이득이었다.

그때 한참 고민하던 목진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볼게.”

봉인의 재료와 구조를 알게 된 목진은 한번 시도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봉인을 뚫는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강제로 봉인을 없애려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승산이 있었다.

목진이 검은 돌을 쥔 손을 가볍게 움직이며 영력을 한데 모아 영인을 만들어 공기에 주입하자 그의 손바닥에 자그마한 영진이 형태를 갖춰 검은 돌을 감쌌다.

공격형이 아닌 평범한 영진은 전환의 기능을 지녀 목진이 봉인을 건드리지 않고 몰래 내부에 들어가 봉인을 뚫는 것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목진이 영진 대사가 아니었으면 상당히 정교하고 어려운 영진을 이렇게 쉽게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 목진의 팔에 새겨진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무늬가 파르르 떨리더니 자금색 광점을 내뿜어 영진을 따라 검은 돌에 스며들었다.

오래된 봉인은 엄청난 신수의 피로 그린 거라 보통의 수단으로는 절대 봉인을 없앨 수 없었다. 이를 없앨 수 있는 존재는 역시나 엄청난 신수의 힘밖에 없었다.

목진의 팔에 깃든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힘처럼 말이다.

같은 등급의 힘이라야만 봉인에 빈틈을 만들어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잇따라 자금색 광점은 검은 돌에 스며들어 봉인의 무늬에 닿자마자 상대방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는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목진은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봉인을 없앴다.

반면, 사람들은 목진이 뭘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멍하니 검은 돌을 바라보고만 있는 줄 알고 투덜댔다. 그러나 구유와 묵봉, 묵령은 목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목진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치익.

그런데 그때, 완벽했던 봉인의 무늬에 드디어 결함이 생겼다.

“바로 지금이야!”

순간, 목진은 바로 검은 돌에 주입했던 영력을 폭발시켰고 봉인을 강제로 없앴다.

위잉!

목진 수중의 검은 돌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자 사람들은 역시나 실패했다는 생각에 몰래 혀를 내둘렀고 삐쩍 마른 사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위잉!

그런데 목진의 손바닥에서 갑자기 적염이 솟구치더니 무서운 고온에 주위의 공간마저 일그러졌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람들은 흠칫하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검은 돌은 어느새 사라지고 주먹만큼 커다란 적색 수정이 나타났는데 그 속에는 암장이 흘렀고 점점 화봉의 형태를 갖춰갔다.

물건을 알아본 사람들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봉염정이라니!”

나무 밑에 서 있던 사내도 입을 쩍 벌린 채 바라봤는데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정작 목진은 수중의 봉염정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진이 봉인을 뚫는 것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영력에 대한 미세한 장악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다행이야.”

목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수중의 봉염정을 옆에 서 있는 묵령에게 넘겼다.

“고마워요, 목진 오라버니!”

묵령은 조심스럽게 봉염정을 건네받았고 너무 기뻐 어쩔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채찍이 날아와 봉염정을 낚아채려 했다.

“지존영액 60만 방울을 줄 테니 나한테 봉염정을 넘겨.”

어디선가 채찍이 날아와 묵령 수중의 봉염정을 휘감았고 목진한테는 지존영액이 가득 담긴 옥병이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묵령은 멍하니 채찍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소녀의 앞쪽에 갑자기 길쭉한 손이 나타나더니 무서운 힘을 실은 채 채찍을 낚아챘다.

그 손은 다름 아닌 목진의 것으로 무덤덤한 표정으로 채찍을 잡은 뒤 자신한테 넘어온 옥병을 다시 내던졌다.

“안 팔아.”

목진이 손가락으로 수중의 채찍을 힘껏 튕기자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채찍은 신속하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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