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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43화 (642/1,000)

643화. 세 알 더

목진이 나지막하게 내뱉은 말에 백빈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는 당장 목진을 집어삼키고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비록 한황족 젊은이 중 정예는 아니지만 체내에 봉황의 혈맥이 깃들어 있어 다른 신수 종족 사람들은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하여 목진 같은 태도를 보이는 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 녀석을 죽여라!”

화간 난 백빈은 얼굴이 한껏 일그러진 채 외쳤다. 이에 뒤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서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강력한 위압감을 형성하며 목진을 노려봤다.

그들 역시 한황족 사람들로 백빈보다는 못하지만 전부 7급 지존경에 이른 강자들이었다.

그때 구유, 묵봉과 묵령이 목진한테 다가가 상대방을 노려봤다.

“구유족 따위가 감히 한황족에 덤비려는 것이냐?”

백빈이 음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 말에 구유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황족에서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군. 너 따위가 한황족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신수지원에 들어왔으면 실력으로 말해야지 어디서 입만 나불대는 거야! 한황족에서 오늘 일을 알면 아무도 네 편을 들어주지 않을뿐더러 너를 무능한 멍청이라고 혼낼 거다.”

구유는 백빈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한황족은 봉황족의 일족으로 그들만으로는 절대 구유족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에 백빈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가 오늘 6급 지존경과 싸우다 패한 것이 알려지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장로들이 더이상 그를 중용하지 않으면 그한테는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하하, 제법 시끄럽군.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사달이 난 건가?”

그때 누군가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한산과 서마족 강자들이 살기 가득한 얼굴로 나타났다.

한산은 주위를 쓰윽 훑더니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목진한테 다가갔다.

“사고뭉치들이 따로 없군.”

말을 마친 한산은 목진의 옆에 서서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건 서마족 사람들이고 저 사람은 한산이 아닌가? 한산은 서마족의 천재로 7급 지존경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고 들었네.”

“서마족이 구유족과 이렇게까지 가깝게 지낼 줄은 몰랐군.”

* * *

사람들의 말을 들은 목진은 무안해서 웃기만 했다. 오늘 일은 온전히 적홍무와 백빈이 일으킨 것으로 목진은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한산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한산은 백빈이 한황족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지 않고 나섰으니 친구로 사귈만한 사람이었다.

백빈은 한산의 태도에 안색이 더 어두워졌고 뒤에 서 있는 한황족 강자들도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서마족까지 나서면 목진 등을 쓰러뜨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난 절대 오늘 일을 잊지 않을 거니까 딱 기다려.”

말을 마친 백빈은 서둘러 한황족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 아마 그의 속은 분노로 뒤틀렸을 것이다.

다른 한황족 강자들의 표정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봉황족의 일부인 그들은 평소에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족에서 평범한 존재일 뿐이라 그들만으로는 절대 목진 등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하여 녀석들은 이를 갈며 목진 등을 노려보더니 바로 백빈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피 튀기는 대결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적홍무가 흥미진진하게 목진을 바라보더니 들끓는 전의를 가라앉히며 말을 건넸다.

“너무 좋아하지는 마. 백빈은 한황족 젊은이 중 5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녀석이야. 그러니까 한황족 사람들이 다 저 녀석처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여인은 일전에 자신이 한 무모한 행동 때문에 미안해 귀띔해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적홍무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았던 목진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에 적홍무는 이를 갈며 발을 구르더니 바로 뒤돌아섰다.

“센 척하기는! 그러다 정말 한황족의 최정예 강자를 마주치면 도망갈 시간도 없을 거야!”

목진은 멀어져가는 적홍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백빈이 한황족 젊은이 중 5위권에도 들지 못한다는 여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황족의 실력은 엄청날 것이다. 역시 봉황족은 남달랐다.

“적홍무의 말은 사실이네. 한황족의 정예 강자들은 오늘 여기 나타나지 않았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쉽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네.”

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말했고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 중에 강적을 마주치는 것은 정상이네. 그런데 이를 전부 피한다면 무슨 멋으로 산단 말인가?”

한산은 멈칫하여 목진을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넨 참, 견해가 남다르군.”

모든 일에 떳떳하고 상대가 강하다고 하여 피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진정한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한산은 그제야 목진이 6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강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젠가 한황족은 물론이고 봉황족의 최정예 강자가 와도 절대 소년을 건드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드디어 마음을 가라앉힌 묵봉이 목진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고마워. 그런데 이 일에 참견하지 않았어도 됐어. 나도 저 녀석쯤은 상대할 수 있어.”

“난 절대 내 친구를 괴롭히는 꼴을 못 봐.”

목진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묵봉은 멈칫하더니 복잡해진 표정으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묵봉은 구유족에 있을 때도 친구라 불리는 존재가 없었고, 이에 점차 과묵해졌는데 이를 잘 아는 묵령은 오라버니가 지금쯤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되었다.

정작 목진은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영향을 끼친 지도 모른 채 돌아서서 뒤쪽에 나무에 걸린 수정구를 바라봤다.

일전에 지존영액 50만 방울만으로 봉염정을 획득했기에 목진은 수정구들이 흥미로웠다. 그는 삐쩍 마른 사내가 무슨 수로 물건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전부 범상치 않은 보물들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녀석은 보물을 열 줄 몰라 전부 판매하려고 내놨다.

한편, 사내는 다시 자신 쪽으로 돌아선 목진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목진이 봉염정을 획득한 것을 보고 얼마나 샘이 났는지…… 이걸 그가 봉인을 뚫고 꺼냈다면 적어도 지존영액 만 방울에 판매했을 것이다.

“또 시도하려고 그러는 건가? 일전에 봉인을 뚫는 수법을 보니 뭔가 아는 것 같은 눈치던데…….”

사내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목진이 봉인을 없애는 수법은 무턱대고 봉인을 뚫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았다.

“천운이 따랐을 뿐이네.”

목진은 대충 둘러대고 수정구를 쓰윽 훑고 묵령을 힐끗거리자 소녀는 바로 눈치채고 집중해 수정구를 관찰한 뒤, 세 개를 선택했다.

이에 목진은 묵령이 가리킨 수정구 세 개를 잡고 옥병을 건네며 말했다.

“지존영액 150만 방울이 들어있으니 수정구 세 개는 내가 가져가겠네.”

사내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왠지 목진이 가져간 수정구가 자신이 가진 물건 중에서 가장 값진 물건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아쉬워도 별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웃으며 옥병을 받았다.

목진의 실력을 직접 본 사내는 목진을 건드릴 마음이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수정구에 연결되었던 영력 광선을 끊었다.

수정구 세 개를 건네받은 목진은 갑자기 심장이 콩닥거렸다. 수정구 세 개는 전 재산을 털어 산 거라 목진은 묵령의 판단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 그는 수정구에 지존영액 150만 방울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보물이 들어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안 그럼 목진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지존영액을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은 수정구 세 개를 바로 열지 않았다. 그러다 또 다른 누군가가 탐내면 귀찮아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삐쩍 마른 사내한테 봉인을 깨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또 다른 변고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하여 목진은 아쉬워하는 사내를 뒤로한 채 한산, 구유 등과 함께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재료는 얼추 갖춘 것 같고 아직 이틀 정도 더 가야 하니 오늘은 일단 여기서 쉽시다.”

목진은 한산의 말에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안전한 곳을 찾아 구매한 수정구 세 개의 봉인을 풀어야 했다.

이렇게 한산 등은 자유 무역점의 서쪽에 있는 석탑으로 향했다. 그 구역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 목진 등은 그중 텅 빈 곳을 찾아 들어갔다.

목진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정구 세 개를 꺼냈는데 그 속에 들어있는 돌 표면에 봉인의 무늬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에 옆에 앉아있는 구유 등도 흥미진진하게 수정구를 살폈다. 그들은 목진이 구매한 수정구에 어떤 보물이 들어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때 한산마저 다가와 목진 쪽을 바라봤다.

일전에 목진이 봉염정을 획득해 적홍무의 시선을 끈 것을 알게 된 그도 수정구 속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봉염정만 해도 그 가치가 지존영액 50만 방울을 훨씬 넘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그중 한 수정구를 으깨 차가운 먹정을 수중에 넣었는데 표면에 암홍색 무늬가 새겨진 것이 역시나 엄청난 신수의 선혈로 그려진 것이었다.

그는 봉염정을 꺼낼 때와 같은 방법으로 작고 정교한 영진을 그린 뒤, 체내의 진정한 봉황과 진정한 용의 령의 힘으로 완벽한 봉인을 없애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중의 먹정에 새겨진 봉인의 파동이 무질서해지자 목진은 바로 주먹을 쥐었고 스며들었던 영력이 폭발해 먹정도 산산이 부서졌다.

빛이 가시자 목진의 수중에 암자색 빛을 발하는 물건이 나타났는데 이는 순식간에 커져 암자색 갑옷으로 변했다.

오래된 부적과 깊이가 다른 무늬가 새겨진 갑옷은 놀랍고도 오묘한 파동을 내뿜었는데 살펴보니 여인용 갑옷이었다.

잇따라 목진이 영력을 주입하자 갑옷은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으며 표면에 영력 방어막을 형성했다.

쿵!

목진이 주먹을 힘껏 휘두르자 갑옷 표면의 영력 보호막은 무너졌지만 목진의 힘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두 힘이 완전히 상쇄되고 보니 갑옷에 은은한 권인이 남았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방어력이 엄청나군!”

목진의 공격에 적중하면 6급 지존경이라도 바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텐데 암자색 갑옷은 쉽게 막아냈다.

“제법이군. 영력을 증폭시킬 수도 있고 말이야.”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갑옷은 방어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영력을 끌어올리는 작용까지 있었다. 게다가 사용자의 전투력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어 이것만으로도 절품 신기 가운데 상품이라 할 만했다. 그 가치는 지존영액 50만 방울을 훨씬 넘었다.

“좋은 물건이군!”

한산이 흠칫 놀라 한 말에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그 물건을 구유한테 전했다. 여인용 갑옷인 데다가 구유한테 도움이 될 거라 목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에 구유는 멈칫하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영력을 내뿜어 신속하게 갑옷을 제련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잇따라 목진은 다른 수정구로 눈길을 돌렸는데 봉인은 이전과 똑같아 손쉽게 뚫렸다. 그 속에 깃든 물건을 살펴보니 그중 하나는 검은색 우각으로 활처럼 휘어진 물건의 표면에 상처가 가득 있었고 놀라운 살기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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