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644화 (643/1,000)

644화. 만수묘

목진은 검은색 우각이 한산 등이 변신했을 때 머리에 달린 것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그쪽을 바라봤는데 서마족 강자들도 두 눈을 부릅뜨고 검은색 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서마족의 뿔인가?”

목진이 어리둥절해서 묻자 한산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답했다.

“서마족 선조의 물건인 듯하네. 우리 종족의 최강 무기는 바로 우리 뿔이라네. 그 속에는 특유의 살기가 깃들어 있어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난들 저 뿔을 달고 수련하면 분명 수련 속도가 빨라질 것이네.”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마족 강자들이 이토록 흥분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서마족에는 엄청난 보물이지만 목진 등한테는 큰 소용이 없었다. 우각처럼 특이한 살기를 내뿜는 물건은 누구든 필요할 만큼 보편적인 물건은 아니었다.

“목진…….”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한산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그 물건을 우리한테 팔면 안 되겠나?”

이에 목진이 구유 등을 쳐다보니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서마족의 보물을 갖고 있다고 해도 구유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한산 등이 제시한 값이 합당하다면 넘기는 것도 제법 좋은 선택이었다.

하여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수중의 검은색 우각을 한산한테 넘겼다.

“값은 알아서 주게.”

한산은 구유나 묵봉, 묵령처럼 그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그냥 주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한편, 조심스럽게 우각을 건네받은 한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우각을 만져보더니 뒤돌아서 벗들과 상의한 후, 목진한테 옥병을 건넸다.

“목진, 이 물건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무용지물이지만 서마족에는 더도 없는 보물이네. 이걸 대천세계에서 경매하면 아마 지존영액을 200만 방울도 넘게 받을 것이네.”

한산은 괜히 목진한테 미안해졌다.

“그런데 우리의 전 재산이 200만 방울뿐이라…….”

“지존영액 200만 방울이라…….”

목진은 멈칫하더니 몰래 혀를 끌끌 찼다. 그는 기껏해야 지존영액 100만 방울을 받으면 잘 받은 거라고 여겼는데 서마족에서 우각을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지존영액 200만 방울은 목진이 자유 무역점에서 쓴 양이었다.

“그럼 그럽시다.”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지존영액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더구나 아직은 한산과 더 협력해야 했다.

이에 한산을 비롯해 서마족의 다른 강자들도 선의의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이 일로 서마족 사람들은 목진에 대한 호감이 확 올랐다.

잇따라 목진은 마지막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주먹만 한 크기의 은색 물건은 표면이 거칠었고 난폭하기 그지없는 뇌명이 조금씩 들렸다.

그런데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목진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는 물건에서 지극히 무섭고 난폭한 힘이 깃든 것이 느껴졌는데 이는 그마저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 같았다.

“이건 뭐지?”

목진은 어리둥절해 구유 등을 바라봤는데 그들도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우각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한산이 고개를 돌리더니 화들짝 놀라 말했다.

“이건 원고 때도 보기 드물었던 탄뢰수심(吞雷獸心)일 것이네.”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탄뢰수심이라…….”

원고 시기, 육식도 초식도 아닌 벼락을 먹고 생존하는 생물이 있었다. 녀석이 삼킨 벼락이 심장에 어느 정도 모이면 천지를 부술 만큼 무서운 힘이 생기는데 온순한 녀석은 화를 자주 내지 않는 대신 화가 나면 심장을 폭발시켜 상대방과 함께 죽는다고 했다.

만 년의 세월을 보낸 탄뢰수(吞雷獸)의 심장이 폭발하면 그 위력은 얼마나 대단할까?

소문에 의하면 지지존급 강자가 탄뢰수를 잡아 키우려다가 녀석이 심장을 폭발시켜 함께 죽었다고 했다. 이에 대천세계에서는 탄뢰수의 존재를 점차 잊어갔다.

한산의 말을 듣고 난 목진은 머리가 지끈거렸고 은색 심장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심장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탄뢰수의 심장은 색깔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만 년이 넘으면 황금색이고 천 년이 넘으면 은색을 띤다고 들었네. 은색 심장은 지지존을 죽일 수는 없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내기엔 충분하네.”

한산은 은색 심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탄뢰수의 심장은 엄청난 필살기라 궁지에 몰리면 이것으로 상대방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잘 아는 목진은 히쭉 웃더니 은색 심장을 조심스럽게 거뒀다. 이것만 있으면 누가 찾아오든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건은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어 함부로 꺼내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얼마나 큰 낭비란 말인가?

“엄청난 걸 얻었군.”

한산은 목진이 자못 부러웠다. 목진이 획득한 물건 중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는데 그 가치를 따지면 지존영액 천만 방울이 넘을 것이다. 목진이 물건을 구매하는 데 썼던 지존영액 150만 방울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목진도 이내 화색이 되었다.

묵령이 아니었다면 목진은 절대 이런 엄청난 보물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그가 마침 영진사가 아니었다면 엄청난 신수의 피로 그려진 영진을 뚫고 그 속에 보물을 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곧 만수묘에 도착할 텐데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게 어떤가?”

목진이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산한테 질문을 던지자 옆에 서 있던 구유, 묵봉 등도 고개를 돌렸다.

일단 만수묘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에 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럽시다. 지난번에 신수지원에 들어온 우리 종족 강자의 말에 의하면 다보수를 발견한 건 서마족 뿐만이 아니라고 했네.”

“그럼 또 누가 있는가?”

묵봉이 물었다.

“천랑족(天狼族)과 황금사족(黃金獅族)이 있네.”

한산의 말에 목진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천랑족과 황금사족은 실력을 제법 갖춘 종족으로 진화를 마치면 탄월천랑(吞月天狼)과 구두황금사(九頭黃金獅)로 거듭날 텐데 이는 엄청난 신수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최근 만 년 사이, 아무도 완전히 진화하지는 못해 현재 어려운 상황인 듯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천랑족과 황금사족은 대천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우린 몰래 천랑족과 약속했네. 일단 함께 황금사족을 내쫓은 뒤 각자 알아서 보물을 찾기로 말이야.”

한산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깜짝 놀랐다. 그는 서마족이 몰래 천랑족과 관계를 맺었을 줄 몰랐다. 이리되면 황금사족은 호되게 당할 것이 분명했다.

“천랑족은 교활하고 사악하여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이에 한산도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약속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변고가 생기면 천랑족에서도 분명 사마족을 공격할 것이다. 한산은 그런 상황에 대비해 목진 등과 손을 잡은 것이다. 엄청난 비밀을 공유하면서까지 모르는 사람과 보물을 공유하려는 멍청이는 없었다.

“그들 외에도 다보수가 죽은 곳 주위에 있는 사망의 기운이 깃든 수령들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네.”

“수령이라…… 몇 마리 정도 있고 실력은 어떤가?”

수령은 영수 종족의 강자가 죽은 뒤, 몸에 사망의 기운이 깃들어 산 송장과 비슷한 상태가 된 것을 일컫는다. 녀석들은 생전의 일부 실력을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일단 마주치면 떨쳐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수가 제법 많고 대부분 5, 6급 지존경에 이르렀네. 유난히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한산이 한껏 정색하여 말했고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한산도 만수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닌 듯했다. 하긴, 만수묘는 신수지원에서 유명한 흉지라 누구도 감히 들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 다보수 쟁탈전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불사조에 관한 정보도 있으니 쉽게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목진 등은 계획을 대충 짠 뒤, 각자 자리를 잡고 수련을 시작했고 목진도 사신마권의 살기를 느끼는 데 집중했다.

고요한 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자 무역점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왔고 또 머물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곳은 여전히 생기가 넘쳐 흘렀다.

“우리도 이만 떠납시다.”

한산의 말에 목진, 구유 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석탑에서 나와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한산 등 서마족 강자들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때, 목진 등이 머물렀던 석탑 밖에 갑자기 한 무리가 나타났는데 그중에는 목진 때문에 체면을 잃은 백빈이 있었다.

녀석은 겸손하게 서 있었고 대신 그 앞에 하늘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무덤덤한 얼굴로 목진 일행이 떠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하늘색 눈동자를 가볍게 굴리자 주위의 공기가 전부 얼어붙었다.

“백명(白冥) 형님, 녀석들이 떠났나 보네요.”

백빈이 텅 빈 석탑 내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하늘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백빈의 눈빛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 녀석한테 진정한 봉황의 기운이 깃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냐?”

하늘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네, 틀림없어요. 녀석한테 분명 우리 종족의 보물이 있을 거예요. 안 그럼 인간 따위가 어찌 진정한 봉황의 위압감을 내뿜을 수 있을까요?”

백빈이 황급히 해명하자 하늘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봉황의 기운이라, 이건 봉황족 중 가장 고귀한 혈맥을 가진 신수한테만 있는 것인데 무슨 보물이길래 그게 가능할까?

사내는 자신이 그 보물을 획득하면 혈맥 정진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낸 것이냐?”

하늘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서북쪽으로 향했어요.”

“그쪽은…….”

하늘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백빈의 말에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무역점에 들어가 필요한 물건부터 구입하자꾸나. 녀석들은 만수묘에 갔을 것이니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일단 살려두도록 하지!”

* * *

무역점을 벗어난 목진 등은 뒤에 꼬리가 달렸단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백빈이 나섰을 때 이미 후폭풍을 예상한 목진은 녀석이 누굴 데려오든 전혀 두렵지 않았다. 목진은 절대 상대방을 쉽게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목진은 전력을 다해 만수묘로 향했다.

이렇게 목진 등은 속도를 한껏 끌어올려 달리다가 이튿날 저녁, 한 고봉에 내려앉아 먼 곳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가 일었는데 그 속에서 음산한 소리가 전해졌고 허공에는 수많은 묘지가 나타나 사망의 기운을 내뿜었다.

목진 등은 드디어 만수묘에 도착했다.

잿빛을 띤 사망의 기운에서 비롯된 음산한 기운은 영력으로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누구든 그곳에 들어가면 체내에 사망의 기운이 점차 깃들 것이다.

목진 등은 만수묘 밖의 산봉우리에 서서 주위에 가득 찬 사망의 기운과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묘지를 보고 자연스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만수묘에서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신수지원의 유명한 흉지는 역시 남다르군.”

목진이 감탄하며 말했다.

“만수묘에서 죽은 엄청난 신수는 한 마리가 아니라네.”

한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엄청난 신수는 신수 종족의 최정예급 존재로 천지존과 비슷한 실력을 갖췄는데 결국 만수묘에서 숨졌다.

강한 존재일수록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단 생각에 엄청난 양의 사망의 기운을 방출한다. 그래서 이곳 만수묘의 사망의 기운이 유독 짙은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