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7화. 실패
한산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한기 어린 눈빛으로 천랑족과 황금사족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는 천랑족 사람들을 당장 찢어 죽이고 싶었다.
서마족의 다른 강자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양의 수령을 전부 쓰러뜨리려다가는 그들이 되려 이곳에서 숨질 수도 있었다.
“일단 이곳에 있는 수령부터 없앱시다!”
그때 목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일단 주위에 있는 수령을 죽여야 철수를 하든 뭘 하든 발목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이에 한산, 구유 등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체내의 영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려 수령들을 공격했다.
퍽!
목진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의 목표물을 바라보며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녀석의 미간에 손을 대고 난폭한 영력을 발사했다.
쿵!
7급 수령의 머리는 바로 부서졌고 몸은 맥없이 쓰러졌다.
잇따라 그는 구유 등을 도와 나머지 7급 수령도 최대한 빨리 죽였다.
목진 등이 7급 수령을 전부 죽이자 사망의 기운을 몰고 온 수령 무리는 훨씬 가까워졌고 녀석들의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산은 7급 수령과 싸우다 옷이 찢어진 것도 무시하고 녀석들을 바라봤다.
“이제 어떡하지?”
구유가 물었다. 수령의 수가 너무 많아 이들만으로 전부 없애기란 불가능했다. 최대한 빨리 철수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철수하면 다보수와 보물을 포기해야 하는데 한산은 썩 내키지 않았다. 오늘을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해왔기 때문이었다.
“하하, 한산, 지금 상황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나 보지?”
한산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저 멀리 누군가의 비아냥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목진 등이 순간 안색이 어두워진 채 고개를 들었는데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의 나무 위에서 황금사족의 김렬과 천랑족의 곽양 등이 나타났다.
“곽양!”
한산은 곽양을 발견하더니 눈이 순간 빨갛게 상기되었고 표정도 일그러졌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협력은 원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약속으로 내가 더는 원치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앞으로 누구든 쉽게 믿지 말게. 그러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네.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내 말을 평생 명심하게.”
곽양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한산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천랑족에 엄청난 보상을 약속해준 것 같은데 왜 나를 배신한 건가?”
이에 곽양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긴 하지만 난 성공 확률이 높은 쪽과 협력하는 편이라…….”
곽양은 한산이 황금사족을 이기지 못할 거라 여기는 것 같았다. 하여 비슷한 조건을 제시한 두 종족 중 황금사족을 선택하고 이들을 도와 한산에게 덫을 놓은 것이다.
“좋네, 이번 일은 잘 기억해 둘 테니 앞으로 내 손에 걸려들지나 말게.”
한산이 씨익 웃으며 한 말에 곽양은 섬뜩했지만 금세 표정이 바뀌었다.
“그 말은 자네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다시 하게.”
황금사족의 김렬은 옆에 서서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했는데, 꼭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듯 바라봤다.
“수령들은 왜 녀석들을 공격하지 않는 건가?”
구유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다들 흠칫했다. 녀석들은 수령들의 바로 위쪽에 서 있는데 왜 못 본 척 지나치고 오히려 더 멀리 떨어진 목진 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걸까?
이에 목진이 김렬 등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녀석들 주위에 은은한 회색 광막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광막은 사망의 기운과 비슷한 파동을 내뿜었다.
“저들은 특수한 물건을 이용해 사망의 기운으로 주위를 감싼 것 같네. 수령은 눈이 먼 대신 생기와 사망의 기운으로 기척을 느끼니 사망의 기운으로 온몸을 휘감은 김렬 등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네.”
목진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곽양이 한산 등에게 승산이 없다고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황금사족은 한산보다 준비를 더 철저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곳에 덫을 놔 한산 등이 뛰어들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젠장.”
한산은 녀석들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는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한산 형님.”
서마족의 강자들이 한산을 바라보며 외쳤다. 수령이 점차 가까워져 지금 철수하지 않으면 곧 녀석들한테 포위될 것이다.
한산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이를 악물고 철수 명령을 내리려 했다.
다보수의 보물이 아무리 좋아도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한산은 상황이 이리되어 목진 등에게 미안했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보수는커녕 상갓집 개처럼 쫓기기만 했으니.
“잠깐만.”
그런데 그때, 목진이 갑자기 입을 열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돌렸다. 지금 철수하지 않으면 궁지에 몰릴 텐데 목진은 다보수의 보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저러는 걸까?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 방법이 있을 것 같네.”
“뭐라?”
구유를 포함해 다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저들이 수령을 피한 방법에서 떠오른 생각이네. 수령이 생기와 사망의 기운으로 침입자를 발견하는 거라면 우리가 발산하는 생기만 차단하면 되는 게 아니겠나?”
목진의 말에 한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수령의 감응력이 뒤처지긴 해도 생기만은 그 누구보다 잘 알아채네. 우리한테서 생기가 조금이라도 새면 저들은 사냥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네.”
한산은 목진한테 생기를 차단할 수단이 있다는 걸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목진은 조용히 서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영인이 형태를 갖춘 뒤, 빠르게 이곳 천지에 스며들어 공기마저 진동했다.
“영진이라…….”
구유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쿠쿵!
대지의 진동은 점차 격렬해졌고 멀리 떨어진 수령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살기를 몰아왔다.
서마족 강자들은 어느새 식은땀이 흘렀고 녀석들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사색이 된 채 한산을 힐끗거렸다. 한산이 일단 결정을 내리면 당장 철수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하던 한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하네!”
한산은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천랑족을 찢어 죽이고 싶은 그는 상갓집 개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목진과 지내다 보니 그가 절대 무턱대고 나설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한산은 목진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에 목진은 눈을 감고 손가락을 더 빨리 움직였다.
“한산은 죽기로 작정했나 보군.”
나무 위에 서 있던 김렬은 한산 등이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하자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저 한산이 다보수의 보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저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보물을 얻고 싶으면 영원히 여기 남는 것도 나쁘진 않지…….”
김렬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쿠쿵!
수령이 이룬 홍류는 사망의 기운을 싣고 미친 듯이 몰려왔고 구유 등은 녀석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천 장…… 500장…… 200장…….
그러다 녀석들이 백 장 정도로 가까워지자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서마족 강자들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목진은 꼭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위잉!
주위 공간이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영력 광문이 주위에 빠르게 퍼져 이들을 완벽히 감쌌는데 그 형태는 회색 관목 같았다.
목진이 친 영진이 형태를 갖추자마자 사망의 기운이 휘몰아쳤고 한산 등은 순간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쿠쿵!
수령들은 관목 영진이 형성되자마자 몰려왔는데 어쩐 일인지 목진이 서 있는 구역을 알아서 피해갔다. 이에 한산 등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자신들을 무시한 채 그냥 지나치는 녀석들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사망의 기운을 내뿜는 수령들은 목진 등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성공했네!”
한산은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반면, 나무 위에 서서 히쭉거리던 김렬, 곽양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한산 등을 넘어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6급 지존이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
사망의 기운이 이룬 홍류는 회백색 그림자들을 싣고 지나갔는데 녀석들은 지능이 없어 목표물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한산 등은 멀어져가는 수령 무리를 보더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고 서마족의 강자들은 사색이 된 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수령 무리가 몰려오자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목진, 고맙네.”
한산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내 화색이 되어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목진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혹시나 해서 해본 건데 소용이 있어 다행이네.”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한산은 절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목진은 승산이 없는 일에 뛰어들지 않는 사람이니 그가 말을 꺼냈다는 것은 분명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암튼 제일 큰 고비를 건넜으니 다행이었다.
“이 영진만 있으면 만수묘를 거리낌 없이 다닐 수 있는 거야?”
묵봉이 조금 놀란 듯 묻자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를 공격했던 수령은 그리 강하지 않아 가능했던 거지. 실력이 더 강한 녀석이 나타나면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거야.”
일전에 방대한 수령 무리가 지나갈 때, 목진은 7급 수령이 머뭇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뒤쪽 대부대의 속도 때문에 무리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 강한 수령일수록 감응력이 뛰어나 영진으로 생기를 차단해 녀석들의 추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잠시 후, 수령들이 충분히 멀어지자 목진은 영진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쳐다봤는데 김렬과 곽양 등이 안색이 어두워진 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실망시켜서 괜히 미안하네.”
목진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허허, 자네가 영진사일 줄은 몰랐네.”
김렬이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한산도 차가운 눈빛으로 김렬 등을 노려보며 씨익 웃었다.
“자네가 생각지 못한 건 그것뿐만이 아닐 걸세. 그나저나 다보수의 보물을 독차지하지 못해서 어쩐단 말인가?”
“과연 그럴까?”
김렬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한산을 바라봤다.
“한산, 자네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해서 감히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수령이 없으면 또 어떤가? 자네가 과연 우리를 이길 수 있을까?”
황금사족과 천랑족을 합치면 7급 지존이 열 명이나 되지만, 목진 등은 많아 봐야 다섯 사람밖에 안 돼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김렬 쪽이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할 것이다.
“그럼 어디 해보든지.”
한산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인수나 실력으로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않았지만 그와 구유, 묵봉은 7급 지존 중에서도 정예 강자에 속하는지라 일반 7급 지존보다 훨씬 강했다.
또한, 한산 쪽에는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목진이 있었다. 주먹 한 방에 7급 지존인 육수를 죽일 뻔한 소년은 한산마저 감히 무시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하여 7급 지존 다섯 명이 함께 공격해도 목진은 전혀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김렬은 차가운 눈빛으로 한산을 노려보더니 씨익 웃었다.
“서마족의 한산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더니 오늘 드디어 힘을 겨뤄보는군.”
“구유족의 구유는 나한테 맡기게.”
천랑족의 곽양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구유를 노려보며 말했다. 김렬과 곽양은 한산, 구유, 묵봉만 쓰러뜨리면 나머지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영진을 쳤던 목진은 6급 지존밖에 안 되니 그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