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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52화 (651/1,000)

652화. 다보호(多寶湖)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목진이 갑자기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한테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나와 싸우다가 도망갔던 사람이 과연 목숨을 내걸 수 있겠나?”

김경천은 일전의 대결에서 목진의 기세에 완전히 제압되었다. 목진은 그보다 훨씬 독한 사람이라 목숨을 내던지며 달려들었는데 김경천은 그러지 못해 결국 지고 말았다.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싸울 리가 없었다. 이에 김경천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 안 되면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지!”

그는 다시 목진의 기에 눌렸고 목진이 봐준다면 그 대가는 얼마든지 상의해서 결정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이를 바로 알아챈 목진은 한산, 구유 등을 바라봤는데 그들은 목진의 뜻을 따르겠다고만 했다.

“오늘 일을 이대로 묻을 수도 있긴 한데 조건이 있네.”

“일단, 다보수의 보물에 더는 얼씬거리지 말게.”

목진의 말에 김경천 등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다보수 때문에 신수지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경천은 목진의 차가운 얼굴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그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는 누구보다 독한 미친놈이 되어 자신을 죽일 것이 분명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김경천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곽양의 안색도 함께 어두워졌다. 그는 황금사족이 철저하게 준비했기에 승산이 클 거라 여겼는데 한산의 편에 목진 같은 요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6급 지존의 실력으로 7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김경천을 쓰러트린 목진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가 되었고 다보수의 보물을 획득할 자격까지 잃고 말았다.

그런데 김경천마저 감히 목진의 뜻을 거역하려 하지 않아 곽양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자네 때문에 우리가 엄청난 손해를 봤으니 배상을 해줘야겠네. 1인당 지존영액 100만 방울씩 내어주게.”

목진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역시 김경천 등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 일을 이렇게 쉽게 끝낼 수는 없었다. 이에 가능한 뺏을 수 있을 만큼 뺏고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에 김경천 등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1인당 지존영액 100만 방울이라니, 황금사족과 천랑족 사람을 합치면 8명 정도 되는데 지존영액을 800만 방울이나 내줘야 한단 말인가?

그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목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김경천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하자 목진은 금세 정색하더니 지존해를 소환해 강력한 영력 파동을 방출했다.

“자네 목숨값이 지존영액 800만 방울도 안 된다면 어디 목숨을 걸고 덤비게.”

목진이 말을 마치자 웅장한 영력 파동이 점차 난폭해졌다.

김경천은 살기 가득한 목진을 바라보자 온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며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목진은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위를 맴도는 살기가 더 그득해졌다. 그는 김경천이 정말 목숨을 걸 거라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대치에 주위 공간이 바로 일그러졌고 김경천은 영력을 거두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좋네, 원하는 대로 하겠네!”

목진도 그제야 살기를 거두고 다시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자네가 아량이 넓은 사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네. 자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니 지존영액 800만 방울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야 안 되지.”

목진의 아부에 그는 화가 잔뜩 치밀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괜히 천랑족 곽양을 쏘아봤다.

“살고 싶으면 지존영액 500만 방울을 내놓게.”

곽양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랑족의 생존자는 세 사람뿐이라 지존영액을 300만 방울만 내면 되는데 김경천은 500만 방울이나 요구했다. 이건 대놓고 천랑족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설마 싫은 건가?”

곽양의 태도에 김경천은 점차 살기를 품었다.

이에 곽양은 흠칫 놀라 결국 이를 악물고 남아있는 지존영액을 끌어모아 김경천에게 전했다.

그는 천랑족을 무시하는 김경천이 괘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작 김경천은 녀석을 무시한 채 지존영액을 탈탈 털어 겨우 800만 방울을 모았다.

다 모아진 지존영액 800만 방울을 보자 마음이 아팠지만 결국 목진한테 넘겼다.

“자!”

목진은 자신한테 날아온 옥병을 힐끗 보더니 만족하듯 미소를 지으며 이를 거뒀다.

이번 기회에 김경천 등을 전부 죽이지는 못했지만 지존영액을 800만 방울이나 획득했으니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것으로 수련하면 실력이 더 늘어 6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네는 역시 호탕하군. 그럼 이만 떠나게.”

목진이 방긋 웃으며 말을 건네자 김경천 등은 만수묘의 깊숙한 곳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그곳은 바로 다보수가 죽은 장소로 엄청난 보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은 보물을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김경천이 크게 다쳐 전투력을 잃은 상황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섣불리 보물을 빼앗으려 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시다!”

김경천은 더는 무모하게 덤비려 하지 않고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뒤돌아섰다.

김렬 등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뒤따랐다. 오늘 일은 그들한테 엄청난 수모였다. 이길 거라 확신했는데 6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인간 녀석 때문에 모든 걸 망쳐버렸다.

목진은 김경천 등이 멀어지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사실 그는 녀석들이 정말 목숨을 걸고 덤빌까 봐 걱정했다. 그러면 그 또한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김경천은 역시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이야.”

구유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일전의 대결에서 목진도 기세로 제압한 틈을 타서 녀석을 간신히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경천이 아무리 상대하기 어려워도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한 번 이긴 사람은 앞으로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건 자만이 아니라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김경천이 아무리 황금사족의 뛰어난 천재라고 해도 목진은 자신이 훨씬 강하다고 굳게 믿었다.

더구나 그는 용봉진경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 육신이 훨씬 강해졌고 여러 차례의 대결을 통해 실력이 빠르게 늘었기에 언젠가 7급 지존경에 이르면 김경천을 쓰러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 외에도 목진한테는 영진과 사신마권도 있었다. 비록 그의 최강의 필살기는 전진사지만 일단 조건이 만족되면 지지존이 아닌 이상 아무도 그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하여 목진은 김경천 따위를 위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신수지원에 들어와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자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네.”

옆에 서 있던 한산도 감탄하며 말했다.

“자네와 비교하면 우리는 놀고먹는 거나 다름없으니 괜히 미안하군.”

만수묘에 들어서서부터 대부분 위기는 목진이 해결했다. 목진이 아니었으면 한산 등은 이미 만수묘를 떠났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조금전에 획득한 지존영액을 나누려 했는데 한산은 물론이고 구유마저 거절했다.

연체탑에서는 함께 적을 물리쳐 목진이 획득한 지존영액을 나눠 가지는 것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에 얻은 지존영액은 목진이 목숨을 걸고 싸워 얻은 것이다.

게다가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목진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러니 나눔을 거절하는 것이 당연했다.

목진은 한산 등의 태도를 확인하고는 바로 지존영액 800만 방울을 거뒀다. 지존영액이 충분해 그의 영력 수련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럼 얼른 다보수의 운락지로 갑시다. 김경천 등이 마음을 바꿔 돌아오면 또 어떤 변고가 생길지 모르네.”

한산의 말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다보수의 보물을 얻기 위해 여태껏 애를 썼으니 이제 다보수의 운락지에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목진도 다보수의 보물이란 말에 자못 기대되었다. 정말 준 성물이 나타날까? 정말 그렇다면 이런 횡재는 또 없을 것이다.

그건 지존영액 800만 방울보다 훨씬 값진 물건이었다.

“갑시다!”

한산은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히쭉 웃으며 만수묘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목진 등도 바로 뒤따랐다.

그들이 일전에 만수묘의 수령을 전부 끌어들인 덕분에 가는 길이 제법 순탄했고 가끔 나타나는 수령이 있긴 해도 수량이 얼마 안 되어 훨씬 수월했다.

그러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가장 앞쪽에서 달리던 한산이 점차 속도를 늦추었다. 주위에 사망의 기운이 암흑색을 띨 정도로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음산하기 그지없는 사망의 기운 때문에 목진 등의 어깨에서 활활 타오르는 하얀색 화염마저 미약해졌고 그들 체내의 영력도 움직임도 느려졌다.

이곳 사망의 기운은 상당히 무서웠다.

이에 목진 등은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사망의 기운이 이 정도로 짙다는 것은 강대한 생물이 이곳에서 죽은 뒤, 육신이 문드러져 사망의 기운을 방출했다는 말이었다.

목진 등은 다보수의 운락지와 상당히 가까워졌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전진하던 목진 등의 앞쪽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사망의 기운이 사라질 기미가 보였다.

이에 목진 등이 잠시 멈춰서 앞쪽을 바라보자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찬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맑고 투명한 호수가 나타났다. 만 척 정도의 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 보였다.

사망의 기운에 오염되지 않아 깨끗한 호수는 눈부신 빛을 발했고 외부의 사망의 기운을 전부 물리쳤는데 강대한 의식이 이곳을 수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가 곧 다보수의 운락지로 다보호라 부르곤 하지.”

한산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영롱한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보호라…….”

목진도 놀라 호수를 살펴봤는데 호수는 투명해 보여도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특이한 힘이 호수의 내부를 완벽하게 차단한 것 같았다.

이에 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옷깃을 휘날리자 영력 한 갈래가 호수에 스며들더니 돌풍이 휘몰아쳐 파도가 일었다.

목진 등은 파도가 일 때 호수의 내부에 영롱한 백광을 발하는 백골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백골은 그 크기가 엄청났는데 그중 일부마저 천 장 정도였으니, 생전에 덩치가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저것이 바로 다보수의 해골이네.”

한산은 정색하며 조금 드러난 백골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제 어떡하면 되나?”

구유가 물었다.

“호수는 맑고 투명해 보이기는 하나 그 속에 다보수 생전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 일단 닿으면 영력에 해가 되니 절대 들어가면 안 되네.”

“그럼 보물은 무슨 수로 얻는단 말인가?”

묵봉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영력으로 돌풍을 일으켜 파도가 일면 다보수의 뼈가 드러날 것이네. 녀석의 뼈에 접촉하면 의식으로 호수 안에 든 보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네. 대신 준 성물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각자의 운에 달렸네.”

한산의 말에 다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목진은 호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호수가 외부의 모든 간섭을 차단하긴 했지만, 깊숙한 곳에서 지극히 강력하고 오묘한 파동이 느껴졌다.

이건 생명이 아니라 신기가 발하는 파동이었다.

호수의 깊숙한 곳에 분명 준 성물이 있을 것이다!

준 성물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운에 달렸겠지만 목진은 제법 기대가 되었고 부디 좋은 물건을 발견하길 기도했다.

목숨까지 걸며 여기까지 왔는데 준 성물 정도의 보물을 얻지 못하면 괜히 힘이 빠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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