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5화. 백명과의 대결
“그럼 나머지 한 채는 뭐야?”
마지막 석상은 고개를 들고 포효하는 거대한 짐승으로 육신만으로 하늘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몸이 온통 까만 것이 커다란 손을 휘두르면 만 리의 대지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저건 상고황수로 역시나 원고 때의 엄청난 신수 중 하나야. 녀석은 힘이 엄청 세고 광화할 수 있는데 일단 그 상태에 빠지면 전투력이 배로 늘지. 통천원족도 이런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상고황수에서 비롯된 것일 거야. 역시 고적에 기재된 대로 신수지원에 수존(獸尊)은 세 분이었어. 그들은 신수지원이 파괴되자 최후의 반격으로 역외족의 왕 여러 명을 죽이고 이곳에 봉인해 제압했다고 들었거든.”
구유는 경외의 뜻을 품고 커다란 제단을 보며 말했다.
“수존 세 분이라…….”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들이 수존이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제단 밖의 빨갛고 괴이한 대지에 더 눈길이 갔다.
목진은 갑자기 다보수가 사망한 곳에 있던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는 신비로운 구멍이 떠올랐다. 다보수의 정혈은 전부 그곳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곳 사이에 일종의 연결이 있는 건 아닐까? 어찌 됐든 목진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추 비슷한 것 같군.”
그때 구채공작족의 공령이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실력이 출중하여 여기 온 것이라 생각하네. 내역은 원고 시기, 신수지원의 수존 세 분이 사망한 곳이고 이곳에서 저들의 계승 정혈을 획득할 수 있네.”
공령의 말에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정예 신수 종족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만…….”
공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계승 정혈은 세 갈래뿐이라 이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세 사람밖에 안 되네. 그러니 나머지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네.”
의지가 활활 타오르던 사람들은 순간 시무룩해졌다. 계승 정혈이 세 갈래뿐이라면 정예 종족 중에서도 두 종족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머지는 오죽할까?
목진은 놀라지 않은 듯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는 계승 정혈을 얻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기에 기대도 실망도 없었다.
그러나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역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실력이 출중했는데 계승 정혈을 획득할 자격이 있는 것은 정예 신수 종족들뿐이었다.
사람들은 언짢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때 백명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규칙은 알았으니 난 원고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선택하겠네.”
말을 마친 백명이 바로 돌계단 위로 올라갔는데 그곳에 원고 불사조의 석상으로 향하는 광장이 놓여 있었다. 그 광장을 건너야만 석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에 구유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원고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얻으려면 역시 백명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원고 불사조의 계승 정혈은 우리 종족과 연관이 있으니 다들 양보해주기 바라네.”
백명은 광장에 서서 석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곤붕족의 백발 사내는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는 백명과 싸워 원고의 불사조의 정혈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구채공작족의 공령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는 곤붕족의 종청봉과 만령조의 계승 정혈을 다툴 것이다.
그 외, 통천원족과 천신학족도 상고황수의 계승 정혈이 탐나 나서지 않았다. 전자는 체내에 황수의 혈맥이 깃들어 혈맥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서였고 후자는 황수의 광화의 능력이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네 신수 종족들이 나서지 않자 다른 종족들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다들 봉황족 사람인 백명의 뛰어난 실력에 감히 덤비지 못하는 것이었다.
백명은 조용히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으쓱하여 목진을 힐끗거렸다. 그는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취하자마자 바로 녀석들을 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는 귀신이라도 본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명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구유 앞에 서 있던 목진이 조용히 나서 돌계단을 타고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백명의 미움을 산 인간이 살아남을 궁리를 하지 않고 감히 백명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백명도 이러한 광경에 표정이 확 굳었고 자신을 향해 오는 목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
목진은 백명의 주시 하에 광장에 올라가 상대방의 반응은 무시한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취하고 싶네.”
이에 백명은 수중의 하늘색 깃털 부채를 가볍게 흔들어 한류를 형성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승 정혈을 너무 쉽게 얻는 것 같아 재미없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백명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여전히 목진을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았다.
녀석의 말에 구유는 화가 났고 묵령도 씩씩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경지를 막 돌파한 목진이 백명과 싸워 이길 거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작 목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목진의 말에 백명은 더 크게 웃더니 더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는 목진이 센 척한다고 생각하고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차가운 살기가 그의 주위에 형성되었다.
백명이 공격을 개시하면 엄청난 힘으로 가장 빨리 목진을 짓밟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절대 지금처럼 태연하지 못할 것이다.
“감히 겁도 없이!”
백빈은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는 멍청한 인간 녀석이 감히 백명한테 덤빌 줄 몰랐다.
목진이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면서 진정한 봉황의 기운과 연관된 물건을 건네면 백명은 구유족을 봐서라도 그를 살려줄 텐데 지금은 뭐라 해도 이미 늦었다. 백명은 목진 때문에 엄청나게 화가 났고 이곳 제단에서 녀석을 죽일 것이다.
한편, 백빈의 옆에 서 있는 적봉족의 적홍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몰래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목진이 정말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목진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다들 그를 이미 죽은 사람 보듯 쳐다봤다.
“녀석, 제법 담대하군. 자네가 백명과 싸워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 육후(陸候)가 자네를 지켜주겠네.”
상황을 지켜보던 통천원족의 삐쩍 마른 대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백명을 좋게 보지 않았던 터라 아무도 나서지 않아 제법 불쾌했는데 목진이 바로 나서서 조금 놀랐다.
그러나 육후 역시 목진이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말을 마친 육후가 바로 상고황수의 석상으로 향하는 광장에 날아올라 수중의 석곤을 힘껏 내리찍자 대지가 순간 격렬하게 진동했다.
“천신학 잡종이 감히 상고황수의 정혈 계승을 취하려 하다니, 나부터 이기고 보지 그러나!”
육후는 생긴 것과는 달리 성격이 아주 호탕해 보였다.
이에 천신학족의 대장도 가볍게 웃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육후한테 달려가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빨간색 장검이 나타났는데 학의 입 모양처럼 생긴 장검에서 특이한 향을 방출했는데, 그 속에 지극히 무서운 독이 들어있는 듯했다.
잇따라 곤붕족의 종청봉도 구채공작족의 공령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공령 선녀, 만령조의 정혈은 대결에서 이긴 사람의 몫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럽시다.”
공령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순간, 두 사람은 대치 상태를 이뤘다. 양자는 각 종족 젊은이 중 정예 강자라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났으니 전력을 다해 싸워 우열을 가리고 싶었다.
슉!
두 사람은 바로 나머지 광장에 올라가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석상으로 향하는 세 광장에는 각각 두 사람씩 올라갔다. 그들이 내뿜는 기세에 하늘이 요동쳤고 웅장한 영력이 휘몰아쳐 그야말로 장관을 이뤘다. 여섯 사람은 곧 치열한 싸움을 펼칠 것이다.
사람들은 목진과 백명의 대결이 가장 먼저 끌날 거라 여겼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때 불사조의 석상으로 향하는 광장에 서 있던 백명이 눈을 서서히 뜨고 목진을 쳐다보더니 체내에서 웅장한 한류를 끌어올려 차가운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목진은 기세등등한 백명을 보더니 이내 정색했다. 백명은 얄밉긴 해도 실력이 확실히 뛰어났고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난 자네를 얼음 조각상으로 만들어 영원히 신묘원에 남게 할 것이네.”
백명이 말을 마치자마자 발을 힘껏 구르자 육안으로도 보이는 충격파가 폭발해 주위가 확 추워졌고 광장의 지면에 빙층이 형성되어 목진에게 향했다.
위잉!
목진이 체내에서 눈부신 금광을 발하자 피부 표면에 녹아있던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이 완전히 되살아나 오른팔에 모이더니 힘을 모아 일격을 날렸다.
쿵!
목진이 휘두른 주먹에 앞쪽 공간은 바로 무너졌고 무서운 힘이 휘몰아쳐 그를 향한 빙층 한류와 부딪쳤다.
쿵!
양자가 맞서자 광장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고 목진은 지면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뒤로 물러났다.
목진은 여덟 보 정도 뒤로 물러나더니 한광을 내뿜으며 주먹을 쥐어 다시 한류 빙층을 때렸다.
이에 빙층에 균열이 일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7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마저 집어삼킬 한류가 산산이 부서졌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흠칫 놀라 몰래 혀를 내둘렀다. 다들 목진의 공격에 7급 지존도 막아내지 못할 힘이 깃들었음을 발견했다.
우수수 떨어지는 한빙 파편들 사이에 서 있는 목진은 온몸에서 금광을 발했다. 그는 용봉체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화산이 폭발할 때 방출되는 힘을 만들었다.
“허허, 힘이 제법 세군.”
백명은 허공에 나타나 목진이 부순 한빙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 한빙은 그리 쉽게 부서지지 않네.”
백명이 옷깃을 휘날리자 우수수 떨어지던 한빙 파편들이 화살처럼 목진한테 날아갔다.
이에 목진이 두 손을 모아 결인하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이 나타나 용봉 광막을 형성해 예리한 한빙 파편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허공에 떠 있던 백명은 그 광경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목진의 육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7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라도 그가 일전에 한 공격에 못 이겨 도망가기 바빴는데 목진은 무리 없이 막아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과연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백명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한 손으로 결인하더니 이내 정색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놀아볼까?
쿵!
화산이 폭발하듯 무서운 영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자 하늘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한빙 파편이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백명이 목진을 내려다보며 형성한 강력한 영력 위압감에 흠칫 놀랐다.
이는 절대 7급 지존이 형성할 수 있는 영력 위압감이 아니었다.
이건 진정한 8급 지존의 힘이었다!
웅장한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치자 백명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차가운 영력이 한데 모여 만 장 정도의 빙산을 이뤘다. 날개를 펼친 한황처럼 생긴 빙산은 오묘한 무늬가 새겨진 채 빛을 발하며 천지의 영력을 흡수했다.
사람들은 한황 빙산을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에 다들 백명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챘다. 그는 목진을 봐주지 않고 바로 8급 지존의 실력을 아낌없이 방출했다.
이번에 목진은 정말 큰코다칠 것이다.
잇따라 백명이 손을 뒤집자 한황 빙산이 운석처럼 사정없이 내려앉아 목진에게 향했다.
“한황경(寒凰經), 황산진만수(凰山鎮萬獸)!”